次奉萬累普淨長老 (차봉만루보정장로) 
허정법종(虛靜法宗) - 고문을 차운하여 읊은 시를 만루 보정장로에게 건네다 -

物外孤閑客 (물외고한객) 
세상 밖의 외로운 길손 한가하니

人間萬事空 (인간만사공) 
인간 세상 모든 일이 속절없구나

冥心坐巖畔 (명심좌암반) 
너른 바위에 앉아 생각이 깊은데

花落又春風 (화락우춘풍) 
꽃이 지고 또 봄바람이 분다

 

 

花落又春風 (화락우춘풍) 을 "봄바람이 불어 와서 꽃잎이 지네"로 해석하면 속절 없음의 확인으로 보입니다.봄바람이 불어와서 꽃잎이 지네로 확인하는 과정일까요? 아니면 속절없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봄바람(又春風)"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노래한 것일까요? 내면의 심경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하고 유추해보았습니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 "花落又春風(화락우춘풍)"—"봄바람이 불어 와서 꽃잎이 지네"—가 시 전체에서 '속절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인지, 혹은 새 봄(희망)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해석은 매우 중요한 감상 포인트입니다.

해석의 갈림길: "속절없음" vs "희망"

  • "人間萬事空(인간만사공)"에서 인간 세상 만사가 "헛되고 무상함"을 깊이 느낍니다.
  • "冥心坐巖畔(명심좌암반)"은 절연된 공간(바위 위)에 앉아 고독한 내면의 사유, 관조의 태도를 보이죠.
  • "花落又春風(화락우춘풍)"은 표면적으로는 봄바람에 꽃잎이 지는 "덧없음"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1. 속절없음의 확인

이 구절을 "모든 것은 덧없다"는 인식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면, 봄바람조차 생명의 끝, 즉 꽃의 낙화를 가져오는 무상함—자연조차 속절없음을 거듭 상기시키는 역할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화자는 세상일의 허무함을 봄까지 확장하여 자연도 예외가 없음을 관조합니다.
→ 이 경우, 마지막 구절은 '속절없음'을 자연의 질서로까지 확대하여 재확인하는 과정입니다.

2. 희망의 내포


반면, 花落又春風(화락우춘풍)직역하면 "꽃이 지고 또 봄바람이 분다"는 뜻입니다 "봄바람이 또 불어온다"는 것은 '또'라는 시간의 지속, 다시 찾아오는 계절의 반복성을 언급함으로써, 비록 꽃은 떨어지더라도 자연은 다시 돌아온다는 순환과 새로운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불교적 윤회관이나 도가적 무위자연의 시각으로 보면, 무상함을 인정하지만 그 속에서 자연의 조화와 변화(새로운 생명과 기회)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 이 경우 화자는 "속절없음" 속에서도 자연의 순환, 새로운 생명, 희망의 기운까지 받아들이는 더 깊은 조화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3.내면 심경의 해석


이 시의 전개는 첫 구(物外孤閑客)에서 속세를 벗어난 고독한 자의 한가함으로 시작해, 두 번째 구에서 인간사의 덧없음을 깊이 체험합니다. 세 번째 구에서 사유는 더 깊어지고(冥心), 마지막에 자연을 마주하는데, 여기서 느껴지는 정서는 단순한 절망이나 허무에서 벗어나 "모든 것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용적 심경"—즉, 무상함을 꿰뚫어본 후의 평온함과 초연함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꽃이 지는 것은 허무이지만, 그것이 곧 새로운 봄바람이고 또 다른 생명의 시작임을 시인은 조용히 관조하며, 자연과 하나 된 자신의 내면을 드러냅니다.
  • 결국, 이 시의 마지막은 "속절없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희망이나 평온"을 느끼는 양면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열린 결말이며, 화자의 심경은 허무를 넘어선 초월의 평안에 더욱 가깝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4.결론

  • 봄바람으로 꽃잎이 지는 장면은 "덧없음"을 다시 확인하는 동시에, 그 덧없음 속에서 자연의 이치와 흐름, 곧 변화와 재생(희망, 새 봄)의 가능성도 담고 있습니다.
  • 화자는 허무·무상을 넘어 자연의 순환을 관조하며, 더 깊은 평온과 초연함에 도달해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시인의 경지에 따라 둘 다가 가능하며, 한국·중국 고전 시에서 흔히 보이는 "무상에서 초월로" 나아가는 자연관이 이 시에도 스며 있습니다.

 

허정법종(虛靜法宗, 1670~1733년)

조선 후기의 승려 문인으로
본관은 완산 전씨이며 자는 가조, 호는 허정이다.13세에 옥잠(玉岑)에게 출가하였다.도정(道正)의 법을 듣고 오도(悟道)한 후, 20세에 월저(月渚)에게 경을 배우고 설암추붕(雪巖秋鵬)에게 현지(玄旨)를 깨달아 인가받았다. 진상(眞常) 내원(內院), 조원(祖院)에 머물 적마다 법려(法呂)들이 많이 모여와 낮에는 경전을 강의하고 밤에는 참선하여 학자를 제접(提接)하였다.그는 청허 휴정-편양 언기-월저 도안-설암 추붕-허정 법종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었다. 법랍 52세, 세수 63세로 묘향산 남정사에서 입적하였고, 묘향산, 구월산, 대둔사, 보현사 등에 비와 탑이 세워졌다. 저서로는 시문집인 『허정집』 2권이 있다. 그의 생애 동안 경전 강의와 참선 지도에 힘썼으며 많은 문도를 두었다. 대표적 저술인 『허정집』에는 다양한 시와 문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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