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김해)영남 최대 크기의 고인돌을 넘어 세계최대 고인돌?

 

- 일시: 2023-12.31
- 날씨: 비온 후 약간의 박무
- 몇명: 홀로

 

 

지석묘(支石墓)는 묘(墓)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무덤입니다. 지탱할 지(支)에서 알 수 있듯이 돌을 지탱하는 묘가 바로 지석묘입니다.순우리말로는 고인돌인데 "돌을 괴다(고았다)"의 의미이니 "고인돌,괸 돌"이 되겠습니다.이걸 또 한자로 "고인(古人)돌"로 잘 못 알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만 순우리말은 "고인돌"이고 한자어는 "지석묘"입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지석묘라고도 합니다.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보고 있습니다. 커다란 덮개돌 밑에 작은 받침돌을 세운 바둑판식 고인돌을 오늘 보았는데 이 덮개돌 규모로 크다와 적다의 기준이 됩니다.

언양에는 영남 최대 규모의 지석묘가 있는데 최근에 읽은 "국토박물관 순례1"에서 소개되어 알게 되어 오늘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김해 구산동의 지석묘는 세계최대라고 하는데 최근 훼손으로 인해 공무원들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말이 많습니다. 

 

  

▷ 답사일정(風輪) :132km

 

언양지석묘-사충단(송담서원)-김해 서상동 지석묘-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

 

▷언양지석묘: 울산 울주군 언량읍 서부리 234-6

 

언양지석묘는 인근 주민들이 "용바우"라고 부르는데 ,예전에는 민속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치성을 드렸다고 합니다.생김새를 보니 모습이 "용"처럼 보이지는 않고 제눈에는 멧돼지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신앙의 대상이었다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용하다"해서 붙여진 용바우가 아닐까요? "바우"는 당연히 바위를 뜻하겠지요.원래 "용하다"의 어원이 신령 영(靈)에서 "영(靈)하다"에서 왔다고 보면 용바우는 "신령스러운 바위"의 의미가 됩니다.

용한 점쟁이나 영한 점쟁이나 거의 똑같은 표현입니다.
우리말 표현중에는 한자 뒤에 ‘하다’를 붙여 하나의 동사를 만든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언뜻 생각해도 노하다, 대하다, 논하다, 명하다, 범하다, 선하다 등의 동사가 떠오릅니다.이
는 앞말에 노할 怒, 대할 對, 논할 論, 명할 命, 범할 犯, 착한 善 등의 한자가 온 경우로 ‘환하다’도 순우리말 같지만 한자와 하다의 결합어입니다.‘빛날 煥’ 자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12간지의 용(龍)도 신령스러운 동물이니 용(龍)바우라고 해석해도 큰 범주에서는 비슷한 맥락이 느껴집니다.

 

용바우 뒤로 변압기가 있는 전봇대 뒤는 오영수문학관이니 오영수문학관으로 네비에 입력하고 찾아와도 되겠습니다.오영수문학관은 화장산 자락에 있고 난계 오영수가 잠든 곳이기도 합니다.주요작품은 역시 "갯마을"이고 "남이와 엿장수,명암" 등을 저술했습니다. 총 150여 편의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모두가 단편소설이라는 데서 그의 문학적 성격의 일단을 보여줍니다.전형적 단편작가로서 작풍(作風)은 주로 한국적인 소박한 인정이나 서정의 세계에 기조를 두었습니다.

 

▷김해사충단: 경남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2-9 사충단

김해 사충단은 임진왜란의 최초 의병으로 존경 받는 네 명의 충신인 송빈,이대형,김득기,류식을 기리는 제단입니다.조선 선조 25년 (1592) 음력 4월 19일 왜군이 김해성을 포위했고 김해 부사를 비롯하여 지휘관들이 밤을 틈타 도망쳤으나 네 명의 충신은 각자 성문을 맡아 남은 의병과 군사를 지휘하며 왜군과 싸워 다음날 김해성은 함락되고 모두 전사했습니다.

 

사충단은 왜만한 차량은 접근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막판에 경사도가 너무 가파르고 노면도 고르지 않아 다소 전복의 위험도 있기 때문입니다.뭣 모르고 올랐다 혼이 났습니다.

 

 

이곳에 지석묘가 있는 것으로 잘 못 알고 찾아갔는데 사충단과 송담서원은 문이 닫혀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좌측 산등성이와 우측 산길로 올라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지석묘의 흔적은 찾지 못했습니다.다시 차로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사충단 충신의 한명인 송 빈과 관련된 지석묘는 김해 서상동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철수했습니다. 

 

▷김해 서상동 지석묘: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 108-17 (서상동)

서상동에 있는 이 지석묘는 받침돌이 있는 바둑판과 같다고 해서 이른바 기반식 지석묘로도 불리며 무덤의 주체는 땅속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길이가 4.6m 나 되는 큰 상석위에 세워져 있는 이 비는 임진왜란때 김해로 침입해온 왜군과 싸워 전사한 김해 사충신의 한분인 "송 빈"선생이 이곳에서 순절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것이며, 상석의 측면에는 송공 순절암(宋公殉節巖)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지석묘에는 돌칼, 돌화살촉, 무문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당시의 생활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이곳을 찾아가려면 우선 "농협 김해시지부" 뒤쪽이나 "맞은 편 주차장"을 이용하면 됩니다.
농협 김해시지부 뒤쪽 주차장이 다소 큰편이니 그 곳에서 출발하면 아래 지도를 참조하세요.워낙 골목길 사이에 있어서 농협 김해시지부 맞은 편 수강 한의원 옆 주차장에 문의하여 찾아가면 됩니다. 



송공의 기념비는 1964년 60년전에 세워졌으니 아주 오래된 비석은 아닙니다.

▷김해 구산동 지석묘:경남 김해시 구산동 1079

이제 실제적으로 영남의 최대 크기의 지석묘를 찾아갑니다.주차는 연지공원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가면 됩니다.

이동희 김해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장의 말을 보면 "가락국은 철기문화를 가진 김수로왕에 의해 건국되었지만 김수로왕을 추대한 구간(九干)은 청동기문화를 가진 토착의 지석묘 축조 세력이다."는 것 입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지석묘 밑에 박석과 박석 아래의 청동기 시대 문화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비공사 과정에서 김해시가 매장문화재법을 위반하여 무단으로 현상을 변경한 사실을 확인하여 문화재적인 가치를 잃었는지의 여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치명적인 훼손 면적이 그리 넓지 않고 세계 최대로 평가받는 길이 10m, 너비 4.5m, 높이 3.5m, 무게 350t의 지석묘는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언양지석묘가 영남최대규모라고 하는데 김해 구산동 지석묘가 복원을 거친다면 세계최대규모의 지석묘가 되니 당연히 영남 최대규모로도 자동 평가되게 됩니다.

바위
모습을 보니 이것도 맷돼지는 아니지만 제눈에 어떤 동물의 모습 비슷하게 보입니다.아마도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이런 형상의 바위를 일부러 골라 제단식 지석묘로 한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복원이 제대로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구상에는 약 6만 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4만여 기의 고인돌이 있다고하니 가히 고인돌의 나라, 고인돌 왕국이라 불릴만합니다.그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이 발견되었는데 김해시 공무원들의 실수로 그 가치를 잃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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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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