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어산▲장유화상,김수로왕,허황옥을 연결하는 가야불교 순례길

- 언제 : 2005.6.18(토) 09:00~15:00
- 얼마나: 09:20~14:20(5시간)
- 날 씨 : 맑음,염천
- 몇명:2(와이프)
- 어떻게 :자가용(풍류산행 http://zaetech.com/san )
▷상동 불조사 - 삼랑진 콰이강의 다리 - 삼강비 - 만어사↗만어산↘만어사-생림 무척산 모은암
- 개인산행횟수ː 2005-24 [W산행기록-117/P산행기록-259/T606]
- 테마: 문화유산 사찰순례
- 산높이ː만어산 670.4M
- 좋은산행 개인호감도ː★★★★★




오늘의 산행은 순수한 산행이라기 보다는 드라이브를 겸한 세미 산행의 성격을 가지고 떠났다.또한 테마적으로 볼때는 가야불교의 흔적을 찾아가는 가야불교 관련 사찰 순례기이다.

그동안 수험때문에 휴식을 취하지 못했던 와이프와 단둘이 길을 떠났기 때문에 처음부터 무리한 산행은 포기하고 떠났다.그래서 나의 욕심대로라면 용두산~산성산~만어산으로 이어지는 25KM 장거리산행은 꿈도 꿀 수 없었고,구천산~만어산으로 이어지는 5시간 30분 코스 조차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와이프 때문에 또 다시 손질을 하다보니 영 이상한 토막 산행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전혀 의미없는 길은 아니었던 것은 불조사,만어사,모은암으로 이어지는 탐방길은 가야불교를 근본부터 생각 해 볼수 있는 중요한 인물인 장유화상과 김수로왕,그리고 허황옥과 관련된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허황옥은 아름다운 고향을 뒤로하고 전란으로 인한 멸문을 피하기 위해 어린나이로 고국산천을 떠나올때에 부모형제 이웃친구들과 헤어지면서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 가사를 짖게 되었으며, 아유타국에서 사천성의 성도에 잠시 정착하였다가 다시 안악현의 고산준령인 아리랑 고개를 넘으면서 불렀던 노래가 지금의 아리랑의 시원이 되었다고 지난 산행기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허황옥은 외세에 의한 멸망으로 육지로 이동하여 동쪽 산동반도에서 배를 타고 김해로 온 것이란 설이 지배적이다.또한 불교가 처음으로 전승된 곳도 김해인데 장유화상이 김해에서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하였으며 불교와 함께 차와 도자기 문화도 이때 들어왔다.

장유화상은 허황옥의 오빠이다.

가야불교로 일컬어지는 가야국의 불교는 어느정도이냐하면 성불했다는 김수로왕의 7왕자는 지리산 토끼봉의 암자인 칠불사(아자방으로 유명)의 이름과 관련이 있고,김해일대에 있는 왕후사(王后寺)·장유사(長遊寺)·부은암(父恩巖)·모은암(母恩巖) 등은 이름부터 가야 왕가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지리산의 칠불사가 왕족의 해탈을 보여주는 것이라면,김해 무척산의 모은암은 왕가의 번성-암자 옆에 자연 남근석이 우뚝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모은암 경내 동굴에도 남근을 상징하는 닝가가 모셔져있다.-을 염원하는 곳이다. 이처럼 가야불교는 주로 왕족의 번성과 해탈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불조사(佛祖寺)는 불교의 조상을 모신 절이니,여기서 佛祖는 장유화상을 의미한다.가야에 불교를 처음 가지고 온 분이니 절이름이 이해가 되고, 만어사는 김수로왕이 창건했으며 모은암은 母恩, 즉 "어머니의 은혜"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어머니는 허황옥을 가리킨다.즉,그의 아들(왕자)들이 어머니를 기려 만든 암자이다.


09:00~20
주례동 아파트에서 출발하여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넣고 백양터널을 U턴하여 곧장 달리면
대동IC의 오른쪽 맨끝으로 나오면 상동으로 빠져나오게 된다.여기서 삼랑진 방향으로 가기 위하여
매리다리를 지나기 전 좌측으로 차를 몰면 김해 무척산으로 가게된다.

가는 도중 대감마을을 지나면 상동에 불조사라는 절이 좌측에 있다. 가락불교 장유종 총본산인 경남 김해시
상동면 불조사는 허황옥 공주의 오빠인 장유화상을 기리는 장유종 선원이다.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인도의 아유타국의 왕손이 불조사를 방문하여 기념식수를 했다.



09:29~31
불조사 뒷편 마애불에서 기도 후 "초사리"가 나왔다하여 신문에서 본적이 있다.



초사리란 흰 초에서 나온 구슬모양으로 초사리가 오색영롱한 빛을 띠고 있다.

[연합뉴스 2003-06-10 13:40]

마애불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지만 그리 높지 않아서 조금만 오르면 된다.하지만 날이 무척 더워서
땀이 제법 흐른다.내려오면서 보니 띄엄띄엄 나리꽃이 피어있어서 운치가 있는 길이다.



09:33
불조사의 주소는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우계리 1050-1 로 넓은 주차장이 있고 큰마당에서 내려다보는
조망도 좋았다.





장유화상의 속가 본명은 허보옥이다.장유화상에 대한 기록은 많다.우선 우리가 잘알고 있는 장유화상이 지은
절 중에 하나가 서림사이며 현재 은하사로 개칭되어있다.

그리고 칠불사와도 관련이 있다.

김수로왕은 10명의 왕자를 두었다. 그 중 큰아들 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김씨의 시조가 됐으며, 둘째·셋째는
어머니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됐다.

그러니 가락국 제2대 거등왕(居登王)의 외숙이 바로 장유화상(長遊和尙)이다.

나머지 일곱 왕자는 가야산에 들어가 3년간 수도했다. 이들에게 불법을 가르쳐 준 스승은 왕후와 함께
인도에서 온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보옥선사)이었다. 왕후가 아들들이 보고 싶어 자주 가야산을 찾자
장유화상은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왕자들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김왕광불(金王光佛), 왕상불(王相佛), 왕행불(王行佛), 왕향불(王香佛), 왕성불(王性佛), 왕공불(王空佛) 등
일곱 생불(生佛)이 출현했다하여 칠불사라 불리운 이 절은 한 번 불을 때면 49일간 따뜻했다는 아(亞)자방
(경남 지방문화재 제144호)으로도 유명하다.

(참고)
장유계곡에 가면 장유사가 있다. 장유사는 본래 왕후사였는데, 뒷날 새로 절을 지으면서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기려 그렇게 작명했다. 절 뒤에 장유화상의 사리탑이 있다.

장유화상의 사리탑은 장유면 대청리 산 68-1 에 있고 이 팔각사리탑은 가락국 수로왕의 처남인
장유화상(허보옥)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석조물로서 가락국 제8대 질지왕(451 ~ 492) 재위중 장유암
재건당시 세워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1500여년의 오랜 세월속에 여러번의 전락으로 암자와 관계 유물들은 거의 소실되고 사립탑만이 남았다고
하나 현존 사리탑은 그 제작수법으로 보아 고려말의 작품으로 보인다.

이 사리탑때문에 지금의 장유라는 지명도 생기게 된 것이다.


10:45~11:00
다시 차를 몰아 생림면 생철리 무척산을 지나 삼랑진의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서 "삼강비"를 구경하고 바로
만어사로 향한다.삼랑진역을 지나 우곡방향으로 가면 만어사 가는길 안내가 나온다.여기서 부터는 비포장
도로길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차가 산길을 오르게 되는데 길이 좁아서 중간에 내려오는 차와 만나게 되면
상당히 애를 먹게 된다.

만어사 아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만어사로 오르면 3층석탑이 보인다.고려 중기 작품인 만어사 3층석탑
(보물 제466호)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한 모습이다.

그 뒤 대웅전은 그리 크지 않다.별로 고풍스러운 맛도 나지 않는다. 대웅전 벽면에 그려진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8폭의 그림은 놀랍다.이그림의 미인들의 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림이 시대의 반영이라면,
이 시대 부처님은 웬만한 노출에는 관심도 없는 것일까? 노출의 수위가 꽤 높다. 2번째 비람강생상의
마야부인의 몸매도 눈에 띄게 요염하다.

아래로 내려다 보면 한눈에 드러나는 종석들이 장관이다.






만어사는 경남 밀양시 만어산(萬魚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末寺)
로 46년(수로왕 5)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신라시대에는 왕이 불공을 드리는 장소로서 이용되었다고 하며,
1180년(명종 10)에 중창되었고, 1879년에 중건되었다. 대웅전 ·미륵전 ·삼성각(三聖閣) ·요사채 ·객사(客舍)가
있으며, 보물 제466호로 지정된 3층석탑이 있다.

미륵전 밑에는 고기들이 변하여 돌이 되었다는 만어석(萬魚石)이 첩첩이 깔려 있는데, 두드릴 때마다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어떻게 두드려보지 않을 수 있는가? 나도 두드려볼 작정으로 작은 돌을 찾고
있는데 등산객 중 한분이 친절하게도 종소리를 들려주고 있다.정말 쇠종소리가 난다.미륵전 가기전 바로 옆의
돌소리가 왠만한 종소리만큼 울리고 조용한 산사를 깨울 정도로 그 소리가 크다.

종석은 "만마리의 물고기(萬漁)"를 의미하는데 어산불영(魚山佛影)이라고 표현되어 있다.그 이유는 미륵전에서
어렴풋이 알게 된다.




46년 김수로왕이 창건했다는 이 도량은 불교의 남방 전래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산꼭대기의 절집에 물고기가 1만 마리나 있을 수 있을까.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 무척산의 스님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했다. 용왕의 아들은 스님이 일러준 대로 길을 떠나자 동해의 수많은 고기 떼가 그의 뒤를
따랐다. 나중에 그는 큰 미륵돌로 변하고 고기들도 크고 작은 돌로 변했으며, 그 자리에 만어사가 생겼다.”

이 전설에서 보듯 만어사는 절 둘레에 있는 너덜 돌들이 물고기를 닮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설화에 나오는
미륵돌은 현재 미륵전 안에 모셔놓았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부처님, 사천왕상, 큰스님 등 여러 모습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려고 노력해서 그런지 그런 것도 같다.





채석흔적이 있는 이 돌도 두드려보니 약간의 쇳소리가 난다.1만마리의 물고기를 펄떡이는 모습이 상상된다.
그러고 보면 가락국은 물고기와 관련이 깊다.그래서 쌍어문이 가락국의 상징 아닌가? 아요디아 문양과 같은
물고기는 신의 물고기이므로 김해엔 신어(神魚)산이 있다.

11:54
미륵전 뒷길을 따라 능선을 타고 오르면 길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간간이 산악회 리본이 보인다.그 길을 따라
땀을 흘리며 오르니, 임도가 나타나는데 임도를 따라 조금 더 오르니 이동통신기지국이 나타난다.그 옆으로
조금 더 오르니 만어산 정상이다.만어사 절에 가린 때문일까? 만어산 정상은 조망도 별로 좋지 못해서 산행의
일부로 받아들이기엔 2% 부족한 길이다.



13:52
다시 만어사로 내려오면서 지천으로 달린 산딸기를 채집하고 모은암으로 향한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여유가 있지만 한낮의 찌는 더위 때문에 땀으로 샤워를 한다.

이제 무척산을 오를 차례이다.무척산(700M)은 전체적으로는 부드러운 육산(肉山)같지만, 북서측 사면
(모은암 주위)은 온통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골산(骨山)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빚어보인다.

생림면 생철(生鐵)리는 쇠가 나왔다는 증거이다.이곳 생철리에서 오르다보면 교회와 모은암 그리고
기도원으로 이어지는 각기 다른 신앙의 흔적들이 이채롭다.

모은암을 오르다 산위를 바라다보면 바위의 형상들이 푸른괴물 헐크보다 더 우람한 근육을 자랑한다.그래서
최근 무척산에 암장들이 많이 개척되었다.

그렇게 힘든길은 아니지만 제법 가파라서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지는 산길이다.

모은암 위로 자연 남근석이 보인다.오늘날 김해김씨 인구가 제일 많은 이유가 아닐까?








萬漁寺
-박호영-

일만 마리의 물고기가
산비탈을 치달아 올라오고 있다
물고기의 생을 마치고
내세에 부처가 되려는 필사의 질주
강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인가
바다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것인가
머나먼 길을 오면서
뭍에 몸을 비벼 비늘도 다 떨어지고
햇살에 검게 타버린 모습이,
검은 바위 되어 극락을 꿈꾸는 모습이,
너무도 장엄하구나
예전에 이미 올라와
風磬(풍경)에 매달인 물고기 한 마리가
소리 내어 절의 적막을 깨뜨린다.



불조사는 신어산에 있고,만어사는 만어산에 있으며,모은암은 무척산에 있으니 이곳 세곳은 김해 가락국의
성지를 의미하는 신성한 산인셈이다.

김해는 가락국 500년의 수도이며 신어산과 무척산은 실제 현재 김해의 2대 명산이다.신어산은 김해의 주산이고,
무척산은 이름조차 불교를 의미한다.대승불교의 선구자인 인도의 무착(無着)스님의 이름을 따서 무착산,
무축산, 무척산으로 불린다.그래서 무착산 모은암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가 않다.

애초에 산을 오르며 정상을 밟는데 목적을 두었다면,싱거운 산행,토막 산행이 될 수 밖에 없었다.오늘의 산행은
오르는 행위에 목적을 두기보다 즐거운 마음으로,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작은 기회로 삼은 만행길
이었다.그러나 그 속을 흐르는 훌륭한 맥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가야불교이다.

아기자기한 볼거리도 많고,부산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하루 일정을 삼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는 길이다.약간의
산행과 문화유산 답사를 겸한 드라이브를 즐기고 싶다면 좋은 안내길이 될 것이다.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는 김수로왕의 후손이고 김수로왕은 가락국의 왕이었으므로 통칭하여
가락종친회라고 불리운다.그러니 가락종친회 소속이라면 더 말 할 나위 없는 성지순례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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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을 만난다.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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