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金克儉墓佔畢齋金先生

안두령첩입추다(安頭嶺疊入秋多) 책상머리 공문서가 가을 들어 많아졌으니
래차호남풍경하(來此湖南風景何) 이 좋은 호남의 풍경을 어찌한단 말인가
동방고인진득의(東方古人眞得意) 동방급제 친구는 참으로 마음에 들어
일변시담경웅과(一邊是談經熊過) 서울의 시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웅장하구려

용진춘수곡문다(龍津春水曲文茶) 용진 봄물에 고운 비단무니도 많으려니
이로양령흥야하(爾露楊嶺興野下) 두 늙은이 작은 배라도 타면 흥취가 어떻겠는고
미보주은구착착(微步周恩久錯錯) 임금의 은혜 보답 못하고 근신하고 있으니
시상타일당상과(柴桑他日倘相過) 후일에 혹 시상( 柴桑 )에서나 스칠 수 있을까?

#필사

#한자공부

疊 :거듭 첩/겹쳐질 첩
錯 :어긋날 착/ 둘 조

柴桑 : 강서성 구강현(江西省九江縣) 서남쪽에 있는 산. 진(晉)의 도연명(陶淵明)이 일찌기 이 곳에 살았음.

倘:빼어날 당,배회할 상

* 풀이

점필재 김종직이 쓴 김극검묘에 대한 한시

김극검(金克儉 1439~1499)은 천재였다고 합니다.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렴(士廉), 호는 담헌(淡軒), 괴애(乖崖). 아버지는 김강의(金剛毅)입니다.학식이 뛰어나 일찍이 생원시와 진사시에 잇달아 합격하고, 1459년(세조 5)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해 한림이 되었고 특히, 시문에 능해 1469년 세조가 양성지(梁誠之) 등에게 명해 연소한 문신을 육문(六門)으로 나누어 배정할 때, 성현(成俔)·유순(柳洵) 등과 함께 시학문(詩學門)에 선발되었습니다. 이어 예문관대교에 올랐으며, 당시 발영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였습니다. 그 뒤 승문원교리로서 조운사종사관(漕運使從事官)으로 활약, 경상도 연변의 군량미 10만 석을 함경도로 운송하는 공로를 세웠습니다. 세조가 죽자 예문관부교리로서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에 참여했고, 장령·예문관응교를 역임하였습니다. 그 뒤 『예종실록(睿宗實錄)』 편찬에 참여하고, 성종 초년에는 목민관으로 나가 뛰어난 치적을 보였습니다. 이어 사표(師表)로 추천되었으며, 1477년 다시 장령을 역임하였습니다. 이 때 신주(辛柱)의 분경죄를 다스리지 못해 고신(告身)을 빼앗겼습니다. 그 뒤 1482년 사간이 되어 충청도진휼사의 종사관으로 나가 빈민 구제에 힘썼습니다. 1487년 승정원으로 옮겨 동부승지·우부승지·좌부승지·우승지 등을 역임하고, 1491년 홍문관부제학에 올랐습니다. 그 때 언관으로서 크게 활약해 제천정(濟川亭)의 역사(役事)가 불가함을 주장하고, 여진 정벌의 부당함을 역설하며, 언론의 기능 정상화를 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성종에게 기피되어 1개월 만에 전라도관찰사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동지중추부사가 되고 정조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는데, 조공의 방물을 도둑맞아 다시 고신을 환수당하였습니다. 그 뒤, 한성부우윤을 거쳐 호조참판에 올랐고, 다시 동지중추부사가 되었으며, 성종이 죽자 『성종실록(成宗實錄)』편찬에 참여하였습니다. 연산군 때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가 졸하였습니다. 문장에 능했고 성품은 청렴 강직하였습니다.

*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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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변 김해김씨 서강파 세거지의 흔적을 찾아서

최근 다녀 온 달무리공원은 차박족으로 인해 꽉찼더군요.그래서 좀 더 외진 곳을 소개받아 찾아 가보았습니다. 도요생태공원인데 이곳은 아무도 없는 외진 곳이었습니다.이곳을 가려면 마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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