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風流)]
풍류의 어원은 본디 유풍여류(遺風餘流:예부터 전해오는 기풍과 넉넉한 민족정신의 흐름)라는 말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풍류에서 도를 떼어내면 풍류도이고 그것이 종교로 화하면 풍류교가 된다.그러나 현실적으로 겉으로 보면 풍류교라는 종교가 없고 풍류도 또한 현실에서 눈이 밝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분명히 외래종교라고 할수 있는 불교,유교,도교,기독교가 이땅에 유입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사상,도,종교가 있었다.그것이 바로 풍류이다.고조선시대에는 낭가사상인 선(仙)의 일종인 신교(神敎)로 시작하여 화랑도,풍류도,풍월도,현묘지도 등으로 불리었고 나라에 따라 삼랑(배달),국자랑(고조선),천왕랑(북부여),무절(백제),조의선인(고구려),국선(고려) 등으로 불리었다.
현재 풍류는 곧 현묘지도玄妙之道(깊고 훌륭한 진리길)이며 접화군생接化群生으로 이어진다.접화군생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뭇 생명들이 만나서 변한다"는 뜻이지만 "진리에 접촉하여 무리들이 산다","만나서 감화하며 함께 모여 살자","접하는 모든 생명을 감화시키는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접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딱 하나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그래서 유,불,선 삼교포함이라는 말이 있다. 조지훈 시인은 유교는 명분과 절의에 얽매여 현묘의 경계를 모르고, 불교는 번뇌에서 벗어난다면서 인륜을 끊고, 도교는 자연에 유유자적하면서 세상을 다스리는 법을 모른다고 했다.그래서 모든 종교에서 접화군생된 풍류의 모습을 찾아가는 길을 오랫동안 공부한 것이며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그것이 곧 동학사상이다.불교,유교,도교,기독교의 장점을 모아 뒤에 만든 것이 풍류가 아니라 왜래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풍류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야한다.그 출발은 홍익인간의 고조선 사상이다.
* 속되지 않고 운치가 있는 일
풍류라는 말은 <삼국사기> 진흥왕조에 화랑제도의 설치에 관한 기사 가운데 나온다.즉 최치원崔致遠이 화랑 난랑을 위해 쓴 난랑비 서문鸞郞碑序文 중에 "나라에 현묘가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라는 글이 있다.위의 글로써 신라에 유불선儒佛仙의 3교 이전에 이미 고유의 풍류라는 종교적 차원의 가치관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또 풍류의 수련자들이 바로 화랑이었음을 추측 할 수 있다.따라서 풍류도는 샤머니즘의 색채가 강했던 우리 고유의 종교적 사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치원에 따르면 이 풍류도의 내용은 3교를 두루 포함하는데, 그 실천에 있어서 화랑을 위한 교과목은 3가지로 ①도의로써 몸을 닦고,②노래와 춤으로써 서로 즐기며 ③명산대천을 찾아 노니는 것 등이었다.위의 교과목 중 ②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신령과의 교제술로서 종교적 제의였으며,③역시 단순한 여행이나 관광이 아니라 명산대천에 임재한 신령과의 교제를 위한 제의적祭儀的행사였다.(브리테니커 백과사전 요약)
[풍류란?]
한恨과 흥興과 무심無心이 합쳐진 개념이다.
또한 풍류란 패기(pathos) + 논리(logos) + 신내림(ethos)이 "절묘하게 조화妙合"이 되어야 한다.그래야만 자연과 예술과 인생이 혼연일체가 된 심미적 즐거움으로 "한 멋진 삶"을 살 수 있다.
풍류산행은 생각(독서와 사색), 행위, 쓰기가 삼위일체가 될 때 가능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풍류산행을 풍류산학으로 하나의 학문처럼 접근하고 있는데 과목을 말하자면 등산은 기본이고 국궁(구덕정),시,사진(여사모),차,술,여행,음악,영화,서예(운교서예연구실),역학,문화유산답사,독서(독서클럽 책사모),HAM,정신문화,철학,불교(경남불교대학),유교,도교,선이다.
풍류산행은 登山이 아닌 遊山을 지향한다.역시 信 知 行 好 樂 藝를 모두 갖춘 것이 진정한 遊이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지식과 기능을 배우려면 대학교에서 그기에 맞는 전공과목을 선택하면된다.그러나 인간이 지혜를 갈구하고 좀더 의미있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에서는 문화와 교양에 대해서 배우는 리버럴 아츠칼러지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없다.굳이 찾자면 방송대의 문화교양학과 혹은 원광대의 명리학과 정도이겠지만.....나는 여기에 대한 답을 "풍류"에서 찾았다.지혜를 사랑하여 독서를 하고,불교대학을 다녔고 역학을 배운다.활동적인 일들은 등산과 여행 및 사진출사로 할 수 있다.
정신적인 안정을 위하여 서예를 하고 다도를 하며 종교 및 철학에 심취한다.생활을 되돌아보기 위하여 글을 쓰고,사진을 찍으며 시를 쓴다.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역학을 배우고 문화유산답사를 하며 HAM 활동을 한다.자연을 접하고자 등산,여행,출사,문화유산답사를 다니며 예술을 위하여 사진,음악,서예,시작,영화를 통하고, 인생을 위하여 독서,HAM,술,차,정신문화,종교활동을 한다.이런 모든 활동들이 합쳐져서 풍류가 되는 것이다.따라서 무엇보다 인문학적 소양이 기본이 된다.
"공부는 등산 하는 것과 같아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멀리 정확하게 볼 수 있다."(남명 조식의 글)
“산에 올라 그 높이를 배우고 물가에 다다라서 그 맑음을 배우고 돌에 앉아 그 강건함을 배우고 소나무를 바라보고 그 곧음을 배우며 또 달을 쳐다보고는 그 밝음을 배운다. 새소리를 들으며 그 철을 배우고 부드럽고 뾰족한 산세를 오르며 그 기상과 덕을 기르니 산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또한 산이 있더라” (매월당과 정갑성 선사의 글)
國有玄妙之道하니 曰風流라.
국유현묘지도 / 왈풍류
設敎之源이 備詳仙史하니 實內包含三敎하야 接化群生
설교지원 / 비상선사 / 실내포함삼교 / 접화군생
且如入則孝於家하고 出則忠於國은 魯司寇之旨也오
차여입즉효어가 / 출즉충어국 / 노사구지지야
處無爲之事하고 行不言之敎는 周柱史之宗也오
처무위지사 / 행불언지교 / 주주사지종야
諸惡莫作하고 諸善奉行은 竺乾太子之化也라.
제악막작 / 제선봉행 / 축건태자지화야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조 난랑비 서문」)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가르침을 베푸는 근원은 선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거니와, 실로 삼교를 포함하여 접하는 모든 생명을 감화시키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보면, 이는 곧 집으로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으로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가 가르쳤던 뜻이요, 매사에 무위로 대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함은 노자의 가르침이며, 악한 일을 하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는 것은 석가모니의 교화니라.”
풍류도의 "환인"진인이 동방선파의 조종이다.따라서 풍류도는 우리나라 역사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단군의 건국이념 2가지는 홍익인간과 제세이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이고,제세이화(濟世理化)는 “이치로서 교화하여 세상을 구제한다”는 뜻이다.최치원이 말한 현묘지도(=풍류도)가 바로 홍익인간의 이념이고 제세이화는 정신철학이다.
최영성 교수는 "풍류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유가적 가르침과 명승지를 찾아 심신수련에 임하는 무위자연의 노자사상‧선을 외치고 악의 징치를 교화의 개념으로 삼는 불가의 가르침이 모두 포함삼교와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풍류도의 범주에 있다"고 역설했다.
또, 최 교수는 "풍류의 궁극적 목표는 접화와 군생에 있으며, 접화와 군생은 남녀의 육체와 영혼이 하나로 만나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중국의 최고 의서(醫書) 소문(素問)의 '생생화화(生生化化)'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치원의 풍류도는 기존 천부경의 전통문양을 한문 '난랑비서문'의 76자로 표기한 것으로, 풍류에 대한 잘못된 오해로 '풍류는 중국에서 전래한 것'또는 '불가에서 전해진 것'이라는 일설들이 전해져 왔지만 ‘풍류는 유불선의 분화 이전부터 전해지고 있었다"고 풍류의 근원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 근거로 "목은 이색의 천부경에 대한 주석"을 제시했고 접화(接化)는 천부경의 무궤하삼(無軌下三)의 합리성과 정갈성, 영명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으며, 이는 '논어 도덕경'의 '군자의 덕은 바람‧소인의 덕은 물'에 대한 문구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를 통해 '접화'는 유가의 '대동세계'와 불가의 '용화세계' 및 도교의 '선‧후천세계'로의 완성을 이루어 낸다고 설명했다.
최영성 교수는 끝으로 "최근 풍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단순히 먹고‧마시고‧즐기는 것'이라는 해석들을 내놓고 있지만 풍류는 '우리 민족의 원초적 사상 묘맥'이라는 최남선의 '심층순례'의 기록을 그 예"로 설명한 뒤 "풍류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신묘한 사상'"이라고 덧붙였다.
역사책은 유교입장(유가사서)에서 사대주의 정신에서 기록한 삼국사기,불교입장(불가사서)에서 신화라고 기록한 삼국유사,그리고 도교(선) 입장(도가사서)에서 기록한 규원사화 등이 대표적입니다.위서 논란이 있는 한단고기의 경우 최근 일방적인 위서분위기에서 최근엔 점점 진서 분위기로 바뀌고 있는데 역시 도가사서입니다.풍류도맥은 도가사서 측면이 강합니다.
- 환단고기,규원사화,순오지,해동이적,청학집,동경대전,용담유사,주역,
- 환단고기,규원사화,순오지,해동이적,청학집,동경대전,용담유사,주역,
[풍류도의 맥]
1.
단군·혁거세·주몽· 술랑·영랑·안상· 남랑· 옥보고·김렴효· 소하대로·산시· 김가기· 최치원·강감찬· 권진인·김시습· 홍유손·정붕· 정수곤·정희량
- 조선조 홍만종의 순오지”(旬五志)
2.
신라선파(新羅仙派)는 영랑(永郞) 등 사선(四仙), 호공(瓠公), 물계자(勿稽子), 대세(大世), 구칠(仇柒), 옥보고(玉寶高), 우륵(于勒), 김·소 2선(金蘇二仙), 장미선인(薔微仙人), 김가기(金可紀), 최승우(崔承佑), 자혜(慈惠), 이청(李淸), 권청(權淸), 의상대사(義湘大師), 최치원(崔致遠), 김유신(金庾信)
3.
《해동이적》(洪萬宗輯)에 실린 선파(仙派) 20인 중 대표적인 조선단학파를 든다면 권진인(權眞人)과 남궁두(南宮斗)·김시습·남추·정렴·전우치·윤군평(尹君平)·곽재우·권극중
4.
신채호 선생은 『규원사화』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선(仙)이 한민족 고유의 것이며 이것이 일제치하 독립운동으로까지 이어지는 ‘낭가사상’이라고 보았다.
이런 선인들은 한민족 건국과정에서 주체로 참여하였으며 국가의 위란 시마다 구국의 투혼을 보여왔다. 배달국의 제세핵랑군에서 시작된 선인의 맥은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사도, 신라의 화랑, 고려의 국자랑으로 이어지며,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끝으로 은둔의 길을 걷게 된다.
을지문덕, 연개소문, 김유신, 우륵, 의상대사, 원효대사, 강감찬, 김시습, 정북창, 이지함, 곽재우, 권극중 등 낯익은 이름들이 선인의 맥을 이은 인물들이다. 이외에도 무명으로 시해선(尸解仙)이나 천선(天仙)이 된 이들은 수없이 많다. 이들은 세상과 담을 쌓고 풍류로써 자연과 벗하다가도 국가의 위난 시나 대변국기에는 어김없이 세상을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함을 꺼리지 않았다.
최치원 역시도 「낭혜화상비문」에서 장생을 구하여 학을 타고 날아다니며 고고함을 구하는 중국 선도를 깎아 내리며, 오히려 중생을 구제하여 세상을 위해 몸을 적시는 진정한 선의 길을 제시하였다.
5.
《청학집》을 보면 우리 선맥의 조종은 ‘환인진인’이다. “환인진인이 동방선파의 조종이고, 환웅천황은 환인의 아들이다”(조여적, 1998, 16). 이렇게《청학집》의 저자 조여적은 변지가 지은《기수사문록》에 기록되어 있다고 그 전거를 밝혔다. 그에 따르면 환인의 선맥은 환웅으로, 환웅의 선맥은 단군으로 이어진다. 단군의 선맥은 신라의 사선(四仙)인 영랑‧보덕‧옥보고‧이순보에게 이어진다. 사선의 선맥은 다시 물계자‧원효‧도선을 거쳐 대세 구칠, 그리고 드디어 최치원에게 이른다
6.
풍류도맥을 정확하게 기술하기는 어렵다.책마다 다르기 때문이다.일단 순서에 상관없이 한번이라도 풍류도맥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아래와 같다.
단군·혁거세·주몽· 영랑·(술랑.안상· 남랑).보덕.호공.물계자.의상대사.원효대사.도선.대세.구칠.참시.옥보고·이순보.우륵.김렴효· 소하대로·산시· 김소이선.장미선인.김가기· 최승우.자혜.이청..권청.을지문덕.연개소문.최치원·김유신.강감찬· 권진인·남궁두.김시습·전북창.이지함.남추.정렴.전우치.윤군평.남명 조식.곽재우.권극중. 홍유손·정붕· 정수곤·정희량.남추.지리선인.서경덕.정렴.한라선인.남사고.박지화. 한계노승.유형진.장한웅.남해선인.장생 ***여기에 근,현대에 포함해야 할 인물 :최제우,나철,만해 한용운,함석헌,탄허선사,도올,
풍류는 짧게 말하면 진.선.미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이 도나 종교의 수준까지 다다른 것을 풍류도 혹은 풍류교라고 합니다.결국 종교와 도덕과 예술을 포함합니다.최치원에 따르면 이 풍류도의 내용은 3교를 두루 포함하는데, ①도의로써 몸을 닦고(도덕/선), 물론 몸을 닦는 표현으로 보면 심신 단련은 곧 군사적인 의미 포함입니다.②노래와 춤으로써 서로 즐기며(예술/미) ③명산대천을 찾아 노니는 것(종교/진) 등으로 귀결됩니다.
한류는 이것을 모두 포함합니다.예술적인 표현은 밖으로 드러나니 금방 눈치를 채지만 도덕적인 부분은 우리는 늘 그 속에 젖어 살아서 잘 모릅니다만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잘 드러납니다.우리의 컨텐츠는 중동지역에서도 막힘이 없은 것을 보면 잘 나타납니다.이 부분이 서양과 다른 점이며 같은 동양의 중국과 일본과의 차별점입니다.
난풍류는 신라의 현묘지도에서 그 종교성이 탈락하고 의례적인 부분만 남아 세속화한 것인데,조선시대에 와서 민중들 사이에서 술먹고 여자들과 질탕 노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타락했음을 알 수 있다.풍류산행은 최소한 신라시대 이전으로 돌아가서 풍류의 원형에 가까운 정신세계를 지향하고자 한다.
[서학이 우리나라에 맞지 않는 이유]
미국은 "과학과 자본주의 선진국,총기에 의존하는 미국,인종갈등 사회"로 요약된다.이렇게 된 이면에는 "미국인 대부분이 기독교인,배타적인 하나님 야훼,유대인외 다른민족 도륙"의 바탕이 있다.
서학은 문제가 있다.그래도 우리나라는 20세기 내내 서양을 베끼고 익힌 지식과 교양"으로 보냈다.과학,학문,철학(칸트,헤겔,플라톤)을 공부해보아도 서양철학이라는 것이 공부할수록 기대에 못미치는 경험을 했을것이다.그 이유는 서양철학이 인격신.초월적 세계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는 기나긴 노력"이었기 때문이다.
동학은 인내천 정신 그대로 "다른 사람을 하느님으로 대하라"는 사상이다.
윤여정이 아카데미에서 말한 "심지어 무지개도 7가지 색깔이 있다. 여러 색깔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게이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우리는 따뜻하고 같은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저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서로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당부한 말은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영어로 잘 표현한 말이다.우리국민의 사상 밑바탕에는 동학사상이 흐른다.서학의 하느님은 인간에게 군림하는 황제같은 하느님이라면 동학의 하느님은 인간과 인간사이가 평등하고,하느님과 인간 사이도 평등한 인내천아라는 점이 다릅니다.
[동학]
최제우 선생이 창시하고 민중을 사로잡은 동학의 사상적 배경은 1.우리의 고유 사상인 풍류도(風流道)를 뿌리로 삼아 성립되었다.풍류도는 '포함삼교 접화군생(包含三敎 接化群生)'을 지향한다.(참조:포함삼교의 포(包)와 접화군생의 접(接)을 따와 동학의 포접제의 이름을 보아도 풍류와 동학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포접제는 동학에서 교도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모든 사상과 두루 소통하면서 뭇 생명을 다 살려내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사상이다. 동학은 이 같은 풍류도를 후천 시대의 개벽(開闢) 상황에 맞게 재정립해 부활시킨 것이다.둘째, 동학의 사상적 원천은 신라 천년 역사를 지탱해 온 대승불교(大乘佛敎)로 원효(元曉, 617~686) 스님의 화쟁사상 및 실천적 불교 운동과 통하는 바가 많다. 삼국 간의 정복 전쟁 시대, 즉 피로 날이 새고 피로 날이 지던 시대를 산 원효와 '백성이 단 한때도 편안한 날이 없었던(民無四時之安)' 조선 말 격동기를 살았던 최제우 선생은 모두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새로운 사상가로 우뚝 섰다.셋째, 동학이 나오게 된 근원에는 최제우의 부친 근암(近庵) 최옥(崔鋈, 1762~1840)으로 이어져 내려온 퇴계학(退溪學)이라는 학문적 전통이 있다. 최옥은 경주 일대 선비 400여 명과 교류하던 유명한 학자이자 퇴계학을 정통으로 계승한 선비였다.최제우 선생은 부친으로부터 유학을 깊이 공부할 수 있었다.넷째, 동학 성립과 관련해 가장 주목할 만한 사상은 서학(西學)이다. 흔히 서학을 천주교, 즉 종교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서학은 서양 학문 또는 서양 문명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서양의 종교인 천주교를 비롯해 서양 학문, 서양의 정치경제, 서양의 과학기술 등을 모두 망라하는 개념이 바로 서학이다.이 같은 서학이 동학을 창도하는 데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최제우 선생은 젊은 시절에 천주교 신앙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과 교류했고, 지식인 사이에서 유통되던 다양한 서학 서적을 탐독했다.다섯째, 동학은 또한 민간을 중심으로 널리 유행하던 샤머니즘은 물론 『정감록』 같은 비기도참(秘記圖讖) 사상도 수용했다.동학은 그냥 저절로 솟아난 것이 아니다. 유불선 삼교 사상을 사상적 창조의 기반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당시 가장 첨단 사상이던 서학마저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며, 조선 후기 민중 사상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정감록』 사상도 포용했다.이런 사실은 동학의 사상적 기반이 매우 깊고도 다양하며, 선생의 학문적 축적이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학(學)은 쌓는 것이고 도(道)는 비워 내는 것이다.그럼 무엇을 쌓고 무엇을 비워 낼 것인가? 그것은 "차이"다.차이는 차이를 낳고 분별은 분별을 낳는다.차이를 더 하면 결국 나는 고립된다,서양 철학은 학에 가깝고 동양 철학은 도에 가깝다.하늘이 곧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나와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곧 전체이다.삶과 죽음조차 다르지 않다고 여기게 된다.학(學)은 공부를 해야하고 (도道)는 수련을 해야하며 교(敎)는 믿는 것이다.동학은 학(學)이며 종교 같지 않은 종교이고 그래서 동학은 여타 종교 같이 "믿는 것"이 아니라 동학은 "하는 것"이다.믿어야만 하는 것은 기적도 포함되지만 궁극적으로 미신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반증이다.서학이 인격신을 믿는 것이라면 동학은 인격신은 믿지 않는다.스스로 그러하다는 노자의 도법자연(道法自然)과 동학의 무위이화(無爲而化)는 상통한다. 이런 사상이 곧 고조선 사상이며 국선의 화랑,조의선인,무절을 거쳐 동학으로 이어졌다. 노자가 동이족이었다는 것은 한민족이라는 의미다.
동학혁명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갑오년(1894) 일제의 총칼 앞에 좌절 또는 실패하였다고 말들을 한다. 물론 그때 동학혁명만을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동학혁명운동은 좌절을 넘어 의병혁명운동, 3.1만세혁명운동, 임시정부혁명운동, 독립혁명운동으로 끊임없이 계승되었다.
또 일제로부터 해방 후 3.1통일혁명운동, 4.19혁명운동, 5.18혁명운동, 6.10혁명운동, 10.29촛불혁명운동으로 끊임없이 계승되었다. 또한 최근 윤석열 정부의 불법계엄령에 맞선 12.3혁명운동으로 다시 승화되고 있다. 이번 12.3 혁명운동은 윤석열 정부가 완전 퇴진 및 탄핵될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그리고 남북평화통일이 달성될 때까지 동학혁명운동은 쉼없이 계승되고 재현될 것이다.
* 참고
대풍류,줄풍류란?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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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仙/遊/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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