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오래된 담장 가에 산수유꽃 핀 띠띠미 마을

 

 일시: 2023-4-1~2
- 날씨: 대체로 맑음 
- 몇명: 홀로

 

부산 사상의 벚꽃은 꽃 핀지 열흘이 지나 이제 꽃비가 내립니다.한철 장사에 모인 떳다방 같은 간이음식 파는 곳들이 우후죽순으로 군데군데 자리를 잡아 격조가 뚝 떨어져버려 눈맛이 사라져버렸습니다.그래서 좀 깊은 산골짝으로 가고자 알아보니 봉화의 띠띠미 마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봉화의 두동마을이 바로 띠띠미마을입니다. 띠띠미마을은 지금 산수유꽃으로 덮여있습니다.마을로 들어가는 길 이름이 "산수유길"입니다. 노란꽃하면 개나리가 연상되지만 개나리는 산수유보다는 더 원색에 가깝고 산수유꽃은 같은 노란색이라고 하더라도 좀더 기품이 있는 노란색입니다.  

 

띠띠미 마을의 어원은 "뒷뜨미(後谷)"입니다. 띠띠미 마을은 380여년전 병자호란(인조14년 1636년)때 개절곡 두곡 홍우정 선생의 피난처로 개척된 마을이라고 합니다. 몇년전 구례 산수유 마을에 갔을때는 꿀벌들이 윙윙거려 꿀벌들에겐 대잔치가 벌어졌구나를 느꼈지만 띠띠미 마을에서는 꿀벌들을 거의 못 본 것 같습니다.안타까운 현실입니다.노란 산수유꽃이 노란 눈처럼 층층이 쌓였는데 꿀벌이 보이지 않으니 여러가지 생각이 연이어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봉화(奉化)는 산세가 수려하고 선비 정신이 깃든 예절의 고장으로 청량산이 있는 고장입니다. 충효예의 바래미마을이 있고 봉화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가 있는 곳입니다. 

 

▷ 답사일정(風輪) :582km


두동(띠띠미)마을-사미정-만산고택-각화사-봉화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바래미전통마을

 

2023-4-1

 

해거름에 경북의 한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소나무 뒤로 보이는 벚꽃은 아직 볼 만 합니다. 

 

띠띠미마을의 비닐하우스로 임시 마을식당을 만든 곳 앞에 주차를 하고 하룻밤을 보냅니다. 


2023-4-2


 두동마을(띠띠미마을):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벚꽃 시즌인데 벌써 더워서 며칠전 선풍기를 켜기도 했더니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결국 감기에 시달립니다.근 20년만에 코감기에 걸려 열이 코에 몰린 듯한 느낌입니다.환절기 감기는 갑자기 찾아옵니다.

마을 뒤로 가보니 홍우정 선생이 기거했을만한 곳을 보게 되었지만 별다른 안내판이 없어서 짐작만하였습니다.담장 마다 산수유가 보이는데 오래된 담장과 오래된 산수유가 잘 어울립니다.  

산수유 가지가 너른 품에 안긴 이름 모를 산새가 아주 작게 보입니다.

한옥의 기와와 담장과 산수유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습니다. 

마을의 한 곳은 폐가 분위기가 납니다. 

왕유(王維)의 산수유 시가 오버랩 됩니다.

산수유(山茱萸)

 

獨載異鄕爲異動(독재이향위이동)
每峰街薛輩思親(매봉가설배사친)
要知兄弟登高處(요지형제등고처)
偏揷茱有少一人(편삽수유소일인)

 

홀로 타향에 나그네 되어
명절을 맞을 때마다 가족생각 간절하구나
멀리 형제들이 산에 올라가
산수유를 꽂을 때 한사람 모자람을 새삼 느끼겠구나!

햇살이 들어오니 산수유꽃이 산수유 등불이 된 듯 합니다.

자세히 보니 산수유 열매가 루비처럼 아직 달려 있습니다. 물론 가을의 왕루비와는 다르게 아주 작게 한점으로 쪼그라들어 있습니다.

비닐하우스로 마을식당을 차린 곳에서 아침을 해결합니다.추어탕이 8,000원이고 이곳 재료로 만든 밑반찬이 몇가지 나옵니다.감기기운으로 제대로 음식 맛을 못느껴 당황했지만 감기가 나으려면 잘 먹어야 하니 억지로라도 다 먹습니다.

사미정: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 554

사미정 쉼터에 도착했는데 정자가 보이지 않아 황당했습니다만 자세히 보니 밭고랑 너머로 지붕이 보입니다.

사미정(四未亭)은 조덕린(1658~1737) 선생이 말년에 수양하고자 경치 좋기로 이름난 곳을 찾아서 영조 3년(1727)지은 정자입니다.사미정 현판은 체제공이 썼다고 전해집니다.  

개가 워낙 짖고 지금은 정원 가든으로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있어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질 못했습니다만 양지 바른 곳과 계곡의 넓은 반석들이 보여서 휴식하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사미(四未)는 뭔가 4가지를 못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미 四未는 부자유친 父子有親[효 孝],형우제공 兄友弟恭[제 悌],군신유의 君臣有義[충 忠],붕우유신[朋友有信[신 信]을 다 하지 못했음을 한탄한다는 뜻입니다.

효제충신 孝弟忠信·孝悌忠信을 강조한 말로 중용(中庸)제13장에 따르면, 공자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의 도리에 네 가지가 있는데, 나[丘]는 그 가운데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君子之道四 丘未能一焉].

자식에게 바라는 도리로써 부모 섬기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所求乎子以事父 未能也],

신하에게 바라는 도리로서 임금 섬기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所求呼臣以事君 未能也],

동생에게 바라는 도리로써 형 섬기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所求乎弟以事兄 未能也],

친구에게 바라는 도리로써 친구에게 먼저 베푸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所求呼朋友先 施之 未能也].”고 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봉화 만산고택: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길 21-19

 

이 곳도 사람이 살고 있어서 대문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만산고택은 만산 강용(姜鎔 1846~1934) 선생이 고종 15년(1878)에 건립한 집으로 만산 선생은 중추원 의관과 도산서원장 등을 지냈다고 합니다.1910년 이후에는 망국의 한을 학문으로 달래었다고 하는데 서실 좌측의 "翰墨淸緣한묵청연" 푸른 글씨 현판은 영친왕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진품은 박물관에 있음)만산은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입니다.한묵청연이란 종이나 책은 먹과 깨끗한 연분이 있다는 뜻으로 고아한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각화사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각화산길 251

각화사는 현재 선공부를 하는 스님들로 인해 묵언 할 수 밖에 없는 사찰이라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사찰의 마루 끝에 앉은 새도 울지않고 사찰의 검은개도 전혀 짓지 않고 내 앞에 와서 꼬리를 흔들어 각화사에 있는 동물들도 이곳은 조용히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각화사 삼층석탑(覺華寺三層石塔)은 월영루 누각 옆에 있는데 가장 위의 보주가 탑의 크기에 비해 크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돌이 상대적으로 깨끗한 것으로 보아 원래의 보주는 아닌 것 같은 인상입니다.

각화사 귀부는 각화사와 각화사 부도밭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려전기 문신인 좌간의대부 김심언이 세웠던 통진대사비의 일부로 전하고 있습니다.등무늬를 보니 6각형 속에 "왕(王)"자와 불(佛)자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습니다.각화사는 사고지 입구에 세워진 사찰이기 때문일것이라고 짐작했는데 김심언은 조선시대가 아닌 고려전기 문신인점을 생각해보면 조선의 사고지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각화사 사고지는 등산을 해야하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만 한눈에 보아도 올라가는 산길 초입이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봉화 태백산사고지(奉化 太白山史庫址)는 조선시대 5대 사고지 중 하나입니다.오대산,마니산,적상산,춘추관,태백산에 두었는데 각화사 절 뒤의 태백산 사고지는 해방 전,후 불타 없어지고 산사태로 매물되었던 것을 1988년 발굴했다고 합니다.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송록서원):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 유림은 파리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제출해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떨친 공헌을 한 바 있습니다.파리 장서(長書)는 일제의 한국 주권 찬탈 과정을 폭로하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여 한국의 모든 계층과 사회 집단이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던 서한입니다.곽종석, 김복한을 비롯하여 유림 대표 137명이 연서한 이 장서를 김창숙으로 하여금 상해로 가져가도록 하였고 이를 다시 김규식을 통하여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되었으며 또한, 각국 대표와 외국 공관과 국내 각지의 향교에도 배포되었습니다.일본은 파리장서 운동에 참가한 유림들은 체포 투옥하는 등 가혹하게 탄압하였으며(제1차 유림단 사건), 이 사건을 계기로 유림계는 한말 구국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곳 봉화의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는 바래미마을을 알아야 합니다.바래미마을엔 만회고택을 비롯하여 토향고택,해저 김건영가옥,나호고택,소강고택,개암고택,팔오헌 종택 등 의성김씨 집성촌입니다.바래미 마을은 12인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유서깊은 전통마을입니다.

 

‘봉화군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비’는 독립청원서에 서명한 137명의 유림 중 봉화 출신 9명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2014년 8월에 건립되었습니다.

 

 

바래미 마을은 입구에서 원경으로 둘러보고 하나하나 세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습니다.감기 기운이 심해지고 부산까지의 이동시간을 감안했습니다. 

충효예가 살아숨쉬는 봉화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피는 산수유를 보았으니 이제 올해의 봄을 보냅니다. 점점 봄이 짧아지고 여름만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좀 성가시더라도 꿀벌이 윙윙거리는 산수유꽃 계절이 돌아와야 할텐데 시절이 하수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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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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