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그냥 산이 아니었다. 그 곳은 성지였다.



- 언제 : 2008.1.6(일) 08:00~20:00
- 얼마나: 2008.1.6 11:40~15:40(4시간)
- 날 씨 : 흐림
- 몇명: 47명
- 어떻게 : 연산한솔산악회 동행
▷종점식당-대원사-수왕사-모악산-모악정-금산사

- 개인산행횟수ː 2008-2[W산행기록-181 P산행기록-323/T667]
- 테마: 적설등반
- 산높이:모악산 793.5m
- 호감도ː★★★★

 

전날은 울진 통고산을 다녀왔으니 오늘은 전북 모악산을 찾는다.부산에서 볼때 전날은 오른쪽 위로 갔으니 오늘은 왼쪽 위로 간 셈이다.나의 산행스타일은 항상 정해진 룰은 없지만 룰 없는 나름의 룰은 있는 셈이다.


장거리를 갔다오면 다음엔 근교로 가고,오른쪽으로 갔으면 그 다음엔 왼쪽이다.신문을 볼때도 우측 성향의 조선일보를 보았다면 좌측 성향의 오마이뉴스를 보고 그 다음 중도 성향의 한국일보를 보는 식이다.



이것은 화이트헤드의 스타일이다.화이트헤드여사가 그의 남편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말인 "저분의 사고방식은 일종의 프리즘과 같지요.한 면으로만 보지 않고 모든 측면에서 그리고 위와 아래에서도 보아야 해요.그렇게 보고 주변을 돌면서 보면 그 프리즘은 변화하는 빛과 색으로 충만하지요.한면에서 본다는 것은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없어요."



한면으로만 보는 방식을 화이트헤드는 "반쪽자리 진리(half truth)"라고 불렀다."전체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모든 진리는 반쪽자리 진리이다.그것을 마치 전체적 진리인양 다루는 것이 엉망으로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번 산행을 가면서 버스 내에서 읽은 책이 649페이지의 "화이트헤드와의 대화"이기도 했지만 모악산 산행을 하면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모악산을 볼 수 있게한 모티브를 여러군데 발견 할 수 있었다.



모악산은 산격(山格)이 높은 산이다.전라북도 김제시와 완주군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793m이지만 제법 고도감을 느낄 수 있는데다가 아래로 김제평야와 만경평야가 펼쳐져 있어 호남평야의 젓줄의 시발점이 되는 산이다.



현지에서 보니 거의 종교적 수준의 숭상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 8시에 출발했는데 산행들머리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40분이다.
그때까지 나는 "화이트헤드와의 대화"와 대화하고 있었다.버스가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든지 아니면 갑자기 구름에 가려 어두워지면 독서등이 밝혀주고,
갑자기 해가 차창으로 스며들어 너무 밝으면 선글래스가 빛을 감소시킨다.

 

이는 마치 포토샵으로 너무 밝은 하이라이트는 약간 어둡게 만들어주고
너무 어두운 암부는 밝게 해주는 역할과 같아서 나는 편안하게 계속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이것은 버스 안에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기술적인 대응방안이다.

 

책만 보면 잠이 온다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책이 없어도 잠이 오는 분이다.
실제 버스내 3시간 40분동안 70% 이상이 잠을 자고 있었다.

잠은 죽어서도 많이 잘 수 있지만 밤에도 잘 수가 있다.이동거리 8시간 정도
되는 시간을 그냥 허비해버리기에는 나의 관점에서는 너무 아깝다.
책을 읽다 피곤하면 그냥 자면된다.그런 후에 다시 잠에서 깨면 그때
또 읽으면 되는 것이다.처음부터 자 버리는 것이 단지 문제일 뿐이다.


시간은 돈으로도 살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독서할 시간이
없다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책값이 아깝다는 분은 담배부터 끊을 일이다.담배는 건강을 해치지만
책은 정신을 고양한다.좀더 많은이가 나와 같은 생각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1:42
차에서 내려 모악산을 바라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고도감이 느껴진다.
도로를 따라 제법 걷고나니 제대로 된 산행들머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은 완주군이다.


 


 


 

 

12:15
바로 안으로 들어가니 전주김씨와 관련된 비가 보이는데 전주김씨 시조는 김태서이다..
시조묘가 모악산 중턱에 있다고 하는데 이번 산행길과는 달라서 볼 수가 없었다.
전주김씨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바로 전주김씨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이성계가 전주이씨이기도 하지만 전주 인근의 모악산의 지세가 보통을 넘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안으로 들어가니 바로 계곡을 가로지르고 이후 급사면을 오른다.


 

 

 

 

 

12:30
아이젠을 하고 오르는데 땀이 제법 흐른다.산길은 눈이 녹아 질척이고 기온은 포근하다.
잠시 휴식을 하려고 보니 대원사이다.이런 측면에서도 마음에 드는 산이다.
가다가 좀 쉬려고 하면 사찰이나 암자가 나오기 때문이다.



대원사는 진묵대사가 중창하고 20년간 수행한 절이다.그래서 진묵대사의 영정이 있다.
눈이 녹은 물이 대웅전 처마로 낙수물이 되어 경쾌하게 떨어진다.오랫만에 들어보는
낙수물이건만 그것도 겨울에 듣게 될 줄이야.이 얼마나 듣기 좋은 소리인가?

 

 

 





13:19
다시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이번엔 수왕사가 나타나고 여기서도 진묵대사의
발자취를 만난다.수왕사 암자는 이지러진 모습이 위태한데 바로 위에
진묵조사전이 있다.


여기서 전주 시내를 내려다보는 풍광은 막힘이 없다.



진묵대사하면 송화백일주라는 곡차가 생각나고, 현 수왕사 주지인 벽암스님은
송화백일주로 인해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1호이시다.나는 여기서 곡차 대신
여러 가지 약초를 달여만든 약차 한잔을 마시고 휴식을 취했다.



진묵대사가 얼마나 호방한 분이셨는지는 이 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天衾地席爲山枕(천금지석위산침)
月燭雲屛作樽海(월촉운병작준해)
大醉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卦崑崙(각혐장수괘곤륜)



하늘을 이불, 땅을 자리, 산을 배게 하고
달을 촛불, 구름을 병풍, 바다로 술잔 하여
얼큰히 취해 거연히 더덩실 춤추면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 게 불편하이.



- 진묵대사(震默大師)



거의 시각이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내려다 보는 수준을 넘어섰다.
달이 촛불이라고 하지 않는가?

 

 





13:46
수왕사를 넘어 능선에 올라서서 식사를 하고 바로 정상을 향한다.정상에 오르니
지나온 산길도 뚜렷하고 전주시내는 짙은 운무로 앞을 가리지만
그것도 마음을 열고 보니 운치가 있다.

 











14:28
모악산 정상석 옆에서 막걸리를 팔고 있는데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내려가면 금산사를
둘러볼 예정이라서 그냥 하산을 한다.술 한잔이라도 마시고 사찰에 입장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곡차라고 우기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하산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정상의 구조물이 순광에 뚜렷하게 보인다.

 

 

 

14:38
하산길은 정말 기품있는 산길이었다.산길이 아니라 어디 정원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최근 이렇게 정감이 가는 산길을 본적이 없다.

 

 

 

 

 



 

 

15:17
모악정을 지나 메타쉐콰이어 숲을 지나 뒤를 돌아보니 모악산이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다.

 

 

 







 

15:35
이후 부도전이 나온다 그중 중간에 너무나도 생뚱맞은 구조물이 있어서 보니
혜덕왕사 진응탑비이다.보물 24호이며 금산사 안에 서있는탑비로, 혜덕왕사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혜덕은 고려 중기의 승려로서, 정종 4년(1038)에 태어나 11세에 불교의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그 이듬해에 승려가 되었다. 1079년 금산사의 주지가 되었으며 숙종이 불법(佛法)에 귀의하여
그를 법주(法主)로 삼자 왕에게 불교의 교리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59세에 입적하였으며, 왕은 그를 국사로 대우하여 시호를 ‘혜덕’, 탑이름을 ‘진응’이라 내리었다.



현재 비의 머릿돌은 없어졌으며, 비문은 심하게 닳아 읽기가 매우 힘든 상태이다.
비의 받침돌에는 머리가 작고 몸통이 크게 표현된 거북을 조각하였고,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받침돌에 비해 커보이는 듯하며, 주위에 덩굴무늬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문에는 혜덕의 생애·행적, 그리고 덕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글씨는 구양순법(歐陽詢法)의
해서체로 썼는데, 구양순의 글씨보다 더욱 활달하여 명쾌한 맛이 있다.
신라나 조선에 비하여 고려시대의 글씨가 훨씬 뛰어남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문에 의하면 비를 세운 것은 예종 6년(1111)으로 혜덕이 입적한 지 15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라고 설명되어져 있다.


 

 

비문의 글씨들이 너무나 마모가 심하여 읽어보기 어려울지경이어서 가리개로
보존시설을 만들어 놓았는데 뭔가 주위의 흐름과는 너무나 어울림이 부족해서
아쉬울 따름이다.



금산사는 주위 김제평야,만경평야의 먹거리가 풍족한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절 규모가 대단한데 모시는 부처님은 아이러니 하게도 미륵불이다.



미륵불(彌勒佛)은 미래불(未來佛)이다. 즉, 석가모니불의 법이 장차 그 운(運)을 다하고
새로운 법이 나와야 할 때에 ‘인간세상에 하생(下生)하시어 극락세상(極樂世上)을
열어주시는 부처’를 말한다.

 

 

다시 말해, 석가모니불은 완성으로 가는 과정에서 방편의 도(道)를 설법(說法)한 부처라면,
미륵불은 바로 그 완성의 도(道)를 교화(敎化)하시는 부처이다.
미륵불이 열어주는 극락세상은 모든 것이 완비되고 완성된 세상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 속에 살아가는 중생들 또한 완성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완성의 도(道)를 교화(敎化)하고, 완성된 세상인 극락세상을 열어주시는 부처이므로
미륵불은 가장 완벽한 스승이며, 최고의 스승인 것이다. 그러므로 미륵불을 무상사(無上士),
즉 ‘위에 더 뛰어난 자가 없다’라고 표현한다.이는 미륵이 ‘하느님’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논리에 유혹을 받는 것도 많은 모양이다.서백일이 세운 용화교는
금산사를 본거지로 삼아 한 때 그 교세를 떨치기도 하였고,궁예는 미륵사상에
강한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또 당시에 자신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아전인수격 교리를 만든다음에 미륵불의 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내 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

저 혼자 떨쳐 높지 않고
험하지 않고
먼데 사람들마저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내 자식으로 품에 안은 어머니외다.

-고은의 시 <모악산> 앞부분-

 

 

모악산은 실로 너무 좋은 곳이라서 사기꾼 같은 집단도 기웃거리는 곳이다.
참이 있으니 거짓도 참인양 기생하자는 심보다.



이럴때 나는 미스 워즈워스의 시가 떠오른다.



"선(善)한 사람들이 현명하고,
그런 현명한 사람들이 선하기도 하다면,
이 세상은 우리가 꿈꾸는 세상보다도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리니.
하지만 이 양자는 으레 사이 좋은
관계가 되어야 하거늘,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더물어,
선한 이는 현명한 이에게 그처럼 거칠고,
현명한 이는 선한 이에게 그처럼 버릇없이 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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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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