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영남의 정자문화를 보려면 함양으로 가라.

 


-.일시 : 2008.7.26
-.날 씨: 흐린 후 점차 맑음
-.몇명: 2명
-.어떻게: 자가승용차 이용
-.일정:
안의초교-농월정-거연정-동호정-정여창 고택-용추계곡
-.테마: 문화유산답사

 

 

장마철이라 주말마다 기상상태도 불순하지만 기상대의 예측마저 혼란을 거듭하여 산행을 못한 것은 꼭 아니지만 주말마다 행사들이 겹쳐 산행을 가지 못했다.부친의 생일,그 동안 다니던 불교대학이 막바지에 다다라서 묘허 큰스님으로부터 보살게 수계 등 휴일을 이용해야 하는 날들이 겹친다.

 

최근 큰비가 내렸고 아침부터 날씨가 좋지 않아서 수량이 풍부한 폭포와 계곡 옆 정자를 답사하러 떠난다.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으로 대표되는 무武를 우선시하는 정서 때문에 자객의 급습을 피하기 위하여 집안에 정원을 들여다 놓고,폐쇄적인 다실을 만들어 조용히 즐겼다.그런 반면에 한국은 선비정신으로 대표되는 문文을 우선시하는 정서 때문에 문인적 품격과 자연과 함께 하며 즐기려는 성향 때문에 경치 좋은 곳엔 정자가 만들어졌다.그래서 정자는 사통으로 자연을 볼 수 있게 개방적인 모습이다.

 

호남의 정자와 원림은 이미 예전에 답사한 바 있다.면앙정,송강정,소쇄원,식영정,서하당,환벽당,취가정,명옥헌 등이다.호남의 정자는 자연과 일치된 아름다움과 생활공간 주변에 있어 아늑함이 더했다면 영남의 정자는 호방하고 활달하고 드라마틱한 모습으로 자연을 지배하고 경영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고 한다.

 

온 가족과 떠나고 싶었지만 와이프는 토요일 일터로 나갔고,아들은 자기만의 피서법을 즐기며 따라 나서지 않는다.최근에 죽부인竹婦人 속 한켠에 선풍기가 달린 아이디어 제품이 나와서 하나 장만했는데,더위에 약한 아들이 낚아채 간 것이다.

 

내가 짐짓 아들보고 "총각이 장가도 안갔는데,부인(죽부인)이 왜 필요하냐?"했더니, 아들의 대답이 걸작이다."아빠는 결혼을 해서 부인이 있는데,또 다른 부인(죽부인)이 왜 필요한지요?".이 한마디에 와이프마저 가세하니 나는 논리적으로 K.O되어 죽부인을 빼앗겨 버렸다.그랬더니 녀석은 토요일 늦잠을 즐기는데,속에 선풍기를 틀어 놓은 상태에서 죽부인을 끌어안고 무아지경에 들었다.그러니 결국 역마살과 방랑끼가 있는 나와 딸만이 답사길에 오른다.

 

 

부산을 떠날때만 하더라도 날씨가 흐려 언제라도 비가 내릴 기세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름이 걷히는
모습이었는데 답사 첫 장소인 안의초교에 도착하니 구름 사이로 군데군데 푸른하늘도 보인다.

 

안의초교 교정에는 연암 박지원의 사적비가 있어서 들렀다.연암이 이곳 안의에서 현감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그의 실학사상으로 민생을 돌보며 실천한 곳이며 그의 저술도 이곳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많이
나왔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안의초교는 내가 보아 온 초등학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야트막한 산이 교정 뒤로 빙 둘러쳐 있어
아늑한 느낌이 드는데 대나무,소나무,백양 나무등 키 큰 나무들이 오랜역사를 증명하는 듯했다.그리고 현대적인
건축물과 과거의 건축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졌고,초등학교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인조잔듸가 깔려있었다.


 

교정 우측엔 비가 올때나 날씨가 더울때에도 씨름을 할 수 있도록 지붕이 있는 씨름장이 있고,씨름을 마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담 없는 교정의 경계선엔 키 큰 나무 아래 넓은 평상이 놓여있고, 그 너머 바로 길 옆엔
경로당이 있어서 신구의 의사소통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공간 배치가 되어 있어서 참으로 놀라웠다.



그래서 안의초교는 역사적으로나 지금 현재를 보더라도 어린이들이 역사의식이 저절로 배어들도록 무대가
만들어져 있는 곳으로 보인다.






 


 

 

두 번째 찾은 곳은 농월정이다.안타깝게도 정자는 방화로 소실되어 주춧돌만 보인다.
문화재를 방화하는 인간은 인간스럽지 못한데서 나온다.즉,유교가 말하는 예절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최근에 방화로 소실된 숭례문만 하더라도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인데 불길에 숭례문 현판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 나는 두가지를 한꺼번에 보았다.



숭례문崇禮門의 "예禮"는 예절을 의미하는데 현판이 떨어졌다는 의미보다,
함께 한국인의 "예절"도 땅에 떨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역시 예상대로 비가 많이 온 후라서 계곡의 수량이 풍부했다.그래서 계곡을 건너지
못하고 건너편에서 농월정 자리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화림동계곡이다.그래서 화림동으로 보이는 큰 글자가 보이고 그 위로 세로글씨가
보이는데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구之所라는 글이 보인다."지족당이 지팡이 짚고 신을
끌던 곳"이라는 의미인데 지족당 박명부라는 분이 산책을 하던 곳이었던 모양이다.여기서
"장구"는 지팡이와 신을 의미하는데 "지팡이와 신"은 산책을 의미한다.

 


신을 의미하는 "구"라는 한자어는 요즘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이다.



농월정弄月停은 달을 희롱한다는 의미인데 달을 희롱하며 산책하는 멋이 어울리는 곳으로
이미지화된다.





 



 


 

 

자연이 거주한다는 의미의 거연정居然停은 가장 드라마틱한 모습이다.바위 사이로 빠른 계류가 흐르고
그 바위 위에 정자를 세웠다.나무다리가 아닌 철다리라서 다소 풍광을 해치긴 하지만 그 위치에 정자를
놓겠다는 선인들의 발상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몇그루 소나무로 거연정 앞을 가렸는데,거연정
정자 옆으로 흐르는 깊은 계곡물이 더 시원스럽게 만든다.이곳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앉아서 흐르는 세월을
즐기고 있다.

 

 

동호정은 규모가 가장 컸다.일단 정자라기 보다는 누각에 버금가는 규모였는데 왜 이렇게 크게 지었을까하고
계곡을 바라보니 이해가 바로 되었다.산 아래로 깊은 계곡이 있는데 계곡 중간에 아주 큰 너른 바위가 보인다.
"차일암"이라는 너른 바위가 동호정의 핵심인데,그 바위에 맞추기 위하여 정자의 규모가 함께 커진 것으로
보인다.동호정의 동호湖는 장만리라는 분의 호에서 따온 이름이다.동호 장만리는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 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분으로 지금도 이곳은 장씨 집안이 관리하는 모양이다.유흥을 즐기기 좋은 곳으로,
오늘도 새마을금고 단합대회가 있는지 스피커를 틀어놓고 노래자랑을 하고 있다.



날씨가 더워서 동호정 옆의 할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에 들러 음료수를 마시는데 나와 딸의 모습을 번갈아 보더니
"많이 닮았는데 딸이유,형제지간이유?"라고 묻는다.중학교 2학년 딸을 대학생 쯤으로 본 모양이다.

 

딸의 키가 1M 70을 넘으니 이제 함께 다니기도 부담스럽다.부녀지간이라 많이 닮아서 원조교제 정도로
안보는 것은 다행이지만 형제지간이라니...





 



 


 

 

차를 몰아 안의와 함양사이 지곡면 개평마을로 향한다.이곳엔 정여창 고택이 있다.
양반가옥의 품위가 느껴지고 단정한 느낌을 받는다.솟을 대문아래엔 효자통정대부로
시작하는 글씨가 있는데 충신과 효자라는 글씨로 미루어 보아 집안의 자랑을 솟을 대문에
걸어놓았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사랑채가 보이는데 대감의 갓 같은 시원스런 팔작지붕 아래로 축대를 쌓아
위엄을 한껏 고양시켜 놓았다.절의와 효자라는 큰 글씨가 씌여있어 "뼈대있는 집안"임을
나타내었고,안채로 들어가니 안채 뒤로 장독대가 보이고 장독대 너머 담장 뒤로 단청이 된
사당이 보인다.





 



 


 

 

이제 용추계곡으로 향한다.장수사(용추사) 일주문을 지나니 소나무들의 모습이 보기 좋고
수량이 풍부하여 힘차게 낙하하는 용추폭포와 만난다.15M나 되는 용추폭 위,아래는 피서객
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이곳에서 탁족을 즐긴다.

 


용추폭 아래 신발을 벗어 놓고
흐르는 그 물에 발을 담근다.

 

용추폭포 위로 용추사가 있다.이 절은 신라 소지왕 9년(서기487년)에 각연대사가 창건했던
옛 장수사에 딸린 네 개의 부속 암자 중 하나였는데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남아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 12교구 해인사의 말사이다.

 

실은 이 절도 6.25 당시 전화로 완전히 소실되었었는데,1953년 전쟁이 끝난 후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봉화대에 별원을 차려놓았다가 1959년에 옛 터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함양은 더운 여름날,잠깐의 탈속脫俗을 느끼기 좋은 여정이다.그곳엔 자유분방만이 있는 것은
아니고 위엄과 실학이 함께하며 역사성과 현실성이 절묘하게 매치된 가장 이상적인 곳이다.

 

 

 

천리 벼랑에 옷을 걸고,(振衣千인崗)
만리 흐르는 물에 발을 씻다(濯足萬里流)

-진晉나라 좌사左思의 영사시詠史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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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
,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Posted by 세벗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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