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鸛雀樓 (등관작루) 관작루에 올라 -왕지환(王之渙)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백일의산진 황하입해류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

해는 산에 기대었다가 사라지고,
황하는 바다에 들어가려 흘러가네.
멀리 천리 바깥을 더 보려고,
다시 누각 한 층을 또 오르네.

 
 
 

* 어구(語句)

鸛雀樓 : 산서성 永濟市(영제시)에 있는 누각.
白日 : 해. 밝은 해.
黃河 : 중국의 둘째가는 큰 강. 감숙성, 섬서성, 산서성 등을 돌아 하북성, 산동성을 지나 渤海灣(발해만)으로 흘러 들어감.
窮目 : 눈으로 볼 수 있는 맨 끝.

등관작루는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시이다.샨시성(山西省) 서남부 황새 서식지 갈대숲에 세워진 3층 누각 관작루는 무창의 황학루, 동정호의 악양루, 남창의 등왕각과 함께 중국 고대의 4대 누각으로 꼽힌다. 멀리 중조산(中条山)과 마주하고 굽이쳐 흐르는 황하가 내려다보여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시문과 서화를 남긴 곳이다. 왕지환은 20세가 되기 전에 문리를 깨우친 수재였다. 기질이 호방하여 일찌감치 관직을 내던지고 십수 년간 천하를 주유하며 인구에 회자되는 명구를 도처에 남겼다.

왕지환의 '등관작루'는 관작루를 소재로 한 30여 시 중 최고 걸작으로 중국인 애송시 No.4다. 특히 마지막 구절
'更上一層樓'는 이 시를 천고에 빛나는 절창의 반열에 오르게 했으며 '한 단계 진일보하다', '더 큰 성과를 올리다', '현재보다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간다'는 뜻의 성어로 자리잡았다. 각종 광고 문구로 많이 활용되고 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건배사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 왕지환[ 王之渙 , wáng zhī huàn ] 688년 ~ 742년 (당나라)

오언시에 능했던 성당시대 시인
강주사람으로, 일찍이 병주에서 강주로 이주했다. 자는 계릉(季淩)이다.

그는 기주에서 형수(衡水, 헝수이)현 주부)로 있을 때 형수 현령으로 있던 이척장(李滌將)의 셋째 딸과 결혼했다.

왕지환은 평소 원대한 뜻을 품고 있었으나, 벼슬 중 무고를 받는 등 현실에서의 좌절로 관직을 버리고 비분강개하며 집에서 15년 동안 은거했다가 후에 문안의 현위(縣尉, 현령의 보좌관)가 되었다.

왕지환은 문장에 정통하고 또 시를 잘 썼는데, 특히 오언시에 능했다. 그의 시는 당시의 악공(樂工)이 제작한 가곡(歌曲)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는 서북 변방의 풍광을 잘 묘사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시는 겨우 6수에 불과하지만 그의 대표작인 <등관작루>의 “천 리를 다 보고 싶다면, 다시 한 층루를 오른다”라는 시구는 널리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이 밖의 작품으로 <송별(送别)>, <양주사(凉州詞)> 2수, <연사(宴詞)>, <구일송별(九日送别)> 등이 있다.

한편 그는 성격이 호탕하고 항상 검을 가지고 다녔다고 하며, 왕창령, 고적 등과 같은 시인들과 교류하여 명성을 떨치다가 벼슬 중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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