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죽계구곡▲세월따라 경관은 간데없고 선인들의 풍류 발자취만 남아




- 언제 : 2006.8.13 (일) 08:00~20:00
- 얼마나: 11:00~15:30(4시간 30분)
- 날 씨 : 맑음,무더위
- 몇명: 33명
- 어떻게 : 부산 새한솔산악회 동행(
http://saehansol.hihome.com )
▷순흥면, 배점리- 초암사 - 죽계구곡 - 석륜암골 - 석륜암터-석륜암골 - 죽계구곡 - 초암매표소
- 개인산행횟수ː 2006-24[W산행기록-153 P산행기록-295/T640]
- 테마: 계곡산행

-산높이:국망봉(1,420M)
- 좋은산행 개인호감도ː★★★★




대나무 계곡(죽계)에 대나무가 없다.

 

죽계란 말 그대로 옛날에 대나무가 많은 이유로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을 것이다.고려 때 이 고장 출신 안축이 지은 경기체가 ‘죽계별곡’은 바로 이곳을 소재로 한 노래인데 현재는 일부러 대나무를 찾아보려고 여러 곳을 두리번 거려 보았지만 대나무는 숱한 세월 속에 묻히어 현재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아기자기하고 아담한 소와 담이 줄지어 나오지만 바로 옆이 도로라서 많이 훼손되었고,그런대로 볼만한 곳도 우리나라 여타 계곡의 소와 담을 비교해 볼때 그리 뛰어난 풍광은 아니다.

 

배점리에서 계곡을 따라 소백산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죽계구곡은 이어지는데 초암사 근처에 이르러 다소 볼만한 경관이 나타난다.죽계8곡에서 5곡까지는 사진찍기에도 불편 할 정도인데 사과나무를 위하여 친 농약 때문인지 물빛마저 다소 흐려 실망감이 크다.

 

화려하고 웅장한 바위골짜기를 보아 온 나의 눈높이 때문인지 경치는 그렇다손치더라도 안축·안향·주세붕·이퇴계 등 한 시대를 빛냈던 큰 인물들의 풍류적 발자취가 굽이마다 아로새겨져 있는 점 때문에 역사적 가치는 있는 곳이다. 그래서 현재의 모습으로 보지말고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루어 짐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竹溪란?
죽계는 순흥부에 있으며, 풍기군에서 23리 떨어져 있다. 이색이 「송안시어시서」에서 "순흥은 안씨들이 대대로 머물러 산 곳으로 죽계의 위에 죽계의 근원이 있는데 태백산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竹溪 在順興府 距豊基郡 二十三里 李穡送安侍御詩序 順興安氏世居 竹溪之上竹溪之源出於太白山 풍기의 성씨에는 순흥 안씨와 신씨·이씨·윤씨·석씨가 있다. 豊基姓氏 順興安 申 李 尹 石. 풍기의 인물로는 안축이 있다. 그는 충숙왕 12년에 원나라의 시험에 급제하였고, 상주 목사를 나갔는데 고향을 오가면서 효성을 다했다. 관직은 첨의 찬성사 흥년군에까지 올랐다. 豊基人物 安軸 忠肅王 十一年 中元朝制科...... 出牧尙州 往來盡孝 官至僉議贊成事興寧君『여지승람·권25·풍기』

 

 

무더위 날씨 때문에 초암사까지는 그리 즐겁지 못하다.
11:00~48
계곡 옆에 평행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걸으면 지나가는 승용차가 내뿜는 뜨끈한 열기가 다소 짜증스럽다.
이 도로 때문인지 죽계구곡의 이름값은 책에서나 존재하는 명성이고 실제로 보니 "이게 뭐야?"하는 느낌만 든다.
근처 사과밭의 희뿌연 진한 농약 흔적은 더욱 살풍경을 자아내는데 벌써부터 흐르는 땀방울을 주체 할 수가 없다.

 

그렇게 고역인 도로걷기가 끝나는 것은 초암사까지인데 초암사 부터 산행다운 산행길이 놓여있다. 죽계9곡부터
나타나는 경관은 별 볼것도 없는 상황이 이어지며 죽계5곡까지 이어진다.

 

초암사 앞 죽계2곡은 퇴계가 이름 붙였다는 청운대이다.

 

11:59
초암사에 도착하니 이미 죽계구곡 중에서 죽계2곡이다.초암사 관람을 끝내고 조금 더 가니 금당반석이라는
죽계1곡이 나오며 죽계구곡의 경관은 싱겁게 끝이난다.

 

초암사도 상상했던 것보다는 느낌이 덜하지만 아담한 초암사 3층석탑은 그런대로 볼만하다.

초암사 뒤 석륜암골 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12:46
완만한 등로를 따라 계곡과 나란히 이어지는 산길을 오르면 소와 담이 이어지는데 나무그늘이 있어서 느낌은 시원
한 것도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몸으로 나오는 땀을 보니 아직은 푹푹 찌는 날인 것 같다.

 

13:37~14:10
식사를 끝내고 다시 시작되는 산행에 조금만 움직여도 쏟아지는 땀 때문에 은근히 짜증이 난다. 석륜암터 폐사지를
지나 마치 봉황이 머리를 치켜든 모습이라는 높이 18M의 봉두암에 이르러 다시 하산하기로 결정한다.

 

원래 처음의 계획은 점마마을에서 석천폭포골로 올라서 상월봉을 거쳐 국망봉으로 해서 죽계구곡으로 하산하려고
했지만 석천폭포골이 입산통제로 인하여 일행의 대부분은 죽계구곡으로 올라 국망봉을 거쳐 비로봉으로 해서
비로사로 하산하기로 하고 나를 포함한 몇명은 여기서 바로 하산하기로 한 것이다.

무리한 운동은 노화만 촉진 할 뿐이라는 서울대 박사논문이 무서워 포기 한 것은 아니고,
이곳을 오르면서 건성건성 보며 스쳐버렸던 죽계구곡을 다시 보기 위함이었다. 선인들의 풍류는
어떤 것이었을까하는 원초적인 의문과 그분들의 그림자 근처라도 접근하고픈 심정이 여운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다시 죽계구곡을 살펴본다.

 

15:25

 

죽계1곡은 금당반석으로 실제 너른 반석이 펼쳐져 있고 죽계6곡은 굴곡있는 바위사이로 세차게
흐르는 물이 인상적이다.그러나 그뿐이다. 나의 머리로는 이미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 탁족을 하며 배낭에 넣어 온 전세계 등산가들의 바이블인 "마운티니어링-산의 자유를 찾아서"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상수도 보호구역이라서 다른이처럼 물속으로 온몸을 넣기엔 이 무더위에도
나의 이성이 허락하질 않는다.

 

 

竹嶺南 永嘉北 小白山前千載興亡 一樣風流 順政城裏他代無隱 翠華峯 天子藏胎爲釀作中興 景幾何如淸風杜閣 兩國頭御爲 山水淸高 景幾何如...

죽령의 남쪽과 영가의 북쪽 그리고 소백산의 앞에,천 년을 두고 고려가 흥하고·신라가 망하는 동안 한결같이 풍류를 지닌 순정성 안에,다른 데 없는 취화같이 우뚝 솟은 봉우리에는, 왕의 안태가 되므로,아! 이 고을을 중흥하게끔 만들어준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청백지풍을 지닌 두연(杜衍)처럼 높은 집에 고려와 원나라의 관함을 지니매,아! 산 높고 물 맑은 광경,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안축의 죽계별곡 제1장


선인들의 풍류는 작은 아름다움에 심취했었던 모양이다.

 

내가 살면서 크고 긴 것에 대하여 대단하다고 느꼈을까?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의미를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둘러보아도 너무나도 아기자기한 소와 담이다. 두번이나 둘러보고도 다소 허전한
이 마음은 선인들의 풍류를 이해하기 어려운 안타까움과 무더위 날씨 때문에 경치가 제대로
안보였을 수 도 있다.

 

그렇지만 그 허전한 무언가가 있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애꿎은
가오리회와 막걸리만 축내고 있으니 산악회 명예회장님은 처음엔 커피잔에 막걸리를,다음엔 소주와
막걸리를 섞어서,마지막엔 소주만 한잔 가득 주신다.

내 얼굴에 씌여있는 다소 불만족스러운 그 무언가를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술 마시고 한잠
푹자고 잊어버리라는 무언의 대화였으리라.

 

버스안에서 한숨자고 술에서 깨고보니 선인들의 풍류가 어렴풋 느껴진다.
그것은 "산행에서 옷과 장비를 많이 챙기면 더 편안하기야하겠지만 짐 때문에 더 멀리,더 빨리,
더 높이 가지 못할 수도 있는 것처럼",

아마도 우리 선인들은 집 가까운 곳에서, 더 자주, 더 많은 생각의 자유를 탐닉하고자 한줄기 계곡에
9가지의 색다른 장소를 선택하고 사랑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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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낭만을 찾아가는 山中問答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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