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가을날 폐사지에서 바라보는 문화의 자양분

 

- 일시:2022-10-29~30
- 날씨:비 약간 온 후 안개 자욱
- 몇명:홀로

 

 

▷ 답사일정(風輪) : 영양 420km

 

봉감모전오층석탑-영양연당리석불좌상-서석재-학초정-영양사정-모전오층석탑-현일동삼층석탑-영산서원

 

 

 

영양(英陽)은 경북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합니다.보통 솟아 오른 것은 양(陽)이요,움푹 꺼진 습진 곳을 음(陰)이라고 한다면 솟아오른 곳에서도 가장 뛰어나게 올라서 영양이라는 지명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유추).영(英)은 꽃부리로 뛰어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그래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을 영재(英才)라고 합니다.

 

원래 폐사지는 가을즈음 단풍이 들거나 낙엽이 질 때 찾으면 운치가 기각 막힙니다.다만 아침 보다는 노을지는 저녁이 더 안성마춤일겁니다.천지의 기운을 펴는 오전보다는 그 기운을 거둬들이는 오후가 폐사지에 어울립니다.그러나 천성이 아침을 좋아하여 일출시기에 찾아보니 온통 안개로 색다른 느낌을 받았지만 폐사지 본연의 찬란한 부서짐의 멋을 느끼기는 아쉬웠습니다. 

 

영양은 모전석탑(模塼石塔: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탑)이 여러개 있고 그 여러개의 모전석탑은 폐사지에 있어서 10월말 즈음 찾아보기에는 시기와 장소 모두에 어울리는 곳입니다. 폐사지는 오랜 세월이 지난 깨어지고 멸실되어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다이아몬드 파편 같은 몇개의 흔적만 덩그러니 놓여있어서 여러가지 감정을 자아내는 곳입니다.오늘 가장 먼저 찾아간 봉감모전오층석탑은 그렇게 살아남은 다이아몬드 같은 유물로 국보입니다. 시대 흐름에 따라 구(舊) 문화는 거름처럼 자양분이 되고 그 뒤에 변화를 거치며 새로운 문화가 나타납니다.

 

 

 

▷봉감모전오층석탑(경북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 391-6)

 

밤을 보낸 주차장에서 300여m걸어들어가니 높이 11m압도적인 크기의 탑을 만납니다. 안개로 인해 반변천 너머 산들은 보이지 않습니다.국보 187호입니다.아주 장중합니다.하반부의 감실은 비어 있습니다.

근처 거의 부서진 사찰의 흔적이 보입니다.

 

▷남이포

 

반변천(半邊川)과 동천(東川)이 만나는 곳에 남이포(南怡浦)가 있습니다.남이포 옆 길에는 선바위가 있는데 남이장군과 연관된 설화가 있습니다.이곳의 풍광은 볼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현재 집승정 정자는 망실되어 없지만 약봉선생의 시는 남았습니다.

爲待漁舟子(위대어주자) 어부를 기다리느라
巖扉夜不扄(암비야불경) 바위문을 밤에도 닫지 않았는데
淸宵林下見(청소임하견) 맑은 밤 숲 아래를 보니
月滿集勝亭(월만집승정) 집승정에 달빛이 가득하구나.

 

 


선바위(立巖)은 이곳 산태극 물태극의 지형을 보면 태극의 꼭지점에 위치합니다.

六鰲骨未朽(육오골미후) 매우 큰(여섯길) 거북뼈가 썩지 아니하고
撑柱五雲層(탱주오운층) 다섯길 층계위에 기둥이 되어 버티어 주며
杞婦獨癡絶(기부독치절) 기(杞)나라 아녀자들 미치듯이 절규하면
謾憂天惑崩(만우천혹붕) 하늘 혹시 무너질까 헛되이 근심하네

▷영양연당리석불좌상(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60-2)

약사여래불입니다.전염병과 싸우느라 약사여래불의 얼굴도 전염병에 걸릴 듯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은 깊이 파였고 입은 비뚤어진 것 같은 인상입니다.(속설로 아들을 낳기 위해 돌가루를 만들어 파낸 흔적이라고도 합니다.)천사의 날개 같은 광배는 떨어져 불상 뒤에 비스듬히 걸쳐져 있고 목과 어깨가 부서졌음에도 불구하고 중생들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굳건하게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습니다.코로나19와 기나긴 싸움을 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떠오릅니다.약함 아래는 옷주름이 명확하고 팔각연화대좌 형식입니다.뒤 왼쪽에 나무곽 안에 남근석도 있는데 새끼줄로 감아 놓았습니다.

▷서석재 

400년된 은행나무 때문에 다시 서석재로 이끌려 들어갑니다. 

강아지 한마리가 졸졸졸 나의 장딴지를 터치하며 따라다닙니다.저를 따라 주차장까지 오길래 말을 걸어 좋게 달랬습니다.그랬더니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뒤돌아갑니다.자유롭게 풀어 놓은 강아지는 자유로워서 사람에게 공격적이지 않습니다.짖지도 않습니다.마냥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합니다.

이곳은 석문 정영방 선생의 자신을 돌아보는 경정(敬亭)의 경(敬)을 다시 보게 됩니다.
경의(敬義)에서 이런 정자는 경을 잘 표현하는 장소입니다.

 

▷학초정(경북 영양군 영양읍 지평길 39-4)

학초정(鶴樵亭)은 앞에 반변천 천변에 있습니다.학초정 정자보다 수백년된 노송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뒤에 정침(正寢)이라는 살림집이 공사 중입니다.학초정과 정침은 삼수당(三秀堂:잔디가 빛이나서 1년에 3번 빛난다는 의미) 조규가 지은 곳입니다.뒤에 학초정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처마에 영지동천(英芝洞天) 수성인하(壽城烟霞,혹은 수성연하)편액이 있습니다.

정침은 공사 중입니다.지붕공사는 끝났네요.

▷영양 사정(思亭)

알제강점기 때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자선사업을 크게 배풀었던 권영성이 1934년 건립한 정자라고 합니다.이곳 벽돌은 모전이 아닌 진짜 벽돌로 지어져 근대적인 요소가 첨가되어 독특한 모습입니다.

▷모전오층석탑(현리)(경북 영양군 영양읍 현리 464)

높이는 6.98m로 이미 11m의 봉감석탑을 본 뒤에 보아서 감흥이 반감됩니다.이곳은 국보가 아니라 보물로 제2069호입니다.영성사 대웅전이 있는데 약간 퇴락한 느낌이 듭니다.

▷현일동삼층석탑(경북 영양군 영양읍 현리 401)

4천왕상과 팔부중상이 돋을새김으로 조각해두어 아마도 처음엔 굉장한 공력이 들어간 탑으로 느껴집니다.9세기경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라고 합니다. 처음에 만들었을때는 얼마나 찬란했을까요? 시간이 흐르니 보주도 보이지 않고 여러곳이 부서졌습니다.

근처 당간지주는 하나는 부서져 아래쪽 흔적만 있습니다.뒤로 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영산서원:영양군 영양읍 현동1길 47-16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으나 2018년 복원되었습니다.주차를 하고 찬찬히 둘러보려고 했으나 서원 앞 민가에 묶여 있는 개가 워낙 짖어서 민망해서 겉만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개가 워낙 짖으니 주인이 나와 개 이름을 부르며 자꾸 짖으면 밥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조로 윽박지르니 약간 조용해지긴 했습니다만 서석재의 자유로운 개와는 팔자가 다르고 통제 방법도 자유가 아닌 밥을 주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는 개를 보고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개의 팔자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개는 훌륭합니다.다만 주인따라 심성이 같아집니다.

 

인간세상에도 이런 두종류의 위정자와 시대에 따라 사냥개 역할을 하는 무리가 있음을 느낍니다.

폐사지를 둘러보고 와서 그런지 인간세와 겹쳐지며 불현듯 "설니홍조"가 떠오릅니다.

 

설니홍조(雪泥鴻爪) - 눈밭의 기러기 발자국 <작자 : 東坡 蘇軾(北宋)>

자유(子由)의 '澠池' 옛 일 회고에 답함-和子由澠池懷舊(화자유민지회구)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應似飛鴻踏雪泥(응사비홍답설니)
泥上偶然留指爪(니상우연류지조)
鴻飛那復計東西(홍비나부계동서)


인생살이 무엇과 같은지 아는가
날아가던 기러기가 눈밭을 밟은 것과 같다네
눈밭에 우연히 발자국을 남기지만
기러기 날아가고 나면 동쪽 서쪽 어디로 갔는지 어찌 알겠나


#한자공부

 

 

老僧已死成新塔(로승이사성신탑)
壞壁無由見舊題(괴벽무유견구제)
往日崎嶇還記否(왕일기구환기부)
路長人困蹇驢嘶(로장인곤건려시)

 

노승이 죽고 나면 탑이 새로 만들어지고
허물어진 담벼락에서는 옛 글귀를 볼 수 없다네
지난 날 힘들었던 일들을 여지껏 잊지 않고 있는가
길은 멀고 사람은 지쳤는데 늙은 나귀가 우네

 

 

 

기러기 눈밭을 밟은 것처럼 흔적없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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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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