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산▲산은 어진 이처럼 고요하고,바람은 성인처럼 맑았습니다.

- 언제 : 2010년 5월15 05:30~10:30
- 얼마나: 2010.5.15 07:00~09:30
- 날 씨 : 박무였으나 대체로 맑음
- 몇 명: 홀로
- 어떻게 : 자가용 이용
▷성포마을-구천암-풍혈-함박정-작약산-함박정-풍혈-구천암-성포마을(원점회귀)
- 개인산행횟수ː 2010-4[w산행기록-247/T735]
- 산 높이:377.8m
- 테마: 근교산행,사색산행
- 호감도ː★★★★



전일 피곤해서 밤 9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다른때 보다는 상당히 이른 시간에 잠을 잤더니 오늘 새벽 2시반에 저절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숙면을 취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서 거실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서예를 하기도 하면서 새벽을 기다린 후 간단한 행장을 꾸려 산행에 나섰습니다.

 

범일동에서 동래로 근무지를 옮긴 이후 안착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바쁜 일과를 보냈습니다.바쁜 가운데 서예를 새로 시작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산행시간을 빼앗겼습니다.산행다운 산행을 올해 2월,일본 다이센산을 다녀 온 이후로 뜸했습니다.그래서 오늘은 산행다운 산행을 하고 싶었지만 오후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모네에서 피카소까지"라는 주제의 전시회관람이 있기 때문에 근교산행을 선택했습니다.내일은 고적답사가 계획되어 있어서 무리하지 않는 산행을 하기로 하고 집을 나섭니다.

 

산행장소는 김해 생림면 생철리의 작약산입니다.산 정상 가까이 있는 풍혈이 있어서 한번 가 보고 싶었던 곳입니다.산은 낮지만 천혜의 조망터라는 글을 읽어서 더욱 기대를 갖게되었습니다.계획은 세웠지만 상세히 세운 계획이 아닌 주먹구구식[九九式]의 어림짐작으로 떠나,새벽부터 길을 찾아가는데 갈팡질팡하며 다소 애를 먹었습니다.

 

 

 

 

우선 지도에 있는 구천암의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입력을 하였습니다.주소는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 산58-4"입니다만 네비게이션에는 근접주소인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 산58-0"의 지역만 나옵니다.

 

목적지를 찾아갔더니 무척산 등산로입니다.그래서 지도상에 보이는 "가야산장"을
입력하니 "가야산장-김해"가 나와서 근처에 가보니 생뚱맞게도 김해천문대
근처의 또 다른 "가야산장"을 알려주어 헛수고를 합니다.

 

이번엔 "작약산-김해"를 입력하여 목적지를 찾았습니다.그랬더니 삼랑진 쪽의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의 다른방향으로 안내합니다.
이미 해는 떠올라 아침햇살이 산을 넘어 들녘까지 닿았습니다.


 

우선 산 방향으로 들어가니 임도가 보입니다.임도를 따라 산을 넘고보니
이미 새벽에 갔었던 무척산 근처입니다.그래서 도로를 따라 좀더 삼랑진 방향으로
진행하니 다행스럽게 성포마을 이정석과 구천암 안내 입간판이 보입니다.

 


작약산을 다녀 온 결과를 말씀드리면 앞으론 부산에서 출발할때는
신대구고속도로 삼랑진IC로 나와서 "이작초등학교"로 입력하시면
수월하게 찾을 수 있겠습니다.


 

성포마을로 들어오면 구천암 가는길과 등산로입구를 알리는
이정목이 있습니다.성포마을에서 구천암에 도착해보니 돌로 쌓여진
축대에 심어진 꽃이 작약으로 보입니다.구천암(龜泉庵)은 작약산(芍藥山)
중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대한불교 조계종 범어사 말사입니다.

 

작약산이라는 이름으로 불교에서 나온 이름으로 보입니다.
목단게牧丹偈를 보면

 


"牧丹花王含妙香 芍藥金蘂體芬芳 菡萏紅蓮同染情 更生黃菊霜後身
목단화왕함묘향 작약금예체분방 함담홍련동염정 갱생황국상후신

 


 

목단꽃은 꽃중에서 으뜸이니 향기를 머금었고
작약꽃,꽃 수술은 향기를 내뿜고 있네.
붉은 연꽃 봉우리 더러움에 물들지 않듯이
누런 국화 서리 맞은 뒤에 다시 봄이면 다시 나네."

 

구천암으로 들어가니 암자라고 하기에는 사세가 제법 큽니다.
그래서 이정목을 보면 "구천사"라는 글자도 보입니다.


 

 

절 뒤로 난 길을 올라가니 산은 낮지만 제법 산세가 가파릅니다.
구천암이 보이지 않게 산등성이를 돌아 좀 더 오르니 풍혈이 나옵니다.

 


풍혈 안을 들여다보니 겉보기와 다르게 제법 깊습니다.풍혈은 안팎의
기온차가 20도 정도이고 여름철에는 시원하고 겨울엔 온풍이 나온답니다.
바람이 나오는 구멍인 '풍혈(風穴)'은 수직의 작은 굴입니다.


 

 

 

능선에 오르니 소나무 한그루와 함박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작약은 함박꽃의 일종이니 정자의 이름은 작약을 의미합니다.

 


이곳에서 보는 조망이 압권입니다.이곳은 삼랑진과 김해의 경계지역입니다.
삼랑진(三浪津)이라는 지명의 '삼랑'은 낙동강과 밀양강, 그리고 바다에서
부터 밀고 올라온 조수(潮水) 등 세 물결이 만나 일렁이는 모습을
일컫는다고 하는데,여기서 그 모습이 잘 보입니다.여기서 보면 강도 강이지만
흡사 주변의 산들이 작약산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병풍처럼 사방을
둘러치고 있습니다.

 

구천산 천지봉 만어산 금오산 천태산 토곡산 종남산 덕대산 남산 화악산
화왕산 영취산 백양산 승학산 금정산등이 자아내는 산그리메는 이곳을
너무나도 평온한 분위기로 안내합니다.

 

산 첩첩 산중에 핀 작약같은 산이 바로 작약산입니다.

 

흡사 정자에 앉고보니 조용한 서재에
앉은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고요합니다.5월 아침에 부는 바람은 미풍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은 아침의 기운과 더불어 맑기만 합니다.

 

山如仁者靜 風似聖之淸
산은 어진 이처럼 고요하고,바람은 성인처럼 맑도다.


 

열하일기에 본 글 내용과 일치하는 분위기의 장소입니다.


 

산 정상은 여기서 능선을 따라 삼랑진 방향으로 5분정도만 더 가면 나옵니다.
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불가능합니다.숲으로 둘러싸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함박정으로 갑니다.이렇게 분위기 좋은 곳,정자 난간에 호기롭게 앉으니
배낭 끈에 휩쓸린 책이 한권 바닥에 떨어집니다.아마도 누군가 책을 난간에 놓아둔 모양인데
겉표지는 이슬에 젖었던 흔적으로 터시터실해졌지만 책의 속은 깔끔합니다.

 


신영복 교수의 "나무야 나무야"라는 책입니다.이곳에서 읽기 딱 좋은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몰입합니다.미풍의 바람도 잊고,산 첩첩 산그리메가
둘러쳐져 있음도 잊습니다.

 


책값이 5,800원이면 요즘 책값과 비교하면 값싼책입니다.그러나 그 내용은
진중하기만 합니다.새벽아침에 읽기 좋은 책,산에서 읽기 좋은 격조 높은 책입니다.
사색을 통해 나온 보석같은 글귀들이 그대로 뇌리에 꽃힙니다.

 

아래와 같은 글들이 기억납니다.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



"옛 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 鑒 於 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바로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鑒 於 人).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과거’를 읽기보다 ‘현재’를 읽어야 하며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글들이 높임말입니다.

 

저도 맨 처음, 글을 쓸때 높임말을 쓸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만
높임말은 음악으로 표현하면 클래식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부러
팝송같은 평상어를 사용했습니다.저의 글 내용이 요즘의 글 같지 않게
다소 고어틱한데 말까지 높임말로 쓰면 더욱 현 시대적 조류와
괴리가 될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나 홀로 산행을 왔고,사색의 아침 산행을 왔으니
오늘은 높임말로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앞으론 평상어로 쓰기도 하고 높임말인 경어체로 쓰기도 할 작정입니다.

 

산에서 책을 읽으니 <퇴계집>에 수록된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이 떠오릅니다.




책 읽기는 산을 노니는 것과 같다고 말들 하는데 讀書人說遊山似
이제 보니 산을 노니는 것이야말로 책 읽기와 같네 今見遊山似讀書
온 힘을 쏟은 다음에 스스로 내려오는 것이 그러하고 工力盡時元自下
얕고 깊은 곳을 모두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그러하네 淺深得處摠油渠
가만히 앉아 피어오르는 구름 보면 묘미를 알게 되고 坐看雲起因知妙
근원에 이르러 비로소 원초를 깨닫네 行到源頭始覺初
그대들 절정에 이르기에 힘쓸지니 絶頂高尋免公等
늙어 중도에서 그친 나를 깊이 부끄러워할 따름이네 老衰中輟愧深余


 

오늘은 산행도 아니요 독서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의 입장에서는
두가지를 다했으니 저 답습니다.

 

그 산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그리고 그 시간에 딱 어울리는 그 무엇을
했으므로 최고의 산행이었지요.그것이 풍류산행입니다.

 

삶도 바람처럼 흘러라(風流)
생활속에 자연을 두고
책(冊)과 함께 즐겨라
그 안에서 진리를 느끼고 논리를,그리고 사리를 찾노라면 남는 것은 지혜의 예술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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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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