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너희들은 천지만물과 화해하라.


- 언제 : 2009.4.17 (일) 07:00~17:00
- 얼마나: 2009.4.17 09:30~13:00(3시간30분)
- 날 씨 : 맑음
- 몇 명: 34명

- 어떻게 : 대우증권 경남지역본부 비타민등산레포츠동호회 동행

▷소재사-대견사지-진달래군락지-마령재-유가사

- 개인산행횟수ː 2009-13[w산행기록-226/T716]
- 테마: 봄꽃산행,사색산행,가이드산행,
- 산높이:비슬산 1083M,대견사지1034M
-.가져 간 책:
천천히 걷는자의 행복
- 호감도ː★★★★


 

등산을 시작하여 중간에 활동이 뜸 한적도 있지만 28년 정도 되었다.활동을 시작한 초창기에는다리 힘으로 등산을 한 것 같다.이때는 체력 혹은 기술에 중점을 둔 훈련을 많이 했었다.그러다 10여년이 지난 시기엔 머리로 등산을 하였다.각종 등산관련 서적을 탐독하였으니, 가보지도 않은 곳의 지명도 입에서 술술나오고 등산관련 전문서적을 읽더라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덕분에 산악인은 물론이고 선지식 스님과도 책을 통한 스승들이 이때 많이 생겼다.

 

그런 시기가 상당한 시간 흘러갔었고 이후 눈을 뜬 것이 마음으로 등산을 시작한 것이다.이 시기에 나는 풍류산행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그 속으로 들어갔었다.2003년도 그러니까 내 나이 불혹이 되던 시점이었다.중간중간 세세한 시점은 계속 변화를 했겠지만 크게보면 몸->지식->마음으로 변화를 한 것이다.풍류산행의 과목은 등산은 기본이고 시,사진,차,술,여행,영화,서예,역학,문화유산답사,독서,HAM,정신문화,철학,유불선이다.

 

방향이 그렇게 흐르다보니 마음과 관련된 사색의 등산은 근본적으로는 홀로등산이 되는 "알라인게엔Alleingehn"식의 형태가 되었다.점차 단체산행을 가더라도 남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빨리가든지 아니면 뒤에 처지든지 상관하지 않고 나의 페이스대로만 오르고 내리는 산행을 하였다.결국 단체산행을 가더라도 홀로산행을 간 것과 같은 효과를 낸 것이다.그렇다고 산악회에 민폐를 끼치면 안되니 코스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대강의 산행종료시점보다는 나는 항상 빨리 끝냈었다.

 

내가 어떤 대상을 보고 사진을 찍고 산과 교감을 나누는 시간에 다른분들은 평균적인 속도로 걷고 있음을 보면 처음부터 나는 평균적인 산행을 하기에는 걸림돌이 많았던 셈이다.그래서 같이 단체사진을 찍는 것,함께 식사를 하는 것에도 자유로워졌다.그런 연유로 회사내에 산악회가 만들어졌으나 가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렇지만 여러형태의 자문을 구해오면 언제든지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 조언을 해주었다.그러다 산길파악이안되었든지산행하루전날동행을부탁해서비슬산산행을하게된 것이다.이번 산행은 산행초심자를 배려해서 산행시간을 세시간 정도로 맞추다보니 정상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한다.핵심은 마령재로 하산하는 길을 찾는 것인데 그 부분이 걱정되는 모양이다.나로서는 부담감이 줄어드는 결정인 셈이다.

 

비슬산의 명칭인 비瑟는 비파이고 슬瑟은 거문고로 악기의 이름이다.하지만 비슬이라는 악기는 없다.이산의 본디 이름은 삼국유사에 나타나는데 포산(包山)이었다.지금도 대구인근에는 포산의 지명이 많이 보인다."포산고등학교,포산동물병원,포산개발,포산정"등..포산은 말 그대로 산세가 두팔을 벌려 뭔가를 것같은 형태의 산이기 때문이다.산 아래에서 보든지 산 위에서 보든지 그 말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들판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의 의미다.

 

'포산이성(包山二聖)'을 알아야 비슬산이 보인다.비슬산에는 '포산이성'에 대한 전설이 곳곳에 남아있다. 포산이성은 신라때 성사(聖師)인 도성(道成)과 관기(觀機)를 말한다. 그들은 신라인이며 속세를 떠나 비슬산에서 살았다. 도성은 북쪽 굴에 살았고 관기는 남쪽 마루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 이들은 서로 십리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들은 달밤에 노래하며 왕래하곤 했는데 도성이 관기를 부르고 싶으면 산속의 나무들이 남쪽으로 머리를 숙여 맞는 시늉을 했고, 관기가 도성을 보고 싶을땐 나무들이 북쪽으로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 득도한 이들은 홀연히 사라졌는데 후인들이 도성이 좌선하던 굴 아래에 절을 지어 도성암이라 했다. 관기가 있던 산마루는 관기봉이라 했다.

 

도성암부터 관기봉 사이에는 이상하게도 억새와 칡이 눈에 띄지 않는데 그에 얽힌 사연도 있다. 도성이 관기를 만나러 가다가 길을 잃고 헤맸다는 말을 들은 비슬산 신령(靜聖天王)이 길목의 억새와 칡을 모두 없앴다고 한다. 포산이성이 떠나고 7백년 뒤 고려때의 보선국사 일연이 '포산이성'의 자취를 찾아 도성암에서 며칠을 머물며'찬(讚) 포산이성 관기 도성(包山 二聖 觀機 道成)'을 지어 삼국유사에 남겼다.

 

전체 산행시간을 3시간으로 맞추다보니 비슬산 정상은 가지 못하고 비슬산 참꽃군락지만 보고 마령재에서 바로 유가사로 하산하였다.앞으로도 천천히 걷는자의 행복을 누릴 생각이다.이유는 뜻을 얻으면 말을 잊으라(득의망언得意忘言)고 했으니 더 무슨말이 필요하겠는가?

 

 

 

부산에서 출발하여 차안에서 읽은 책은 김윤환에세이 "천천히 걷는자의 행복"이다.지은이 김윤환은
부산의 대형서점인 영광도서의 대표이사이다.나는 이곳 영광도서에서 자주 책을 구입했는데
그러다보니 영광도서의 VIP회원이 되었다.VIP회원에게는 1년에 한번 세권 정도의 책이 사은품
으로 온다.올해에 배달된 책 세권 중에 두권이 이분의 에세이집이었다.

 

1.5평의 서점에서 현재 빌딩형태의 대형서점으로 키운 경영철학이 담겨있고 중간중간에 눈여겨
보아야 할 글들이 보인다."난 사람보다 된 사람이 성공한다에서는 잔재주가 아닌 사람됨을 강조
하고 있고, 짐은 어깨에 맞추어서 져라에서는 욕망보다는 소박하면서도 속 깊은 메시지가 담겨있다.

 


또한 도반이야기에서 들려주는 아내에 대한 애뜻한 사랑이 담겨있는데 아내인 이경순씨는 연꽃
사진에서 일가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는 부산대 미학박사 학위논문 준비와 시를 공부
하고 있다고 한다.독서습관이 운명을 바꾼다에서는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으며 일상이 되어야
하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 사시사철이 모두 독서의 계절이라고 역설한다.성공하려는 자
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에서는 15년째 이어지는 영광도서 독서토론회와 고원견산을 엄광산으로,
영도 고갈산을 봉래산으로 이름을 되찾아 준 사연이 나온다.

 

나는 이때까지 영광도서는 기독교 색채가 강한 서점으로 알고 있었다.25여년전 누군가 나에게
서면에 영광도서라는 큰 책방이 있는데 책방 이름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의미라고 일러
주었기 때문이다.그런데 막상 당사자의 에세이를 읽고보니 불교적 색채가 강하여 약력을 살펴
보니 과연 "부산불교실업인회장"이다. 여하튼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성향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그의 에세이 "천천히 걷는자의 행복"은 풍류산행 홈페이지 로고 바로 옆에 있는 나의 주장
이었으니 여러 가지로 아이러니를 느낀다.


 

소재사 근처 주차장에서 내려 약간 올라가니 소재사가 보인다.꽃잎의 봄과 신록의 초여름이 만나
화사하면서도 싱그러운 느낌이다.오늘 최고 온도가 28도라고 하니 여름이 성큰 다가 온 것 이다.
부처님 오신날이 멀지 않아서 길가엔 연등도 달려있다.





산길은 흙길이 좋은데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있다.도심의 찌든 공기와 큰크리트 길이
싫어서 산으로 왔건만 산마저 문명의 이기로 멍들고 있다.제법 한참을 진행했는데도
아스팔트길은 아귀의 식욕만큼이나 끈질기게 이어진다.






비슬산에서 자주 보이는 돌강을 이루고 있는 돌들은 모두 핵석tor이다.핵석은 원래 커다란 한 개의
화강암바위가 풍화작용에 의해 수직과 수평으로 깨어진 틈, 즉 절리(節理)가 발생하고 이것이 확대
돼 그하나하나가 독립된 바위(핵석)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부산의 금정산,황령산,장산에서도 여러
번 보았던 터라 정감이 간다.따지고 보면 이곳 현풍도 낙동강 자락이니 친밀감이 가는 것도 당연
하다.

드디어 임도는 우측으로 꺽어지고 우리는 산길로 들어선다.우선 키 큰 수림 덕을 톡톡히
본다.산벚꽃,그림자,육중한 소나무가 자아내는 편안함은 사색의 집중도를 높여준다.

 


다만 낼 모래면 곡우穀雨로 이 시기에는 봄비가 와서 곡식을 자라게 할 시기임에도 그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먼지가 풀풀 날리는 등로이다.

역광에서 다리를 건너는 동료의 뒤를 찍으려고 과감하게 샷을 날린다.역광이지만 노출과 속도를
예민하게 맞추고 샷을 날리는 순간 동료는 직감적으로 사진을 찍는 줄 알고 급하게 돌아보는 바람에
검은 빛 머리카락보다 노출이 훨씬 높은 사람의 얼굴색으로 바뀌었으니 당연 노출은 오버가되고
플로어까지 얻었다.이미 이 상황을 눈치챘는지 사진을 삭제하지 말고 그대로 달라고 부탁까지 하니
미워할래야 할 수 도 없는 상황이다.

 

이후 다시 계곡의 숲으로 진행하며 비슷한 이미지가 이어진다.












드디어 대견사지가 보인다.스님바위는 일어서서 중생들을 맞이하는 느낌으로 서있다.
관기스님이망부석으로변한것인지...

나는 산에서는 말이 없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는데 어떤이는 평소에도 말이 없는 분이 더 말이
없어지는 것을 보면 산행의 부작용인가?

 

꼬끼리바위 넓은 귀에는 문양이 새겨져있고 3층탑 주변에서 보니 우리가 올라왔던 계곡이 뚜렷하고
바위들은 산맥처럼 띠를 잇고 있다.















 

철계단을 오르니 수미산 천상계이다.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 도합 28천이 중생계의 우주 세계이며
지국 증장 광목 다문 중앙에 제석천 등 5천을 합하여 우주 33천이라고도 한다.욕계천도 지거천과 공거천이
있는바 지거천은 땅기운의 범주안에 있는 천상계이고 공거천은 완전히 공중에 거하는 천상계이다.

 


32천세계 분홍물결을 이루는 수미산 중심부에서천국의시간을보내는사람들이보인다.

그렇지만 여러번 비슬산에 왔지만 이번이 꽃의 상태는 최악이다.자세히보니 죽은 꽃나무가 60% 이상이다.
매미태풍때 저렇게 된 이후 아직 온전하게 회복을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곳에 왔으니 꽃이 말하는 소리는 들어야지..식물의 생식기가 꽃이니...
꽃이 말하다 / 문무학詩 / 호들갑 떨지 마라 / 사람에겐 관심없다 / 내 생애 단 한 번만 / 허락된 정사를 위해
감출것 다 드러내놓고 / 부끄러워 죽을판이다.





일행들이 기념 단체사진을 찍고 이제 올라온다.대강의 산세를 알려주고 산길을
알려준 다음 먼저 출발한다.조화봉엔 구조물이 크게 들어섰는데 레일같은
도로위의 석검봉의 위세가 많이 초라해졌다.








마령재에서 유가사로 가는 마지막 길 안내를 가장 후미의 일행에게 해주고 빠른 속도로 하산한다.





유가사에 들렀다.유가종의 유가사는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최근에 조성된 절 입구에 만들어진
시비와 돌탑이다. 시비에는 '비슬산 가는길'과 '찬 포산이성 관기도성'이 음각돼 있다.
컨셉은 시가 있는 등산로인데,어찌 내눈엔 유가사에 있는 대조화의 법어와 상반되는 흐름이다.



자연의 돌과 바위를 샇아 많은 탑을 세우는 것이 과연 천지만물과 화해하는 방법일까?
"찬 포산이성 관기도성"이라고 하여 포산 즉,비슬산의 두 성인인관기와도성스님을찬양하는것이
아니라오히려욕되게하는느낌이다.

 

뒤에는 자연석으로 쌓고 앞에는 수십개의 돌탑과 시비를 쌓는 것을 뒷짐지고
바라보는 스님의 모습이 내눈에 "이것은 아닌데....이 업장들을 다 누가 질것인고..."

 


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도道라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다.
즉, 명확해야한다.어찌 유가사에서는 자연과 화해하라고 가르치고 정작 당사자들은 역행하는지...

 

비슬산이 정말 제물에 비슬거리고 있는거나 아닌지 모를일이다.

 



 



 

산행을 마치고 현풍 할매집 박소선곰탕집에들러수육,곰탕과하산주를하고부산으로돌아왔다.

 

비슬산 구비 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는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을 듯 이어진 길 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찌는 걸까

-무산 오현 선사의 '비슬산 가는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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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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