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적인 생각에서 우리나라의 위대함을 꼽으라면 딱 2가지를 언급하고 싶은데,
하나는 "한글"이고 다른 하나는 "환단고기"입니다.***

 

[위서 논쟁으로 접어두었던 환단고기를 다시 읽으며]

 

일제 강점기 시절 20만권의 한국역사 관련 책을 몰수하여 없애거나 일본으로 가져가고 한국에 남겨둔 역사책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입니다.삼국사기는 사대주의 정신으로 기록해서 단군이야기가 없고 대진(발해)역사도 없고 삼국유사는 단군을 언급했지만 역사가 아닌 신화로 적어서 일본의 입맛에 맞았고 제왕운기는 오언시  형태의 시로 적어서 역사책 같지 않아서 살아남았습니다. 삼국사기는 유교 시각(유가사서)이고,삼국유사와 제왕운기는 불교 시각(불교사서)입니다.일본의 식민사학의 관점에서 입맛에 맞는 책을 우리나라 역사로 남겨두어 한반도로 국한된 반도사관이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었습니다.여기에 중국이 가세하여 현재 중국대륙에 있는 고조선 강역과 이후 이어지는 고구려,발해의 강역은 모두 중국이 중국역사라고 왜곡하여 가져간 것이 이른바 동북공정입니다.일본은 단군은 말할 것도 없고 가야의 초기역사마저 신화로 둔갑하여 일본에서는 한국의 역사가 고작 2200여년에 불과하다고 가르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어의 역사가 9,000년이면 한민족의 역사 또한 9000년이되어야한다고 봅니다.환단고기 책 표지에는 "인류 창세역사와 한민족9천년사의 국통맥을 바로 세우는 인류 원형문화의 원전"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652304?fbclid=IwAR1g0dlBsSb4aHA9Cv6Dkkgsbvp4QHIkYykW6kKbT3ILMtMOj_EDD_MfLqM

 

한국어 기원은 9000년前 중국 동북부 요하의 농경민

[사이언스카페] 네이처에 투르크어·몽골어·일본어 포함하는 트랜스유라시아어 기원 발표 한국어가 투르크어, 몽골어, 일본어와 함께 9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지금의 중국 동북부에 살던 농경민

n.news.naver.com

 

흥산문화는 고조선 문화입니다.수세기에 이르는 고조선 역사를 생각할때 나중에 최소한 고조선 강역은 고인돌과 명도전(연나라 물건으로 보기 어렵습니다.발견위치가 고조선 지역입니다.)이 발견된 장소와 일치한다고 봅니다.

- 기록도 있고 유적,유물도 있으며 특히 곰과 관련된 유물 및 가부좌를 튼 여신의 존재를 보면 우리나라 쑥과 마늘의 신화가 베일을 벗고 역사가 되었다고 판단합니다.

 

(네이처지 원문)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1-04108-8

 

 

 

 

 

낭가사상 즉.도교 시각(도가사서)으로 기록한 것은 우리나라 역사를 상당히 자주적으로 기록했는데 그러다보니 일제가 모두 몰수하여 거의 없어졌습니다.그러나 천우신조로 다행히 전해지는 책이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입니다.12년전에 환단고기 책을 사서 읽다가 위서 논쟁으로 시큰둥해져서 처 박아 놓은 책을 다시 꺼내 읽어봅니다.이기동 교수 말대로 지엽적인 몇가지로 꼬투리를 잡아 위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믿을 것이 아니라 일단 전체를 모두 읽어보고 판단하려고 합니다.전날 밤 책읽기 좋은 시간이라 1423페이지의 책의 절반을 읽었고 그 다음날 모두 다 읽었습니다.이 책은 무엇보다 한국인을 자랑스럽게 만들어줍니다.한국인의 정신문화에 대해 올바르게 알려줍니다.

 

환단고기는 삼성기,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8개 본기)로 이어집니다.단군세기의 저자가 바로 행촌 이암선생입니다.

 

행촌 선생은 백이정 문하에서 수학하며 당시 최고서체로 추앙받던 조맹부의 송설체를 터득하여 명필이 되었고 이때 이암의 나이가 겨우 13세였습니다.원나라 무종은 이암에게 "천하일필"이라는 칭찬했는데 그의 글씨 후손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환단고기 61페이지에 이암의 도강(강을 건너며)이라는 시가 적혀있습니다.

 

행촌 이암 선생 친필

 

渡江 (강을 건너며)

 

江南非不好(강남비불호) 강남이 좋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楚客自生哀(초객자생애) 나그네는 저절로 슬픈 마음 일어나네.

搖楫天平渡(요즙천평도) 노를 저어 수평선 따라 건너니

迎人樹欲來(영인수욕래) 강변의 나무가 사람 맞으러 다가오는 듯.

雨餘吳岫立(우여요수립) 비온 뒤라 오나라 땅의 산은 선명히 바라뵈고

日照海門開(일조해문개) 햇볕 내려쬐는 바닷길은 활짝 열려있네

雖異中原險(수이중원험) 험난함은 중원과 비록 같지 않으나

方隅亦壯哉(방우역장재) 모퉁이 땅 또한 장엄하기 그지없네

 

최근 오픈AI의 쳇GPT 4O 발표로 인해 충격을 받습니다.8년전에 나온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에서 미래를 언급하며 AI를 언급하고 있는데 8년전에 미래라고 한 것이 이젠 현실이 되었습니다.

 

호모데우스의 요점은 "인간이 신이 되는 것"입니다.서양에서는 기독교 이후 수세기 동안 신학이 인문학 위에 황제처럼 군림하였습니다.근대인식론을 주창한 칸트에서 이건 아닌데 하고 눈치를 챘고 화이트헤드에서 완전히 사람 중심으로 변합니다.유발 하리리가 서양적 관점에서 뒤늦게 놀라지만 우리는 단군시대 때부터 홍익인간 제세이화로 대변되는 인내천입니다.사람이 곧 하늘...우리는 출발부터 사람이 곧 신이었습니다.다만 수양을 해야만 하늘이 됩니다.놀랄 이유가 없습니다.

 

 

- 이암(李巖·1297~1364)은 고려 후기 서예가. 호는 행촌(杏村).

 

고려 시대 서예사에 있어서 가장 큰 자취를 남긴 인물로 탄연(坦然)과 이암을 꼽는다. 탄연은 통일신라 이래 고려 전기에 유행했던 서풍과 달리 특유의 미려한 필치로서 고려적 서풍을 이룩했고, 이암은 원나라 조맹부의 송설체(松雪體)를 신속하게 수용해 여말선초의 서예를 이끌었다. 이암은 조맹부체의 연미한 단점을 보완해 필획이 굳세고 장중한 글씨를 선보였다.

 

조선 초기의 문인 서거정은 '필원잡기(筆苑雜記)'에 이렇게 적고 있다.

 

'충선왕이 원나라에 머물고 있을 때 조맹부 등이 그 문하에서 놀았다. 왕이 귀국할 때 서적과 서화를 만 섬이나 싣고 와 조맹부의 필적이 동방에 가득 차게 되었는데, 우리 동방 사람 가운데 조맹부 필법의 정신을 얻은 사람으로는 행촌 이암 한 사람뿐이다.'

 

회양부사 이우(李瑀)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암은 경상도 고성군 송곡촌 앞 바닷가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17세 되던 1313년 8월에 문과에 합격했다. 비서성교감(秘書省校勘)을 시작으로 비서랑, 단양부주부, 밀직부사 등을 역임했다. 이후 청평산에서 5년간의 은거를 마친 후 1358년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이르렀다.

https://youtu.be/GUzZv04CSyQ?si=4M02Or6r3_Om6rc_

 

 

https://pungnew.tistory.com/2227

 

고조선 말이 왜 일본에도 있고 중앙아시아,중동,서양에도 있을까?

아사는 아침,히는 해,달(땅)은 (=탄,타나,탈,테일)日立(일립), Hitachi, ひたち일본어 발음을 한글로 적어보면 "히다치 "입니다.이것은 히(해)+다치(돋이)해가 뜨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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