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으로부터 시련과 신고(辛苦)를 겪는 것이 어디 대나무뿐이겠습니까? 세상살이 불화와 우격다짐이 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비바람’인 것입니다.
죽석이라는 시제가 아니라면 단순히 대나무와 대자연 간의 치열한 맞섬을 넘어 그것은 비곤(憊困·가쁘고 고단함)한 세월을 살아가는 세상만물 그 어떤 것으로도 다 치환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보면 인간의 인지상정이 한갖 깨지기 쉬운 질그릇보다 못할때가 있습니다.정판교(정섭)가 남긴 어록 가운데 “어수룩하기란 정말 어렵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사람이 총명하기도 어렵지만, 총명한 사람이 스스로를 낮추어 어수룩해야 할 때 정작 그렇게 하기가 더 어렵다는 생활철학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구설수에 많이 오르기 좋은 사주라서 더 조심하게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되도록 남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이젠 제 이야기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내면이 대나무 뿌리처럼 단단하고 내가 세상에 대해 바랄 것이 크게 없다면 득의망언(得意忘言),유유자적 나대로 사는 것도 좋은 대안입니다.
청산을 꽉 깨물고 놓아주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그 뿌리가 바위틈에 박혀 있었네.
수천만 번 갈고 내리쳐도 여전히 꿋꿋하리니.
제아무리 바람이 사방에서 몰아칠지언정
咬定靑山不放松, 교정청산불방송
立根原在破巖中. 입근원재파암중
千磨萬擊還堅勁, 천마만격환견경
任爾東西南北風. 임이동서남북풍
―‘죽석(竹石)’(정섭·鄭燮·1693∼1765)
정섭은 본명보다 판교(板橋)라는 호로 더 잘 알려진 인물. 그는 10여 년 관직생활 동안 ‘관아 숙소에 누워 듣는 대나무 서걱대는 소리, 행여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는 아닌지’라는 시구를 남길 정도로 인정미가 있었고, 가난하고 병든 백성의 구휼 문제로 상관과 자주 마찰을 빚을 만큼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바위틈에 박힌 대나무’의 꿋꿋함이 바로 그의 그런 기개다. 관직을 버린 뒤에는 난, 국화, 송죽 등을 그려 생업을 꾸릴 만큼 솜씨가 빼어났는데 그중에서도 그가 50여 년 집중해온 묵죽(墨竹)이 유명하다. 시서화(詩書畵)에 정통해 세칭 삼절(三絶)로 불렸던 정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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