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여행기는 2000년 8월 1일 부터 8월 6일의 5박6일간 필리핀 여행기입니다.7년 전의 여행기입니다만
우연히 여행기를 다시 찾았기 때문에 복원,갈무리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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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의 필리핀여행은 나에게 있어 내인생 중 가장 COOL한 경험 중 하나였다.
나는 증권회사에 다니는 영업회사원이다.그런 나에게 직장의 굴레를 잠시나마 벗어나게한 여행다운 첫 해외여행이었고,
여행에 맛볼수있는 호기심의 충족 및 즐거움은 매너리즘을 씻을수있는 재충전의 기회였다.또한 나의 아내와 함께한
결혼 10주년여행도 겸한 다목적(?)여름 휴가였던 셈이다.

휴가가기 위해서 결근계를 내고, 내가 관여하고 있는 증권관련 IP사업체에 알리고 여권을 준비했다.여행을 떠나는 준비
마저 여행의 연장선상이지 않는가?.벌써 마음은 필리핀이었다.여행가방등을 준비하고 나머지 필요한 물품은 할인점을
이용했다.US달러도 좀 준비하고 항상 소지하고 다녀야 할 것들은 작은 벨트쌕을 이용했다.심심할때 들을 MP3카세트와
추억을 담을 카메라와 강한 남국의 햇살을 피할 썬글라스와 챙이 긴 모자를 미리 챙겼다.하지만 여행에 도움될것 같지
않고 속박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휴대폰은 과감히 밧데리와 몸체를 이등분 한후 책상서랍에 넣고 떠났다.

일상 생활이라는 것이 하기 싫은 일도 참으면서 일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뒤로 미루며 참으면서 하지 않았던 일이
있는데 나의 경우 여름 휴가가 후자였다.계속 미루다 보니 몇년째 여름휴가는 잊고 살았는데,어느날 문득 이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이다는 뒤늦은 판단이 들었기 때문에 이번엔 과감하게 휴가를 내고 떠나게 되었는데 떠나는 날까지 아니
항상 나를 묶어두고 있는 증권은 종합지수 700선 무너진 걸 확인하고 가게 됐다.나의 발목을 잡는 물귀신 같은 이놈은
이번에도 나를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안한 마음을 애써 가지고 떠날수 있었던 생각은 휴가를 통하여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할수 있을 것
같았고 여름휴가를 통하여 일상의 매너리즘에서 새로운 각도의 눈을 부여해줄것이라는 것과 휴가 이후 더욱 재충전된
예지의 칼날로 명쾌한 판단이 될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8월1일(화)부터 8월6일(일)의 5박6일간이었지만 서울발
아시아나 비행기였기 때문에 7월31일 미리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서 1박을 하고 8월1일 아침에 김포공항으로
나갔다.오전 9시 비행기인데 7시까지 미리 나오라고해서 시간에 맞춰 공항에 나가서 여권을 가이드에게 맡기고
10분전까지 탑승구로 나로라는 쪽지를 받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그리고 10분전 탑승구로 가니 가이드가
나의 여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이드가 안보였다.여권이 없으면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것이다.그 순간 머리는 망치로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다시 아래층으로 위로 그 많은 인파를 헤쳐 겨우 가이드를 찾아 2분전에 긴줄로 대기하고 있는
9시30분발 비행기 승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입국심사를 받은후 슬라이딩 테클식으로 비행기에 탑승할수 있었다.
등에는 땀이 그리고 머리속은 100% 가이드를 믿지말라였다.여행마저 자신의 판단과 책임으로 해야 하는 것인가?
여하튼 그날 나는 필리핀으로 출발했다.

7000여개의 섬나라.한국에서 비행시간은 4시간정도이며 시차는 한시간정도 마닐라가 빠르고 인구의 82%가 카톨릭신자
로 아시아에서 유일한 카톨릭국가다.한때는 우리나라보다 6배로 많은 GNP를 자랑했던 일본 다음으로 부유했던
이 나라는 지금 30년전이나 몇년전까지 성장이 멈춘나라였다.새벽부터 서둘렀기 때문에 피곤하여 기내에서 잠을 잤는데
일어나보니 벌써 마닐라에 도착했다.필리핀에서는 에어콘만 나오면 거의 특급차량이다.그도 그럴것이 필리핀의
교통수단은 가장 좁은 골목길도 운행이 가능한 오토바이나 자전거 옆에 탈것을 붙인 트라이시클이 있고 양철함석으로
만든 지프모양의 교통수단 지프니 대부부는 에어콘이 없다.그리고 버스도 대부분 창문을 열고 다닌다.에어콘이
없을때는 차라리 창문을 활짝열고 운행하는 것이 시원하기 때문이다.우리가 탄 버스는 최고급(?)버스로 에어콘이
가동되니 상대적으로 가진자의 기쁨은 배가된다.필리핀은 자동차가 생산되지 않고 모두 수입하기 때문에 관세가
포함되어 우리보다 2배의 값으로 거래된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시내관광에 나섰는데 처음 들른 곳은 전쟁기념관이었다.수많은 하얀 대리석 비석과 고즈늑한
분위기의 파란잔디와 키큰 나무들은 고목나무 가로수가 있는 경주의 진평왕릉을 보듯 운치가 있었다.필리핀은 빈부의
격차가 눈으로 봐도 심했다.판자집이 늘려있는가하면 궁궐같은 저택들도 많았다.메트로 마닐라인 마카티를 지나 필리핀
독립의 국민적인 영웅인 호세리잘 공원에서 사진을 찍고 고객한분 한분을 정상으로 모신다는 슬로건을 가진 필리핀에서
가장 격조높은 마닐라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원래 호기심이 많은 나는 현지가이드를 독촉해서 리조트팀 100여명중 단지 6여명 정도만 추가 시내관광에 나섰다.
호세리잘이 사형을 당하기전 머물렀던 산티에고 요새는 그의 발자국이 바닥에 프린팅되어 있었다.
호세리잘은 333년간이나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었던 필리핀국민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킨 독립운동가로 조각가이며
의사이고 문학가인 선각자였는데 38세의 짧은 나이에 사형을 당했다고 한다.시간이 늦어 산티아고 내의 호세리잘
기념관은 아쉽게도 구경을 하지 못하고 산 아구스틴성당을 둘러보았다.

산 아구스틴 성당은 환태평양조산대의 화산활동이 극심한 필리핀에서 450년간 아무런 피해없이 오늘까지 보존되고
있는 석조성당으로 내부의 조각은 우리나라 석굴암을 연상시켰다.저녁식사를 하기전 처음으로 마음맞은 유별난(?)
사람들과 110년 전통의 산 미구엘 맥주를 마셨는데 그맛이 일품이었다.세계5대 맥주에 속하는 이 술은 맥주치곤 도수가
높은 8도로 미국식과 유럽식을 섞어 놓은 듯한 그 맛은 일본의 기린맥주 맛과 흡사했는데 나의 입을 사로잡았다.
이후 나는 시간이 나는대로 산 미구엘 맥주를 즐겼다.

아참! 앞에서 유별난 사람이란 적극적으로 잘 나서고 한가지라도 더 배울려고 호기심을 잔뜩가진 나와 비슷한 사람을
뜻하는데 여행도중 나는 이분들과 자주 마주치게 됐다.유유상종일까? 밤늦은 카지노에서도 보았고 가라오케에서도
보았다.몇몇은 아예 작당하여 성인쇼까지 보았으니... 그분들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우선 소개하면 삘리리 김영광씨는
술 좋아하고 사람좋은 사람으로 가장 마음맞는 술친구였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베큐를 먹었던 그날밤에는 소주와 맥주도 모자라 까뮈 꼬냑까지 비웠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대구의 김방훈님은 호탕화통하고 좌중을 리더하는 남자 멋이 물씬 풍기는 분이었다.
여수에서 오신분은 모습자체가 친근한 옆집 아저씨같은 분이었는데 마냥 기대어도 부담가지 않을 것 같은 분이었다.
원주에서 온 신혼 초의 조영진님은 순수한 웃음이 부러운 분으로 나와 마찬가지로 마냥 즐거운 모양이었다.

둘째날은 비행기를 타고 세부섬을 거쳐 배를타고 보홀섬의 팡라오리조트로 갔다.리조트는 엽서사진에서 본 그림
그 자체였다.수심끝까지 내려다보니는 깨끗한 바다.그림같은 야자수와 더불어 리조트 방갈로는 인간이 가장 편할수있게
시설이 되어 있었다.방갈로 지붕 모양은 콘을 꺼꾸로 세운것 같은 피라밋 모습이었는데 안에서 위로 보면 얼기설기
붙여놓은 듯한 내부구조가 굉장히 공학적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통나무를 사용하여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왔다.

나는 리조트에 머무는 동안 밤마다 색다른 경험을 했다.별들이 쏟아질듯 빛나는 하늘을 지붕삼고 기포가 발생되는
마당에는 개인용 욕조3개정도 크기의 개인용 수영장(?)이 있었는데,담으로 둘러쳐진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밤잠이 별로 없는 나는 새벽엔 혼자서 노팬티차림으로 별을 쳐다보며 시원한 기포가 뿜어나오는 개인용 수영장 안에서
몸을 깊숙히 묻고 산 미구엘 맥주를 즐겼다.가장 인상깊은 경험 중 하나였다.

팡라오 리조트는 자연과 약간의 인공이 가마된 아름다운 곳이었다.바닷가를 따라 방갈로가 배치되어 있고 바다와
야자수와 하늘이 있어 마냥 포근한 곳이었다.특히 이곳에서 일하는 웨이터의 정성과 친절은 너무 세심하여 이런 상황에
익숙치 않았던 나를 당혹케 할 정도의 환대를 받았다.팡라오리조텔에서의 이틀째 오전에는 스노클링을 했는데 스노클과
오리발로 무장하고 바닷속구경을 했다.양옆에 날개같은 것이 달린 배를 타고 망망대해 바다를 유유하는것도 좋은
경험이었다.아무생각없이 뱃전에 앉아 작열하는 태양을 맞으며 아스름한 여유 자체를 오랫만에 만끽했다.

오후에는 한줄낚시를 즐기고 밤에는 바베큐를 먹었는데 서울에서 공수한것으로 보이는 김치는 단 며칠간 고기기름에
질렸던 입맛을 북돋워줬다.식사중 펼쳐진 민속공연 중에서도 함께 할수 있었던 대나무(뱀부)춤은 어릴적 고무줄놀이와
비슷했는데 단지 고무줄과 대나무를 바꿔놓은 것 같았다.

다음날 보홀섬에서 다시 세부섬으로 수퍼캣 배를타고 이동해 세부섬의 워터프론트 호털에 도착했다.특히 그날저녁
워터프론트호텔에서 카지노 첫경험을 했는데 약간의 돈을 기부했지만 귀족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다음날 세부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마닐라로 왔다.오후에는 토산점에 들러 쇼핑을 했고 마닐라 호텔에서 두번째의 여장을 푼 후 밤에는
뜻 맞는 몇분들과 작당하여 처음으로 지프니를 타고 마닐라 시내를 쏘다녔다.아찔한 성인쇼를 구경하고 KTV(노래방)에
들러 마음껏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불르며 마지막 마닐라의 밤을 보냈다.

다시 한국으로 올때의 기분은 묘했다.한국이 작으면서 커 보였다.일주일 만에 한국사람이 그립고 한국음식이 그립다면
거짓말일까?그러나 나에겐 정말 그랬다.다시보는 아시아나 여 승무원이 반가웠고 집에 와서는 다른 음식은 제쳐두고
김치와 고추와 밥만 먹었는데 꿀맛이었다.첫 해외여행에 너무 근사한 경험을 한 나로서는 다음 해외여행이 벌써 걱정이다.

다음 여행이 조금만 허술해도 실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더 멋진 경험이 나를 기다릴 것으로 믿는다.
다음 기회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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