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수정초 - 한 송이 꽃에 우주의 비밀이 숨었다 - 김영한

 
 
 
 

(2025.5.18 통도사 비로암과 백운암 사이 좌측 )



나도수정초-김영한

숲속, 빛 한 점 스미지 않는 그늘
바람도 숨죽인 고요한 틈새
나는 문득, 하얗고 투명한
외계의 생명 하나를 만났다

초록의 세상에 홀로 창백한
나도수정초, 그대는
잎도 줄기도 꽃도
모두 달빛으로 빚은 듯
신비롭고 기이한 자태로 서 있었다

광합성조차 거부한 채
버섯의 숨결을 빌려
숲의 어둠을 양분 삼는
은밀한 생존의 방식
나는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우주를 너는 품고 있었다

꽃잎은 종처럼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흰색, 투명, 분홍빛이 섞인
암술머리는 별빛처럼 빛나
이 땅의 것이 아닌 듯
조용히, 그러나 당당하게
숲속에 존재를 새긴다

멸종의 위기, 사라질지 모르는
이 신비로운 생명 앞에서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외계의 꽃, 아니
이 땅의 또 다른 얼굴임을
경외로 바라본다

숲의 그늘,
그곳에만 피는
외계인 같은 너
나도수정초
그 신비로움이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幽谷異卉] - 仙文 金永漢

深林無日影
幽隙絕風吟
忽遇瑩然物
疑是外星琛

綠世獨蒼白
晶草月魄侵
葉莖皆玉琢
奇姿映玄陰

棄光憑蕈息
暗壤秘機深
一蕊藏宙奧
誰知此界心

垂瓣如鐘默
混紅透白襟
蕊芒輝若星
非世祕難尋

瀕絕猶昂首
孤標寫敬畏
暫屏呼吸望
斯土另顏對

幽隅生異艷
月魄化晶魂
神祕銘心久
長思外星痕

 
 

深林無日影 심림무일영
幽隙絕風吟 유극절풍음
忽遇瑩然物 홀우영연물
疑是外星琛 의시외성침

綠世獨蒼白녹세독창백
晶草月魄侵 정초월백침
葉莖皆玉琢 엽경개옥탁
奇姿映玄陰 기자영현음

棄光憑蕈息 기광빙진식
暗壤秘機深 암양비기심
一蕊藏宙奧 일예장주오
誰知此界心 수지차계심

垂瓣如鐘默 수반여종묵
混紅透白襟 혼홍투백금
蕊芒輝若星 예망휘약성
非世祕難尋 비세비난심

瀕絕猶昂首 빈절유앙수
孤標寫敬畏 고표사경외
暫屏呼吸望 잠병호흡망
斯土另顏對 사토령안대

幽隅生異艷 유우생이염
月魄化晶魂 월백화정혼
神祕銘心久 신비명심구
長思外星痕 장사외성흔

《幽谷異卉》 뜻풀이

"幽谷異卉(유곡이훼)" : 깊고 어두운 골짜기에 핀 기이한 꽃


深林無日影 : 깊은 숲에 햇빛 한 점 비치지 않아
幽隙絕風吟 : 바람도 멈춘 고요한 틈새에서
忽遇瑩然物 : 문득 반짝이는 것을 마주하니
疑是外星琛 : 외계에서 온 보물인 줄 알았네

綠世獨蒼白 : 푸른 세상에 홀로 창백하게 서 있고
晶草月魄侵 : 수정 같은 꽃에 달빛이 스며들었네
葉莖皆玉琢 : 잎과 줄기는 모두 옥으로 깎았나
奇姿映玄陰 : 기이한 모습이 어둠에 비치네

棄光憑蕈息 : 광합성 버리고 버섯 숨결에 의지하며
暗壤秘機深 : 어두운 흙 속에 비밀스런 생명을 품었네
一蕊藏宙奧 : 한 송이 꽃에 우주의 비밀이 숨었으니
誰知此界心 : 이 세상의 진리를 누가 알리오

垂瓣如鐘默 : 꽃잎은 종처럼 조용히 아래로 늘어지고
混紅透白襟 : 흰색과 분홍빛이 섞인 속살
蕊芒輝若星 : 암술머리는 별빛처럼 반짝이니
非世祕難尋 :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신비로워라

瀕絕猶昂首 : 멸종 위기에도 고개 숙이지 않고
孤標寫敬畏 : 외로운 모습이 경외심을 일으키네
暫屏呼吸望 : 잠시 숨을 멈추고 바라보니
斯土另顏對 : 이 땅의 또 다른 얼굴이로다

幽隅生異艷 : 어둔 구석에 핀 기이한 꽃
月魄化晶魂 : 달빛이 수정의 혼이 되었네
神祕銘心久 : 그 신비로움이 마음에 새겨져
長思外星痕 : 오래도록 외계의 흔적을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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