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조선 성리학의 출발점은 목은 이색의 천인무간 사상에서

 

- 일시: 2023-3-11~12
- 날씨: 흐린 후 비가 옴
- 몇명: 홀로

 

한국의 유학은 실질적으로 목은 이색으로 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목은의 수양철학,치인철학,초탈철학은 성리학의 출발점이었습니다.수양 철학은 권근,이언적,이황으로 이어지고 치인철학은 조광조,이율곡으로 이어지고 초탈철학은 서경덕,남명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번 탐방은 목은 이색을 살펴보기 위함입니다.이미 고려사은에 언급되는 구미의 야은 길재,영천의 포은 정몽주,성주의 도은 이숭인을 둘러보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영덕(盈德)의 목은 이색을 찾아갑니다.이색은 도은 이숭인과 야은 길재는 이색의 문생(門生)이니 이색이 스승이 됩니다.정몽주도 이색의 제자라는 이야기도 있고 교유문인(交遊文人)이라고도 합니다. 

이색은 고려 후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입니다.

 

이색은 익재 이제현 밑에서 공부했으며 성리학을 연구했고 문하에 정몽주, 정도전, 이숭인, 권근, 길재, 이첨, 하륜, 윤소종, 염흥방 등 사실상 여말선초 거의 모든 사대부들을 키워 낸 인물로 자신의 제자인 권근, 정몽주, 길재 등을 통하여 후일 관학파와 사림파가 형성되었기에 그 계보에서 거의 최상단에 있는 인물로 신진사대부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한마디로 사대부의 아버지입니다.

가는 길에 18년전인 2005년에 팔각산 등산을 하면서 보았던  옥계계곡의 침수정을 들러보기로 합니다.

 

 

▷ 답사일정(風輪) :492km

도천숲 - 옥계계곡,침수정 -괴시리 전통마을 -목은 이색 유적지 -나옹화상영덕생가지-원구 전통마을-인량리전통마을

 

2023-3-11

밤 8시에 부산을 출발하여 도천숲에서 일박을 하려다 계획을 바꾸어 11시쯤 옥계계곡에 도착하여 계곡 옆 넓은 주차장에서 일박을 합니다.

 

2023-3-12

 

▷옥계계곡 침수정: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하옥리 1004

 

누군가 옥계계곡 물가에 텐트를 치고 일박을 했나봅니다.겨울이라 수량이 적어서 물아일체의 경지롤 맛보려 했나봅니다.학소대 옆 작은 텐트가 한가롭습니다만 안전상으로나 자연보호 측면에서 마냥 좋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일출 30여분전에 일어나 침수정 근처를 어슬렁거리지만 오늘 비가 온다고 한 그대로 하늘이 흐리고 황사기운도 조금 있어서 사진을 찍기에 좋은 여건은 아닙니다.침수정 출입문은 잠겨있고 생강나무인지 산수유 나무인지 헛갈리는데 노란빛이 머리 위에 아른거립니다.

 

 

우리나라 여러 누정을 돌아다 보았지만 가장 경관이 좋은 장소에 자리한 침수정(枕漱亭)입니다.침수정 한자글씨를 유심히 보면 배개 침자에 양치질 할 수자를 누정의 이름으로 사용합니다.그래서 당연히 저는 돌로 배개 삼고 물로 이를 닦는다고 생각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물로 배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 침수정"이라고 되어 있어서 그 연유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중국 고사인 ‘침류수석(枕流漱石)’에서 유래하는데 ‘물로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다’는 뜻으로 이 말은 잘못 쓰인 단어입니다.‘침석수류(枕石漱流)’, 곧 ‘돌로 베개 삼고, 물로 이를 닦는다’라는 제 생각대로 말이 맞습니다.그러나 반전이 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물로 베개를 삼는 것은 더러운 귀를 씻으려는 것이요, 돌로 이를 닦는 것은 세속에 물든 치아를 갈아서 없애기 위함’이라고 임기응변으로 엉뚱하게 주장하는 것을 빗대어 ‘침류수석’이라고 하게 되고 이후는 의미가 변하여 침류수석은  ‘세속을 떠나 자연을 벗 삼아 사는 모습’을 의미하는 말로 널리 사용됩니다.이름이 너무 멋집니다. 

 

이 정자는 손성을(孫星乙 ; 1724~1796)이 1784년(정조 8)에 지은 정자인데 그는 벼슬을 하지 않아서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지은 옥계37경을 보면 글재주가 뛰어난 것을 보면 자연에 은거한 도인에 가깝지 않았을까 유추됩니다.  

좌측은 위는 육산으로 나무들이 많고 우측은 온통 바위벽입니다. 우측 앞은 향로봉과 촛대봉이 보입니다.

 

세상사 훌훌 던져버리고 호랑이 사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정자를 짓고 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살아간 조선의 선비, 손성을은 '발탁되면 행하고 버리면 숨는' 길 중에 숨는 길을 택했나봅니다.

요즘 같이 천지비괘의 시대엔 오히려 숨어버리는 것이 잘 처신하는 것이라는 느낌도 받습니다.

 

계곡으로 내려와서 보니 물가에도 병풍같은 바위로 둘러 쌓여 침수정 아래 큰 물웅덩이 2곳 모두 보이지 않습니다.나무가 보이는 작은 산이 향로봉입니다.

침수정 뒤의 "병풍대"는 제6경인 ‘삼층대(三層臺)’로 노래한 시가 있습니다.


"신선의 도를 배우려 계단을 만들어서
뚜렷이 삼층을 나누어 냇가에 우뚝 서있네
머리 위의 기이한 모습 누구나 알수 있고
몇 년 동안 애쓴다면 한번쯤 오를 텐데"

 

손성을이 지은 침수정 내의 시는 이렇습니다.

"만사에서 벗어나 이 몸을 정자 하나에 맡겨두니

맑은 물소리 부서져 정자 난간으로 들어오네
용은 저문 봄을 근심하여 구불구불 굴속에 숨었고
학은 청명한 가을을 좋아해 병풍바위에서 춤을 추네
오래된 세 마리 돌 거북은 폭포 물 얕아지길 엿보는데
한가한 구름은 팔각 봉우리를 감았다 풀었다 하네
평생토록 둥실둥실 떠있듯이 노을 안개 속에 앉았으니
선계 같은 현실이 꿈인가 하여 몇 번씩 깨어나네"


18년전과는 달리 도로 옆의 옹벽을 비롯하여 사람의 때가 타서 예전 분위기는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선유풍류적 시각에서 이런 경치를 그냥 지나 칠수는 없었습니다.

 

▷괴시리전통마을:경북 영덕군 영해면 호지마을1길 11-2

 

괴시리 마을을 거쳐 목은 이색의 탄생지로 먼저갑니다.차로도 올라 갈 수 있지만 괴시리 마을 입구에 주차하고 조그마한 산 언덕을 넘어 호젓한 산길로 갑니다.

 

그런데 산 입구에 보이는 450년된 왕 버드나무가 이곳이 전설의 고장임을 알려줍니다. 

 

산 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진달래가 먼저 나중을 나왔습니다.오늘같이 흐리멍텅한 날씨에도 한방에 화사한 기운을 보이며 아주 사람을 홀리게 합니다.

 

▷목은 이색 기념관: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341

 

목은 이색은 고려말 조선 초 왕조 교체기에 불교의 폐단을 없애고 과거 제도를 개혁하고 토지 제도를 바로 잡았습니다.당시 불교사회를 성리학의 사회로 전환시켰으며 대 문호로 6000수가 넘는 시를 남겼습니다.목은 선생께서는 하늘과 인간은 다름이 아니라 본래 사이가 없이 연결된 하나(천인무간天人無間)라고 보았으며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나아가서 만물의 질서가 모두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늘과 하나되게 하는 유가의 심법(心法)의 요체인 중용(中庸)을 성리학의 경전으로 삼았습니다.그래서 때로는 인간이 물욕에 유혹되기도 하지만 곧 본래의 성품(본연지성本然之性)으로 돌아가려는 기능이 인간이 있다는 것은 원래 하늘과 인간이 하나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인간은 그 본래의 모습을 찾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보고 심성론心性論,수양론修養論,의리론義理論을 제시했습니다. 


깨어져 누워있는 비석이 보입니다."가정목은양선생유허비碑"로 보이는데 가정 선생은 목은의 부친 이곡(李穀1298-1351)으로 고려의 고위관직에 오른 사대부입니다. 그래서 위 비석은 이곡과 이색(李穡)[1328~1396]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입니다. 

 

드디어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 목은 이색의 초상화를 마주합니다.

 

 

유교,불교,도교를 하나의 이치로 녹여내는 삼교회통을 주장한 학자처럼 온화한 기품이 있었지만 함부로 범할 수 없는 당당한 위품이 보여지는데 수양으로 닦아진 그의 고매한 인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불교의 나옹화상과는 평생에 걸친 교분이 있었기 때문에 불교에 대해서도 정통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 말 정치와 종교 분야의 버팀목으로 존재감을 보이는데 목은 이색과 나옹화상은 인연이 남다릅니다.둘 다 영해부에서 태어나 여주 신륵사에서 생을 마쳤고 목은이 8년 아래로 나옹은 57세로 입적했고 목은은 20년 뒤 6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양촌 권근은 이색에 대하여 "공은 붓을 잡으면 곧 써나가기를 마치 바람불고 물 흐르듯 하여 조금도 막힘이 없었다.그럼에도 글의 뜻은 정밀하고 격률은 높고 예스러워,넓고 도도함이 강과 바다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목는 이색의 아래 한시는 쇠퇘해가는 고려왕조와 무력해지는 자신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반가온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엿는고
석양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흰눈 녹은 골짜기에 구름만 무성하구나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가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이색기념관이 머리에 해당한다면 괴시리 마을은 몸통에 해당하는 느낌입니다.

이제 괴시리 전통마을을 둘러봅니다.

괴정 옆의 시가 눈길을 끕니다.


늙음을 읊으면서 -괴정 남준형

총명은 유한하나 이치는 무궁한데 
부질없이 책 속에서 예순 살 늙은이 되었네
요즘 다시 천화(天花)가 책상 가득 떨어져 
흑백을 가져다가 청홍으로 바꾸었네

老吟(노음)
聰明有限理無窮(총명유한리무궁)
謾作書中六十翁(만작서중육십옹)
近復天花墜滿案(근부천화추만안)
飜將黑白幻靑紅(번장흑백환청홍)

(필사)


공감이 가서 문득 생각해보니
어느 듯 저 자신도 예순살이 되었음을 자각합니다.

 

 

나옹화상영덕생가지: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 58-1

 

반송이 심어져 있고 반송정 정자가 있습니다.나옹은 친구의 죽음을 보고 20세에 공덕사(攻德寺) 요연선사에게 출가했는데 나옹화상이 출가 할때 지팡이를 바위 위에 거꾸로 꽃아놓고 "이 지팡이가 살아 있으면 내가 살아있는 줄 알고 죽으면 내가 죽은 줄 알아라"했다고 합니다.원래의 반송은 1965년 700백년 수명을 다하고 고사했고 지금의 반송은 다시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반송정 주련의 글은 

"지혜롭고 명철함이 천추에 빛나고 
부처님의 밝은 등불 만고에 밝혔네
용틀임 푸른 반송 밝은 달을 머금었고
푸르른 대나무는 맑은 바람 띠었도다"

 

 

 

▷원구마을의 원구동신단: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152-18

 

매년 정월 보름날에 동신제를 지낸다고 합니다.새끼줄로 금줄을 쳐 놓았습니다.

 

영덕은 옥계계곡,도천 숲 같은 환경자원이 풍부하고 그 속에서 자연을 벗삼는 것은 기본이고 전통문화가 그대로 느껴지는 전통마을이 많았습니다.오늘 잠시 둘러 본 괴시리전통마을,인량리전통마을,원구전통 마을등 아직도 한옥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또한 서원이 많아서  학구열 또한 엄청 강한 지역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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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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