두견새는 무슨 일로 눈물로 산꽃을 적시는가 杜鵑何事淚山花 두견하사루산화 남은 한을 풀명자나무 늙은 등걸에 의탁함인가 遺恨分明託古樝 유한분명탁고사 슬픔은 맑고 충정이 붉은 것이 어찌 네 홀로만이더냐 淸怨丹衷胡獨爾 청원단충호독이 충신과 지사란 결코 다른 마음을 품지 않는단다 忠臣志士矢靡他 충신지사시미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성리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후 관직에 올랐으나 연산군의 폭정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연산군 10년(1504)에 일어난 갑자사화로 인해 그는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후 사망하였습니다. 이후 중종 때 신원되어 명예를 회복하였으며, 그의 학문과 덕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습니다.
정여창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그의 학통을 이어받아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 등과 같은 성리학자들의 배출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경학과 성리학에 밝았으며, 실천을 중시하는 학풍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효행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고향인 경남 함양군 개평마을에는 그의 유적지인 일두고택과 남계서원 등이 보존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