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원효,설총,일연 삼성현과 압독국 통합 이후 김유신의 흔적

 

- 일시: 2023-2-25~26
- 날씨: 대체로 맑음,새벽엔 영하 6도
- 몇명: 홀로

 

경산은 변진의 일국인 압량소국,일명 압독국이 있었던 곳입니다.경산하면 돌아가시기 전 모친이 여러번 기도차 방문했던 팔공산 갓바위와 제가 수년전 봄에 출사로 가보았던 반곡지가 먼저 떠오릅니다.경산엔 이 고장을 빛낸 원효,설총,일연이 삼성현으로 추앙 받고 있습니다.

 

오늘 가장 먼저 가 본 불굴사와 근처 홍주암의 아동제일약수(我東第一藥水)는 (김유신)장군수(將軍水)로 불리어질 정도로 김유신의 흔적이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경산에는 김유신과 관련이 있는 "경산 병영 유적"이 남아있습니다.김유신은 압량주 군주로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압독국 지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압독국의 흔적으로는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이 있고 신상리 신라고분공원이 있습니다.압독국은 2세기 초반에는 신라에 통합되어 압독군이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압독국의 유물을 보기 위해 경산시립박물관을 찾았고 원효,설총,일연의 삼성현을 좀더 알아보기위해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을 찾아갔습니다.그리고 원효가 창건한 사찰 60여개 중 하나인 반룡사를 둘러보았습니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청도 대비사에도 잠시 둘렀습니다.
 


 

 

▷ 답사일정(風輪) :292km

불굴사,홍주암 -경산시립박물관 -삼성현역사문화공원 -반룡사 -청도 대비사

 

2023-2-25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 마감 후 집으로 돌아온 후 밤 10시에 부산을 출발합니다.밤12시쯤 불굴사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1박)

2023-2-26

 

 

▷불굴사: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8

 불굴사 마지막 구간은 제법 경사도가 있습니다.덕분에 불굴사에서 바라보는 좌측의 팔공산 자락과 화산산성 방향의 조망도 볼만합니다.도리사의 서대에서 바라보는 풍광만큼은 못하지만 이런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눈맛에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합니다.

 

 

약사보전 속의 불굴사 석조입불상의 모습은 팔공산 갓바위 비슷한 분위기가 나지만 갓 대신 족두리를 하고 있어서 팔공산 관봉 갓바위가 산꼭대기 양의 기운이 가득한 곳에 있다면 이곳의 석조입불상은 족두리의 여성의 모습이고 이곳은 계곡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를 증명이라고 하듯이 불굴사와 팔공산 관봉석조여래좌상의 선본사 사이에 있는 동네이름이 음양동(陰陽洞)이니 우연일까요? 

팔공산 관봉 꼭대기에 있어서 굳이 더 높일 필요가 없어서 앉아있는 좌상의 모습이라면 이곳에서는 입불상으로 서 있는 모습도 대조적입니다. 

산령 독성각(독성각과 산신각) 뒤로 난 철제 계단을 따라 홍주암으로 갑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홍주암으로 가는 길이 또 있었습니다.발 아래 불굴사 삼층석탑이 보입니다.

▷홍주암: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산 55-10

홍주암은 압도적인 바위 벽에 붙어있어서  구례 사성암이 떠올랐습니다.

아동제일약수(我東第一藥水)라는 글이 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고 귀한 물이라는 의미입니다.신장과 피부에 좋다고 하는데 오늘은 귀한기만 합니다.

안타깝게도 겨울이고 가물어서 약수물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석간수로 보이는데 다소 축축한 모습으로 물을 떠 먹을만큼의 수량은 없었습니다. 

앞산의 영향으로 굴불사는 아직 응달이라면 홍주암은 양달이라서 햇볕이 가득했습니다.홍주암(紅珠庵)은 "붉은 구슬"을 의미하니 바로 해(태양)를 의미합니다.붉은 글씨로 바위에 새겨져있습니다.원효굴에서 수행하던 옛 스님이 새긴듯 하며 연대는 미상입니다.

원효굴입니다.원효성사가 수도했다고 하는 곳입니다.김유신 장군도 17세에 이곳에서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천신(天神)으로 부터 깨달음과 지혜를 얻었다고도 합니다.

경산 병영유적은 삼국사기에 위하면 김유신이 선덕영왕 11년에 압량주 군주가 되었는데 당시 상황은 백제 의자왕의 공격으로 대야성이 함락되어 서부 국경지역을 대부분 상실하고 후퇴하게 되었는데 수세에 처한 신라는 김유신이 압량주 군사를 뽑아 조련하여 적진을 향해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때 군사들이 훈련한 장소로 신라 통일의 전초기지역할을 한 곳이었습니다.   

바위에 여래좌상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맨 위엔 홍주암 독성전이 있는데 이곳에서 보는 경치가 좋고 햇살도 가득하여 한참을 앉아있게 되었습니다.아마도 힘들게 올라와서 본전 생각이 났나봅니다.

▷경산시립박물관:경상북도 경산시 박물관로 46

 

입구에 삼성현의 동상이 있습니다.안으로 들어가면 압독국에 대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박물관을 둘러보면 2개의 상설전시실을 통해 경산의 뿌리인 고대국가 압독국,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등 통일신라·고려 시대 불교 문화, 사직단·최문병 의병장 안장( 보물 제747호)으로 대표되는 조선 시대 유교 문화를 비롯하여 지역 대표 무형문화재인 자인 단오제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까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경산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 안장 뒤쪽의 물결모양의 꽂이는 깃발을 꽂는 곳입니다. 

토기 종류가 많았는데 상당히 큰 토기도 있었습니다.

오리를 닮은 새 모양토기로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큰새의 깃털을 이용하여 장례를 치르는데 이는 죽은자가 날아갈 수 있도록 함기 위함이다"라고 합니다.죽은자를 위한 장송 의례용 토기입니다.

 

티벳의 장례식인 천장(天葬) 혹은 조장(鳥葬)의 풍습과 근본 이치는 비슷합니다.천장 의식은 망자의 시신을 팔다리를 묶은채 자루에 담아 장례지에 도착하면 팔다리를 풀은후 극락세계로 가시도록 천장장례의식 염불과 주문을 하고 ,시신의 배를 칼로 가르고 내장을 도려낸 다음, 독수리들이 먹기 좋도록 망자의 사체에 칼집을 낸후 독수리들에게 길을 터주는대 의례를 진행 하는동안 보통 독수리들이 조용히 기다린다고 합니다.독수리들이 처리후 뼈를 추려내어  자르고 다시 망치로 잘게 부수며 가루로 만들어 '짬파(보리의 가루)'와 버무려서 티베트 라마의 주도하에 재차 독수리들에게 던져주어 완전히 처리하는 것으로 식을 마무리 합니다.

 

다만 압독국은 천장을 하지 않고 매장을 했지만 새 모양의 토기를 넣는다든지 아니면 새의 깃털로 부채를 만들어 함께 매장했습니다.그러고보니 티벳 승려들의 수탉의 벼슬같은 노란 모자가 오리 토기의 머리 윗부분과 오버랩됩니다.티벳 사람들을 보면 한국인과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압독국과 티벳의 연관성은 낮겠지만 압독국의 독특한 장례풍습을 보게 됩니다.  

원효에 대한 정보도 있습니다.삼계유심 만법유식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위 계송은 원효(元曉) 대사가 읊은 것으로, <송고승전(宋高僧傳)>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심생고종종법생(心生故種種法生)

심멸고감분불이(心滅故龕墳不二)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

심외무법 호용별구(心外無法 胡用別求)

 

마음이 생하는 까닭에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감(龕-토굴)과 분(墳-무덤)이 다르지 않네,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이 의식(識)에 기초하고 있으며,
마음밖에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

그 외 조선시대 유생들의 정갈한 간찰의 글씨를 보고 그분들의 마음까지 들여다보게 됩니다. 

 

▷삼성현역사문화공원:경북 경산시 남산면 삼성현공원로 59

 

입장료 2000원입니다.연세가 있는 나이 든 할머니의 휠체어를 미는 중년의 여성이 함께 박물관에 와서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보기 좋았습니다.

삼성현역사문화관은 경산지역의 자랑인 원효,설총,일연 세 분 성현의 훌륭한 정신과 의의를 계승발전하고 민족문화를 꽃 피운 삼성현의 가치와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꾸민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역사문화공간입니다.  

 

우선 특별 기획전으로 <고려가 그린 원효>을 먼저 돌아봅니다.

우선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의 원효에 대한 글입니다.

김부식의 화쟁국사영찬의 화쟁국사는 원효 입니다. 

대각국사 의천의 원효에 대한 글입니다.

 

설총은 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에 태어나 이두(吏讀)를 집대성한 업적과 함께 화왕계를 통해 전하고자 유교적 가르침을 이해 할수 있도록 했습니다.설총은 문묘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화왕계는 통일신라시대 설총이 신문왕에게 써서 향락을 멀리하고 도덕을 엄격히 지킬 것을 경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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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계(花王戒)'에 등장하는 장미는 아부하기 좋아하는 간신을 의미하며, 할미꽃은 임금에게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충신을 말한다. 설총은 이 우화를 통해 신문왕에게 간신들보다 바른 말을 해 줄 수 있는 충신을 가까이 할 것을 일깨워 주었다. 신문왕은 실제로도 설총과 같이 능력 있는 6두품 학자들을 중용하여 전제 왕권의 지지 기반으로 삼았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집필했고 무엇보다 단군을 시조로 기록하여 유구한 역사관을 정립했습니다.

 

▷반룡사: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전1길 60

 

반룡사는 원효가 창건한 절입니다.원효성사와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길에 원효가 해골물을 마시는 장면이 반룡사 벽화로 보입니다.원효는 당 유학길에 올랐다 깨달음을 얻은 후 신라로 돌아왔고 이후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으며, 동아시아 불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중국과 일본에까지 이름이 얻었다면 의상대사는 당에서 선진 불교를 배우고 돌아와 신라 화엄종을 열고 신라의 불교 발전에 기여했으며 여러 절을 세웠읍니다.
 

이인로가 반룡사에서 "산 거"라는 시를 남겼군요.

대웅전 위로 낮달이 떠 있습니다.대웅전 글씨는 용이 승천하는 듯 역동적이며 치미도 용머리로 장식했습니다.

억불숭유 시기인 조선시대 때 특히 경산의 불교 유적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대비사: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590

신라 진흥왕대에 세워졌다는 오갑사는 이미 후삼국기에 모두 폐사되었습니다. 그뒤 대작갑사가 복구되어 운문사로 명맥이 이어졌고, 대비갑사는 대비사로 바뀌어 오늘에 이어집니다.운문댐을 지나 좁은 길을 덜컹거리며 한참을 들어가는 오지에 있었습니다.

대비사 입구의 용소루는 최근에 지어져 오래된 사찰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시대 흔적들이 출토되어 대비사는 오래 된 사찰로 증명되었습니다.

 

 

 

단청이 안 된 단아한 대웅전을 보고 있으니 종무소의 공양주보살로 보이는 분이 비닐봉지에 시루떡 4겹으로 넣어 합장하고 저에게 줍니다. 그래서 "이것 다른 분들 모두에게 드리는가요"하고 여쭈어보니 "아닙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라고 해서 대비사의 대자대비를 느낍니다.

마애불이 대웅전 뒤 가파른 곳 바위에 조성되어 있는데 불기 2565년이면 2021년에 조성이 마무리 된 것으로 보입니다. 

시루떡까지 받아 시주를 해야겠는데 수중에 현금이 떨어져 시주를 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다행히 계좌번호가 있군요.떡 감사 메시지와 함께 시주를 계좌로 합니다.  

 


"용두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데 입구부터 용소루라고 적혀있어서 이곳 대비사는 용과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있습니다. 여하튼 용두 관음은 용머리를 한 관세음보살이 아니고 용을 타고 있는 관세음보살로 보면 됩니다.

 

 

대비사와 용에 관한 전설을 찾아보니 역시 "꽝철이 속설"이 있습니다.

경산은 한국의 정신문화가 진한 곳이었습니다.불교의 원효와 일연이 일군 곳이었고 설총 시기에 유학이 자리를 잡은 것을 보면 경산시에서 삼성현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시설에 대해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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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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