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영축산▲정말 잠시 후손에게 빌렸을 뿐인데..



- 언제 : 2005.3.12
- 얼마나: 08:40~15:30(6시간 50분)
- 날 씨 :맑음
- 몇명:3
- 어떻게 :대우증권 경남지역본부 백두대간산악회 따라서(자가용 이용)
▷경림빌라-달나라어린이집↗보덕암↗전망대↘↗신선봉↘↗589봉↘↗영축산↘↗
666봉↘↗병봉(고깔봉)↘송이움막-임도↗508봉↘427봉↘구계리 내촌마을-새터-영산읍성지

- 개인산행횟수ː 2005-11
- 테마:풍류산행
- 산높이ː681.5M
- 좋은산행 개인호감도ː★★★★★


 



오랫만에 대우증권 백두대간산악회의 산행이다.전일 갑작스런 총무 모친의 별세로 인해 산행을 취소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두 금요일 장례식장을 지켰고 토요일은 계획대로 산행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산행은 처음부터 인간의 사망률은 100%라는 단순한 진리를 안고 출발했다.

 

사람이 죽어 가장 가고 싶은 산이 북망산이라고 했는가? 북망산은 중국 허난성 뤄양 땅의 북쪽에 있는 작은 산을 뜻하지만 보통 무덤이 많은 곳. 또는 사람이 죽어 묻히는 곳을 의미한다.한국사람이 중국 북망산까지 가기는 쉽지 않으니...



만약 묻히고 싶다면 어디에 묻히고 싶은가? 내가 좋은 곳을 한 곳 소개해주려고 한다.부처님께서 법화경을 8년간 설하신 법화성지인 영축산과 비슷하여 영축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있는데 통도사가 있는 영축산과 이름이 같은 곳이 창녕에도 있다.창녕 영축산에도 법화사라는 절이 있고 이곳엔 경내 앞 자연석 위에 있는 영산법화암다층석탑이라는 석탑이 있다.통일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유행한 청석탑(靑石塔) 또는 와탑(瓦塔)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상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독특한 분위기가 나는 탑이다.



창녕의 영축산 산행을 하다보면 풍수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보더라도 천하명당자리라는 것이 느껴진다.산세가 둥근 원으로 둘러쳐져 있어 그속은 너무나도 아늑하게 보이는데 마치 여성의 자궁 속 같다.자궁의 가장자리를 산들이 한바퀴 돌고 있다고 느꼈다면 아기가 영양분을 공급받는 탯줄같은 곳은 바로 병봉(고깔봉)에서 내려가는 산세가 될 곳이며, 그 산줄기의 끝부분엔 아기가 있을 것이다.아기가 있을 그 자리에 마을이 영양을 보충받으며 있으니 그 마을 이름이 내촌(內村)이다.안동네라는 뜻이다.자궁의 가장 안동네에 당연 아기가 있을 것이고...


산세가 둥글게 한바퀴 돌지만 입구는 있는 법이다.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처녀막 같은 산이 가로 놓여 나쁜 기운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되어있는데 그곳은 바로 589봉에서 저수지 방향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입구엔 오줌이 빠져나갈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구계저수지이다.산들이 빙둘러쳐져 있기 때문에 계곡도 많다.그래서 구계(九溪)이다.아홉 계곡이 있다면 산도 아홉개는 되지 않을까? 九溪里 (구계리)의 유래는 9개의 내와 골짜기가 있어 구계리라 하였으며 이 골짜기에 보림사등 9개의절과 8개의 암자가 있어 보림이라 했는데 일제시에 구계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九溪와 발음이 같은 九界는 원래 불교용어로 십계 가운데서 불계를 뺀 아홉 가지 세계-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하늘·성문·연각·보살의 세계-를 뜻하는데 이곳에 영축산이라는 불계까지 있으니 모든 세계가 함축되어 있는 곳이다.교과서 같이 완벽한 곳으로 느껴지는 곳이다.



천하명당임을 알려주듯 이곳은 三災九難(삼재구난)이 없는 곳이라 전해와 6.25 동란 때도 피난지였다고 한다.



원래는 영축산-종암산-함박산 종주를 하려던 계획이었는데 천하명당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하여 결국 마을로 내려와서 확인하게 되었다.산을 내려오기 전에는 마을주민들이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막상 내려와보니 동심원 안쪽은 무덤들이 즐비했다.거의 공동묘지 수준이었다.천하명당이 죽은 사람을 위해 쓰여지고 있었다.

내 마음 같아선 모든 무덤들을 정비하고 시신은 화장하고 산은 원상복구해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현실적으로 구계리를 복원 할 수 있는 길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산(자연)은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며 후손에게 잠시 빌려쓰는 것이라고 보면 이 얼마나 모진 짓들을 하고 있는가?



앞으로 산에서 하는 매장은 그 후손도 천벌을 받을 것이다.산에 올라갈때나 내려올때 가끔 보는 아니온듯 다녀가라는 말은 죽음에도 해당된다.산을 사랑하는 우리 산꾼부터라도 앞으론 되도록 화장하자.난 그렇게 해달라고 할 것이다.추위도 많이 타는 편이니 얼마나 좋은가? 내가 좋은 곳을 한 곳 소개해준다고 한곳은 바로 화장막이다.



三災九難이 없는 천하명당이면 뭣하는가? 눈 닿는 곳마다 무덤들이 즐비해서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통 받는 곳인데....





07:20~08:48
전날 밤늦게까지 장례식장을 지키며 술을 마셔 아침일찍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차를 몰고 속도를
내었더니 7시20분에 창원에 도착했고 윤부장님과 회장님을 차례로 픽업하여 산행들머리인
창녕의 영산 경림빌라로 갔다.영산4거리에서 KT를 좌측으로 끼고 산으로 오르면 경림빌라가 나오고
곧 달나라어린이집이 나온다.좌측엔 달나라어린이집을 끼고 산으로 오르면 보덕암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좌측 산길을 오르면 산행들머리가 된다.



09:33
송이버섯이 많이 나는 곳이라고 하더니 좋은 소나무가 많다.처음부터 매우 험한 비탈-된비알-이다.
어제 마신 술이 식도와 뱃속을 오가는 듯 한데 장딴지마저 굳어있어 무척힘들다.



09:37~55
능선에 서니 이곳이 전망대이다.발아래 영산이 보이고 저수지가 보인다.전망대를 지나 15분 오르니
신선봉이다.이곳에서 보는 전망도 좋다.




09:59
신선봉에서 보니 가야할 길이 너무 아름답다.바로 앞에 589봉이고 바로 뒤 영축산이 보이고
그 뒤로 뾰족한 병봉(고깔봉)이 보인다.



10:00
기세 좋은 병봉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는 내촌으로 이어지는데 아기가 탯줄을 달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10:11
589봉에 서니 진행방향이 아닌 마을 방향으로 또다른 산세가 뻗어있는데 꼭 처녀막 같이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듯한 모습이다.저수지 뒤로 종암산이 보인다.



10:17~49
영축산 오름길은 예상밖의 암릉길이다.영축산을 지나니 좌측 아래에 구봉사가 보인다.




10:50
뒤돌아보니 영축산 정상 바로 아래 우측으로 용머리 같은 바위가 돌출되어 있는데 화왕산을 향해
불을 뿜는 듯하다.



11:15~43
붓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병봉이 위압적이다.땀깨나 흘리며 병봉에 정상에 서니 병봉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내촌마을로 용이 꿈틀거리듯 휘어지며 이어지고 있다.이 산줄기를 따라서
내촌마을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다.뭔가 중요한 것이 있을 것 같은 강한 유혹이 마음속에 일어난다.




11:59
송이움막에 도착했다.이곳에 모두 모여 식사를 했다.보온죽통에 담아 따뜻한 국으로 식사를 한다.
오늘 종주를 위해 2리터의 물을 특별히 종주용 물통에 담아왔는데 아무래도 호기심이 일어서
식사를 마치고나면 마을로 내려가서 반풍수의 실력을 확인(?)해 보아야 겠다.



13:31
임도에서 두분은 원래계획대로 종주를 하기로 하고 나는 이곳에서 헤어져서 마을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임도에서 508봉으로 간 후 여기서 바로 마을로 내려가는 427봉으로 향한다.427봉에서 내려다 보는
내촌마을이 보기 좋다.



14:02
완전히 내촌마을로 내려와보니 폐가가 예상외로 많고 돌담으로 이루어진 집들을 보니 내가 60년대로
되돌아 온 느낌이다.그리고 눈 닿는 곳마다 무덤들이 즐비하고 말을 붙여 볼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완전히 예상 밖이다.불무도로 유명한 보정사가 뒤로 보인다.절은 절인데 법당만 세워져 있고 입구가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다. 개인 집처럼 싸립문이 나 있고 돌계단 두어 개가 놓여져 있는 사이로
훔쳐보니 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14:06
대나무 숲을 따라 들어가니 예의 무덤들이 나오고 그 뒤로 부도가 한기 보인다.폐사지로 변한
보림사에는 스님 수가 몇 백명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절터의 주춧돌은 밭 언덕에 쌓여 있는 것도
있지만 묻혀 버린 것이 더 많다고 한다. 다층석탑은 법화암으로 가고 삼층석탑은 영산초등학교
화단에서 소나무에 모습을 숨기고 세월을 버티고 서 있다. 천년 세월 보림사지를 지키고 있는 것은
이제 동쪽으로 200m지점에 있는 부도 뿐이다.



14:23
우리농촌의 현실 중 최악의 상황을 보는 듯하다.120여호, 250여명의 마을 인구중 60% 이상이
65세 이상의 이른바 노인이다. 노인 홀로 살아가는 독거노인도 적지 않다. 홀로 일하고,
홀로 밥을 먹는다. 빈집은 이가 빠진 듯 마을 도처에서 출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을에 인접한 묵언수행의 도량, 영축산 보정사 테이프 불경소리가 마을 풍경을 지배하듯 가장
활기차다.좁고 비탈진 다랭이논에 의지하는 벼농사 수입은 연간소득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低부가가치 작물인 단감과수 농사가 그나마 20% 정도 되고, 나머지는 철따라 마을 뒷산
암벽을 타고다니며 송이버섯을 따서팔아 먹고살고 있다는 구계마을.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텅빈
공판장과 유럽풍 원목별장 같은 마을회관이 오히려 애처럽게 보인다.



14:26~54
중촌(중간동네) 마을에 걸려있는 사용하지 않는 우물의 도르레가 줄을 잃고 녹슬고 있고,이렇게
즐비한 무덤도 모자라 이제 떼무덤을 조성하려는지 구계저수지 사면도 계단식으로 파헤쳐 놓았다.
그리고 곧바로 나타나는 경고문은 이곳의 현실을 대변하는 대자보로 보인다.이런 경고문을 몇개
더 보았다.





14:58
경고문이 붙어있는 건물 뒤로 돌아가니 구계리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불상과 광배가 단일석으로
조각된 이 석불좌상은 도로변 비탈에 있는 마애불로서 적조사의 유물로 추측된다.마멸이 심해 구별이
어려우나 큼직한 육체와 얼굴에 나타난 코가 특색이며, 처진 두 어깨, 좁은 무릎폭, 입체감 없는 신체
등 간략화된 특징은 지방적 양식을 띄고 있다는데 고려시대유물이라고 한다.




산과 자연은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며,
후손에게 잠시 빌렸을 뿐이다.



15:26~37
경림빌라로 돌아와서 차를 수배하고 영산읍성지에 올라 산행의 마무리지점인 동리방향을 쳐다보며
만날 장소를 통화 한 후 만년교로 가서 일행을 픽업하면서 실제적인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영축산과 그 아래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제대로 된 시각을 갖지 못한다면
돼지발의 금강석이라는 것을 느꼈다.참 좋은 곳이며 참 아까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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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흐르듯 자연과 만나는 산행
風流山行


Posted by 세벗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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