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죽성)오영수의 갯마을 배경의 학리 근처의 고산 유적지 

 

- 일시: 2023-1-24
- 날씨: 강추위에 강풍 부는 맑은 날
- 몇명: 홀로

 

경험한 적 없는 북극한파로 한반도는 냉동고가 된다고 하는데 바람마저 강풍으로 거셉니다.그래서 멀리 가보지는 못하고 이번에도 부산 인근을 찾아갑니다.가장 먼저 떠오른 장소는 난계(蘭溪) 오영수의 단편소설 무대가 된 학리입니다. 동해의 H라는 조그만 갯마을에 사는 나이 스물셋의 해순이가 주인공인데 여기서 H가 바로 학리입니다.

갯마을은 인간사의 어떤 시련이나 고통도 품어주는 모성적 포용의 세계로 나오는데 해녀가 많은 제주도는 사방이 바다라서 이곳의 신은 "마고할미"가 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 듭니다.북쪽의 기마민족의 말타기 유목민 지역에서 나타나는 남자 신 중심의 하늘에서 강림하는 천손과는 대비되는 흐름입니다.

 

제주도는 아니지만 동해의 학리도 갯마을입니다.현실적 한계나 압박 앞에서 인간은 탈선하기도 하고 시련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은 순수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자연 속에서 그런 인간본성은 비로소 제자리로 찾아간다는 믿음의 원천은 바로 바닷가 근처 갯마을입니다.바다라는 자연의 멸치잡이철 그리고 고등어잡이철이 돌아오는 계절의 순환과  청상과부 인간 해순이가 바다가 그리워 돌아오는 인간의 삶을 동일시하는 내용입니다. 

바다는 살아가는 생존의 텃밭이 되기도 하고 배를 타고 나간 서방이 기약없이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공간이기도 합니다.그래서 바닷가 어촌 갯마을에는 너무나도 쉽게 당집이 여러곳에서 만나게 됩니다.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곳이 갯마을 여성들의 세계인데 바다의 운명과도 비슷합니다.바다 또한 모든 것을 받아들여 버텨냅니다.약간이라도 쉽게 버텨내기 위하여 당집이 필요했나봅니다.해순의 첫남편 성구는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여 해순은 청상과부가 되고 이후 자신을 덮친 상수와 재혼했지만 상수마저 징용에 끌려가자 해순은 다시 바다를 못잊어서 갯마을로 돌아갑니다.국내 강제 징용 현장을 답사해 온 서경덕 교수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들이 징용당했던 광산을 찾았다고 하며 안내판을 세우기 위한 후원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소식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일광광산입니다.


이 소설은 신영균,고은아,황정순을 주인공으로 영화로 제작되어 상영되기도 했습니다.1965년도에 개봉되어 1966년 대종상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장미희,이영하 주연으로 1978년에도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 답사일정(風輪) :84km

학리-일광 삼성대-죽성 황학대

 

2023-1-24

 

 

▷학리: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읍 학리


학리를 중심으로 동해 북쪽은 일광해수욕장이 있고 남쪽은 죽성입니다. 
바닷가로 오니 바닷바람에 차량이 휘청일 정도이고 냉동고에 들어 온 느낌입니다.온 몸이 싸늘해지는 느낌입니다.강풍으로 고깃배들은 모두 묶여있고 파도들이 들이칩니다. 

 

당집과 어울리는 신비감 가득한 해송들이 한낮임에도 시커먼 그늘을 만들어내어 신암심을 불러일으켜 갯마을 사람들을 압도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삼성대: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읍 삼성리 140-1


기장에는 기장오대(機張五臺)가 있는데 소학대,시랑대,삼성대(용두대),적선대,황학대가 있습니다.그 중 삼성대를 먼저 찾아봅니다.

그리고 일광(日光) 지명은 태양광이니 햇빛입니다.일광읍 소재지는 삼성리입니다.

 

현재 삼성대는 유실되고 다시 조그마한 둔덕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현재로서는 정말 볼품없는 대(臺)가 되었습니다.고산 윤선도 시비가 있습니다.고산 선생은 32세 때인 1618년(광해군 10년) 기장으로 유배돼 4년 7개월간을 이곳에 머물면서 3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특히 시비가 들어선 삼성대는 고산이 1621년 동생과 작별하는 애틋한 마음을 담은 시 `증별소제' 등의 시를 지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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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뜻을 따르면 새로운 길 얼마나 많은 산이 막을 것이며(若命新阡隔幾山·약명신천격기산)
세파를 따르자니 얼굴 붉어지려는데 어찌하겠는가?(隨波其奈赧生顔·수파기내난생안)
헤어지려니 오직 천 갈래 눈물만이 흘러(臨分惟有千行淚·임분유유천행루)
너의 옷자락에 뿌려져 점점이 얼룩지네.(灑爾衣裾點點斑·쇄이의거점점반)

내 말은 쉬지 않고 달리고 네 말은 느리지만(我馬騑騑汝馬遲·아마비비여마지)
이 길을 어찌 차마 따라오지 말라고 하겠느냐?(此行那忍勿追隨·차행나인물추수)
가장 무정한 것은 가을의 해이니(無情最是秋天日·무정최시추천일)
헤어지는 사람을 위해 잠시도 머물러주지 않네.(不爲離人駐少時·불위리인주소시)

.....

위 시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贈別少弟’(증별소제·아우와 헤어지며 지어 주다) 1·2수로, 그의 문집인 ‘孤山先生遺稿(고산선생유고)’에 수록돼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돈이나 삼베를 내고 죄를 면하는 속전(贖錢) 제도가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보석으로 윤선도의 이복동생이 죽성리까지 온 이유는 보석금을 내고 그를 한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습니다.편법을 써서 부끄럽게 풀려나기보다 당당하게 형기를 마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시 뒷부분 내용은 윤선도가 이복동생을 배웅하는 장면인데 죽성에서 삼성대까지 말을 타고 배웅했던 것 같습니다.

윤선도가 속전(보석)을 하지 않고 명예를 지킨 것은 참으로 잘한 일입니다.

명심보감 정기편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습니다.

太甲商王,成湯孫。曰:「天作孽猶可違,自作孽不可活。此之謂也。」
태갑(太甲)은 상(商)나라의 왕이며, 탕왕(湯王)의 손자입니다.
상서(尚書) 상서(商書) 태갑중편(太甲中篇)에 태갑의 말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이 내린 재앙(災殃)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재앙을 만들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했으니 당당하게 살아간 윤선도의 선택이 옳았다고 봅니다.

 #한자공부

 

일광 지명답게 햇볕이 상당히 강합니다.

 

▷황학대: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일광에서 죽성으로 넘어왔습니다. 죽성엔 드림세트장인 죽성성당과 삼백년동안 마을 수호신 역할을 해온 곰솔(해송),왜성터,두모포풍어제터,어사암 매바위,거북바위 등 수 많은 볼거리가 있는데 이곳에 고산 윤선도의 황학대도 있습니다.  

'우후요(雨後謠·비 온 뒤 노래)' '견회요(遣懷謠·마음을 달래는 노래)' 등 6수의 시를 남겼는데  황학대 꼭대기 솔숲 그늘에 바다를 향해 앉은 고산 선생과 그의 시 '영계(詠鷄·닭을 노래하다)'를 새긴 비가 있습니다

영계(詠鷄) 닭을 노래하다

物性雖偏塞(물성수편새) 물성이 치우치고 막혔다 하더라도

稟賦有明處(품부유명처) 품부받은 것 중에 밝은 면도 있나니

吾人固最靈(오인고최령) 우리 사람이 물론 가장 영명하다지만

時夜誰及汝(시야수급여) 시야야 어떻게 너에게 미치리오

氣至自咿喔(기지자이악) 새벽 기운이 이르면 절로 꼬끼오 울며

若灰管應呂(약회관응려) 대롱 속의 재가 율려(律呂)에 응하듯 하나니

鳴應扶桑鷄(명응부상계) 부상의 닭에 호응하여 운다는 것도

實惟無稽語(실유무계어) 실로 황당무계한 말이라 할 것인데

矧肯聽人假(신긍청인가) 더구나 사람의 가짜 닭 소리를 듣고서

雷同失常敍(뢰동실상서) 뇌동하여 상도(常道)를 잃을 리가 있겠는가

乃知孟嘗客(내지맹상객) 이에 알겠도다 맹상군의 식객이

適與汝同擧(적여여동거) 때마침 너와 거조를 같이 했음을

客能欺田文(객능기전문) 식객이 전문을 잘도 속인 것이요

非文欺秦去(비문기진거) 전문이 진을 속이고 떠난 것이 아니로다

 

 

이곳에서 보면 닭울음 들릴 정도의 거리에 왜성터의 당집과 해송이 보입니다.

 


예전과 다르게 일광신도시로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바닷가는 관광지로도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라 카페도 많이 보입니다.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개발이 되다보니 그 옛날의 흔적이 파편처럼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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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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