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봉,계명봉▲김유신의 전설을 찾아 억새밭을 누빈 금정산 북봉에서 동봉으로

- 언제 : 2004.9.19
- 얼마나:2004.9.19 10:00~15:30(5시간 30분)
- 날 씨 :맑음
- 몇명:43명
- 어떻게 : 일요산악회 따라서
▷부산대지하철역-다방리 극동APT↗ 대정2차 그린파크↗다방봉(538M)↘↗727봉↘↗↘↗장군봉↘
장군억새평원↘↗계명봉(601.5M)↘↗봉수대↘수목원↘경동APT

- 개인산행횟수ː 2004-38
- 테마:억새산행,근교산행,답사산행,사색산행
- 산높이ː장군봉734.5M
- 좋은산행 개인호감도ː★★★★ + ★




가을이 왔다.올해 유독 더웠지만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나 보다.누군가 보고싶으면 가을이 왔다는 증거다.나는 오늘 짙푸른 소나무 숲을 지나고 억새평원을 밟으며 선조와의 대화를 하고 왔다.이번 산행은 가을의 전령인 억새산행을 위해 금정산의 북봉인 장군봉과 동봉인 계명봉을 잇는 산행이다.

금정산과 신어산은 나에게 있어 모산이며 금정산과 신어산의 공통점은 "金과 물고기"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나는 본관이 김해이며 수로왕(시조)계열 - 구형왕(10) - 김유신(13) - 고려도총관공(17 -> 중시조 1 )파로 이어지는 김씨다.

가락국 수도인 金海엔 神魚가 있어서 신어산이 있는데 신어는 인도 아유타국 공주이며 김수로대왕의 부인인 허황후가 있었던 곳의 신령스러운 물고기와 연관이 있고 (김해 왕릉에 가면 물고기-雙魚文-를 많이 볼 수 있다.) 김해 김가의 성 金자와 한자가 같은 쇠금(金)자를 쓰는 金井(금정/금샘)엔 金魚(금어)가 살았다고 하며 금정산 아래 금어와 관련있는 범어사가 있다.우연이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산과 김해는 지역도 가깝고 "金과 물고기"라는 공통분모가 깔려있다.김해김가로 김해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로서는 신령스럽게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산이 금정산과 신어산이다.

그런데 금정산 중에서도 북쪽에 있는 장군봉은 사후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김유신장군의 전설과 맞닿아 있는 곳이라서 이름도 장군봉이다.


09:00~10:00
부산대지하철역에서 산악회원 43명이 만나 후문으로 나와 한블록 지나면 육교가 나온다.육교를 지나
1100번 좌석버스를 타고 13분 정도 달리면 다방리 극동APT입구(양산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내린다.
좌측에 극동APT를 두고 오르면 "길없음"이라는 안내문구가 나와도 무시하고 직진하면 산행들머리가 나타난다.



10:02~09
여기서 우측 산길을 따라 걸으면 안내지도가 나오고 이후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오르게 된다.
이길은 다방봉(538M) 오르는 산길인데 멋진 소나무군락에 감탄을 하지만 경사도가 가파라서
제법 땀을 흘리는 구간이다.




10:42
멋진 다방봉이지만 커피숍은 없다.짧은 시간이지만 여기에 서면 몸은 어느듯 땀으로 적셔지고
워밍업은 끝난다.여기서 다시 안부로 내려온 후 나무계단을 오르면 727봉으로 가는 길이다.



11:16~7
장군봉 가는 길 좌측은 제법 급경사를 이루며 낭떠러지이고 우측은 완만한 산세를 이룬다.
뒤 돌아보면 출발했던 산행들머리가 보인다.



11:18~12:10
장군봉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제법 높은 곳에 오르면 장군봉과 계명봉이 보인다.



:::장군봉 너머로 좌측에 보이는 산이 계명봉이다.




12:13~20
이미 힘든 코스를 지났으니 이젠 즐기며 걸을만 하다.우측엔 금정산의 주봉인 고당봉이 보인다.




:::우측에 보이는 산이 고당봉이다.

12:44
드디어 장군봉에 섰다.장군봉은 억새가 장관인 곳으로 천여년 유구한 세월동안 그 푸르름을 자랑해 오고
있는 키가 작은 소나무를 '김유신 솔바위'라 불러 왔다.


김유신은 통일을 기원하는 내용인 '적국이 자주 침범하여 죄없는 백성은 피를 흘리게 되오니
저는 어린아이 이오나 적을 소탕할 뜻을 품었사오니 천지신명이시어 굽어 살피시사 저에게 힘을 주소서'
라고 솔바위에서 기도를 올렸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김유신 장군은 화랑단의 남도들을 이끌고 낙동강을 굽어보면서 청소년들의 호연지기와 무예를 연마하고
통일을 기원하는 등 삼국통일의 초석을 쌓았다. 그래서 장군의 얼이 서려있어 '장군봉"이라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장군봉과는 상관 없지만 김유신과 관련된 다른 전설은 까치로 변신하여 첩자로 온 백제 공주를 검으로
잡아 장사 지내 주어 그곳을 작성(鵲城)이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신검으로 바위를 쳤더니 바위가 갈라져
그 산을 단석산(斷石山)이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자기가 좋아하던 천관이라는 기생에게 가지 않으려고
자신의 말을 죽였다는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김유신은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의 13대손이며 그의 증조부는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
(왕산의 구형왕릉 참조)이다.나이 16세 즈음 김유신이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인이 기생 천관녀이다.
금관가야의 왕손으로 신라에 들어온 김유신은 기존의 신라에서 확고한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었고
기존 신라에 편입코자 했던 금관가야 후손들은 필사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길을 찾았고 그 길은
신라 중앙 정치계에 진출하는 것뿐이었다.


사랑과 생존,그리고 권력 사이에서 갈등하던 김유신은 천관녀가 있는 기방으로 향하는 말의 목을
자신의 손으로 쳐버리고 신귀족 김춘추 일가와 손을 잡는다.그후 천관녀는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
홀로 지내며 김유신의 입신만을 기도했다 하는데 김유신은 노후에도 천관녀를 잊지못해 천관사를
지었다고 한다.천관녀가 기거했던 곳이 바로 천관산이다.


나는 이미 지리산,왕산,천관산,무척산을 다녀왔다.김유신이 어린아이 시절 꿈을 키웠던 장군봉은
나에게 있어 선조의 흔적을 찾아가는 뿌리찾기를 겸한 산행인 셈이다.


장군봉에서 보면 바로 장군 억새평원이 보인다.


:::장군봉


:::장군봉에서 본 장군억새평원



:::김유신 솔바위

13:36
장군억새평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보면 좌측에 계명봉이 보인다.



14:31
장군봉에서 제법 한참을 내리막하여 다시 계명봉으로 오르막 하는데 위로 본 계명봉이 제법 높아보인다.

이렇게 힘든 구간을 넘어려고 보니 "고개로 넘어간다"는 아리랑이 생각난다. 아리랑의 시원(始原)을 찾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아리랑을 고어(古語)에 의한 유추방법, 전설에 의한 유추방법, 문헌을 근거로한
유추방법 등 온갖 노력을 하며 그 뜻을 끄집어내려 했으나 어느것 하나 설득력 있는 정설(定說)로
평가받지 못했다.그래서 누구누구의 설만 가득했었는데 최근 상당히 논리적인 아리랑의 시원이 밝혀졌다.


아리랑의 시원은 김수로왕과 국내 최초로 국제결혼한 허황옥과 관련이 있다.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은 기원후 32년에 태어났으며, 신라 3대왕 유리이사금(AD23∼55년)9년이었으며
후한으로는 광무제 8년이었다. 허황옥이 12살 때 아유타국을 떠난 것으로 되어있으며 아유타국의
공주로서 고향을 떠날 때 눈물겨운 사연의 노래가 만들어진 때가 이때인 것으로 보인다.


허황옥의 고향은 아유타국 아리지방이다. 이 지방은 중국의 내륙지방인 서장성 서북부이며 해발 6,000m 이상의
고봉이 2개나 있는 고원지대에 샛강이 흐르고 큰 호수와 연못과 분지가 있어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좋은 곳이다.



:::참조사진~나는 인도 아유타국 아리 지방엔 가보질 못했지만 아마 그림속의 산과 유사한 모습일 것으로
상상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향을 뒤로하고 전란으로 인한 멸문을 피하기 위해 어린나이로 고국산천을 떠나올때에
부모형제 이웃친구들과 헤어지면서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 가사를 짖게 되었으며, 아유타국에서
사천성의 성도에 잠시 정착하였다가 다시 안악현의 고산준령인 아리랑 고개를 넘으면서 불렀던 노래가
지금의 아리랑으로 변형되어 부르고 있다.


허황옥은 외세에 의한 멸망으로 육지로 이동하여 동쪽 산동반도에서 배를 타고 김해로 온 것이란 설이
지배적이다.또한 불교가 처음으로 전승된 곳도 김해인데 장유화상이 김해에서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하였으며 불교와 함께 차와 도자기 문화도 이때 들어왔다.


말이 난김에 가야불교로 일컬어지는 가야국의 불교는 어느정도이냐하면 성불했다는 김수로왕의 7왕자는
지리산 토끼봉의 암자인 칠불사(아자방으로 유명)의 이름과 관련이 있고,김해일대에 있는 왕후사(王后寺)·
장유사(長遊寺)·부은암(父恩巖)·모은암(母恩巖) 등은 이름부터 가야 왕가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지리산의 칠불사가 왕족의 해탈을 보여주는 것이라면,김해 무척산의 모은암은 왕가의 번성-암자 옆에
자연 남근석이 우뚝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모은암 경내 동굴에도 남근을 상징하는 닝가가 모셔져있다.-을
염원하는 곳이다. 이처럼 가야불교는 주로 왕족의 번성과 해탈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불교의 두 갈래, 소승(小乘: Hinayana)과 대승(大乘: Mahayana)의 의미를 연결시키기도 한다.
소승이 나를 세우는[有我] 작은 수레라면, 대승은 나를 비운[無我] 큰 수레이다. 즉 소승이 나의,
또는 내가 속한 집단의 구원을 염원한다면, 대승은 이러한 일체의 구분의식이나 특권의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말이 좀 옆으로 새버렸다.아리랑의 시원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지금 안악현 아리지방에는 김수로왕과 허황옥 왕비의 사당을 지어 놓고 참배를 하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는 허황옥 왕비의 후손들이 허황옥을 왕비로 맞아준 김수로왕에 대한 감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 김해아리랑의 구성과 내용을 상세히 알아보자.

아리낭(阿里娘)
아리낭(阿里娘)
아라리용(阿羅里瑢)
아리낭(阿里娘)
고개로(高皆路)
염어간다(念御看 )

아리낭(阿里娘)이란 아리가 고향인 젊은 여자란 뜻이다. 아리랑이라고 두 번 반복한 것은 고국인
아리 고향을 떠나는 아가씨의 애틋함을 강조하는 뜻에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라리용(阿羅里瑢)하는 것은
"아름답고 빛나는 아리의 고향을 떠나는 아가씨를 보고 구슬픈 가락의 뜻"으로 지어진 것이다.

그리고 반복하여 ‘아리낭’이라고 덧붙인 것은 애타게 아리 낭자를 사모하는 뜻에서 강조된 내용이며
고개로(高皆路)는 가파른 언덕진 고원의 여러 갈래 길이라는 뜻이다. 염어간다(念御看 )는
아비를 애틋하게 생각하면서 후일에 다시 모실 것을 기원한다는 뜻이다. 아리랑 두 번째 구절을 싣고 풀이해보자.


나아할(奈我割)
발리고(發離苦)
가시난임(可視難任)
십리도목가서(十里到鶩可徐)
발병난다(發炳難多)

나아할(奈我割)이란 어찌 이 지경이 되도록 불행해졌는가?라는 뜻이다. 발리고(發離苦)라는 말은 공주로서
부모형제, 고국산천을 두고 고생길로 떠난다는 말이며, 가시난임(可視難任)이란 말은 언제 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나라. 고향)을 다시 보고 만날 수 있을까라는 뜻이다. 십리 도 목가서(十里到鶩可徐)라는
십리 길도 도달 못하고 라는 뜻이다. 이 말은 아장아장 걷는 집오리가 멀리 갈 수 없는 것처럼
나이 어린 공주가 든 길을 갈 수 없다는 뜻이다. 발병난다(發炳難多)는 험준한 고산 지대를 도망쳐가느라고
아파서 병이 날 것이라는 애절한 가사다. 왕의 딸이 더구나 어린 몸으로 머리 피난길을 떠나는 모습이
구구절절이 함축되어 있는 노래 가사다.


14:31
드디어 힘들었지만 당당하게 계명봉에 올랐다.변변한 정상석은 없지만 제법 규모가 큰 케른이 있고
이곳에서 바라보면 범어사가 뚜렷이 보인다.



15:08
계명봉에서 제법 가파르게 내려오면 봉수대가 나타나는데 아쉽게도 돌로 된 기초공사부분만 있다.
여기서 그대로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면 왕대 숲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수목원이다.
수목원을 지나면 도로가 나오고 범어사와 조망권때문에 다툼이 있었던 경동APT가 나타나면
실제적인 산행은 마무리된다.





40이 되면 지식의 평등이오고
50이 오면 외모의 평등이 오고
60이 오면 성의 평등이 오고
70이 되면 건강의 평등이 오고
80이 되면 재물의 평등이 오고
90이 되면 생사의 평등이 온다


15:30
어떻게 살았가느냐 하는 삶의 질은 각자 다르겠지만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이라면 동호인끼리는
취미평등이다.오늘 산행을 같이한 평등동지 몇명이 막걸리로 하산주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참고 글:

-.가야불교~창원대 신문
-.아리랑의 시원~뉴스매거진 이평제 기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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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흐르듯 자연과 만나는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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