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청계에서 수학한 탁영의 붉은피로 운계는 자계가 되고
- 일시 : 2022-11-26~27
- 날씨 : 새벽에 영하 4도였지만 낮은 대체로 맑고 포근
- 몇명 : 홀로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동학의 인내천(人乃天)과 사인여천(事人如天),목은 이색의 천인무간(天人無間),최제우의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내마음이 너마음),만공스님의 세계일화(世界一花)는 결국 같은 의미로 연결됩니다.한마디로 "내가 너"이고 "너가 바로 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결국 온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이기동교수의 "유학오천년"을 접하고 이렇게 "한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어(一以貫之,일이관지)" 버리게 되어 앎이 더 확연해져 기쁩니다.
대나무가 각각의 나무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 뿌리는 모두 같은 뿌리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이런 인간을 형상판(形上判: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형이상학形而下學적 가치판단을 토대로 사는 사람)의 인간이라고 합니다.형상판의 인간은 본질을 생각합니다.형상판의 인간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고 느낍니다.이런 의식이 있는 우리나라는 생활속에 저절로 보여집니다.트럭이 전복되어 적재되어 있던 술병이 쏟아져 깨지면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서로 도와서 청소를 하고 길을 깨끗하게 만듭니다.형상판 인간은 함께 술 마신 후 서로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가게 앞에서 싸웁니다.형상판 인간이 운영하는 가게에서는 밑반찬 리필이 어렵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형하판의 인간은 다르게 생각합니다."너와 나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중국에서 트럭이 전복되어 과일이 쏟아지니 모두 원래 본인인 것인양 가져갑니다.트럭의 주인이 울상이 되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형하판의 인간의 최악은 검투사가 죽어가는 모습을 즐깁니다.현대판 격투기도 비슷한 흐름입니다.형하판의 인간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 경계하고 불안을 느낍니다.그래서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다.죽이고 나면 불안하지 않습니다.형하판 인간들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동전까지 철저하게 계산하여 더치페이를 합니다.
우리의 의식은 형상판인데 근대 이후 우리교육은 형하판의 서양 교육을 받아 마음과 머리가 따로입니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고애신(여자 주인공)을 위해 유진초이,구동매,김희성 세남자가 결국 죽지만 모두 형상판의 인간들이라서 희생하면서도 행복한 모습입니다.형하판의 서양사람들,일본인이 형상판의 한국 드라마를 보고 엄청난 감동을 하는 이유입니다.나도 저런 사랑을 한번만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그들은 전율을 느낍니다.형하판의 뺏는 쾌락이 아니라 형상판의 주는 즐거움을 한국드라마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느낀 것입니다.형하판의 나라들이 형상판의 나라를 동경하는 이유이고 우리나라 컨텐츠가 뜨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형상판의 인간세계에 가끔 형하판의 형편없는 위정자가 나타나면 사화(士禍)가 발생합니다.여러곳에서 죽음의 비명이 들립니다.
연산군 4년 탁영 김일손은 세조찬탈을 풍자하여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었습니다.이 조의제문과 여러 왕실모독및 유언비어로 연산군 4년(1498년) 유자광·이극돈 등 훈구파가 일으킨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그 결과로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고, 권오복(權五福)·권경유(權景裕)·이목(李穆) 등 사림파 여러 인물들과 함께 탁영 김일손은 거열형으로 처형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언로가 막히면 국가의 재앙이 됩니다. 무릇 정치는 나라를 바르게 하기 위하여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政者正也(정자정야).정(政)이라는 글자의 본뜻은 나라를 바르게 한다는 것입니다.子曰 君子(자왈 군주)는 周而不比(주이불비)하고 小人(소인)은 比而不周(비이불주)니라.-(논어 위정14) 군자는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여 두루두루 마음을 쓰는데 반하여 소인은 자기들끼리 패거리를 지어 편당적 가치만을 탐닉합니다.
현재 훈구파에 해당하는 친일본색의 형하판 보수에 의해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편당적인 가치를 탐닉하기 위해 자신의 편이 아니면 그 누구라도 죽이려고 작정 한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 언론의 상황을 보면 MBC를 죽이기 위해 500억원대 추징하고, 한전KDN이 YTN 지분 21.4% 전량매각 의결하며, 오세훈의 TBS교통방송을 교육방송으로 전환한다며 논란이 되는 것을 보면 현대판 사화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현재 진행 중이라 어떻게 끝이 날지 모르겠지만 형하판 인간이 형상판을 인간을 이해 못하는 상황,그래서 외신에서는 윤대통령을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도 이해를 못하는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크게 다가옵니다.
▷ 답사일정(風輪) : 청도 250km
(청도)운계사-자계서원-백곡토성-탁영종택-청도향교-청도읍성-하평리은행나무-삼족대-선암서원-청도박물관
▷운계사: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뚝향길 63
효심이 지극하여 세종대왕 마저 김극일의 깊은 효심에 어제시를 내렸습니다.그의 손자가 바로 탁영 김일손이고 증손은 삼족당 김대유입니다.김극일은 효심이 지극하여 모친이 등창을 앓았을때 입으로 빨아내어 낫게 하였고,부친이 이질을 앓았을때는 대변을 맛보아 시약하면서 낫게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삼강(三綱)의 영향입니다.한나라의 동중서와 반고가 인간 관계의 기본으로서 강조한 충,효,열 세 가지 덕목으로, 임금은 신하의 근본이고[君爲臣綱(군위신강)], 어버이는 자식의 근본이며[父爲子綱(부위자강)], 남편은 부인의 근본[夫爲婦綱(부위부강)]이라는 것으로 주종적 상하관계의 원리로서 기강확립을 꾀하려는 성격이 강합니다.
중국 한나라때 순자의 유학이 조선에 들어왔고 ,순자의 유학은 규칙이 만들어진 형하판 유학으로 삼강과 효경이 만들어져 원래 공자의 인(仁)의 유학이 거꾸로 작용했습니다.
뚝향나무를 보면 세상에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으며 수 많은 가지와 잎을 가지고 있지만 뿌리는 하나입니다.우리는 하나라는 형상판의 세상을 잘 보여줍니다."내집"이 아닌 "우리집"이라는 개념과 "내 부인"이 아닌 "우리 부인"에서 볼 수 있는 근저에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뚝향나무는 김극일 선생의 위패를 모신 운계사 앞에 있습니다.나이는 320년으로 3그루로 보이지만 원그루에서 뻗어나온 새끼그루들로서 전형적인 분지형태를 보여 줍니다.
새벽에 영하4도로 떨어져 추웠는데 서서히 태양의 기운을 느낍니다.
▷자계서원: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길 62-2
자계서원은 탁영 김일손과 조부이신 김극일 선생, 그리고 장조카 삼족당 김대유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입니다.
김종직은 조선전기 영남사림파의 정치와 사상적 지주였습니다.김일손은 왕이 죽은 후 실록청에서 사초에 《조의제문》을 실록에 실었고 여기에 훈구파 대신 이극돈의 비행과 비리 등이 있었고 그리고 세조의 왕위 찬탈의 부당성을 담았습니다. 그당시 실록청 당상관이었던 이극돈은 김일손에게 그 내용을 지워줄 것을 간청했지만 김일손은 일언지하의 거절했습니다.
그로인해 이극돈은 유자광을 통해 연산군에게 보고했고 결국 무오사화가 일어나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였고 김일손은 거열형(능지처참 기록도 있지만 실제는 거열형으로 판단) 극형에 처해졌습니다.그때 김일손의 나이 34살이었습니다. 이를 본 조카 김대유가 숙부를 기리기 위해 경북 청도군에 자계서원을 세웠습니다.
김종직의 문하에는 김굉필,정여창처럼 개인 수양인 "수기(修己)에 강조하는 계열이 있었고,사회 참여에 해당하는 치인(治人)계열이 있었는데 김일손은 치인 계열이었습니다. 그의 호(號) 탁영자(濯纓子)는 `갓끈을 씻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초나라 충신 굴원의 <어부사> 중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에서 따 온 것입니다.창랑의 물이 흐린데도 갓끈을 씻으려 한 김일손은 치인계열로 피가 뜨거웠나 봅니다.
김일손의 거문고는 ‘濯纓琴(탁영금)’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거문고로 선생께서 생전에 헌집의 100년 된 오동나무 문짝으로 손수 만들어 즐겨 연주했다고 전해지는데 1988년 보물 제95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탁영 김일손은 본관이 김해입니다.남의 성을 말할 때는 이를 높여 ㅇㅇ씨(氏)라고 말하고,자기의 성이나 본관을 말할 때는 ㅇㅇ가(哥)라고 합니다.이때 가(家)가 아니라 가(哥)를 씁니다.개인일 때는 가(哥), 문중이나 종친 등 단체를 지칭할 때는 가(家)를 쓰지만 공식적인 곳에선 그냥 씨(氏)를 씁니다.
"ㅇㅇ가(哥)"라고 하는 것은 나를 낮추는 의미이고, ㅇㅇ씨(氏)는 남을 높이는 의미인데 거꾸로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ㅇㅇ가(哥)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 혹은 자신의 집안을 높이는 말인줄 안다는 것입니다.그만큼 요즘 ㅇㅇ씨(氏)가 낮춤말로 인식이 된 것 같습니다.
연산군 4년(1498년) 무오사화로 김일손이 처형되던 날, 천지가 진동하고 벼락이 무섭게 치며 갑작스럽게 폭우가 내려 기왓장이 날아가고 나뭇가지가 부려졌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고향 앞을 흐르는 운계천(雲溪川)이 피로 물들고 3일이나 역류하였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운계(雲溪)를 자계(紫溪)라고 했다고 합니다.
운계서원이 은행나무와 비 사이에 보입니다.
탁영종택으로 가는 길에 산골짜기 연기 자욱한 모습을 보니 탁영선생의 지리산에 관한 두류시가 떠오릅니다.
두류시(頭流詩)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蒼波萬頃櫓聲柔(창파만경노성유)
푸른 물결 넘실넘실 노젓는 소리 부드러워
滿袖淸風却似秋(만수청풍각사추)
소매 가득찬 맑은 바람 가을인양 서늘하다
回首更看眞面好(회수경간진면호)
머리 돌려 다시보니 그 모습이 아름다워
閒雲無跡過頭流(한운무적과두류)
한가한 구름은 자취없이 두류산 넘어가네
▷백곡토성:탁영종택 입구에 있습니다.
이서국 성지 표지돌과 토성 안내글이 있습니다.이서국(伊西國)은 원삼국시대로 한때는 신라와 대립 할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결국 신라에 복속됩니다.백곡토성의 축성연대는 5~6세기로 보고 있습니다.
▷탁영종택: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백곡1길 1-5
종택에는 탁영선생의 문집 등을 보관한 영모각(永慕閣)과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이 있습니다.
▷청도향교: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교길 36 (교촌리)
김일손이 쓴 "중수청도학기"라는 글로 미루어 청도향교 이전에도 교육기관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대성전과 명륜당이 병열로 세워진 점으로 보아 지형에 따라 건물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멋진 360년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습니다.
▷청도읍성:경북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 48-1
청도향교 가까이 있습니다.청도 군수의 선정비가 도열되어 있습니다. 청도읍성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합니다.석성과 토성을 혼합해서 쌓은 모습입니다.
▷하평리은행나무:경북청도군 하평리 월촌마을
청도읍성에서 삼족대로 가는 도중 길 우측에 보입니다.평화로운 월촌마을과 우측 양지바른 곳의 500년된 은행나무가 보입니다.
▷삼족대:경북 청도군 매전면 금곡리
삼족대는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가 1519년(중종 14)가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정자로 김대유는 증조부인 김극일, 숙부인 김일손과 함께 ‘청도 삼현’으로 불립니다.또 김해김씨 삼현공파의 파조는 김관이지만 이후 삼현파로 불리게 됩니다.
삼족당 김대우는 조광조,주세붕,조식과 교우했던 인물입니다.
남명조식이 쓴 삼족당 김대유에 대해 쓴 시입니다.
운문 계곡 사십 년
나는 생소한 나그네 되었네.
누대가 그 아래 있는데
주역 괘의 처음 한 획인 듯하네.
가파른 절벽은 하늘로 높게 치솟고
차가운 못은 깊어 빛이 없네.
아련히 삼족 옹을 생각하니
고상하게 은거하며 이곳에서 살았네.
경륜의 뜻 품은 채 초야에 지내며
군자의 기품으로 공후를 업신여기네.
명성은 일월을 따라 길이 전하고
행적은 운수와 함께 깨끗하네.
흥폐의 운수 하늘에 맡기고
올라서니 마음이 놀랍고 두렵네.
▷선암서원:경북 청도군 금천면 선암로 455-27
선암서원은 삼족당 김대유(金大有·1479∼1552) 선생과 소요당 박하담(朴河淡·1506∼1543) 선생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입니다.
박하담 선생은 1516년(중종11)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그 뒤 여러 번 대과에 실패하자 청도의 운문산 아래 눌연(訥淵) 위에 정자를 짓고 소요당이라 명명하고 풍류로써 여생을 보냈습니다. 조정에서 박하담의 학행을 듣고 감역·봉사·사평 등의 직임을 주어 여러 번 불렀으나 모두 응하지 않았습니다.
동창천을 끼고 소요대를 지나치며 선암서원 둘레를 한바퀴 돌아봅니다.
▷청도박물관:경북 청도군 이서면 이서로 567
이서국에 대한 정보를 얻어려고 탐방을 했지만 이서국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아마도 이서국의 왕릉이라할만한 대형 고분군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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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라는 지명은 조선 중기 이중경 선생이 편찬한 오산지(鰲山志)에 '산천청려 대도사통(山川淸麗 大道四通)'의 기록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산수가 맑고 아름다우며,큰 길이 사방으로 나 있어 교통이 편하다는 뜻입니다.
청도(靑道)의 가장 첫 글 ,청(靑)은 맑다는 의미입니다.
맑다는 것은 곧은 것이고,김일손을 보면 곧으면 붉게 됩니다.자계(紫溪)가 됩니다.좌고우면하지 않는 역사를 기록한 사관으로 책무를 다한 김일손.김일손이 수학한 함양에 청계(靑溪)서원이 있습니다.청도는 탁영 김일손 덕분에 더욱 맑은 곳으로 느껴집니다.
( "창랑의 물이 흐린데고 불구하고 갓끈을 씻으려는" 이 시대의 참언론에 응원을 보냅니다,또한 물이 맑아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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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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