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작은 곳이 아니다.나철,채동선,조정래를 안다면 

 

- 일시: 2023-2-4~5
- 날씨: 대체로 맑음
- 몇명: 홀로

 



저에게 벌교라는 곳은 조직폭력배와 관련이 있다고 잘 못 각인되어 있었습니다.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벌교에서는 주먹자랑,순천서는 인물자랑, 여수에서는 돈자랑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 겁니다.사실 주먹과 관련하여 그 내막은 조직폭력배와는 상관없이 1907년 일본이 군대를 해산시키자 전국에서 의병활동을 불러왔는데 그 중 안규홍이라는 분이 1908년 벌교 장터에서 횡포를 부리는 일본헌병을 맨손으로 때려 죽인 이후 이런 이야기가 회자되었다고 합니다.안규홍은 머슴살이 신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근본을 지키기 위해 의병활동을 했습니다. 

독립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워지는 홍암 나철이 벌교출신이고 개천절의 노래를 작곡한 채동선 선생이 벌교출신입니다.특히 채동선은 홍난파 외 다른 음악가와는 달리 친일하지 않은 음악가였습니다.나철은 살아서 고생하고 죽어서 억울하게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인물입니다.나철은 단군교(대종교)를 창건하였고 일제는 대종교를 모시는 단군을 가장 싫어하여 유사종교로 격하시켰습니다.일제는 항일독립단체,곧 불온단체로 인정 할 수 없어서 1942년 11월 임오교번으로 모진 고문으로 대종교 교주와 간부를 옥사시켰으며 대종교 성경 23,000여권을 압수했습니다.대종교인들은 무단통치하에서도 독립운동을 했고 3,1운동 대한민국정부수립,청산리전투 등 이루 헤아릴수 없는 위대한 일들을 해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매년 개천절 행사를 합니다만 그 출발점도 대종교에서 가장 먼저 했습니다. 조선이 중국 연호를 사용한 것을 두고 사대라며 뭐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지금 사용하는 "서기"는 쉽게 말하면 "예수 연호"로 역시 우리나라 고유 연호는 아닙니다.아무래도 우리 고유연호는 기원전 2333년을 원년으로 하는 단기가 맞다고 봅니다.서기 2023년 올해는 단기 4356년입니다.

동양학의 인문학은 문사철(文史哲), 유불선(儒佛仙), 천문지리인사(天文地理人事)를 말하는데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문학입니다.벌교에서는 조정래의 태백산맥문학관이 있어서 분단한국의 이데올러기를 문학으로 정면돌파한 조정래 작가의 용기에도 고개가 숙여집니다.무엇보다 벌교는 2월이 제철인 꼬막정식이 유명하여 꼭 탐방해볼만한 곳입니다.원래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뗏목다리가 있었는데 벌교(筏橋)라는 지명도 이 다리에서 유래했습니다.지금의 홍교가 있는 자리입니다.

 

 

 

▷ 답사일정(風輪) :412km

 

홍암 나철선생 기념관,생가-벌교홍교-보성여관-태백산맥문학관-꼬막정식(1번지꼬막세상)-취송정

 

2023-2-4 


190km 2시간 반을 달려 나철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홍암나철기념관:전남 보성군 벌교읍 녹색로 5163

(1박)

2023-2-5

 

새벽 영하 5도 정도였지만 아침 햇살이 강하게 뻗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기념관 개관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홍암 나철선생은 조선 말 과거에 급제하여 전라도에서는 별명이 나급제로 유명하였습니다. 나라가 망하자 벼슬을 물리치고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단군을 모시는 대종교의 초대 대종사로 취임했습니다.


기념관은 벌교 IC에서 가까운 곳으로 석조와 한옥을 절충하여 강인한 느낌을 줍니다.

 

 

나철선생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과정에서 ‘국수망이도가존’(國雖亡而道可存), 즉 ‘나라는 비록 망했지만 정신은 가히 존재한다’는 정신, 우리의 정신, 우리의 역사의식이 중요하다는 기치 아래 외교, 테러, 교육, 종교, 무장투쟁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웠고, 마침내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놓았습니다.

대종교(大倧敎)에 대한 일제의 극악한 탄압에 맞선 최후의 수단으로 자결(自決)을 선택한 것도 한 인간으로서 결행하기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폐기 절식(閉氣 切息)’이라는 자결 방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힘든 일입니다.삼일신고라는 우리 전래의 명상법이 있어서 가능했을겁니다.

 

 

그의 흔적을 따라갑니다.처음엔 동양평화론으로 대변되는 외교항쟁으로 시작했습니다.처음엔 신사적으로 일본에 접근한 것입니다.그러나 한계를 깨닫고 을사오적 처단부터 시작합니다. 정신혁명으로 단군교 즉 대종교 부활(중광)합니다.

 

 

대종교인을 보면 무장독립운동세력으로 서일,김좌진,홍범도,지청천,이범석 장군이 보입니다. 민족사학자로는 신채호,박은식,정인보,김교헌이 보입니다.한글문화운동으로는 주시경,지석영,김두봉,이극로 선생이 보이고 민족지도자로는 이시영,신규식,조완구,이동녕이 보입니다.기념관의 개천문이 한글로 씌여진 이유를 알겠습니다.또한 입구에 단군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천부경이 입구 우측에 돌에 씌여져 있습니다.대종교의 3대 경전은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參佺戒經,수양경전)입니다.

 

개천절 행사를 가장 먼저 시작했습니다.국조 단군 신앙을 일제는 말살하고자 단군관련 서적 20만권 불태우고 식민사관으로 왜곡합니다.1910년 이전엔 단군을 신화라고 언급한 역사서는 없습니다.나라가 망한 후 단군성지 백두산으로 옮깁니다.중광단이 북로군정서가 되는데 정신무장으로 군인 대부분이 대종교 신자였으며 서일은 군교일치’(軍敎一致)를 지향했습니다.

백두산 아래 청일학교를 세웠는데 민족교육과 함께 독립군 양성 기지였습니다.

역사학으로 보면 김교헌의 "신단실기"는 이후 한국 고대사의 박은식의 한국통사,신채호 조선상고사로 이어집니다. 대종교는 민족이념이 되어 30만명 신자로 커져 일제는 무단통치로 포교규칙으로 대종교 말살하며 1915년 대종교를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나철은 삼성사에서 유서를 남기고 수행자의 모습으로 자결했는데 1919년 3.1운동과 대한독립선언서 기폭제가 되어 무장투쟁으로 진화하여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대전자령 전투로 이어집니다. 

신규식이 상해임시정부 산파 역할했고 역대국무위원 20여명이 대종교 인맥이었으며,조선어학회 사건과 대종교 탄압을 위해 일제는 임오교번 사건으로 조작합니다.임오교번으로 액화감옥에 수감된 25명 중 10명이 고문으로 순국했으며 나철의 두아들도 이때 사망합니다. 대종교 자료 대부분이 빼앗겼고 대종교 3종사 묘(나철,김교헌,서일)는 현재 백두산 아래 중국의 길림성 화룡시 용성향 청호촌 청호종산의 작은 구릉에 있습니다.

홍암 나철의 예언시

조계칠칠(鳥鷄七七) 일락동천(日落東天) 흑랑홍원(黑狼紅猿)
분방남북(分邦南北) 낭도원교(狼道猿敎) 멸토파국(滅土破國)
적청양양(赤靑兩陽) 분탕세계(奔蕩世界) 천산백양(天山白陽)
욱일승천(旭一昇天) 식음적청(食飮赤靑) 홍익이화(弘益理化)

(풀이)
조계鳥鷄(鳥 새 조 = 乙새 을,鷄 닭 계 = 酉닭 유)는 을유년(1945년)을 의미하고 칠칠은 음력 7월 7일을 의미하므로 8.15 해방을 의미한다(1945년 음력 7월 7일 날에 일본은 동쪽 하늘에 떨어지고). 흑랑은 북쪽의 이리이므로 소련을 의미하고, 홍원은 서쪽의 원숭이이므로 미국을 의미한다(소련과 미국은 한반도를 양분하고). 낭도는 소련의 도이므로 공산주의를 의미하고, 원교는 미국의 종교 즉 기독교를 의미한다(공산주의와 기독교가 국토와 나라를 망치고). 적청양양이란 적은 북쪽이므로 북쪽 국가를 의미하고 청은 동쪽이므로 동쪽의 어느 나라를 의미한다(북쪽나라와 동쪽 나라가 세계를 분탕칠치고, 천산에 있는 하얀 나라가 강성해져서 북쪽 나라와 동쪽 나라를 합병하고 인간에게 이롭게 변한다)

▷홍암 나철 생가:나철 기념관 좌측 마을로 조금 들어가면 나옵니다.

일지당은 당호로 나철 선생이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벌교 홍교: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895-3

석교로 보물 제304호입니다.태백산맥 소설에서도 나옵니다.선암사 승선교와 구조형식이 비슷합니다. 

 

다리 아래 용머리가 돌출되어 있는데 용의 콧구멍과 뿔로 보여집니다.

‘벌교’라는 지명은 예전에 이곳에 있었던 "뗏목다리"에서 유래하여 일반명사가 지명으로 고유명사가 되어 홍교는 벌교의 상징인 곳입니다.이 홍교는 원래 조선시대인 1718년(숙종 44)에 당시 낙안현(樂安縣)의 주민들이 현지에 강과 해류가 교차하는 곳에 원목을 엮어 만든 뗏목다리를 놓았는데 1728년(영조 4)에 전라남도 지방의 대홍수로 이 다리가 무너져서 1729년 선암사의 초안선사(楚安禪師)가 석교를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이 다리는 1734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보성여관: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길 19

태백산맥 소설의 "남도여관"으로 나온 곳입니다.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현부자네집: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홍암로 89-28

태백산맥문학관 근처에 있는데 한옥과 일본식이 교묘히 섞인 분위기입니다.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전남 보성군 벌교읍 홍암로 89-19

 

입장료는 성인 2,000원입니다.

태백산맥 육필원고 16,500매를 쌓아 올려 탑이 되었습니다.그 엄청난 공력에 나도 모르게 주위를 돌며 탑돌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찰의 탑 못지 않은 원력이 느껴집니다. 

담벼락이 태박산맥을 모티브로 작품으로 승화되어 있습니다.작품 제목은 "원형상-백두대간의 염원"으로 이종상 화백이 오방색의 자연석 돌로 모자이크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무늬는 고조선의 빗살무늬토기의 그림과 유사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태백산맥을 본 독자들이 태백산맥 소설 내용을 그대로 필사한 노트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다."

엄청난 공력이 느껴집니다.저절로 합장하게 만듭니다.

한때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이적물인가로 재판까지 받은적이 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전남 벌교를 배경으로 조정래가 쓴 총 10권의 대하소설로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되자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중에 좌익과 우익의 사상과 이념의 갈등을 기록한 소설입니다. 특히 좌익의 염상진과 우익의 염상구를 비롯한 빨치산과 토벌대의 아픈 역사를 소설로 묘사했습니다. 특히 소설 ‘태백산맥’은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잊어버린 우리의 언어를 보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소설을 쓰기 위해 현장 취재와 함께 엄청난 공력 때문에 이적물 무혐의로 결론 났다고 봅니다.

 

 

1번지꼬막세상:전남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 556-4


벌교에 왔으니 꼬막정식을 먹어야겠는데 홀로 오다보니 꼬막비빔밥으로 대신합니다.벌교는 "꼬막정식거리"가 있을정도로 꼬막을 식재료로 한 식당이 즐비합니다.  밥과 꼬막무침과 정갈한 반찬들이 나와서 맛있게 먹었습니다.특히 2월은 꼬막이 제철입니다.


▷취송정翠松亭:전남 보성군 벌교읍 고읍2길 11-14

취송정은 마을의 안쪽에 위치한 사랑채로 정면 3간, 측면 3간의 8작 지붕의 별당형 정자 건축으로 일반적인 정자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벌교 탐방을 마치면서 벌교사람들은 애국심과 의협심이 강해 나라가 어려울때 의병에 적극 가담하는 승부욕이 강한 외유내강형의 사람들로 느껴졌습니다.꼬막무침에서 보여지는 화끈함의 이미지로 미루어 인정 많고 자긍심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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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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