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장마철 더위 속에서 만난 영산강이 품은 청량한 나주 기행

사흘간의 연휴가 주어졌지만 비가 온다는 예보로 인하여 여행에 나설 엄두를 못내었는데 첫날 상황을 보니 마른장마 느낌으로 비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비가 잠시 내리는 것을 각오하고 이튿날 길을 나섰습니다.
장마철의 눅눅한 공기와 한여름의 열기가 대지를 가득 채운 날, 땀방울을 송글송글 흘리며 나주의 깊은 역사와 자연 속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저마다의 빛깔로 피어난 부용화와 능소화, 그리고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번져간 수국의 푸른 물결은 지친 발걸음에 청량한 위로를 건네주었습니다.
수백 년의 세월을 버텨온 고목들의 묵직한 호위 속에, 도래마을에서 시작해 불회사와 영산강 전망대까지 이어진 나주의 여름날 이야기를 풀어봅니다.가장 느낌이 좋았던 장소는 불회사였습니다.
- 일시: 2026-7-18 07:00 ~ 20:00
- 날씨: 장마철로 대체로 흐림 속 한줄기 소낙비
- 몇명: W와 함께
▷ 답사행로(風輪) :618km
도래전통한옥마을->덕룡산 불회사->정수루->목사내아->나주향교->완사천->영산강한반도지형전망대
. 도래 한옥마을: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132-9
. 덕룡산 불회사: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다도로 1224-142
. 정수루:전라남도 나주시 금계동 33-18
. 목사내아 금학헌:전라남도 나주시 금계동 33-1
. 나주향교:전라남도 나주시 향교길 38
. 나주 완사천:전라남도 나주시 송월동 1096-7
. 영산강한반도지형전망대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 산1
(도로명 기준: 나주시 동강면 동강로 307-194 일원)
2026.7.18
▷도래한옥마을
마을입구에 주차하고 몇걸음 옮기니 부용화가 반겨주는 곳에 영호정이 있습니다. 조선 중종 시절, 청백리로 이름 높았던 남평현감 휴암 백인걸(1497~1579)이 고을의 학문을 진작시키기 위해 동서남북에 설립한 4개의 학당 중 하나인 '도천학당(道川學堂, 혹은 근학당)'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에 위치한 도래한옥마을은 고즈넉한 한옥 100여 채가 모여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안동 하회마을 등과 더불어 '호남의 3대 명촌'으로 꼽히는 유서 깊은 전통 마을입니다. 조선 중종 시기(1480년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15세기 중엽 이후 풍산 홍씨(豊山洪氏)들이 터를 잡으면서 대대로 명가의 맥을 이어온 집성촌입니다. 마을 뒷산인 감태봉의 물줄기가 세 갈래로 갈라져 내려오는 모습이 한자의 '내 천(川)' 자를 닮았다고 하여 처음에는 '도천(道川)마을'로 불렸습니다. 이후 '천'을 우리말로 바꾼 '도내마을'을 거쳐, 발음하기 편한 지금의 '도래마을'이 되었습니다.

도래한옥마을 입구의 영호정 인근에서 2층 구조의 독특한 대문이 돋보이는 건물은 바로 양벽정(樣碧亭)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효자문)입니다. 일반적인 한옥 대문과 달리, 양벽정의 입구는 목탑 형식을 띤 2층 누각 구조의 솟을대문으로 지어져 있어 마을 입구에서 매우 독특하고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이 대문을 통과하면 만날 수 있는 양벽정은 원래 1587년 지역 출신 문인 홍징이 다른 곳에 세웠던 것을 1946년 현재의 위치(영호정 맞은편 연못가)로 옮겨지은 정자입니다. 영호정이 과거 유생들의 '배움과 교육의 공간'이었다면, 대문 너머의 양벽정은 시인과 묵객들이 모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문화 교류의 공간'이었습니다. 연못(수려지)을 사이에 두고 영호정과 양벽정이 마주 보고 있는 이 구도는 도래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외 도래마을 옛집으로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제2호로 지정된 근대 한옥이 있습니다.시민들의 성금으로 매입하여 보존된 곳으로, 19세기 후반 공간 이용에 따라 안채와 사랑채 등을 자유롭게 배열한 한옥 고유의 미를 엿볼 수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어서 좋았습니다.
▷덕룡산 불회사
차를 타고 일주문 좌측으로 우회해서 지나는데 불회사 일주문 정면에는 ‘초전성지덕룡산불회사(初傳聖地德龍山佛會寺)’라는 강인한 필체의 한자 현판이 큼직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여기서 초전성지(初傳聖地)란 ‘백제 땅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진 성스러운 땅’이라는 뜻입니다. 사찰의 기록(1978년 대웅전 해체 보수 당시 발견된 상량문 등)에 따르면, 366년(동진 태화 원년)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 스님이 한국 땅에 건너와 가장 먼저 창건한 절이 바로 이 불회사라고 전해집니다. 통상적인 역사서(삼국사기 등)에 기록된 백제 불교 공인 시기(침류왕 원년, 384년)보다도 앞선 시기인데, 이 일주문 현판은 그러한 유서 깊은 창건 설화와 ‘백제 불교의 시원지’라는 불회사의 당당한 자부심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영광 불갑사 (佛甲寺)의 창건 시기는 백제 침류왕 원년 (384년)으로 마라난타 스님이 백제에 들어와 가장 먼저 지은 사찰로 전해집니다. 사찰 이름의 '불갑(佛甲)' 역시 '불교 사찰 중 으뜸(첫째)'이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런데 나주 불회사 (佛會寺)가 초전성지라고 하면 앞뒤가 안맞아서 찾아보니 불회사 창건 시기는 동진 태화 원년 (366년) 또는 침류왕 원년 (384년) 이후로 나옵니다.불회사 일주문에 '초전성지(初傳聖地)'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일부 상량문에 366년 창건설이 기록되어 있으나, 통상적인 불교 공인 기록(384년)과 마라난타 스님의 행적을 고려할 때 법성포를 통해 들어온 마라난타 스님이 불갑사를 먼저 창건한 후, 나주 지역으로 이동하여 불회사를 창건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와 불교계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예전에 주작산과 덕룡산을 이어서 산행 종주를 한적이 있는데 덕룡산 자락에 불회사가 있는 줄은 물랐습니다.제가 아는 돌장승으로 유명한 곳은 창원 관룡사의 돌장승과 남원 실상사의 돌장승, 그리고 덕룡산 불회사의 돌장승이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고 관룡사와 실상사의 돌장승은 이미 보았지만 불회사의 돌장승은 오늘 실물을 대합니다.
관룡사의 돌장승을 보면 무서울 것도 귀여운 것도 없는 정직한 민중의 모습으로 할매 장승은 수수깡 안경을 쓴 모습으로 조순한 인상을 줍니다. 장승을 남녀 쌍을 이루는 것은 공통이지만 남원 실상사 돌장승은 금강역사를 닮은 모습이고 나주 불회사 돌장승은 할매,할배 형상으로 따뜻한 온정이 느껴졌습니다.
여장승 (주장군, 周將軍)은 길 오른편에 위치하며 남장승에 비해 조각의 선이 얕고 부드럽습니다.송곳니가 없으며, 전체적으로 인자하게 미소를 띤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몸체에는 원래 ‘상원주장군’이었으나 마모되어 현재는 ‘주장군’이라는 글자 위주로 확인됩니다.

조선 시대(숙종 45년, 1719년 무렵 제작 추정)에 세워진 한 쌍의 돌장승으로, 현재 국가민속문화유산 제1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사찰의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나 부정한 액운이 경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민간의 무속신앙과 불교문화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조형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불회사 진입로 약 300m 전, 길 양옆으로 남장승과 여장승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두 장승 모두 크고 둥근 눈에 두리뭉실한 주먹코를 가진 해학적인 얼굴이 특징입니다.
남장승 (하원당장군, 下元唐將軍)은 길 왼편에 위치하며 선이 깊고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머리 위에는 상투를 튼 듯한 혹이 솟아 있고, 턱에는 수염이 표현되어 있습니다.입가 가장자리에는 아래로 뾰족하게 돌출된 송곳니가 있어 수호신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줍니다.몸체에는 ‘하원당장군’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下元唐將軍의 "下"글자는 "玉"처럼 보였습니다.

덕룡산 자락에 위치한 불회사(佛會寺)는 호젓한 비자나무와 동백나무 숲길을 품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대한민국 불교 전래의 초기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소박한 멋이 살아 있어 지친 마음을 달래며 천천히 걷기 좋은 명소입니다.
불회사는 백제 침류왕 1년(384년)에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 장로가 창건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신라 효공왕 기에 희경대사가 중창하는 등 여러 차례의 중수와 중창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산강 유역의 초기 불교문화 전파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주 불회사 대웅전(보물)의 꽃창살은 조선 후기 불교 건축 조각의 정수를 보여주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입니다. 대웅전 정면의 문을 장식하고 있는 이 꽃창살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불교적인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무를 완전히 뚫어 입체감을 살리는 투조 기법이 가미되어, 햇살이 문에 비칠 때 법당 내부로 들어오는 빛과 그늘의 조화가 무척 환상적입니다.
또한 대웅전 현판 아래 관음대참회도량 현판 아래에 있는 중심창살을 보면 벽사(辟邪)와 화재 예방 (수성 신앙)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사찰의 가장 큰 적은 화재(불)입니다. 나무로 지어진 대웅전을 불로부터 지키기 위해, 선조들은 물가나 습지에 사는 동물들을 문에 조각해 두었습니다.개구리, 물고기, 게 등은 모두 ‘물’을 상징하는 동물들입니다.이들을 정면에 배치함으로써 화마(火魔)를 막고 액운을 쫓아내려는 벽사(잡귀를 물리침)와 방화(화재 예방)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민간신앙과 불교 설화에서 뱀은 집안을 지키는 업신(業神)이자 사찰을 수호하는 신장(神將)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허물을 벗는 뱀이나 올챙이에서 다리가 나와 변태하는 개구리는 불교에서 ‘과거의 집착과 업장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감’을 상징하는 은유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나주 불회사 대웅전(보물)에 모셔져 있는 삼존불(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은 모두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 즉 건칠비로자나삼존불좌상(보물)입니다.나무나 돌, 금동으로 만든 일반적인 불상과 달리 매우 독특하고 정교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그런데 제눈엔 아무리 보아도 종이로 만든 것으로 보이지 않고 금동으로 만든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작과정을 알아보니 흙으로 먼저 불상의 형태(틀)를 만듭니다. 그 위에 종이(한지)나 삼베를 점토나 옻칠을 해가며 여러 겹 두껍게 겹쳐 바릅니다. 옻과 종이가 완전히 굳어 단단해지면, 내부의 흙을 모두 파내어 속이 텅 비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그 표면에 다시 정교하게 조각을 더하고 금칠(개금)을 하여 완성합니다.

나주엔 보호수가 지천으로 늘려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불회사를 나오면서 자세히 보니 석장승 앞에 길 중간은 연꽃문양이 줄줄이 사탕처럼 연결하여 불회사로 향하고 있었습니다.너무나도 아름다워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정수루
나주 시내 중심가(금성관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정수루(正綏樓)는 조선 시대 나주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관아 건축물이자 관문입니다. 나주목 관아의 정문 역할을 하던 정수루는 역사적·문화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수루는 나주목사가 정무를 보던 동헌(東軒) 구역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었습니다. 이곳을 통과해야 목사가 있는 집무 공간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나주의 행정과 치소의 권위를 상징하는 핵심 문루였습니다. 정수루 2층 누각에는 커다란 북(학고, 鶴鼓)이 걸려 있습니다. 조선 시대 이 북은 단순히 시간을 알리는 용도 외에도,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이 북을 쳐서 목사에게 직접 원통함을 호소할 수 있는 ‘지방판 신문고’의 역할을 했습니다

▷금성관
금성관은 현재 해체 보수 및 정비공사 중이어서 아쉬웠습니다. 금성관 내부(정방향 마당 및 주변)에는 나주와 금성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여러 기의 비석들이 모여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금성관 사마재비(錦城館 司馬齋碑) 와 나주목사 사적비(비석군)가 있습니다.

▷목사내아 금학헌
조선 시대 나주목사들이 실제로 살았던 살림집(관사)입니다. 오늘날에는 한옥 숙박 체험 공간으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곳 마당에는 오랜 세월 관아를 지켜온 신비로운 팽나무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금학헌(琴鶴軒)의 뜻: 거문고 금(琴) 자에 학 학(鶴) 자를 씁니다. 이는 "거문고를 타고 학을 불러 노닌다"라는 뜻으로, 나주목사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거문고 소리에 학이 날아들 만큼 고을을 평화롭고 청렴하게 다스리겠다는 목민관의 다짐과 낭만이 담긴 이름입니다.
목사내아 마당 한편에는 나이가 500년이 넘은 거대한 팽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습니다. 이 나무에는 나주를 찾는 이들이 꼭 한 번씩 빌고 가는 유명한 전설이 있습니다.벼락을 맞고도 살아난 나무로 1980년대 어느 날, 이 팽나무에 엄청난 천둥번개와 함께 벼락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강한 벼락을 맞아 나무가 반쪽으로 갈라지고 불에 타버려 모두가 나무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부활과 행운의 상징으로 놀랍게도 이 팽나무는 죽지 않고 이듬해 봄 다시 푸른 잎을 틔우며 강인하게 살아났습니다. 갈라진 몸통을 스스로 치유하고 기적적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에 사람들은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행운을 주는 '금성산 신령' 전설로 민간에서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나 팽나무가 악귀를 쫓고 강한 양기를 지닌다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팽나무가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받아 벼락을 견뎌냈다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소원 성취의 명소로 이 나무는 "벼락을 맞고도 살아난 기적의 나무"로 불리며, 나무를 정성껏 가다듬고 손을 대어 기도를 하면 강한 생명력과 행운의 기운을 받아 시험에 합격하거나, 승진을 하거나, 집안에 큰 복이 들어온다는 전설이 생겨났습니다.

▷나주향교
제가 그동안 보았던 향교의 규모와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규모가 거대했습니다.
나주는 전라도(전주+나주)라는 도명에서 알 수 있듯 호남의 거점 고을이었던 만큼, 나주향교 역시 전국에서 손꼽히는 거대한 규모와 격식을 자랑합니다. 성균관에 버금갈 정도로 보존 상태가 훌륭하여 고풍스러운 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향교는 배움의 공간(명륜당)이 앞에 오고 제사 공간(대성전)이 뒤에 오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띱니다. 하지만 나주향교는 제사 구역인 대성전이 앞에 있고, 교육 구역인 명륜당이 뒤에 배치된 '전묘후학'의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서울의 성균관과 같은 배치 방식으로, 나주향교가 가진 높은 격식을 대변합니다.
보호수 급의 은행나무도 지천인데 여기에는 500년된 비자나무도 있었습니다.

▷서성문(영동루)
동학농민운동의 격전지의 역사적의미가 있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나주성을 공략할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역사적 현장이 바로 이 서성문과 성벽 일대입니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모두 철거되었던 것을 고증을 거쳐 문루와 좌우 성벽까지 웅장하게 복원해 두었습니다. 성벽을 따라 가볍게 산책할 수 있도록 잔디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고즈넉하게 걷기 좋습니다.

▷완사천
나주시 송월동(나주시청 앞)에 위치한 완사천은 작은 샘물이지만,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과 그의 둘째 부인이자 제2대 임금 혜종의 어머니인 장화왕후 오씨의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현재의 모습을 보니 완사천 샘터와 비석이 보입니다. 지금도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샘터 유적과 함께, 이곳이 장화왕후의 탄생지이자 왕건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장화왕후 유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왕건과 오씨 처녀의 동상이 보이는데 버들잎을 띄운 바가지를 건네는 오씨 처녀와 이를 받는 왕건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어 설화의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나주(羅州) 명칭의 기원과 위상은 이 만남을 계기로 나주 오씨 가문은 왕건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고, 나주는 고려 시대 고을 이름에 '고을 주(州)' 자를 쓰는 목(牧)으로 승격되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영산강한반도지형전망대
힘겹게 올라갔으나 사진과 다르게 제 눈에는 한반도지형으로 보이지 않아서 약간은 실망했습니다만 굳이 한반도 지형이 아니더라도 영산강이 굽이쳐 흐르는 곡강의 모습만 보아도 좋았습니다.자전거 라이딩의 성지답게 잘 정비되어 있었는데 역시 이런 곳은 해질 무렵 노을빛이 영산강에 흐를때 보아야 제맛일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오늘 부산의 낙동강을 건너 섬진강 휴게소에서 영남과 호남의 경계를 지나고 이렇게 드넓은 영산강을 바라보니 하루에도 강 3개를 건너는 요즘의 세월이 새삼스럽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제의 불교 첫 발자국부터 고려의 탄생 설화, 그리고 조선의 서린 숨결까지,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천년의 역사와 자연을 한눈에 담아낸 깊고 고즈넉한 여정이었습니다. 정겨운 돌담길과 푸른 비자나무 숲을 지나 벼락 맞은 팽나무 아래 소원을 빌던 시간. 영산강 느러지 자락에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 속에서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조용히 쉼을 얻은 깨달음의 길이었습니다. 호남의 중심이었던 옛 나주목의 위상을 정수루와 향교에서 체감하고, 지혜로운 버들잎 사랑이 흐르는 완사천을 거쳐, 한반도를 품은 영산강의 장엄한 기상으로 마무리한 밀도 높은 역사 문화 답사였습니다. 가슴 설레던 옛 한옥의 고요함은 숲길 너머 천년 고찰의 꽃창살로 피어나고, 관아의 위엄을 지나 영산강 푸른 물도리동에 머무니, 나주의 낮과 밤은 그대로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가 되어 마음속에 깊이 새겨집니다.
羅州踏査 (나주답사)
枯梅雨後訪古州 (고매우후방고주) 마른장마 비 갠 후 옛 고을을 찾으니
佛會深林碧翠流 (불회심림벽취류) 불회사 깊은 숲엔 푸른 비취빛이 흐르네.
牧內老楓聽鶴語 (목내로풍청학어) 목사내아 늙은 팽나무는 학의 이야기를 듣고
榮江風月萬古留 (영강풍월만고류) 영산강의 바람과 달은 만고에 머물러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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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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