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오봉산▲ 임경대를 찾았다.최치원의 1000년 전행적을그려본다.


- 언제 : 2009.4.11 (토) 09:30~14:00
- 얼마나: 2009.4.11 10:10~13:10
- 날 씨 : 맑음
- 몇 명: 홀로

- 어떻게 : 자가용이용

▷새터산장-(신)임경사-새터산장-임경대정자-임경대-임경대정자

- 개인산행횟수ː 2009-11[w산행기록-224/T714]
- 테마: 답사산행
- 산높이:양산 오봉산 533M
- 호감도ː★★★★★

 


임경대가 어딘가하고궁금했었던 바다.문헌을 찾아보니 임경대가 다섯곳이나 있다.그 중에서 문헌상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아보려고 한다.아쉽게도 경부선철도부설로실제의임경대가없어졌다는설이 가장 유력하다.그것을 빼고 나면 첫째, (신)임경사-예전 경감암-자리.둘째,현재의임경대정자가있는자리.셋째,물금에서 화제리쪽으로 1022 지방도를 따라가면 원동면 경계지점에서 200M되는 곳으로 부산에서 원동으로 향하다가 임경대 정자가 있는 곳 조금 못미친 곳에서 낙동강변으로 내려가면 있는 곳이다.

 

임경대(臨鏡臺),일명 최공대(崔公臺)라고 하는데 황산강(현재의 낙동강) 서쪽 절벽위에 있고 고운 최치원이 놀고 즐기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벽에는 고운의 시가 새겨져 있었으나 오래되어 무너지고 벽서(壁書)는 후인이 황산루에 옮겨 적었다. 이것마저 이제는 남아 있지 않고 시만 전할 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산군]조에는 '황산역 서쪽 절벽 위에 최치원이 노닐며 자연을 감상하던 곳이 있다(在黃山驛西絶壁上崔致遠遊賞之地)'라고 적혀 있으니 사람들은 이곳으로 추증한 것이다. 최치원의 임경대시와 김극기의 차운은 각각 이러하다.


 

고운 최치원의 시는 이러하다.

 

안개 속에 산은 빽빽이 늘어서고 물은 질펀히 흐르는데, / 거울같은 물 속에 비친 인가 푸른 봉우리와 마주하고 있네. / 외로운 배는 바람에 실려 어디로 갔나? / 새는 별안간 날아가 아득하여 자취도 없네.(煙巒簇簇水溶溶, 鏡裏人家對碧峰. 何處孤帆飽風去 瞥然飛鳥杳無종)



밝은 강물 거울 같아 푸르고도 넓은데, / 수면에 비친 외로운 마을 어지러운 봉우리를 등졌네. / 고기잡이 노래 한 마디에 하나의 앞사귀 배, / 푸른 버들 깊은 곳에 사람의 자취도 없네.(澄江瀉鏡碧 溶, 面水孤村背亂峯. 漁唱一聲舟一葉, 綠楊深處少人)


 

최치원은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유명한 분이지만 이분은 나에게도 각별한 분이다.불교에서는 법맥이 있고 학계에서는 학맥이 있듯이 풍류도에도 선맥이 분명히 흐른다.우리나라 선맥은 이러하다.환인은 『환단고기』에서 ‘승유지기(乘遊至氣) 묘계자연(妙契自然)’ 하였다고 전하며, 환웅 역시 주문을 읽고 단을 복용하여 신령한 경지에 다다랐다고 한다. 단군임검 또한 삼국사기에 선인(仙人)왕검이라 칭하고 있다.이후 선(仙)의 맥을 이은 인물들은 이러하다.

 

신채호 선생은 『규원사화』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선(仙)이 한민족 고유의 것이며 이것이 일제치하 독립운동으로까지 이어지는 ‘낭가사상’이라고 보았다.이런 선인들은 한민족 건국과정에서 주체로 참여하였으며 국가의 위란 시마다 구국의 투혼을 보여왔다. 배달국의 제세핵랑군에서 시작된 선인의 맥은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사도, 신라의 화랑, 고려의 국자랑으로 이어지며,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끝으로 은둔의 길을 걷게 된다.

 

을지문덕, 연개소문, 김유신, 우륵, 의상대사, 원효대사, 강감찬, 김시습, 정북창, 이지함, 곽재우, 권극중 등 낯익은 이름들이 선인의 맥을 이은 인물들이다. 이외에도 무명으로 시해선(尸解仙)이나 천선(天仙)이 된 이들은 수없이 많다. 이들은 세상과 담을 쌓고 풍류로써 자연과 벗하다가도 국가의 위난 시나 대변국기에는 어김없이 세상을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함을 꺼리지 않았다.최치원 역시도 「낭혜화상비문」에서 장생을 구하여 학을 타고 날아다니며 고고함을 구하는 중국 선도를 깎아 내리며, 오히려 중생을 구제하여 세상을 위해 몸을 적시는 진정한 선의 길을 제시하였다.

 

나는 선맥을 이은 사람들 모두를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김시습과 최치원을 높이 평가하는 바이다.그분들의 높은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풍류산행을 지향하는 바이니 이름없는 시해선이나 천선이 되도록 노력을 하는 시늉은 내어야 하는 입장이다.

 

풍류인답게 최치원은 현존하는 묘소가 없다.그러나그가 남긴 행적은 상당히 많다.부산과 부산인근의 경우 너무나 유명한 해운대와 최치원이 지리산으로 가기 전 낚시터인 용원의 청룡대각석靑龍臺刻石도 있고 지금 언급하려는 임경대가 있다.임경대臨鏡臺의 중간 글씨인 "경鏡"을 보면 최치원의 천재성이 드러난다.경치를 뜻하는 경치 경景자가 아니다.거울 경鏡자를 쓰고 있다.유장하게 소리없이 흐르는 낙동강물을 거울로 본 것이다.무엇을 비춘 거울이겠는가? 내 생각엔 달을 비춘 거울로 해석하련다.낙동강만한 거울이라면 달 정도는 비추어야 제멋인 것이다.기어코 나는 오늘 임경대를 찾아서 풍류산행의 풍월주 역할과 풍류도의 시자 노릇을 하련다.

 

 

 

먼저 임경대의 위치를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가장 먼저 정진화鄭震和 향토역사가의 노력이
있었고 다음으로 송희준宋喜準님의 논문이 있었으며 이 기록들을 토대로 청미르님의 산행기에서도
언급되었다.이분들의 기록을 모두 100여장 인쇄하여 오늘 답사를 떠났다.

 

먼저 부산일보사의 양산 오봉산 산행기 지도에 나타난 임경대를 먼저 찾아 가보기로 하였다.
네비게이션 목적지를 "새터산장"으로 맞추었더니 남양산 톨게이트를 통과한 후 부산대 양산캠퍼스
를 가르고 도착한 곳은 용국사 사찰입구 근처였다.새터산장 옆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산으로
오르다 30여M 지점에서 노란 리본과 큰 바위와 멋진 소나무가 있는 우측으로 방향을 틀고 계속
오르면 된다.키 큰 소나무 덕분에 그늘이 져서 좋지만 날씨가 완전히 여름날씨다.나름대로 더위를
대비한 복장을 했지만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노년의 산객 네분이 함께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기 좋다.체육공원을 지나 안부에
다다르면 이곳이 해발 260M 정도된다.여기서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낙동강 방면으로 좀더 진행
하면 흐름한 임경사를 알리는 팻말이 나타나고 다소 흐릿한 산길이 이어진다.









너덜지대가 나오면서 조망이 터지는데 반가운 낙동강이보인다.여기서 너덜지대가 끝나는
지점에서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절벽이 나오는데 상당히 위압적인 모습이다.















사찰이 있음을 암시하는 연등이 보이는 지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레미콘 공장이 보이고
국도변으로 초록색으로포장된 먹거리 차량 뒤로 임경대 나무정자가 보인다.


잔뜩 기대감을 갖고 고개를 횡단하고 보니 흡사 고물상 같은 무질서한 모습에 기대감이
줄어든다.이곳은 (신)임경사였다.예전 경감암 자리로 임경사와는 관련이 없는 곳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임경대 각석을 확인한다.주지스님은 연등을 손질하다가 나를 보고 "어떻게
왔느냐"고 물어서 합장예경하고 "문헌을 참조해서 찾아왔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습니다."고
했더니 빙긋이 웃는다.이런걸 염화 시중의 미소라는 것인가?

임경대 각자 아래 文昌侯孤雲先生杖履之所라고 하여 쉽게 말하여 최치원이 산책하던 곳이라는 의미다.
장이杖履는 지팡이와 신발이라는 의미로 산책을 의미한다.최치원의 시詩와 후손의 이름들이 나열된다.
이곳은 최치원의유적지가아니라최치원후손의 유적지다.쉽게 말하면 최치원의 후손들도 임경대 위치를
몰랐다는 의미가 되니 생각하기 나름으로 보면 부끄러운 흔적이다.경주 최씨 문중에서 이곳을 임경대라고
조작했다는 것으로 정진화씨의 주장에 송희준씨는 동의하고 있다.

 

이런 절벽의 암자까지 찾아왔으니 약간의 시주라도 하고 싶은데 개들은 쉴새없이 짖어대고 온통 청소가
덜 된 모습이라서 빨리 자리를 피해준다.이곳은 너무 경사가 져서 오르기 힘들고 여러사람이 앉을 자리
가 부족하여 임경대의 위치로서는 맞지 않는 곳이다.무엇보다 문헌이나 시에서 보이는 임경사 절 뒤로
절벽이라서 대나무도 보이지 않으며 발 아래로폭포도보이지않는다.

 









올라갔던 길 그대로 내려와서 새터산장에서 차를 타고 임경대 나무정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정자안에는 최치원의 시가 걸려있고 낙동강 방향의 조망은 (신)임경사의 조망보다도 못하고
낙동강 반대방면으로 바라보니 깍아지른 절벽 끄트머리에 내가 다녀 온 (신)임경사 절집이 보인다.

여기에서 정자 옆 트럭 간이식당에서 국수 한그릇을 사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공부했던
부분을 상기한 후 전체적인 산세를 파악해본다.









임경사 나무정자와 낙동강 사이이며 계곡이라면 임경대 아래쪽인데 가장 가까운 능선은 좌측에 보인다.
일단 임경대 나무정자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니 키 큰 산벚꽃이 연신 꽃잎을 날리고 있는데 철조망이
보인다.넌지시 철조망 안을 들여다보니 길이 보여서 철조망을 통과하고 30M정도 진행하니 한 기基의
묘소가 보이는데 문헌에서 보았던 여강 이씨의 묘소이다.이렇게 되면 의외로 쉽게 찾겠는 걸 하며
좀 더 아래로 내려가니 눈이 번쩍 뜨이는 장소가 보인다.직감적으로 바로 여기다라는 느낌이다.


임경대,최공대다.바로 여기다.낙동강 조망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이다.이제 증명을 할 폭포와
임경암 폐사지 흔적을 찾아보아야 한다.



























위는 20명 이상 앉을 수 있는 넓직한 반석인데 아래로 내려오니 영락 없는 대臺의 모습이다.
"새는 별안간 날아가 아득하여 자취도 없네" 정도는 된다.


약간 아래로 내려가보니 철길이 보이고 뚜렷한 계곡의 모습이다.여기선 대나무가 보여야 하는데
이미 대나무는 계속 보였었다.그리고 뚜렷한 건물 기초의 흔적이 계단식으로 있고 그 아래로 폭포의
모습이다.지금은 가물어서 폭포의 모양새가 아니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정말 멋진 폭포의
모습이다.

 

"시집초:에 보면 이상구李庠久의 7언율시가 있다.차가운 소나무,성긴대나무가나온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함께 있는 모습이다.



















조선시대에 임경대의 위치를 고증할 만한 내용으로 정범조鄭範祖(1723~1801)의 시가 있는데
여기서 폭포와 골짜기가 언급된다.이것과도 부합하는 자리다.





사진으로 보아서는 폭포 같지 않고 단지 와류같지만 실제로 보면 제법 고도감이 상당하다.
이 사진들은 아래로 내려가기 엄두가 안나서 위에서 아래로 보고 찍은 사진이라서 사진이
실제보다 왜곡되어 보일 뿐이다.







임경사 혹은 임경암 터 흔적으로 보이는 곳이다.뚜렷한 기단들이 보인다.

임경대는 원래의 대臺 위에 돌을 쌓았다고 했는데 쌓았던 돌의 흔적인가?



여강 이연상의 묘소아래로 역시 여강이씨 후손들의 묘들이 안장되어 있다.
새 비석은 건국훈장을 받았서 최근에 만들어진 비석이다.위에 한기가 더 있다.

임경사가 폐사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1998년 물금읍지에 물금읍 가촌리 신기에 사는 조용하의 구전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임경사가 망한 이유는,여강이씨연상이양산군수를하였다.그는이곳이대명지
大名地암을 알고 그 곳을 묘터로 잡으려고 수청 기생을 데리고 가서 개를 잡아먹고 늘 소란스럽게 놀았으므로
신도들의 발길이 끊어졌다.그러므로 절이 망한 것은 그 곳에 묘터를 잡기 위한 군수의 작전이다.".이것이 사실
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연상의 묘소가 바로 뒤에 자리잡고 있다.

 

구전이 사실이라면 절터를 빼았았지만 후손은 독립운동으로 빚을 갚은 느낌이다.

 

다시 위로 올라가서 이연상의 묘비 옆을 보니 문헌의 내용이 그대로 나온다."공의 묘는 양산군 치소 서쪽
임경대 갑좌甲座의 언덕에 있다."는 의미의 한문글씨가 보인다.

 

 





만족감을 가지고 도로로 나오는데 임경대 유적지 정비사업 안내문이 걸려있다.
제대로 된 임경대를 보았다는 확인서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해 본 임경대는 풍류의 관점에서 최고의 가치를 낼때는 언제인가하면

비가 사흘 온 후에 날이 개이고 바람이 약간 불고 보름달이 떠서 낙동강에 비칠 때이다.

 

왜 그런가하면 일단 비가 사흘정도는 와야 폭포가 제 이름 값을 한다.야밤에 막걸리 통을
붙잡고 바로 아래 폭포소리가 어느 정도 나고 대나무 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도 사각거리며
나야만 술 한잔 하더라도 절집에 민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고,시조한수읖조리더라도괜찮은것이다.
그기에교교한 달빛이 낙동강 수면에 얼굴을 비출 때야말로 말 그대로 임경대인 것이다.

 

아마도 최치원은 임경사에서 하룻밤 묵으려다 달빛에 이끌려 임경사 절뒤로 올랐을 것이고
주지스님 몰래 대臺 위의 너럭바위에 앉아 술 한통을 비우다 이곳에 풍류의 영역표시로
임경대라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임경대의 절대미의 최소한의 조건은 "낙동강,폭포소리,명월"이라고 보는 것이다.

 

내 언젠가 이런 조건이 맞추어진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여기에 와 볼 심산이다.

 


洛江歸帆 낙동강상에 돌아가는 돛대며
臨鏡曉鍾임경대상에 들려오는 새벽 종소리로다
五峰歸雲오봉에 돌아가는 구름이며
鷹岩落照매바위에 비치는 저녁노을 붉은 빛이로다
中山暮烟중산에 엉켜있는 황혼의 엷은 연기요
狗谷瀑布계곡에 천둥치는 폭포의 우렁찬 소리로다
中峰朝陽중봉에비치는 황홀한 아침 햇살이요
花亭明月花亭에 솟아오르는 교교한 명월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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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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