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섬진강 따라 흐르는 역사문화답사


- 언제 : 2019.11.2(토)  06:20~21:00
- 날 씨 : 대체로 맑음
- 몇 명: 40여명(고적답사회 동행/인솔:최영호 교수님)



▷ 답사일정


답사지역 부산→ 옥과향교 무후사 석곡 석조여래입상 →점심:석곡 돼지한마리(흑돼지석쇠구이)
→ 가곡리5층석탑(오산면)->가곡 석장승→  태안사 능파각 태안사(泰安寺 : 9산 선문)
태안사 광사자대탑→태안사 적인선사탑→ 조태일시문학기념관→ 대황강 출렁다리부산



곡성으로 고적답사를 간다고 하니 영화 곡성(2016,哭聲)을 보고 온 분도 계신다.
영화 곡성은 "곡소리"를 의미한다.
제사나 장례를 치를 때 내는 소리.
가장 대표적인 곡성으로 "아이고
"가 있다. 아이고는 상주가 내는 곡성이고,
조문객들은 '어이 어이'하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차이를 보인다.


소리내어 울 곡(哭)에 소리 성(聲)으로 이루어진 곡소리와
라남도 곡성(
谷城)과는 동명일뿐 한자로 보면 완전히 의미가 달라진다.


전라남도 곡성은 산지가 75%,강이 10%라고 하니 자연지형이 
골짜기()가 많아서 결국 이런 이름이 지어졌을 것이다.

예전 조선시대 이전엔 골 곡(
)대신에 곡식 곡(穀)을 사용한 적도 있지만 
산과 강이 85%가 된다면 곡식이 그리 많이 날리가 없었고 옛날 
곡식 곡(穀)을 명칭에 사용할때는 곡식이 풍부한 곳으로 오해를 받아서
세금 징수가 과했던 탁상행정의 폐해를 당한 적도 있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다.


여하튼 지금은 골짜기가 많다는 곡성(谷城)을 사용하는 것은
지형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옥과향교(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옥과리 14-1)


현재 곡성에는 곡성향교와 옥과향교가 둘 있는데 원래 옥과향교는 곡성이 아닌 
담양에 속했다고 한다.

입구의 당간지주 비슷한 석재는 과거 홍살문의 주춧돌이었지만
지금은 위치를 계단 앞에 옮겨 오는 바람에 뭔가 생뚱맞은 느낌이 난다.


앞에는 현감들의 비석이 몇개 놓여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에 또 많은 비석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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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 중에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존재 위백규의 거사비가 있다.
최근에 존재 선생의 후손들이 세웠다고 하는데 존재 위백규가 여기 옥과에서
현감을 지냈다고 한다.


존재 선생은 다산 정약용보다 25년 앞서 실학자로서 학문의 기틀을 세워
실행한 분으로 실학의 효시를 이루었다.
조선후기 『존재집』, 『정현신보』,
『본초강목』 등을 저술한 실학자다.


위백규의 "입춘"이라는 시를 보면 첫줄에 자신의 호와 같은 존재가 나온다.
존재는 5살때부터 이미 천재시인의 면모를 보였다.



夜氣猶存際(야기유존재)
밤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을 즈음이


東君始到時(동군시도시)
비로소 봄기운이 찾아오는 때로다

吾之禱久矣(오지도구의)
내 기도 이토록 오래 되었으니

先聖豈余欺(선성기여기)
어찌 옛 성인인들 나를 속이겠는가

 


(현감존재위공백규거사비)
거사비는 공덕비와 같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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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과향교 뒤 대성전 뒤로는 몇백년 된 것으로 보이는 벚나무들이 줄을 서 있다.
여기 옥과에서는 봄에 가장 먼저 피는 벚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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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강이 많은 곡성은 안개가 잦다고 한다.
역시 기온차가 큰 상황에서 물이 있으면 안개가 잦을 수 밖에 없다.


아침에 안개가 자욱할때는 으슬으슬 추운 이유는 매개물질(매질)로 보면 물이 공기보다 
25배 열 전달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분이 많은 안개 낀 상황에서는
열을 뺐는 속도도
그냥 공기 보다는 훨씬 빠를 수 밖에 없다.


보통 안개는 기온차가 크고 수분이 충분할때 잘 생긴다.

그래서 안개가 끼면 한치 앞을 보지 못하지만 하늘의 태양이 비춰주기 때문에
안개가 걷히면 맑은 날을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 
죽, 안개 낀 날은 곧 날이 맑아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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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후사:곡성 오산면 


무후사는 제갈양을 모신 사당이다.제갈양은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승상으로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제갈공명이다.


선조(宣祖)가 북쪽으로 피난 중 영유현 서쪽에 와룡산(臥龍山)이라는 산이 있어
산 이름이 제갈량의 호(號)인 와룡과 
같아서 제갈량을 봉사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원래는 와룡사(臥龍祠)였으나 뒤에 무후사(武侯祠)로 불렀다고 한다.


1948년과 1985년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영정은 내가 영화에서 본 제갈양의 이미지와 달라서 오히려 믿음이 갔다.







▷석곡 석조여래입상 : 전남 곡성군 석곡면 석곡리 2822   


석조여래입상은 마멸이 심하여 각 부의 조각이 뚜렷하지 못한 상태로 사진에 담지 않았다.
다만 여기에 얽힌 전설은 들을만했다.

어느 부유한 가정에 도승이 구걸을 왔는데 그 집 며느리가 인색한 시아버지 몰래
곡식을 주자
도승이 말하기를 이 집에 곧 재앙이 있을 것이니 급히 북쪽으로 피난을 가되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후 천둥, 뇌성과 함께 부부는 헤어져 서로 찾으려 뒤를 돌아보았는데
남편은 죽산리 석조 미륵으로 변하고 부인은 아이를 업은 채 석곡리 석조 미륵으로 변했다고 한다.


뒤를 돌아보고 석상이 된 것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내용과
오버랩된다.





점심:석곡 돼지한마리(흑돼지석쇠구이)

   석곡 시장 근처로 여기 이외에도 흑돼지를 판매하는 것이 상당히 많다.
   가격은 1만원에 밥값 별도 1000원. 
  




가곡리5층석탑(오산면):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가곡리 2


‘옥과는 피난처로 안성맞춤’이라 하였던 『정감록비결』의 말마따나
숱한 외침을 겪었던 이땅에서 옥과만은 여태 전란으로 인한 피해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도로에서 한참을 들어가보니 가곡리5층석탑의 모습이 보이는데 
조각수법이 정연하고 투박한 멋을 풍긴다.
고려 때 만들어 세운 탑으로 추정되는데
탑신의 안쪽으로 들어간 모습이 감실 같은 분위기이다.





큰 버스가 아슬아슬 다른 차를 피해서 가느다란 길을 따라
가곡리 들목에 다다르면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인사하는 돌장승을 만난다.


할배 장승은 세가닥 수염이 귀엽고,할매장승은 퉁방울 눈에 
둥그런 삼산()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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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안로 622-215 (원달리), 태안사


태안사는 동리산파의 개산조인 혜철국사()가 머물렀던 이 절에 

윤다가 132칸의 당우를 짓고 대사찰을 이룩하였던 곳이다.

고려 초에는 송광사·화엄사 등 전라남도 대부분의 사찰이 이 절의 말사였으나,
고려 중기에 송광사가 수선(
)의 본사로 독립됨에 따라 사세가 축소되었다.


○태안사(泰安寺)

대안사(大安寺)․태안사(太安寺)라고도 하며,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동리산(桐裏山)에 위치한 사원으로,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 통일신라 때인 경덕왕 1년(742) 세 신승(神僧)들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적인선사(寂忍禪師) 혜철(慧徹)이 머물며 9산 선문(禪門) 가운데 동리산파(桐裏山派)를 처음 열은 이후, 고려 태조 때 광자대사(廣慈大師) 윤다(允多)가 132칸의 당우를 짓는 등 크게 중창하여 동리산파의 중심 사찰로 삼음. 고려 중기에는 송광사가 수선(修禪)의 본사로 독립되면서 사원의 세력이 축소. 조선시대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 : 태종의 둘째 왕자)의 원당(願堂)으로 조정으로부터 지원.

문화유산으로는 적인선사 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 : 혜철의 부도, 보물 제273호), 광자대사탑(廣慈大師塔 : 윤다의 부도, 보물 제274호), 광자대사비(보물 제275호), 청동대바라(보물 제956호), 천순명동종(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중요 능파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 일주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 등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 塔 


태안사가 시쳇말로 가장 잘 나갈때가 바로 광자대사 윤다스님 시절이었다.
바로 뒤에 광자대사탑비도 있는데 총알 맞은 자리 등 훼손이 된 곳이 있다.



부도밭이 절 안쪽에 있는 등 뭔가 전제적으로 사세가 축소되면서 
임기응변식으로 유물을 옮긴 듯한 느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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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선사탑 [ ]


보물이지만 국보급이다.1200년 되었다고 하는데 보호비각 안에 있었기 때문에 
상태가 너무 좋아서 불과 100년도 안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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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대바라는 사진으로만 보고 태안사를 떠난다.


하산하면서 연지의 탑과 다리에서 함께한 초등생 여학생 4명을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그만 탑과 다리 반영에 신경을 쓰다보니 너무 작게 나왔다.

학생들이 풍경 속의 풍경이 되어 버렸다.








▷조태일시문학기념관: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안로 622-38


저항시인 조태일 시 문학 기념관이다.
곡성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난 분이다.

시인이니 그의 시 한수를 소개한다.



가을 앞에서 - 조태일


이젠 그만 푸르러야겠다.

이젠 그만 서 있어야겠다.

마른풀들이 각각의 색깔로

눕고 사라지는 순간인데

나는 쓰러지는 법을 잊어버렸다.

나는 사라지는 법을 잊어버렸다.

높푸른 하늘 속으로 빨려가는 새.

물가에 어른거리는 꿈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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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일 초상화 옆에 인능홍도가 보인다.

: "人, ."
(자왈: "인능홍도, 비도홍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도를 넓힐 수 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혹은 "사람이 길을 넓혀 가는 것이지 길이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용산재: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신숭겸로 226 (목사동면)


용산단과 악강유허비각


신숭겸이 탄생한 곳이다. 장절공 신숭겸 장군.
장절의 뜻은 '장한 절개' 라는 뜻으로 왕건이 직접 
신숭겸과 김락에게 내린 시호이다.

이후 고려 예종이 도이장가(悼二 )를 직접 불렀다. 

도(悼)는"슬퍼 할 도"로 애도哀悼 할때 쓰는 한자이다.




○신숭겸(申崇謙)

처음 이름이 능산(能山)이며, 평산 신씨(平山申氏)의 시조. 곡성현(谷城縣 : 지금의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 또는 광해주(光海州 : 지금의 강원도 춘천시) 출신으로, 궁예의 군대에서 기장(騎將)으로 활동하다가 홍유(洪儒)․배현경(裵玄慶)․복지겸(卜智謙) 등과 함께 태조 왕건을 추대하여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으로 임명되었으며, 태사(太師)를 지낸 무신관료.

고려 태조 10년(927) 고려와 후백제의 공산(公山 : 지금의 대구광역시 팔공산) 동수(桐藪)전투 때 원보(元甫) 김락(金樂)과 함께 태조를 구하다가 전사. 태조 왕건이 장절(壯節)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지묘사(智妙寺 : 지금의 대구시광약시 동구 지묘동 왕산)를 창건하고 명복을 빌게 함. 이후 태조의 사당에 배향되었으며, 곡성지역의 성황신(城隍神)으로도 숭배. 고려 예종은 신숭겸과 김락을 추도하며 향찰로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가요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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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Posted by 세벗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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