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시간의 흔적을 따라 문화유산의 기억을 찾아서
양양(襄陽)은 "해가 떠오르는 고장"이라는 뜻으로, 동해안의 지리적·자연적 특성(일출지)을 반영해 1416년(태종 16) 조선 시대에 명명되었습니다만 이번 답사 시간동안에 흐리고 지속적으로 비가 왔으며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은 눈마저 내렸습니다.
동해의 바람은 늘 과거의 이야기를 품고 불어옵니다.파도는 묵묵히 모래를 닦으며,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을 다시금 세상 위로 올려놓습니다.이번 답사는 그 기억의 파편들을 따라 걷는 여정입니다.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에서 선사 인류의 첫 발자취를 마주하며, 우리는 이 땅의 시간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느끼게 됩니다.돌도끼 하나, 토기 한 조각에도 먼 옛날 사람들의 숨결과 바람의 냄새가 스며 있습니다.
산자락을 따라 오르면 선림원지와 오색리 삼층석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라의 불심과 미학이 돌 속에 녹아, 천 년 세월을 지나 오늘의 시간과 대합니다. 그 고요한 질서 속에 인간의 손길과 신앙의 결이 아름답게 어우러집니다.진전사지에 이르면 시간은 더욱 느리게 흐릅니다.한때는 범종이 울렸을 터의 자리에 들꽃과 바람만이 남아, 사라진 것들의 의미를 되묻습니다.
양양향교의 오래된 기둥 아래에서는 유교의 향기가 은은히 배어나옵니다.글 읽는 소리와 고향 사람들의 염원이 배어 있는 공간은, 지식이 곧 인격이었던 시절의 품위를 떠올리게 합니다.동해신묘지의 해신에게 절을 올리던 이들의 마음에는 인간의 경외와 자연의 두려움이 공존했을 것입니다.마지막으로 동해 바다에 서면, 하늘과 바다, 절벽과 파도가 맞닿아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시간이 한데 모여 끝내 다시 시작으로 이어집니다.이번 920km의 여정은 단순한 답사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믿음과 시간의 관계를 다시금 헤아려 보는 사색의 길이었습니다.각 유적지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이야기이며, 우리는 그 이야기를 읽는 독자이자, 다음 장을 써 내려갈 후인들입니다.
- 일시: 2026-3-1 08:40 ~ 2026-3-2 17:00
- 날씨: 흐린후 지속적으로 비가 왔으며 해발고도 높은 진전사지에서는 많은 눈이 내림
- 몇명: W와 함께
▷ 답사행로(風輪) :920km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선림원지 -> 오색리 삼층석탑 -> 진전사(진전사지) -> 양양향교->동해신묘지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손양면 학포길 33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산50-1)
선림원지: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 424번지
(미천골 자연휴양림 초입)
오색리 삼층석탑: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서면 약수길 132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37오색약수터 인근)
진전사지: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화채봉길 313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산37번지)
양양향교: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거마천로 52-20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임천리 79-1동두산 기슭)
동해신묘지: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동해신묘길 8-18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조산리 335)낙산해수욕장 인근
2026-3-1 15:30
▷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집에서 박물관까지 400km가 넘어서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30분 정도 되었습니다. (연휴라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탐방 거리 포함 왕복 920km나 되는 장거리 답사가 되어 육체적으로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양양 오산리 신석기 유적 위에 세워진 선사 전문 박물관으로, 한반도 동해안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을 보존·전시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전시실에서는 움집, 토기 제작, 사냥·어로 활동 등을 디오라마로 재현해 오산리 신석기인의 생활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영동 지역 주요 선사 유적 출토품도 함께 전시합니다.특히 생활유구와 어로 도구, 토기류를 통해 “해안 신석기 문화”의 특징과, 강릉 초당동·고성 문암리 등 인근 유적과의 비교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합니다.
박물관 밖엔 아주 큰 움집이 재현되어 있습니다만 상태는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 선림원지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통일신라 사찰터로, 동국대 발굴을 통해 해인사 창건에 참여한 순응법사 등이 9세기 초에 창건한 선종계 사찰임이 밝혀졌습니다.절터에는 선림원지 삼층석탑, 석등, 홍각선사탑비, 부도 등이 남아 있어 통일신라~고려 초기 산지 가람 구성과 선종 사찰의 위상을 보여줍니다.발굴 과정에서 800년경으로 추정되는 기와·토기편이 다수 출토되어, 창건 시기와 사찰 활동의 연대를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됩니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삼층석탑,석등, 홍각선사탑비, 승탑 등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그 외 2024년 12월 26일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이 새로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2015년 발굴, 높이 66.7cm의 통일신라 9세기 금동 불상으로 국립춘천박물관 소장.)

선림원지 3층석탑

양양 선림원지 승탑(부도): 사지 북서쪽에 위치한 승탑으로, 9세기 신라 시대 작품.용의 조각 부조가 깊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양 선림원지 석등: 서쪽 언덕 위 화강석 석등, 절터의 중요한 유물.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886년(정강왕 원년) 세워진 탑비로, 홍각선사의 공로를 기림.
▷ 오색리 삼층석탑
날씨가 흐려서 다소 어둑한 시간이지만 오색약수터 인근 주차장에 주차하고 다리를 3번 건너며 성국사로 갑니다.마당 위로 들어서는 순간 바로 3층석탑이 보입니다.
양양군 서면 오색리에 위치한 통일신라 시대 석탑으로, 보물로 지정된 대표적 삼층석탑입니다.오색석사 또는 성국사 터로 추정되는 절터에 서 있으며, 높이 약 4.1m의 비교적 아담한 규모지만 비례와 균형이 뛰어나고 조형이 단정·우아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5매의 지대석 위에 2단 기단과 3층 탑신, 상륜부를 갖춘 전형적인 신라 조탑 양식을 보여주며, 한때 완전히 붕괴되었다가 1971년에 복원되었습니다.

폐사지였으나 지금은 다시 새로운 긴 건물이 세워져 있어서 복원되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스님이 없는 것처럼 아주 조용한 절집이었습니다.

오색약수터 인근 식당가 중에서 "채미골"에서 더덕돌솥비빔밥(15,000)을 먹었는데 시장기도 있어서 상당히 맛이 좋았습니다. 장거리 운전에 피곤하여 일찍 휴식을 취했습니다.
2026-3-2 08:00
▷ 진전사
0도의 날씨에 아침부터 눈이 오고 있어서 도로사정을 파악한 후 7시에 출발했습니다.
사찰은 저수지 댐 우측에 있었는데 해발고도가 높아서 눈이 많이 왔습니다.거의 비에 가까운 습설이라 땅이 푹푹패여 도의선사탑을 보지 못하고 눈이 더 와서 쌓이면 혹시 차량이 미끌어져 내려가지 못할 두려움에 바로 삼층석탑이 있는 진전사지로 향했습니다.
설악산 자락 강현면 둔전리에 위치한 통일신라 사찰터로, 남선종을 전래한 도의선사가 821년경 창건한 선종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 선종의 초조 도의선사의 활동 무대이자, 교종에서 선종으로의 전환기를 상징하는 유적으로서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닙니다.
현존 유구로는 9세기 일반형 석탑 형식을 잘 간직한 국보 진전사지 삼층석탑과, 한국 석조부도의 시원을 이루는 가장 이른 예로 평가되는 도의선사탑(보물)이 남아 있습니다. 가람은 자연지세를 최대한 활용한 대규모 산지 사찰로 계획·조영되었으며, 고려·조선을 거쳐 장기간 지역 중심사찰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적광보전 등 일부 건물이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진전사지 3층석탑은 국보입니다. 이번 탐방에서 가장 볼만한 작품이었습니다.진전사지 삼층석탑(국보 제122호)은 높이 5m 화강암 탑으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 천인상과 팔부신중 조각이 돋보입니다.

초층 탑신을 보면 사방불(四方佛) 조각되어 있는데 동면 약사여래, 서면 아미타불, 남·북면 우견편단 여래상으로, 두광·신광과 앙련좌(蓮蓮座)가 정교합니다.
이 탑은 도의선사가 창건한 진전사의 화려한 불교 문화를 상징하며, 이전 답사 여정(선림원지 삼층석탑 등)의 신라 석탑 양식을 잇는 걸작입니다.
탑 위로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고 산의 실루엣이 거리에 따라 그라데이션 명암을 보여 아주 절경 속에서 국보를 감상했습니다.

▷양양향교
양양읍 임천리 동두산 남서 기슭에 자리한 향교로, 고려시대에 창건된 뒤 충혜왕 때 존무사 안축이 중수한 기록이 전하며, 이후 조선 인조·숙종 대를 거치며 확장·이건되었습니다.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오성, 송조 이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석전 등 제향 기능만 남았습니다.한국전쟁으로 건물과 다수 유물이 소실되었으나, 현재는 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향교 건축과 향촌 유교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동해신묘지( 東海神廟址)
한자 그대로 동해의 신을 모시는 사당 터를 말합니다.
동해의 용왕신에게 국태민안과 풍농·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던 곳으로, 고려·조선 시대 국가제사 중사(中祀)의 제장으로 기능했습니다.고려 공민왕 때 강릉 안인포에 설치된 뒤 조선 성종 21년에 현재의 양양 위치로 옮겨졌으며, 이후 부사·관찰사 등에 의해 여러 차례 중수되었습니다.일제강점기에는 신위 매장 및 철폐를 겪었고, 현재 보이는 건물은 1993년 복원된 것으로, 1800년 강원도 관찰사 남공철의 동해신묘 중수 기사비가 남아 과거 제향의 실상을 전합니다.국가 차원의 해신 제사를 보여주는 드문 사례로, 동해 연안 민속신앙뿐 아니라 국가제사 체계를 현장에서 논의하기 좋은 유적입니다.

이 순례는 단순 관람이 아니라 과거의 속삭임을 듣고 미래를 새기는 사색의 길입니다. 바람 소리처럼 영원히 새겨질 기억이 입니다.
특히 양양이라는 곳은 양양향교의 성현 제례, 동해신묘지(襄陽東海神廟址)의 용왕 기원이 인간·자연 조화를 보여주어 좋았고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라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히 선림원지, 오색리 성국사지(오색석사로 추정), 진전사지는 모두 통일신라 시대(8~9세기) 선종(禪宗) 사찰 터로, 양양 설악산 남쪽 지역의 신라 불교 번영을 공통적으로 보여주어 탐방의 재미와 의미를 보여주었습니다.
폐사지 특성 상 대부분 파괴되어 아주 걸출한 고갱이만 남아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습니다만 후손들이 다시 복원하고 있어서 희망도 보았습니다.
이번 문화유산 답사의 심상을 읊어 봅니다.
禪林幽徑石塔聳
古刹無語雪封冬
先史遺蹟風吹送
海神廟址波濤夢
- 仙文 金永漢

禪林幽徑石塔聳
(선림유경석탑용)
선림의 그윽한 길, 석탑 우뚝 솟고
古刹無語雪封冬
(고찰무어설봉동)
옛 절은 말없이 겨울 눈에 덮였네.
先史遺蹟風吹送
(선사유적풍취송)
선사 유적엔 바람만 불어오고
海神廟址波濤夢
(해신묘지파도몽)
해신묘 터엔 파도가 꿈결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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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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