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의 촌지는 자식의 기를 살리려는 모정

 

 

최근 주말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거세게 불어 아웃도어 대신 인도어 활동을 하다보니 요즘 자주 유투브 알고리즘으로 자주 언급된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있습니다.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실제 예로 한국의 이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이유로 보입니다.이제 1/3정도 본 것 같은데 그기서 촌지를 전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급장 선거에서 1등을 차지하고도, 학급에 크림빵을 돌린 남자아이에게 밀려 부급장이 된 애순. 애순의 어머니 광례는 동서네 밭을 대신 갈아주고, 진주 목걸이를 차고 학교로 향합니다. 담임 선생님에게 촌지를 건넨 뒤, 애순과 함께 돌아오며 광례는 말합니다.

 

“엄마가 가난하지, 네가 가난한 거 아니야. 애순아, 쫄아붙지 마. 너는 푸지게 살아.”

 

딸에게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시대가 1950년대일지언정, 그 마음만은 지금과 다르지 않습니다. 꿈 많은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주지 못하는 미안함, 부끄러움. 그럼에도 딸에게 그늘이 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던 광례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은 김영란법에 의하여 아주 문제가 되지만 과거에는 모두가 못사는 시절이었고 교통법규 위반을 해도 교통순경에게 얼마의 돈을 찔러주던 시절이었습니다.

......

 

저는 54년전 국민(초등)학교 1학년 시절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와서 담임에게 촌지(돈과 닭)를 내밀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는 반장 선거와는 상관이 없었고, 저는 미술 준비를 하지 않아서 미술 시간 내내 손을 들고 벌을 쓰고 집으로 간 다음에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습니다.저의 부친은 국어와 산수는 잘 하면 자랑할만한 일이지만 미술은 환쟁이들이나 하는 천한 일이기 때문에 크레용과 스케치북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저에게 미술용품을 사 주지 못하게  했습니다.그때 우리마을 촌동네는 초가집에 누구나 대체로 가난해서 그림도구가 상대적으로 비싸기도 했습니다.

 

부친과 생각이 달랐던 어머니는 저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학교로 온 것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다가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를 보고 그 기억이 되살아 났습니다.

 

이후 저는 그림 소질을 발휘하며 국민학교 3학년 이후 부터 중학교 때는 그림 그리는 사생대회와 서예,그리고 작문은 학교 대표로 도맡아서 나갔습니다.저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환쟁이는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수학을 잘하지도 못했습니다.밤마다 돈을 벌기 위해 미꾸라지 통발 설치하고 회수한다고 잠을 못잤으니 낮에 졸음을 견디지 못해 체계적인 단계가 필요한 수학을 잘 할 수가 없었습니다.어릴적 씁쓸한 기억이지만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된 것은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 덕분입니다.세월 지나고 보니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드라마 내용을 한시로 표현하면

 

貧中猶望女騰達 (빈중유망여등달)

窮巷無妨志氣高 (궁항무방지기고)

莫道寒門春色少 (막도한문춘색소)

慈親一念化虹橋 (자친일념화홍교)

 - 仙文 金永漢

가난 속에도 딸의 성공을 바라며,
촌동네에서도 뜻은 높이 살렸네.
가난한 집에 봄빛 없다 말 마오,
어머니 한 마음이 무지개 다리가 되어주네.

 

저의 처지를 한시로 표현하면

 

貧戶育志 (빈호육지)  - 仙文 金永漢

 

貧中猶望氣軒昂

村野亦存志耿光

莫道貧家無春色

慈心一架彩虹梁

 

빈중유망기헌앙

촌야역존지경광

막도빈가무춘색

자심일가채홍량

"가난 속에서도 기상은 드높이길 바랐고,
시골 마을에도 뜻은 밝게 빛났네.
가난한 집에 봄빛 없다 말하지 마오,
어머니의 사랑이 무지개 다리 되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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