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여산)금계포란 아래 붉은흙은 거짓초록에 덮혀져 있는데...

- 일 자 : 2003.6.29
- 산행시간 : 2003.6.29 10:40 ~ 16:42(6시간)
- 날 씨 : 바람조금 부는 구름낀 흐린날
- 등반인원:17명
- 산행코스
▷신기-원만지-월여산 정상-억새밭-묘-신기지(원점회귀)
- 개인산행횟수ː 2003-23회
- 산높이ː 월여산 862.6M
- 좋은산 개인호감도ː★★★
- BGM:Alexander Ivanov-슬픈 영혼 앨범-비야, 내려다오
(Я ЗОВУ ДОЖДЬ)

나흘전 6.25였다.어릴적 반공 이데올러기로 교육된 나는 김원일의 "겨울골짜기"와 MBC의 댜큐멘터리를 보고 정상인으로는 도저히 이해못할 전쟁이 가져오는 광기를 간접경험하였다.6.25기간에 양민이 죽은 숫자가 100만명에 가깝다고 하니 이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고 어릴때 배웠던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고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렀던 것은 공산군과 오랑캐로만 알았는데 무기도 없는 민간인들까지 쫓고 또 쫓아 죽였던 사실은 몰랐던 것이다.그리고 전쟁이라는 것이 생각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비참하다는 것이다.

김원일의 "겨울골짜기"를 읽고 알게된 거창양민학살사건이란 1951년 2월 11일 빨치산 점령지구였던 거창군 신원면에 국군이 재진주하면서 견벽청야작전(堅壁淸野作戰:가옥을 불 태우고 주민을 몰살시키는 초토화 작전)의 일환으로 부락민들을 통비 분자로 간주하고 대대적으로 몰살시켜버린 역사적 사건이다. 그 결과 노약자를 포함한 1,000여 명의 신원면 대현리 중유리 와룡리 주민이 몰살했다.

빨치산과 내통한 '통비분자'들을 색출한다는 명목이었다.국군은 대대적인 빨치산 소탕작전을 하던 가운데 야간에 기습을 한 빨치산에 의하여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이로인한 분풀이를 빨치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노약자, 부녀자, 어린이들만 끌고가 학살했는데 14세 이하의 어린이가 359명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61세 이상의 노인이 74명이다. 성별로도 여자가 388명이나 된다.물론 정부발표는 '공비 협력자 187명을 군법회의에 넘겨 처형한 사건'이라고 했다.

공포에 의한 두려움이 광기가 되어 힘없는 사람들을 몰살시킨것이다.

"오호 애재라. 오호 통재라.그 당시의 가해자는 이민족이 아니었으며 우리 동포의 손에 의한 것이고, 그 수난 장소가 고국산천 정든 고향이었으며,총이나 칼무기는 말할 것도 없이 곤봉이나 젓가락 가지지도 않은 적수공권의 양같이 순한 인사들이었고,수난 중에 한사람이라도 반항하는 이나 거역하는 이가 없었고..."

60년 거창 양민학살 희생자 합동묘지 제막식에서 낭독된 추모사의 일부이다.아무리 대의명분이 뚜렷해도 "아름다운 전쟁은 있을 수 없다.

그곳은 킬링벨리이며 콜래트럴 데미지 (Collateral Damage)치고는 너무 큰 희생이었다.사람이 죽을때 자신만 죽으면 되는데 자식까지 죽이는 행동,혹은 옛날 반역을 하면 3족을 죽여 없애는 멸문지화,통비분자를 없애기 위해 마을전체 주민을 죽이는 멸민지화,후세인 같은 독재자를 죽이기 위해 나라전체에 폭탄을 터트리는 미국을 보며 인간이 얼마나 모순덩어리인지 생각케한다.한마리의 나비의 날개짓이 중국에 태풍을 가져올수있다는 카오스이론을 증명하듯 한명의 독재자 때문에 나라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것을 보면 빈대 한마리 잡기위해서 초가삼칸을 태우는 것은 이해하기 쉬운 상식의 세월이다.

난 오늘 그곳을 두려운 마음으로 찾아간다.

08:00
오늘도 시민회관에 여유있게 가니 박사님.진우씨.선생님 일행.선희씨.최대원외 별로 아는 사람이 없고 오늘 산행인원도 단촐해서 좌석이 헐빈하다.월여산으로 가면서 시원한 버스내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음악도 들으며 차창밖을 보는데 비온후 초록은 더욱 산뜻해져있다.

10:39~42
인원점검을 끝내고 산행들머리로 접어드는데 고향같은 촌동네의 평안함이 외가집에 온듯 정답다.



10:45~52
농로를 따라 걷는데 정말 십여년만에 보는 나팔꽃이 보이고 원만지 저수지를 지난 조금 더 가니 산나리꽃도 더위를 잊게 한다.





11:10~11
무리지어 피어있는 들꽃과 엉겅퀴라고 기죽을 수는 없지?


:::개망초군락

풀꽃은 꼴지라도 기죽진 않는다-정채봉 글

아버지가 공부를 못해 기가 죽은 아들을 데리고 산길을 가며 말했다.
“저기 저 언덕을 보렴. 산나리 꽃이 우뚝 솟아 피어 있지?
그렇다고 그 곁의 도라지 꽃이 키가 작다고 기죽어 있니?
아니 들국화나 고들빼기를 봐라. 저마다들 자기 꽃을 당당히 피우고 있지 않니?
가슴을 펴라.”


11:20~11:30
오른쪽으로 보이는 저쪽이 탄량골이라고 생각하니 초록빛 산이 붉은 피빛으로 일순 보이는 느낌이 들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길이 뚜렷하지 않아 중간중간 길이 끊어지는데 그만큼 월여산은 아직 미답지이다.어느길이 맞을까? 고민한후 결국 넓은 지역까지 올라간다.




11:32

오! 반가운 나리꽃이 또 보인다.최근 인터넷 검색으로 안것이지만 나리꽃의 원조는 한국이라고 한다.내용을 조금 옮겨보면...
..........
네덜란드는 튤립꽃의 나라라고 누구나 알고 있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어째서 그 나라엔 화려한 튤립꽃으로 뒤덮였는가 부러워했다.그런데 얼마 전에 안 일인데 그 화려한 튤립은 터키에서 아주 보잘 것 없이 자라는 들꽃을 가지고 가서 품종 개량을 거쳐 아름다운 튤립이 된 것이란다.

요새 우리 나라 꽃농사를 짓는 분들이 네덜란드에서 백합이라고 하는 나리꽃 종자를 수입해서 심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나리꽃의 원조가 바로 한국의 산나리꽃이라는 것이다.

처음엔 약간 어이없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나리꽃의 서양이름이 떠올랐다. 릴리(lily)라는 꽃이름이 나리와 너무 닮았다. 일본에서도 百合이라고 쓰지만 부르기는 유리라고 한다. 나리, 릴리, 유리, 대체 나리꽃 이름의 고향은 어디일까?

일본에다 아는 분께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일본에도 [야마유리]산나리꽃이 자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수수꽃다리를 미국에 가져가서 세계에서 가장 향기 좋은 꽃으로 만들어 수출을 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가져다 정원수로 심는데 그 이름이 〈미스킴 라일락〉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꽃이 외국으로 가서 새롭게 둔갑을 거쳐 남의 꽃처럼 도로 가져다 구경하고 있다.다행히 우리 산나리꽃도 우리 손으로 훌륭한 꽃으로 개량되고 있다니 다행이다.

훌륭한 꽃이란 본디 있던 그 모습 그대로가 가장 훌륭한 것이지만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니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도 품종 개량을 하겠다는 세상이지 않는가.
..........


11:41~12:09
우거진 나무숲을 지나 이제 산 위쪽과 산아래쪽 신기마을 방향이 훤하게 보인다.



12:10
바위틈 앙증맞을 정도로 작은 소나무가 보이는데 어랍쇼....솔방울이 있다.이제 더 이상 힘든 삶을 살수 없으니 나의 자식이나 퍼뜨리자는 심산인 모양인데....


12:37~38
드디어 정상 가까이 올랐다.정상표지석이 없어 정상에 올라섰는지도 모르고 진행했는데 두번째 봉우리에서 방금 지났던 봉우리가 산정상이라고 한다.월여산은 3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삼봉산으로도 불리고 무학대사가 금계포란형이라 지목하여 유명한 풍수가들이 즐겨 찾곤 했다는 산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곤 합천호방향과 뒤쪽 정상을 배경으로 산진을 찍었다.




12:48
세개의 봉우리 지나고 다소 급격한 하산길로 접어드니 억새밭이 보인다.
시원스레 펼쳐진 억새밭 옆 소나무 숲에서 식사를 한다.


12:56~13:59
식사를 하고 능선을 걷는데 엉겅퀴와 산나리꽃과 보랏빛 산수국이 이어지며 들꽃길을 걷는다.



15:01
능선길에서 하산길이 뚜렷하지 않아 희미한 산길을 찾아내려오는데 거의 개척산행느낌이다.가시에 찔리고 잡목에 시달리며 가파른 경사길을 내려오는데 보급투쟁 나온 빨치산의 산돼지행이다.겨우 1시간을 헤맸더니 정상적인 길이 나타난다.


산길

혼자 걸어가는 산길에 바람이 붑니다.
나뭇잎 꽃잎처럼 우수수 떨어집니다.

내가 가는 길
나도 몰라
바위턱에 걸터앉아 사과 하나 깎아먹고
아무 길이나 접어들어 헤매이기도 하다가
씨부렁씨부렁 혼자 욕도 하다가
꼭대기에 이르면

다시
사람 사는 세상으로 터벅터벅 내려옵니다.

16:06~16:12
마을로 내려오니 농로와 경사진 담벽이 꽃으로 단장되어 있어 아름답다.프러스꽃과 접시꽃과 보라색의 도라지꽃도 이쁘다.




16:16~16:42
완전히 하산하여 대기되어 있는 버스까지 왔는데 지도에는 없지만 오래된 월여사 표지석이 있어 이채롭고 산나리가 아닌 나리꽃이 보이고 멀리 월여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17:00
후미가 완전히 하산하여 신원면사무소가 있는 곳까지 나와 하산주를 하고 부산으로 돌아왔다.아직 산길이 뚜렷하지는 않아 고생을 했지만 점점이 이어지는 꽃들과 바람부는 산길을 걸으며 삼림욕을 충분히 만끽하여 기분이 좋았다.오는길에 보니 거창양민학살사건 관련 추모비와 기념관같은 것을 짓고 있었는데 50년만에 이제 한국이라는 나라도 광기에서 벗어나 이제 정상인으로 돌아온 느낌이다.죽어도 흙이 될수 없는 슬픈영혼들에게 누명이라도 풀어줄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긴세월이 필요했단 말인가?

P/S

피톤치드의(Phytoncide)의 효과

산속에 들어가면 숲의 향기가 감돌아 연한 숲내음을 맡을수가 있는데 이러한 향기의 성분이 바로 피톤치드(Phytoncide)입니다.

피톤치드는 [Phyton(식물)과 cide(다른 식물을 죽이다)의 러시아 합성어] 식물이 자라는 과정에서 상처부위에 침입하는 각종 박테리아로부터 자기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발산하는 방향성 물질로 인간의 피부를 자극시켜 소염, 소독, 완화시키는등 약리작용을 할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안정시키고 해방감을 주며 축적된 정신적 피로를 해소시켜 주는 복합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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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을 만난다.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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