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부처님,신선,선녀가 가득한 설악이 신비의 베일을 벗고...

2003.2.1~2


2월1일,06:00

설날이다.전날 차례를 지내기 위해 진하해수욕장 근처 큰집에 왔다.방은 따뜻하고 우풍도 없었는데
창가에 잤더니 목감기 기운이 돈다.일찍 일어나서 나보다 서열이 낮은 녀석들은 모두 깨워
진하해수욕장으로 갔다.일출을 보기 위해서다.구름이 바다언저리에 잔뜩끼어 일출구경 포기하고
큰집으로 되돌아와 차례를 지냈다.

2월1일,12:00

본가로 돌아와서 하릴없어 진땅 낮잠만 잤다.모든 공식일정(?)이 마무리 되고나니 정말 할일이 없다.
차라리 등산이나 가자.그리곤 산행정보를 보니 한계령-서북능선-중청봉-대청봉-오색온천 코스다.

이 코스라면 나도 가능하겠다.그럼 가야지!

2월1일 22:00

예약도 없이 불쑥 나타났더니 "연락도 없이.."라며 산행대장이 웃는 얼굴로 반가이 맞아준다.
그런데 늦은 예약회원때문에 잠시 지체되는 짬을 이용해서 코스가 바뀌었단다.오색에서 천불동으로 ....,
한계령 방향은 눈이 많이 와서 입산불가라나... 오색에서 천불동 코스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코스 ..
볼것도 별로 없고 힘만 잔뜩 드는...인내를 시험하는 코스....속에서 천불이 난다.예약도 안하고 온 주제에
다시 집으로 가기도 멋적고...이왕 출발 한것. 그냥 설악산으로 가자...22:20분경에 30여명의 회원을 모시고
차는 설악산으로 향했다.

2월2일 04:30

오늘은 내 생일이다.이젠 불혹의 나이 40이다.음력 설날 다음날 태어난 죄 때문에 어릴때는 차례상 같은
생일상을 받았다.탕국 대신 미역국이,흰 이밥 대신 잡곡 팥밥이 올라왔을 뿐 그외 대부분은 설날의 차례상과
비슷했던 것 같다.드디어 인원 점검을 끝내고 랜턴을 켠후 대청봉으로 출발했다.내심 내복을 입지 않아서
혹시 추울지 몰라 걱정을 했지만 날씨는 바람이 거의 없었고 기온 또한 체감적으로는 포근할 정도였다.

윈드스토퍼의 위력을 느낄수 있었다.오색에서 대청봉까지 지도상으로는 7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빠른 분은 2시간 걸리고 왠만해도 4시간 안에 갈수 있단다.집에 와서 과거 산행일지를 펴보니
14년전엔 3시간 30분 걸려 올라간 것으로 되어있다.오늘은 얼마나 걸릴까?

2월2일 05:30
1시간 정도 올라갔을까? 허리 뒤 오른쪽이 집중적으로 아프다.그래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허리가 좀 시원해질까
싶어서 방향을 아래로 돌리는데 왠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숨은 차고 귀를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모자의 귀마개를 귀 아래까지 눌러쓰다보니 명확하게 듣질 못했다.여기엔 선녀탕도 없는데 왠 여귀신 소릴까?

귀덮개를 올리고 소리나는 쪽으로 쳐다보니 "여기 불 비추지 마세요!"누군가 자연비료 생산중인가 보다.
그 다음 부턴 허리가 아프면 오히려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을 보니 별이 너무 총총하다.일부러 그림을 그려도 저렇게 총총하게 그리지는 못할 것이다.찬 겨울 공기를
관통하며 암흑속에 금강석이 박혀있듯,레이저 광선을 쏘듯 아래로 너무나 밝게 반짝인다.

바로 그때 별똥별이 사선을 그으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떨어진다.이번 주 좋은 일이 있을려나! 로또복권이라도
구입해야겠는 걸....

2월2일 06:30

벌써 많은 사람들이 앞서가고 이총무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아프던 허리도 어느정도 덜하고 서서히 발동이
걸리는 느낌이다.나 같이 체력이 딸리는 사람은 이때 좀 따라 잡아야 민폐를 안끼친다.그런데 이총무의
랜턴 밧테리가 소진되었다.앞으로 나가려니 이총무가 볼멘 소리로 "그냥 가면 아떡해요.아저씨"라고 한다.

나이 40이 되고 보니 아저씨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린다.뭔가 컨디션이 안좋은지 이총무는 사람이
갑자기 한 10년은 늙어보인다.별수없이 이총무가 앞서고 내가 뒤에서 길을 비추며 함께 걸어갔다.

2월2일 07:30

하늘이 점점 붉어지며 드디어 해가 뜰 기세다.조금만 부지런했어도 좀더 좋은 곳에서 일출을 볼수도 있었을텐데...
제2쉽터 조금 못 온 지점에서 일출을 맞이한다.몸은 피곤하지만 카메라를 꺼내 한컷 찍었다.


::: 오색에서 대청으로 오르던 중 본 일출:::

2월 2일 08:40

드디어 정상 대청봉에 올랐다.내가 꼴찌인것 같다.후미를 본 강성구 회원님이 반가이 맞아준다.

사진도 한컷 기념으로 찍어주시는데 사진이 자 못 기대된다.요자리에 그사진을 넣으면 좋겠다.대청봉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설악산의 모든 비경을 보여주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과거의 기억도 필름을 되돌리듯
되살아나는데...지금 산행후기를 적으며 기억을 되살리고 있어 위의 시간들은 정확치 않다.

그러나 5시간 정도 걸려 정상에 올라선 것 같다.새벽 찬 공기를 들숨 날숨 호흡하며 올라왔더니
확실히 코감기,목감기가 걸렸다.지금 산행기를 적는 이순간에도 콘택600한개를 먹고 적는 중이다.

사실 대한민국의 산쟁이라면 설악산은 성지다.설악산을 갔다온다는 것은 성지순례에 다름 아니다.
나도 과거엔 설악산을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성지순례 명목으로 구석구석을 다녔다.
그런데 오늘 설악산 조감도를 보듯 너무 화창하고 깨끗한 날씨 때문에 설악산 구석구석이 다 보인다.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며 새삼 과거가 그리워진다.먼저 눈에 들어오는 외설악방향...1275봉에서 다람쥐와
함께 라면을 먹었던 공룡능선,잦은 바위골로 들어 릿지등반을 했던 범봉과 천화대는 과거 같아갔던 여성대원이
마직막 60M하강길에서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하강을 못하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애를 먹었던 곳이다.
엄홍석과 신현주를 기념한 석주길 앞에서 사진도 찍었지...


:::14년전 석주길 동판앞에서,다른 사진들은 초상권 보호를 위해...:::

그때 구입한 범봉 사진은 액자로 만들어져 우리집 거실에 걸려있다.집선봉 권금성 산장의 유창서 털보아재는
지금도 있을까? 그 커피맛이 일품이었는데....울산바위도 보이네,마등령 넘어엔 저항령이지..그곳에선 반달곰이
출현하는 장소라는 비석을 보고 야영을 하면서 겁도 많이냈지! 그 여름 백담사에서 길골로 가는 곳의 자연스럽게
넘어진 아름드리 소나무숲은 정글이었다.여름에 휴가중 산을 찾는다면 느긋하게 길골에서 문바위골로 넘어가는
계곡등반을 꼭 해보시길...사람들이 별로 안와서 천혜의 비경이 그대로 있을까?
중간 중간 심마니 쉼터도 기억에 남네..상념을 거두고...하산...

2월2일 09:00

중청대피소에서 식사를 했다.감기기운 때문에 아무것도 먹고 싶지않다.준비해온 도시락도 먹기 싫어서
사발면을 사서 국물은 먹고 건데기는 거의 버렸다.김산행대장을 대신 한 박산행대장이 따뜻한 커피를 건넨다.

커피 끊은지 이틀만에 커피를 권하는 분이 많다.오색에서 올라올때 잠시 휴식시간에서도 커피를 권하는 분이 있었다.
사실 나는 커피狂이었다.평소 농담삼아 내 혈액의 절반은 커피일것이다라고 이야기 한적도 있다.

커피를 하루 3잔 이상 마시면 골(骨)밀도가 떨어지고 골다공증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카페인이 칼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끊은 것이다.인간사에서 따뜻하게 내미는 커피한잔을 사양하려니 마음이 무겁다.
한잔정도 먹는 것이 대수랴만은 요즘 하산할때 무릎이 아픈것이 기분상 영 아니다.그런데 오늘 업무상 별수없이 2잔
먹었다.업무상이라도 하루 3잔 이상은 먹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2월2일 09:20

드디어 하산이다.오색에서 대청봉까지 올라올때는 잘 되어있는 러셀과 상대적으로 적은 적설량때문에 눈이
문제가 안되었는데,태백산맥인 공룡능선에서 외설악쪽은 여름에도 비가 많고 겨울엔 눈이 많다.높새바람인
푀엔현상때문일것이다.과거에 대청봉에서 보았을때 비가 공룡능선을 기준으로 외설악쪽은 구름이 잔뜩끼어
비가내리고 그 반대쪽은 햇살이 나는 것을 몇번 본적이 있다.지금은 간곳이 없지만 그런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는데...중청 옆을 지나는 경사진 곳의 러셀 깊이가 족히 50CM이상 된다.


:::중청봉 옆으로 난 경사면의 러셀길.눈 덮힌 뒤 처음 길을 이곳에 낸 분을 존경한다.아래로 보니 무섭다.:::

2월2일 10:00

소청에서 희운각 구간은 대부분 글리세이딩(썰매타기)로 하산했다.푹신하게 쌓아놓은 눈이 완충을 하며
설악산자체가 그대한 눈썰매장이 되어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을 동심으로 안내한다.자지러지게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재밌게 하산했다.

2월2일 11:10

희운각에서 양폭까지 구간도 글리세이딩의 연속이다.다만 이 구간은 아래쪽은 얼어있는데 위쪽은 햇살때문에 乾雪이
濕雪로 바뀌어 살짝 녹아있어 속도감이 더 난다.이건 썰매타기가 아니라 거짓말 좀 보태어서 봅슬레이 수준이다.

러셀로 눈은 다져져있고 앉으면 가슴가지 오는 옆의 눈이 안정감을 주지만 이 구간은 가끔 돌과 나무뿌리가 보였다.
같이 하산하던 회원님은 하의 엉덩이부분이 찢기어 비싼 설매타기를 했는데...같이 내려오던 여성회원이 대뜸
"남자들은 조심해야겠다"는 선문답을 하신다.이럴때는 서문동답을 해야 제격...그래서 "그게 어디 남자만 그런가요.

여자도 마찬가지지요?"...거의 2~3KM는 썰매타기로 내려온 것 같다.이렇게 오래타면 치질 걸려서 고생 할텐데...
여성 여러분! 엉덩이 손발 차면 앞으론 결혼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조심하세요.내 나이 40세가 된 것은 맞는갑다.
성희롱을 가장 많이 하는 나이가 40대라나 어쩐다나...내가 생각해도 영 생각하는 방향이 깊은 맛(?)이 난다.

2월2일 12:40

이젠 부턴 천불나는 천불동이다.좁은 계곡길을 따라 좌우 천분의 부처님이 "그 동안 너 잘못한 것 많지" 하고
나무래듯 아래로 굽어보신다.

귀면암까지 가는 코스에선 또 혼자산행이다.심심할때 갖고 온 장남감이 있지? 난 아마추어무선사이다.한번 불러보자!
핸디를 꺼내어 "CQ CQ 여가는 디에스화이브델타호테얼엑스레이(ds5dhx)! 入感되시는 局 계시면 144.84에서
수신합니다.엥! 그런데 한놈도 안 받아주네..하기야 명절때 누가 미친놈처럼 여기에서 헤맬까? 능선도 아닌 계곡에서
떠들면 전파방해때문에 전파는 얼마 못가는 것을...

귀면암을 지나 비선대 중간쯤 오니 거의 탈진상태다.계속된 하산으로 무릎이 상당히 아프고 다리 힘도 빠져
헛발짓도 가끔한다.이럴때를 위해 가져온 비상식량이 있었지.나의 고객이 설날 선물로 나에게 주었던 사은품

시바스리갈 18년산...흐흐흐.. 포켓용 양주병에 담아온 술,딱 한잔만 먹자..찬 공기 때문에 자연 언더락이 된
위스키는 감기기운으로 뜨거워진 목구멍을 지나자 소름이 돋는 듯한 찬 기운이 곧바로 속에서 부터 뜨끈한 것이

치밀어 오르며 몸이 기사회생한다...그럭 저럭 비선대에 오면서 되돌아 보니 화창한 날씨에 빛나는
눈을 머금은 부처님 얼굴들의 모습이 한폭의 동양화다.이리 다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천불동,경사면 눈이 햇볕을 받아 유난히 반짝인다.:::

비선대에서 같이온 회원 2분과 함께 어묵을 먹고 같이 소공원으로 왔다.소공원에 다다르기전 외설악의
주찰 신흥사 입구엔 전에 보지 못한 청동대불이 있었는데 동양최대의 청동좌불인 통일대불이었다.


::: 신흥사 통일대불,좌측 뒤로 멀리 울산암이 보인다:::

2월2일 14:20

드디어 소공원내 우리가 타고 왔던 차에 몸을 맡기니 곧바로 곤한 잠에 떨어졌다.하산도 5시간 정도 걸려서,
오늘 걸은 시간만 10시간 정도인데 앞으로 6시간 이내 코스만 가야겠다.아직은 6시간 이상 산행은 즐거운
산행이 아니라 고행으로 하마트면 골병들겠다.2시간을 5분처럼 너무나도 곤하게 자고 일어나보니
아직 후미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걱정이 되었지만 곧 마지막 후미가 와서 부산으로 되돌아왔다.

2월2일 24:10

부산 시민회관앞에 다다랐다.예상치 못한 김산행대장이 배웅을 왔다.등산복이 아닌 정장차림으로....수고했다며
손을 잡아주는데 같이 가지 못한 미안함과 산정산악회를 위한 애정이 느껴졌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설악산표 케익-눈(雪)으로 데코레이션 하고 제일 위 중청에 알사탕
(둥근 돔) 2개로 마무리-과 케익 아래쪽 비선대 앞 물이 바로 샴페인
이었다면 추억과 미래를 한잔 따라 먹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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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을 만난다.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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