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역사가 살아 숨쉬는 오지여행의 매력이 있는 곳

 

-  일시 : 2022-12-3~4
-  날씨 : 새벽에 영하의 날씨였지만 낮은 대체로 맑음
-  몇명 : 홀로

 

 

문화유산답사는 유적지를 본다고 하더라도 그 유적에 얽힌 역사와 그 곳에 있었던 선현의 정신세계를 이해해야만 제대로 보입니다.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과언이 아닙니다.특히 책에 나오지 않는 곳의 인물이나 유적지는 정보가 한정적이어서 신뢰하기 어려운 곳도 있습니다.

잘 모르는 곳을 찾아가는 오지여행의 즐거움은 바로 그동안 알지 못했는데 이런 곳에 이런 인물도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의 "뜻밖의 재미"라고 생각합니다.그리고 또 하나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데 제대로 공부하여 그래서 이분이 그토록 유명하였구나 하는 것을 자기 자신이 재평가할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되었을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유적지 여러곳을 돌아다니다보면 처음엔 각각의 유적으로 보이지만 나중엔 한줄기 흐름이 느껴지는 수준이 되기 때문에 많은 곳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찾아간 영천은 영천시입니다.그래서 완전히 산골 오지는 아니지만 막상 이곳 저곳을 다녀보면 오지 느낌이 확 납니다.영천은 삼한시대때는 골벌소국(骨伐小國)이었고 고려시대때는 영주(永州)였으며 조선시대때부터 영천군(永川郡)으로 불려져 지금의 영천시(永川市)에 이릅니다.

 

 

▷ 답사일정(風輪) : 청도 300km

 

권응수 장군 유적-한광사-신녕향교-거조사-자양서당-강호정,하천재,오회당,사의당,삼휴정

 

 

 

 

▷권응수장군 유적: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한광사 입구 1.1 km 못미쳐 있습니다.전설 같은 나무들이 춤을 추는 듯한 노거수들이 분위기를 내지만 유적 우측의 농가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고 관리를 하지 않는지 전반적으로 폐허같은 느낌이 듭니다.노거수 옆에 성황당 돌무지가 보여 이곳은 예전에도 마을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보여집니다. 

권응수장군(1546~1608)은 조선 선조때 무신으로 인진왜란때 경상도 수군절도사 박홍의 휘하에서 참전하였다고 합니다.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의병장 신분으로 영천성 전투에서 영천성을 탈환한 전공으로 경상도 병마절도사 방어사로 특진되었다고 합니다.유적은 1979년 정부의 유적정화사업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는데 실질적인 유물(교지,선무공신록권,권응수장군 영정,태평회맹도병풍,가전보첩, 상 하, 장검)은 대부분 진주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일박)

 

 

 

2022-12-4

한광사로 들어가는 길이 좁다고 들어서 풍륜은 권응수장군 유적지에 주차해두고 자전거를 이용하여 진입합니다.

 

 

 

▷한광사閑曠寺: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1462

한광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구전만 전하고 대승불교 법왕종 총본산으로 폐사 된 절을 1958년 최명도 스님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들어오는 입구는 좁지만 막상 절 안에 들어오면 넓습니다.

가장 먼저 작은 대적광전을 찾아갑니다.실제 모습은 보호각입니다.그 속에 "영천 화남리 석조여래좌상"이 있습니다.아마도 제가 아는 한 가장 작은 대적광전입니다.

앞에 3층석탑이 2기가 있는데 서탑 기단석  속에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합니다.탑의 규모에 비하면 석조여래좌상의 크기가 거의 실제 사람만해서 큰 편입니다.

안동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한 형태로 수인까지 지권인으로 같습니다.영천 화남리 석조여래좌상은 보물 제676호로 고려시대 작품으로 대적광전 속에 있으니 역시 비로자나불입니다.전체적으로 좁은 어깨와 빈약한 체구로 얼굴을 보면 삼매에 빠져든 참선하는 모습입니다. 

뒤쪽엔 광배가 있었는데 파괴되어 광배 결합 홈의 흔적만 보이고 아래에 파괴된 석재가 보입니다.

8각 중대와 연꽃으로 새겨진 상대와 하대가 보입니다.

2기의 삼층석탑도 보물 제 675호 입니다.쌍탑 가람형식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보입니다. 하대각석의 탑석 낙수면이 살짝 올라 온 점은 특이합니다.

 

이곳 서탑 아래 기단석에서 석조 여래(비로자나불) 좌상이 나왔습니다.
산 위를 보니 이곳이 화산으로 풍력 발전기가 있어서 지난번 군위의 화산전망대 가까이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개울 너머 칠성각과 산신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녕향교: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저는 유교와 유학은 다른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

"공자는 사후세계를 믿지도 않았고, 어떤 종교적인 저술이나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종교적 의식이나 계시를 행하지도 않았으며, 미래에 대한 예언도 없었고, 인간 행위에 대한 절대자의 심판을 말하지도 않았다. 공자가 조상숭배를 중시한 것은 어버이에 대한 효도의 연장이었고, 예(禮)로써의 기능을 중시했을 뿐이지 숭배하는 만큼 조상신의 가호가 있다는 종교적 신념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는 불교 등 타 종교의 기복(祈福)과는 다른 차원의 이론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이를 종교적 의미를 가진 행위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

"


유학(儒學)은 사상이고 철학이며 학문이지 결코 종교가 아닙니다.그래서 지금도 유학을 공부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거조사:경북 영천시 청통면 거조길 400-67

한광사와는 달리 거조사는 영산루 앞까지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만 팔공산 거조사 현판이 달린 일주문 지나서 바로 공터에 주차를 했습니다. 

영산루를 지나 영산전이 바로 보이는데 종묘처럼 맛배지붕이지만 영산전은 홑처마라 위압감보다는 더 정감이 갑니다.
기둥은 배흘림 기등이고 별다른 단청도 없어서 요즘 현대적인 한옥 카페 분위기 조차 묻어 납니다.526 나한의 각기 다른 모습은  상당히 친근한 모습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목조건축물은 부석사 무량수전(13세기 초),수덕사 대웅전(1308),봉정사 극락전(1363),거조사 영산전(1375) 뿐이기 때문에 문화적 가치가 큽니다.
당연히 영산전은 국보입니다.

기와에 선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기와에 "소쩍새 울어 동백꽃 떨어 질 때 산문에 기대어 우는 사미승"은 성불 하기 위해 모질게 부모와의 인연도 끊고 온 내적 갈등이 느껴지고, "바다가 마르면 바닥을 드러내지만 저 사람 죽어도 그 마음 알수가 없네"는 인간이 가진 4단7정을 모두 함축하여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버들가지"는 "꼬옥 쥐면 푸른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손가락"이라고 표현하여 퇴계의 격물치지 느낌이 나고,"한 소식"은 "바람도 없는데 저절로 풀잎이 움직일 때"라고 하여 활연관통(豁然貫通)을 잘 나타내 보여줍니다.이 외에도 의미있고 재미있는 글이 기왓장에 씌여있고 그려져 있습니다. 

산신각에는 산왕경의 산왕대신의 이름이 걸려있습니다.

영산전 편액은 설현신(薛玄愼)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은해사 거조암 삼층석탑"입니다.원래 거조사가 은해사보다는 먼저 지어졌지만 현재는 거조사가 은해사의 말사입니다.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외관입니다.영산전에 넋을 잃어 탑은 나중에 보게 됩니다.

영산전 내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기와그림으로 그 분위기를 느껴 보세요. 

새로 만들어진 영산루 편액 글씨도 이곳과 참 잘어울리는 글씨체입니다.

키 큰 감나무의 까치밥이 붉게 달려 있는데 이제 추워져서 홍시 아이스크림이 되겠습니다. 
퇴계의 만물일체사상으로 퇴계가 추구한 것은 인(仁)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과, 천지만물이 본래 나와 일체라는 것을 체득함으로써 나의 심덕(心德)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죽는 순간 유언으로 "매화분에 물 주거라"는 것에서 나타나듯이 까치밥에도 오버랩되어 나타납니다.  

▷자양서당: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산6-1

자양서당의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입니다.
유학을 수양철학으로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습니다.퇴계학은
그 출발점이 주자학과 다릅니다. 주자는 미발(未發) 이발(已發)하는 마음의 작용과 동정(動靜)하는 자연계의 운동을 포괄하는, 전 존재의 궁극적 근거를 탐색하여 그것을 이(理)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즉, 주자학은 인간과 자연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확립하는 작업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태극론(太極論) ·성론(性論)이 중심과제로 등장하는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입니다.반면, 퇴계학은 사단칠정(四端七情)이라는 마음의 작용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퇴계의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나를 수양하여 군자가 되게하고 군자가 되어 공동체를 이롭게 하라는 가르침으로 공부의 양 날개는 거경궁리(居敬窮理:거경은 내적 수양법으로 항상 몸과 마음을 삼가서 바르게 가지는 일이고, 궁리는 외적 수양법으로 널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정확한 지식을 얻는 일이다.)였습니다.

현재 21세기 공부법은 궁리와 입신양명에 초점이 맞추어져 날개 하나가 부러져 있는데,거경(居敬),즉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수양법을 되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요즘 학자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논문을 쓰는 궁리에만 머리를 쓰고 내적 수양을 게을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투자자도 주식시장의 변동성에 휩쓸리는 미스터 마켓이 되지 않으려면 투자와 관련된 지식과 함께  심리를 다스리는 수양도 필요합니다.

퇴계의 유산여독서에서는 거경과궁리가 모두 보입니다.

遊山如讀書(유산여독서)
                                                                                            - 퇴계 이황

讀書人說遊山似 사람들이 말하길 독서가 산 유람과 같다지만
今見遊山似讀書 이제보니 산을 유람함이 독서와 같다.
工力盡時元自下 온힘을 쏟은후에 스스로 내려옴이 그러하고
盞深得處摠由渠 얕고 깊은곳을 모두 살펴야함이 그러하네.
座看雲起人知妙 가만히 앉아 구름이 일어나는 묘미를 알게 되고
行到渠頭時覺初 근원에 이르러 비로소 원초를 알게 되네.
絶頂高尋免公等 그대를 절정에 이르길 힘쓸지니
老衰中輟愧深余 늙어 중도에 그친 나를 심히 부끄러워할 따름이다.

 

자양서당은 김응생(金應生)이 창건한 서당건물로 옆 건물 동인각(東麟閣)에는 이순신장군과 김완(金浣)장군이 모셔져 있는데 김완장군은 김응생선생의 셋째 아들입니다.전라도 김완(金完)장군과는 다른 인물입니다.김완(金浣)장군은 임진왜란 때 옥포와 당포해전을 비롯해 한산도대첩 등 7년간의 전쟁 중 이순신 장군을 도와 무려 300여 척의 적함을 수장시킨 맹장 중의 맹장입니다.

 

▷강호정,하천재,오회당,사의당,삼휴정: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포은로 1611-11

영천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위기에 몰린 건축믈들이 이곳으로 옮겨져 있습니다.강호정,하천재,오회당,사의당,삼휴정이 있습니다.

 

강호정

 

하천재 부비각에서 바라 본 오천정씨 문중묘
사의재

▷오천정씨문중묘:개울 건너 건축물 맞은편에 있는데 관리상태가 왠만한 왕릉급 이상입니다.  

 

 

영천에서 제가 문화유산답사를 하는 초심을 생각합니다.

최치원이 말한 풍류는 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하니 曰風流라)로 이미 현묘지도에는 유,불,선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지금은 예수도 포함해야겠네요.물론 케리그마화된 그리스도는 저의 관심분야가 아닙니다.제가 공부하는 방법도 이미 유,불,선에서 포함되어 있던 현묘지도(고조선 사상)를 현재의 한국인의 정신사상에 접화군생되어 있을 것이므로 여러 풍류도맥의 선현들의 공부하여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딱 한가지 사상으로 종교의 독실한 신자가 된 분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정신에 맞지 않는 논리로 21세기에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천도교 보다는 동학을 더 높게 평가하고 유교 보다는 유학을 더 좋게 평가하는 이유는 우리고유의 천부경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에서 보여지는 "우리는 한마음"사상의 접화군생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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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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