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괘궁정에 있는 편액 괘궁정기 원문

 

掛弓亭記

昔我先祖忠武公 當龍蛇搶攘之時 有詩曰 憂心轉輾夜 殘月照弓刀 噫弓者軍實中一良器也 旣張我弓 蕩掃凶鋒 弓之用大矣 余受節之明年夏 爲亭於堂之西 以爲射鵠之所 爲盟山戌削誓海漭瀁 洗劒解弓之遺躅 槩可想矣 羹墻之慕 當何如哉 旣以名亭 則此非帶鞬載櫜之謂也 戍樓殘月弓影 尙掛 舍是弓而奚爲 遂以扁掛弓 而竊寓感慕之忱云 戊寅仲夏

 

 

(번역)
괘궁정기

옛날 우리의 선조 충무공께서 임진왜란 전쟁의 극심한 혼란 시절, “근심 걱정으로 잠 못 이루어 뒤척이는 밤, 새벽녘 스러져가는 달빛이 활과 칼을 비추네 (憂心轉輾夜 殘月照弓刀)”라는 시를 지으셨다. 아! 활이란 군중(軍中)의 참으로 훌륭한 병기이다. 우리의 활을 당겨 흉악한 왜적의 기세를 쓸어버렸으니, 활의 쓰임이 참으로 대단하다. 내가 통제사로 부임한 이듬해 여름, 세병관의 서쪽(堂之西)에 정자를 짓고 이를 활 쏘는 장소로 삼았다. (정자를 짓고 나니) 깎아지른 듯한 산과 넓고 넓은 바다를 두고 맹세하고 (爲盟山戌削誓海.瀁), 전쟁을 끝내고 칼을 씻고 활을 풀었던(洗劒解弓) 그 분의 행적을 상상할 수 있어서,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羹墻之慕)이 절로 일어났다. 이미 정자의 이름을 지었으니, 이는 늘 활집을 차고 화살통을 메는(帶.哉.) 무장을 뜻함이 아니다. 새벽달이 뜰 때면 수루(戍樓)에 활 모양의 달그림자(弓影)가 여전히 걸려 있는 듯하니, 정자의 이름을 지음에 있어 이 ‘활(弓)’이라는 글자를 내버려 두고 무엇으로 하겠는가? 그리하여 마침내 ‘괘궁(掛弓)’이라 편액하고, 그 속에 가만히 선조를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정성(感慕之.)을 붙인다. 무인년 (1698년) 중하(仲夏: 음력 5월)

 

 

괘궁정기(掛弓亭記)에 언급한 ‘제승당야음(制勝堂夜吟)’ ‘진중음(陳中吟)’
제승당 야음(制勝堂夜吟) 1595년 10월. 이순신(李舜臣) 한산도.

 

水國秋光暮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驚寒鴈陣高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떳구나.
憂心展轉夜 가슴에 근심 가득해 잠 못 드는 밤,
殘月照弓刀 새벽달이 칼과 활을 비추네.

 

水國秋光暮 (수국추광모)
驚寒鴈陣高 (경한안진고)
憂心展轉夜 (우심전전야)
殘月照弓刀 (잔월조궁도)

 

 

 

1. 「괘궁정기」의 의의와 성격

건립 배경: 1698년 제74대 삼도수군통제사 이홍술이 통제영 세병관 서쪽에 ‘괘궁정’이라는 사정(射亭)을 지으며 작성한 창건 기문입니다.

문학적·상징적 의의: 활의 무기적 중요성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초대 통제사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한 추모와 존경을 담았습니다.


2. 작성자 이홍술(1647~1722)


덕흥대원군의 후손이자 조선 후기 왕족 출신 무신으로, 삼도수군통제사를 거쳐 훈련대장·형조판서 등 요직을 역임한 핵심 관료입니다.


3. ‘괘궁(掛弓)’의 의미와 중의적 평화관


이름의 뜻: ‘활을 건다’는 뜻으로, 평화 시기에도 무인으로서의 경각심을 유지하고 충무공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상징적 연관성: 세병관의 ‘세병(洗兵, 무기를 씻음)’ 및 지과문의 ‘지과(止戈, 창을 멈춤)’와 일통합니다.


중의적 의미: 전쟁이 다시 없기를 바라는 평화의 염원과, 그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군사적 대비와 경계심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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