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재천이면 이견대인이라....용이 하늘에 있으면서 주위 도움을 받으면 가장 좋은데,주위 도움이 될만한 사람은 모두 쳐내고 스스로 고립무원이 되어 제대로 된 조언을 얻지 못하고 무속이나 극우로 중심에서 벗어났으니 표준편차 밖의 경우를 중심으로 놓으니 탄핵이 인용될 수 밖에...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조차 모자라 더 높이 오르려고 했으니 결과는 항룡유회...결과적으로 후회만이 남았습니다.

가야진사의 용(남편 용,본처용,첩용)은 하늘로 오르기도 전에 본처용이 첩용을 죽이려다 결국 남편용이 죽은 케이스로 용이 하늘로 오르는 비룡재천을 꿈꾸다 망한 케이스.

오늘은 가야진사에서 가야용신제를 지내는 날입니다.


하늘에 오르기도 힘들고 만약 오르더라도 더 욕심을 내다 망하니 절제의 예술을 생각하면 해외선물 거래가 떠오릅니다. 언제나 건강한 정신과 체력을 도모하기 위하여 저의 경우는 금요일은 매매를 쉽니다.원하는 위치까지 올 때까지 인내하고 욕심을 제어하면 그것이 바로 항룡이 되는 길입니다.

 

 

《戒龍吟》계룡음

비룡재천 몽진공(飛龍在天夢盡空)
항룡유회 오탁중(亢龍有悔汚濁中)
이견대인 진사혈(利見大人眞似血)
무속편차 탄핵풍(巫俗偏差彈劾風)
첩용상극 원형질(妾龍相剋原形質)
본처도천 일무종(本妻刀天一抹蹤)
해외선물 절제예(海外先物節制藝)
금요휴심 양기공(金曜休心養氣功)

 

 
 

"비룡재천 몽진공(飛龍在天夢盡空) / 항룡유회 오탁중(亢龍有悔汚濁中)"
"하늘에 오른 용도 꿈이 다 비어버렸구나 / 지나친 욕심에 진흙탕 속에서 후회하네"
"비룡재천":《주역》의 '비룡재천(飛龍在天)'에서 차용, 권력의 정점을 이룬 용이 오히려 몽환적 붕괴를 맞는 모습
"항룡유회": 같은 괘의 '항룡유회(亢龍有悔)'와 연결, 지나친 권력욕이 오염(汚濁)된 결과를 초래함을 경고


"이견대인 진사혈(利見大人眞似血) / 무속편차 탄핵풍(巫俗偏差彈劾風)"
"대인(大人)을 만남이 이로울 줄 알았으나 피비린내 나네 / 무속과 편향된 길로 탄핵의 바람이 불어오더라"
"진사혈(眞似血)": '피처럼 진실하다'는 역설적 표현으로, 권력자의 가신(利見大人)이 오히려 피의 대가를 부름
"무속편차": 현실 도피적 무속 신뢰와 정치적 극우(極右) 편향을 '편차(偏差)'라는 통계 용어로 풍자

"첩용상극 원형질(妾龍相剋原形質) / 본처도천 일무종(本妻刀天一抹蹤)"
"첩 용과의 상극에서 본래 모습 드러나니 / 본처 용은 하늘에 칼을 들이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도다"
"원형질": 생물학 용어를 차용, 권력 구조의 본질(本質)이 폭력적 상극(相剋)임을 노출
"일무종(一抹蹤)": '한 줄기 칼날에 흔적도 없음'을 상징, 본처(본처용)가 첩(첩용)과 남편(남편용)을 모두 제거한 결과적 공허

"해외선물 절제예(海外先物節制藝) / 금요휴심 양기공(金曜休心養氣功)"
"해외 선물거래도 절제의 예술이니 / 금요일은 마음 쉬고 기력을 길러야 하네"
"절제예": 권력의 과욕을 금융 시장의 리스크 관리에 빗대어 경계
"양기공": 도가(道家)의 수양론을 차용, 정치적 피로도에 대한 치유책 제시
종합 주제
"과욕과 편향의 권력은 필연적으로 붕괴하니, 절제와 균형이 생존의 길이다"

.........
[가야진사 세 용신의 전설]

가야진사의 세 용신에 대한 전설은 신라가 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용당리 일대를 전초기지로 삼았을 때부터 전승되어왔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양주도독부에 있던 한 전령이 공문서를 가지고 대구로 가던 중 이곳 주막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나서 “나는 이 곳에 사는 암룡인데, 숫룡인 남편이 첩만 사랑하고 나를 멀리하니 첩을 죽여주면 꼭 은혜를 갚겠다.” 하며 애원하였다. 전령은 여인의 딱한 사정에 동정심이 생겨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다음날 여인이 가리켜주는 대로 숫룡이 첩을 데리고 논다는 용소에 가서 칼을 빼어들고 바위틈에 숨어 기다렸다. 한참 있으니, 갑자기 강물이 끓어오르면서 용 두 마리가 불쑥 솟아오르며 서로 엉켜 놀기 시작하였다. 겁에 질린 전령은 다급한 나머지 앞뒤를 가릴 새도 없이 칼을 번쩍 들어 가르쳐준 첩룡을 내려친다는 게 공교롭게도 칼이 빗나가 숫룡을 쳐죽이고 말았다. 남편의 죽음에 슬피 울던 암룡은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고, 당신에게 용궁을 구경시켜 줄까 하니 가겠느냐?”라고 제의하였다. 전령은 용궁에 대한 호기심에 암룡의 제의를 받아들여 입었던 전복과 칼, 투구를 벗어놓고 암룡의 등에 올라타고 강물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로부터 암룡과 전령의 자취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이 마을에는 알 수 없는 재앙이 그치지 않고 일어나므로 주민들이 힘을 모아, 용이 놀던 용소가 보이는 곳에 사당을 짓고, 세 마리의 용과 전령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봄과 가을에 돼지를 잡아 용소에 던져 넣으며 제사를 지내니, 재앙이 그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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