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재)남명조식 선생의 실천적 삶을 느낄 수 있는


- 언제 : 2005.8.13
- 얼마나: 16:08~16:33
- 날 씨 :맑음
- 몇명:4명
- 어떻게 : 자가용 이용 가족과 함께(http://zaetech.com/san)
- 테마:휴가,답사여행




삼성궁을 빠져나와 삼신봉터널을 지나니 바로 산청이다.산청의 덕천서원과 산천재를 둘러보고 산천재에서 가까운 덕천강자양보에 텐트를 치고 한여름밤의 정취를 즐기고자 한다.

덕천서원은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었다. 1576년(선조 9) 조식(曺植)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사림(士林)들이 그가 강학하던 자리에 건립한 서원으로 조식유적지(사적 305) 내에 있다. 1609년(광해군 1)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하사받아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으나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30년대에 다시 복원되었다.

덕천서원에서 조금 떨어진 유적지 경내에는 덕천서원과 함께 산천재(山天齋)·세심정(洗心亭)·조식묘 등이 있다.

조식은 1501년(연산군 7) 삼가현(三嘉縣:지금의 합천군)에서 출생하였는데 이황과 함께 당시 영남유학의 쌍벽을 이루었던 대학자로 실천적인 성리학을 중시하였다. 일체의 벼슬을 마다하고 현재의 산청군 시천면인 덕산(德山)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다가 1572년(선조 5년) 7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덕산 입구의 입덕문(入德門)을 지나면 수령이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 덕천서원에 이른다.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올린 솟을삼문인 시정문(時靜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강당인 경의당(敬義堂)이 있고 그 앞쪽으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공부하며 거처하던 곳이고 경의당은 서원의 각종 행사와 유생들의 회합 및 토론장소로 사용되던 곳으로 ‘德川書院’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서원의 중심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중앙에 대청이 있고 그 양쪽으로 툇마루와 난간이 달려있는 2개의 작은 방이 있다.

경의당 뒤쪽의 신문(神門)을 지나면 사당인 숭덕사(崇德祠)가 나오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집으로 중앙에는 조식의 위패, 오른쪽에는 그의 제자인 최영경(崔永慶)의 위패를 모셔 놓았다. 덕천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첫 정일(丁日)에 제사를 지내고 매년 양력 8월 18일에는 남명선생의 탄생을 기념하는 남명제가 열린다.


16:08~16
덕천서원 입구에 있는 남명조식선생의 시비가 보이고 은행나무와 홍살문이 보인다.











16:23~33
덕천서원에서 나와 차를 조금 더 달리니 산천재가 나온다.



:::남명조식선생의 동상




:::산천재



:::산천재에서 본 일몰

19:18
덕천강자양보에 텐트를 친다.입장료는 쓰레기 수거료 명목으로 3,000원이다.화장실도 깨끗한 편이지만
그늘을 피할만한 나무가 주위에 없는 것이 흠이다.강폭은 제법 넓고 군데군데 물살이 빠른 곳이 보여
물소리만 들어도 시원한 곳이다.





8.14 06:35~09:01







德山卜居

春山底處無芳草

只愛天王近帝居

白手歸來何物食

銀河十里긱有餘


덕산에 살 곳을 잡으며

봄 산 어느 곳엔들 꽃다운 풀 없으리요?

천왕봉이 상제와 가까워 사랑스럽네.

맨손으로 돌아와 무얼 먹고 살겠나?

은하(銀河) 십리 먹고도 남겠지.



남영선생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덕천강자양보에서 1박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뭔가 흡수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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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을 만난다.
風流山行

Posted by 세벗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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