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모든 사람들이 도달해야 할 보편적인 원리로 천리를 따르니

 

-  일시 : 2022-12-10~11
-  날씨 : 대체로 맑음
-  몇명 : 홀로

 

화순(和順)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중용에서 화(和)자라는 글자를 보면 "화(和)라는 것은 모든 사람의 도달해야할 보편적인 원리이다(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니라)"라고 하여 왠지 이 고장에 사는 분들은 법 없이도 사실 분들처럼 느껴집니다.

 

중화경에서 순(順)자를 보면 "하늘이 돕는 상대는 천리에 따르는 사람(天地所助者천지소조자는 順也순야오)"라고 하여  순천자(順天子)는 흥(興)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선 화순은 풍광이 아름답습니다.산에서는 주상절리의 규봉암,강에서는 화순적벽,저수지는 세량지가 떠오릅니다.그중에서도 유순하고 평화로운 공간으로는 운주사와 고인돌유적지도 마음에 다가옵니다.그러다보니 이런 곳을 알아본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김삿갓)은 정처없는 방랑생활 중 화순에서 머물게 되었으며 자신의 생을 마감한 장소로 화순 동복천의 구암마을이 종명지(終命地)입니다.

정처없는 방랑생활에서 정을 붙이고 머물려면 그 곳의 풍광도 좋아야겠지만 그 곳의 인심도 후해야 가능합니다.김삿갓 시를 보면 문전박대를 다하는 심정을 읊은 시詩가 많습니다. 모든 곳이 다 김삿갓을 반겨주지는 않은 겁니다.김삿갓은 화순을 세번이나 찾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흡사 "이런 곳 또 없다"라고 알려주는 듯 합니다.

 

 

 

▷ 답사일정(風輪) : 청도 513km

쌍봉사-운주사-임대정-김삿갓 종명지

 

 

2022-12-10

 

▷쌍봉사:화순군 이양면 쌍산의로 45

 

쌍봉사에 도착하니 밤 10시 가까이 되었습니다.연못 주위로 조명이 둘러쳐 켜져있고 절 안쪽에 대웅전도 마찬가지입니다.

 

(1박)

 

2022-12-11

 

쌍봉사는 신라시대의 고찰로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입니다.

『고려사』권42, 최충헌(1149~1219)전에 최씨정권 제3대 집정자인 최항(?~1257)이 송광사 2세 사주(社主)인 진각국사 혜심의 제자가 되어 쌍봉사에 주석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국가에서 중시한 도량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아마 그때 사세가 커진 것 같습니다.그때는 욕도 많이 먹고 사세도 커져 구설수에 많이 올랐을 것 같습니다.

보통 일주문에 서면 현판에 산이름과 사찰명이 씌여져 있기 때문에 일반 절이라면 "사자산 쌍봉사"라고 해야 하는데 이곳은 "쌍봉사자문"이라고 반대로 되어 있어 특이합니다.아마도 쌍봉 자체가 산의 봉우리이니 앞에 붙이고 구산선문의 한 곳인 이곳 사찰은 선禪을 강조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자선문의 이름을 더크게 가져가기 위하여 사자문으로 명명한 것 같습니다.이문을 넘으면 사자선문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판단됩니다. 

구선선문은 도의(道義)의 가지산문(迦知山門), 홍척(洪陟)의 실상산문(實相山門), 혜철(惠哲)의 동리산문(桐裏山門), 도윤(道允)의 사자산문(獅子山門), 낭혜(朗慧)의 성주산문(聖住山門), 범일(梵日)의 사굴산문(闍崛山門), 도헌(道憲)의 희양산문(曦陽山門), 현욱(玄昱)의 봉림산문(鳳林山門), 이엄(利嚴)의 수미산문(須彌山門)을 가리킵니다.

호성전에는 조주선사와 철감선사 도윤의 초상화가 있다고 합니다.T자형 전각은 절에서는 잘 보기 힘든 구조입니다.조주선사는 "차나 한잔 하시게(끽다거(喫茶去)" 화두로 유명한 선승입니다.차를 선의 경지로 끌어올려 다선일여의 경지를 보여주었습니다.호성전 앞 마루에 앉아보니 "무슨 고민이 그리 많으신가 차나 한잔하시게"하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입니다.  

바로 국보부터 보러갑니다.국보 58호 철감선사부도탑입니다.현존하는 최고로 아름다운 부도탑입니다. 철감선사는 원성왕 14년(798)출생하여 148세에 출가하여 경문왕 8년에 쌍봉사에서 입적했습니다. 


아쉽게도 윗부분 보주 부분은 멸실되어 없습니다.처마 아래 비천상으로 보이고 그 아래 문과 비천상,사천상을 새겼습니다.그 아래 극락조라고 하는 가릉빈가가 보이고 그 아래 8마리의 사자의 모습도 보입니다.맨 아래 쪽은 구름(하늘나라 극락세계를 의미 하는 듯)으로 보입니다.연화문을 비롯해서 탑 빼곡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기단부터 지붕돌까지 8각형 입니다.

막새 기와 끝의 안쪽을 보면 연꽃무늬가 지금도 보입니다.돌을 거의 목조탑처럼 다루어 신앙적 발원이 아니고서는 감히 근접 할 수 없는 경지의 걸작이라고 안내문에 적혀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의 끝판왕답습니다.명품은 역시 디테일에 있습니다.

보물 170호 쌍봉사 철감선사탑비입니다.탑신은 보이지 않습니다.귀부와 이수만 남았습니다.왼발은 땅 아래로 짚고 오른발은 하늘로 향해 흡사 전진하는 모습입니다.일제강점기 시절 탑신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뒤쪽을 보니 용 2마리가 보입니다. 철감대사의 호는 쌍봉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황해도 봉산 사람이라고 합니다.

해가 감나무 아래로 숲 사이 고개를 내밉니다.

쌍봉사를 나오며 대웅전을 봅니다.화재로 소실되어 복원한 모습입니다.삼층목탑 형식인데 보물의 지위를 잃어버린 상황입니다.목탑은 오층탑 형식의 법주사 팔상전만 국보로 남게 되었습니다.내부의 목조삼존불상은 불에 타지 않아 그대로 모셔져 있는데 석가여래좌상 협시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상이 있어서 특이합니다. 선종계열의 사찰에서는 탑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보통의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층석탑도 없습니다.그렇지만 목탑형식의 대웅전 때문에 탑이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지장전 앞으로 보살님이 공양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운주사: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19-2

 

운주사로 인해 화순은 더 화순답게 다가옵니다.

천불천탑 도량 운주사입니다.운주사는 3번째 오는 것 같은데 확실치 않습니다.예전엔 없었던 입장료 3천원을 받습니다.입장료 수입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일주문과 대웅전 옆 요사채 등 예전에 보이지 않던 전각들이 보이고 오르는 동선의 길도 모두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9층석탑과 쌍교차문 7층석탑 등 금강을 의미하는 마름모꼴의 문양 등이 다시 보아도 특이합니다. 9층석탑은 기단이 없는 형태로 고려후기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구름 광배가 보이는 불상인데 손을 보면 두손을 모았는데 옷주름 때문에 정확한 수인이 보이지 않습니다.아마도 지권인智拳印으로 보여 비로자나불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등을 맛대고 있는 운주사 석조불감입니다.역시 지권인입니다.직접 보면 제법 규모가 큽니다.뒤로 원형다층석탑이 보이는데 이것도 특이합니다.그냥 빵을 올려 놓은 것 같습니다.

산으로 오르면서 거북바위 오층석탑에서 바라보니 필봉같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위 아래 가족 같은 불상들이 모여 있습니다. 

와불 옆에서 떼어낸 협시불입니다.뒤쪽을 보면 떼어낸 자국이 바로 보입니다.

와불의 눈과 코부분입니다.모아이 석상 같은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칠성바위는 북두칠성을 의미하는데 별의 밝기에 따라 규모가 다릅니다.계곡과 산의 불상과 탑을 연결해보면 밤 하늘의 1등별 위치와 비슷하다고 합니다.지금은 천불천탑이 아니지만 만든 초창기엔 그 정도 규모였다고 전해지는데 운주사 천불천탑은 지상의 천문도인 셈입니다.칠성바위(북두칠성)에서 북극성 자리에 와불이 있습니다. 

운주사의 탑과 불상은 투박하지만 워낙 파격적이고 개성이 있어서 오히려 현대적인 감각도 느껴집니다. 혹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바보 산수화 속에 들어 온 느낌도 듭니다.

▷임대정:전남 화순군 남면 상사1길 47 (사평리)

임대정원림은 철종(재위 1849∼1863) 때 병조참판을 지낸 사애 민주현 선생이 1862년 임대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 주위에 조성한 숲을 가리킵니다.臨對亭(임대정)의 명칭은 周敦頤(주돈이, 1017~1073)의 ‘落朝臨水對慮山(낙조임수대려산)’의 시구에서 따왔다고 전해집니다.

내부 편액이 많이 걸려 있습니다.

원운시- 민주현

 

新築小亭古杏陰(신축소정고행음)새로 지은 작은 정자에 낡은 은행나무의 그늘이 드리웠구나
箇中幽興倍難禁(개중유흥배난금)그중의 한그루가 유독 그윽한 맛이 있어 깊은 흥을 돋군다

携壺間有詩朋到(휴호간유시붕도)마음에 맞는 친구들이 어찌 알고 술병을 들고 찾아와
爭席時看野老尋(쟁석시간야노심)농사짓는 이 늙은이를 보려 자리를 다투는구나

夏坐淸風生木末(하좌청풍생목말)무더운 여름에는 맑은 바람이 나무 끝에서 불어오고
秋來皓月在潭心(추래호월재담심)가을이 되면 밝은 달이 정자 앞 연못 속에 잠긴다

對山臨水無窮趣(대산임수무궁취)산을 마주하고 물 가까이 있으니 아 이 끝없는 아취여
不妨軒頭抱膝吟(불방헌두포슬음)흥에 겨워 정자머리에 무릎 껴안고 시를 읊조릴 테니 방해하지 마오.

‘사애선생이 지팡이를 짚고 소요하던 장소’라는 뜻의 ‘沙厓先生杖屨之所(사애선생장구지소)글씨도 보이고 세심이라는 글자와 걸쳐 앉는 돌이라는 기임석跂臨石 글씨도 보입니다.

 

▷난고 김병연(김삿갓) 종명지: 전남 화순군 동복면 구암길 76

풍찬노숙의 방랑시인 김삿갓은 1841년부터 3번에 걸쳐 화순을 찾을 정도로 적벽을 사랑했습니다.1857년 동복에 정착하여 6년 동안 적벽 주변에 머물며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1863년 57세의 나이로 구암마을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구암마을 뒷산에 초장(初葬)되었던 김삿갓의 시신은 소식을 듣고 천리길을 달려온 그의 아들 익균에 의해 옮겨져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의 싸리골에 묻혔습니다.

 

14841년 작시가 안내벽에 있습니다. 

 

무등산고송하재 (無等山高松下在)
적벽강심사상류 (赤壁江深沙上流)

 

무등산이 높다하되 소나무 아래 있고

적벽강이 깊다하되 모래 위에 흐른다.

 

‘九月山吟(구월산음)’입니다.

昨年九月過九月(작년구월과구월) 今年九月過九月(금년구월과구월)
年年九月過九月(연연구월과구월) 九月山光長九月(구월산광장구월)

지난해 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났고 올해 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네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지나니 구월산 풍경은 언제나 구월이로세


김삿갓이 금강산을 보고 쓴 시 도입부문의 시는 언제나 공감됩니다. 


我向靑山去  綠水爾何來
나는 지금 청산을 찾아가는데
푸른물아 너는 왜 흘러오느냐

 

한국사람들은 삶과 죽음이 자연의 일부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예로 인간이 죽으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이것은 본질을 생각하는 형상판의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우리나라 같은 형상판 같은 나라는 다른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형하판의 일본에서는 なくなりました(나꾸나리마시따)라고 하여 "없어지다.보이지 않게 되다"로 본질 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영어에서 죽었다를 순화해서 "세상을 떠났다"는 말로 passed away를 쓰지만 단어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돌아가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화순은 인간의 본질을 깨달은 사람(형상판 인간),즉 한국인이 살만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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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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