冬初(동초) [林居十五詠(임거십오영) 其五(기오)]
-李彦迪(이언적)

紅葉紛紛已滿庭 홍엽분분이만정
階前殘菊尚含馨 계전잔국상함형
山中百物渾衰謝 산중백물혼쇠사
獨愛寒松歲暮青 독애한송세모청

초겨울에 [임거십오영, 다섯째 수] -이언적-
붉은 낙엽 분분히 날려 이미 마당에 가득한데
섬돌 앞에 남은 국화 오히려 향기 풍겨오네.
산중의 온갖 것이 모두 쇠하고 시들어도
세모 추위 이겨내고 푸르른 소나무 사랑하네.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본관은 여강(여주),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 자계옹(紫溪翁)입니다. 경상북도 경주 양동마을에서 태어나, ‘문묘 종사’와 ‘종묘 배향’에 모두 합류한 6현 중 한 명으로 추앙받으며, 영남학파의 창시자로서 한국 성리학과 사림정치의 정착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주요 업적과 학문적 의의
태극논쟁(無極太極論爭)에 뛰어들어 '이(理)'의 우위성을 주장한 '이우위설(理優位說)'을 강조하였으며, '이선기후설(理先氣後說)', '이기불상잡설(理氣不相雜說)' 등 주리론적 견해를 확립했습니다.이러한 사상은 퇴계 이황(李滉)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 성리학의 근간이 되었고, 이후 남인 붕당의 이념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그의 수양론은 하늘과 백성에 순응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을 중시하는 도학적 사고에 입각해 있습니다.
정치 활동과 생애
조선 시대 예조판서, 형조판서, 좌찬성 등 고위 관직을 역임했으며, 인종의 사부로도 활약했습니다.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7년 동안 학문에 전념했고, 을사사화 시기에는 사림을 보호하려 했으나, 관직에서 은퇴 후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다시 유배되었습니다.유배지에서 『구인록』, 『대학장구보유』, 『중용구경연의』 등 주요 저술을 남겼습니다.성격은 비교적 온건하며 과묵하고 예법에 엄격했던 인물로, 사림정치가 위기에 처한 시기에도 큰 틀에서 학맥과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사후 평가
1573년 옥산서원(경주)에 주향되고, 1610년 문묘에 종사됨으로써 학자와 정치가로 동시에 추숭받았으며, 한국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화시유화(畵詩遊畵) 종이책과 전자책 출간
종이책도 (2025.10.16) 출간되었습니다.책 제목은 화시유화(畵詩遊畵)입니다.종이책은 166페이지로 전자책 대비 내용이 절반수준입니다.전자책은 311페이지 분량으로 그동안 직접 촬영했던 사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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