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멋진 절경 속에 인간의 즐거움과 아픔이 공존하니 

 

- 일시: 2023-9-9~10
- 날씨: 대체로 맑음
- 몇명: 홀로

 

 

 

고독의 계절 가을이 다가옵니다.최근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로 부터 외로움에 대한 글을 자주 보게 됩니다.짧은 소견이지만 저의 생각을 글로 써 봅니다.사람은 나이가 50대 이후 60대, 70대로 들어갈수록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의 경험치가 축적되어 판단의 기준이 정립됩니다.그런데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치가 달라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친구지간에도 생각이 완전히 반대가 됩니다.그럴때 외로움을 크게 느끼게 되죠.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간의 생각의 간극이 멀어질 확률이 높습니다.사실 나이 50이상되면 다시 교육을 시켜서 사람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생각이 굳어집니다.이럴때는 상대방이 틀렸다기 보다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고독을 즐기면 됩니다.고독을 즐기면 자유로워집니다.다른 사람의 의견에 맞출 필요가 없어지죠.그래서 저는 나이가 들수록 고독을 즐겨야한다고 믿습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고고(孤高)하게 사는 것을 추천합니다.

 

▷ 답사일정(風輪) :465km

영동 월류봉-반야사-안성식당(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영동황간로 1618)-노근리평화공원(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목화실길 7 비스터쎈)-난계사,난계국악박물관-옥계폭포(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75-1)

 

 

2023-9-9

 

▷영동 월류봉

 

영동(永同)이라는 이름은 느낌적으로는 추풍령의 동쪽인가하고 짐작하게 되지만 주곡천과 양정천에서 나왔습니다.주곡천(主谷川)과 양정천(楊亭川)의 이수(二水)가 합류하여 영동천(永同川)을 이루고 있는데, 이 "二水"를 한 글자로 표기하면 "永"자가 됩니다. 신라시대 길동의 "吉"도 이두문에 따라 발음하면 "길=永"이 되며 영동군의 명칭인 "永同"은 이 "二水"와 "吉同"에서 유래한 것입니다.신라 초에는 길동이라 불리어 오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당시에 영동으로 고쳐 불렀습니다.뜻은 양수리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월류봉(月留峰)의 이름은 이 산에 떠오르는 달의 모양이 아름다워 붙여진 것인데 한천정사 쪽에서 보면 떠 오른 달이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흐르며 계속 봉우리 주변을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몰이 짙어지니 징검다리를 통해 건너갔던 두사람이 되돌아 나오는 모습이 보입니다.오늘 저도 여기 달처럼 머뭅니다. 부산과 달리 여기는 시원해서 좋습니다.2004년 6월에 아들과 함께 월류봉 산행을 위해 왔으니 개인적으로 2번째 탐방입니다.

2023-9-10

일출시각에 맞추어 다시 월류봉이 있는 곳으로 나갑니다.

홍여하(洪汝河, 1620~1674)는 한천 팔경 8개 시를 모두 지었는데 다음은 팔경시 중 〈월류봉〉입니다.

해 저문 빈 강에 저녁 안개 자욱하고(日落江空暮靄橫 일락강공모애횡)
찬 달이 고요히 떠올라 더욱 어여뻐라(更憐寒月靜中生경련한월정중생)
동쪽 봉우리는 삼천 길 옥처럼 서서(東岑玉立三千仞 동잠옥립삼천인 )
맑은 달빛 잡아놓아 밤마다 밝네(留得淸輝夜夜明 유득청휘야야명)

<목재집>은
홍여하(洪汝河)의 문집이고 목재(木齋)는 그의 호입니다.

3구의 三千 뒤의 글자를 유추해봅니다.뜻풀이에서 "삼천 길"이라는 단서가 주어져 있는데 길이의 단위로 "길"은 우리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할때의 "길"입니다.10척(尺)은 한 길이니 한 길은 약3m 정도 됩니다.물론 시대마다 약간씩 다르긴하지만 "길"과 장(丈)은 약3m 정도 되니 같습니다.그런데 3천장( 三千丈)이라고 하면 9,000M가 되기 때문에 문학적인 수사로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이 2,744m인데, 9,000m라면 8,848m의 에베레스트산보다 높습니다.3천척(三千尺)이라고 해도 약 900m 정도 되는데 월류봉은 해발 400m 정도입니다.여하튼 삼천 길이라고 했으니 삼천장(三千丈)이 맞는 문구로 유추됩니다.


* 그러나 "길"은 "높이"를 재는 단위인 仞(인)과 길이를 재는 단위인 丈(장)이 있습니다.

 

仞(인)은 높이를 재는 단위의 "길"을 의미합니다.

丈(장)은 길이를 재는 단위의 한가지로 한 장은 10척입니다.

 

위 시에서는 장(丈) 보다는 인仞이 맞다고 생각하여 최종 東岑玉立三千仞으로 변경했습니다.

(필사)

 

▷반야사

도량으로 들어가니 삼층석탑 뒤로 꼬리가 경쾌하게 들린 호랑이 한마리가 보입니다.

 

운창(芸窓) 박성양(朴性陽, 1809~1890년) 선생은 조선 후기의 문인인데 반야사 정경을 읊은 한시가 있습니다.

般若寺夏日 (반야사하일) /朴性陽(박성양)

- 여름날 찾아간 반야사의 정경을 읊다 -

般寺千年矻 (반사천년골)
반야사엔 천년 된 호랑이 형상의 돌무더기가 있고

華山萬仞高 (화산만인고)
백화산은 만 길 높고도 높은 산이라네

百原探理窟 (백원탐리굴)
온갖 근원 찾아 이치를 탐구하는 동굴은

邵子儘雄豪 (소자진웅호)
소자가 깨달아 웅호가 된 그런 곳이라네

(필사)


...

첫째 줄의 千年矻 (천년골)은 천년된 호랑이 돌무더기를 의미하는데 눈썰미 있는 분은 돌무더기 너덜지대 형상을 보면 보일겁니다. 矻은 "돌 골"자입니다.현장에 가지않고 한시만 들여다보면 천년골을 잘못 해석하여 "천년된
호랑이 돌무덤"으로 잘 못 상상 할수도 있습니다.

 

▷반야사 삼층석탑

보물로 고려시대 작품입니다.원래는 반야사 북쪽 석천 계곡 안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1950년이면 6.25전쟁이 나던 시기입니다.삼층석탑 뒤로 500년된 배롱나무가 보이고 그 뒤로 극락전이 있습니다.

 

500년된 배롱나무 두그루의 가지가 만나 극락전 현판을 가렸습니다.배롱나무 아래 바위에 "하늘에 별빛이 붓질할 때 달에 어린 님 그리노라"는 글이 있습니다.그리움이 묻어나는 문구입니다.

산신각에도 호랑이 그림이 보입니다.

▷반야사 문수전

대웅전 도량에서 냇가로 다가가면 내려가는 길이 있고 좌측에 냇가를 두고 200M 가면 눈맛이 시원한 문수전이 나옵니다.반야사의 절 이름인 반야는 지혜를 의미하고 문수보살은 불교에서 많은 복덕과 반야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니 반야사에서 문수전은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옵니다.

마지막은 가파르게 올라야 하는데 내려와서 위를 올려다보니 처음에 오를때는 보지 못했던 문수전의 지붕이 보입니다.약간 완만한 바위가 있는 곳이 세조가 목욕을 했다는 곳입니다.

 

반야사라는 절 이름은 세조가 속리산 복천암으로 신미대사를 보러왔을 때, 세조의 거둥 날짜에 맞춰 반야사를 중창하고 그 회향법회에 세조가 참석하면서 세조가 내린 어필 현판 때문입니다.세조는 오대산 상원사에서처럼 문수동자의 영험으로 피부병을 고치게 되자 문수보살의 지혜를 일컫는 ‘반야’라는 현판을 친필로 써서 내렸다고 합니다.그 현판이 아직까지 반야사에 보관중이라고 전해집니다.

안성식당(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영동황간로 1618)

 

1953년 개업했고 3대 70년된 올갱이국 전문 식당입니다.아마도 6.25전쟁 끝날 무렵 식당을 해서 먹고 살아갈 궁리로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주차장이 넓고 혼자 들어가서 먹을수 있는 곳입니다.올갱이국은 민물 1급수에 자라는 다슬기로 요즘같이 바닷물과 바다생선에 대하여 다소 꺼림칙한 시기엔 딱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아침에 문수전으로 오르면서 약간의 산책 정도의 등산을 했으니 밥맛은 더 좋습니다.

 

더보기

일본은 "과학적"으로 핵오염수 안전을 검증했다는 식이고 우리나라 정부도 일본의 꼭두각시처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지만 "과학적"이라는 것은 여러곳에서 교차검증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우리나라 시찰단이 일본에 가서 직접 시료채취를 못했다는 것은 제대로 검증도 못했다는 것이니 과학을 들먹일수 없는 것입니다.그냥 일본이 주는 자료로 판단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봅니다.IAEA를 믿느냐 마느냐? 일본을 믿느냐 마느냐는 과학의 영역이 아닌 믿음의 영역으로 비과학의 영역입니다. 

웹드라마 "더 데이스"를 보아도 일본은 미국이 도와주겠다고 해도 숨기기 급급한 모습이었습니다. 도쿄전력은 워낙 거짓말을 많이 한 사기업이고,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도 역사적으로 단 한번도 선전포고 없이 비겁하게 기습을 했고,최근 추가자료로 2만3058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관동대지진,100만명을 끌고 간 강제징용,5만에서 20만으로 추정되는 위안부,  30만이 죽은 난징대학살도 그런일 없었다고 부정하는 역사왜곡에서는 그 어떤 나라보다 부도덕하기 때문에 더 우려되는 것입니다.

돼지 똥도 바다에 안 버리는 게 상식인 세상입니다. 과학을 이야기 하기 전에 바다에 핵오염수를 버리는 것이 상식적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보다 상식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국민이 80%정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을 말해도 수산업의 타격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당장은 수산물을 먹어도 되겠지만 30년 이상 방류한다고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위험성과 우려는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상식의 뇌관은 살아있다고 봅니다. 과학이라고 계속 항변하겠지만 일본과 일본의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은 몰상식하다고 해도 할말이 없을겁니다.일본이 좀더 투명해지면 좋겠지만 그동안 일본의 행태와 대응으로 유추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판단입니다.

 

▷노근리평화공원(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목화실길 7 비스터쎈)

 

피난민에게 폭격을 가한 자리도 있고 개근철교 쌍굴에 가면 지금도 보이는 미군의 기관총 사격 흔적이 보입니다.250명에서 300명이 희생된 곳입니다.미군이 우리나라 피난민에게 폭격하고 총격을 가한 사건이라서 입도 뻥긋 못하다가 전후 50여년만에 한미양국이 공동조사를 하고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2001년 유감 표명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일본군을 해산시키는 목적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미국과 소련의 38도선 기준이 중국의 참전으로 6.25전쟁을 거치며 휴전선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분단된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미국,일본,러시아,중국은 모두 악연의 실타래처럼 엮여 있습니다.물론 해방후 한국은 이제 막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자체역량도 부족하여 일본의 먹이감에서 다른 세나라의 먹이감이 되었습니다. 최근엔 중국은 우리에게 전염병을 주었고 일본은 오염수를 주고 있으니 이것이 현재까지는 한반도의 실상입니다.

위령탑은 둘러보았으나 제가 너무 일찍 찾아가는 바람에 9시30분부터 문이 열리는 기념관은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모자상을 한동안 자세히 바라봅니다.오른쪽 어깨부분엔 총탄자국이 보입니다.이미 어머니는 절명했고 아기는 배가 고파 죽은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습니다.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줍니다.

▷난계사

박연은 고려말에 태어나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음률가()인데 요즘으로 치면 음악평론가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세종 당시 불완전한 악기 조율(調)의 정리와 악보편찬의 필요성을 상소해 자작한 12율관()에 의거 음률의 정확을 기했습니다. 또 궁중음악을 전반적으로 개혁했습니다.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한국 3대 악성으로 추앙되고 있습니다.왕산악은 거문고, 우륵은 가야금을 잘 연주했다면 박연은 대금을 잘 불렀다고 합니다.

박연의 호가 난계(蘭溪)인데 계곡의 바위 옆 물가 난초가 연상됩니다. 

쌍청 누각에서 긴 길을 굽어보니, 雙淸小閣俯長程
명리에 매달리는 사람도 많네. 朝暮閒看走利名
밝은 달빛은 언제나 가득하고, 霽月滿庭非假借
맑은 바람은 저절로 불어오네. 光風拂檻豈招迎
차가운 술잔에는 금물결 일고, 冷侵酒
金波
시원히 경내에 구슬 잎사귀 날리네. 凉掃雲衢玉葉輕
이 경치 이 마음이 한결같거니, 此景此心同意味
다시금 어느 곳에 집착할 것인가. 更於何處役吾形


-<쌍청당(雙淸堂)>, 박연

이 시만 보아도 박연의 음악적 감성과 인품의 서정을 잘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난계사 입구엔 "효자 박연"의 비도 있습니다.

* 5구의
冷侵酒金波(灩)의 마지막 빠진 글자는 개인적으로 물결 일 영(滎)으로 추정했습니다만 출렁거릴 염(灩)으로 확인되어 맞게 추가 입력했습니다. 

(필사)



폐쇄된 화장실 앞의 나무가 분위기를 드라마틱하게 만듭니다.

▷난계국악박물관

 

입장료는 성인기준 2,000원이고 오전 9시30분부터 관람 가능합니다.

 

"금슬이 좋다"는 말의 유래를 알게 되었습니다.부부의 화목한 정으로 내외간 사이가 좋은 것을 의미하는데 원래 이말은 금(琴:거문고)과 슬(瑟:거문고)이 소리로 잘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좌측에 보이는 것이 슬이고 우측은 금입니다.

▷옥계폭포

옥계폭포는 월이산(月伊山)에 있는데 순우리말로 달이산이 되니 달이 떠오르는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주봉과 서봉에서 내달리는 산등성이에 옥계폭포가 있습니다.옥계(玉溪)폭포의 옥(玉)은 여자를 뜻하는 말입니다.폭포를 바라보면 여자가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술,담배,커피,탄산마저 끊어 속세를 좀 벗어나서 그런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옥계폭포를 찾은 박연 선생님이 오색영롱한 폭포수 밑에서 피리를 연주할 때 바위틈에 피어난 난초에 매료되어 자신의 호로 난계(蘭溪)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옥계폭포는 여자의 음의 기운이 강한 음폭(陰瀑)이니 여자폭포입니다.그런데 언제 생겨났는지 물 한가운데 우뚝 솟은 양바위가 있어서 마을사람들이 폭포의 경관을 헤친다고 멀리 옮겼다고 합니다.그 이후로 객사하거나 사고로 마을사람들이 죽기 시작하여 그 양바위를 원래 자리로 옮겨 놓은 후 음양의 조화로 예전처럼 평온해졌다고 합니다.   

 

스토리텔링 때문에 폭포 앞의 양바위도 살펴보게 됩니다. 

 

 

永同玉溪瀑布[영동옥계폭포] 宋時烈[송시열] 영동 옥계폭포

濯髮飛泉落未收[탁발비천락미수] : 폭포에 머리 감다 거두지 못하고 떨어뜨리니
雪莖飄向海東流[설경표향해동류] : 흰 줄기 빠르게 길잡아 동쪽 바다로 흘러가네.
蓬萊仙子如相見[봉래선자여상견] : 봉래산 신선이 이를 자세히 본다면
應笑人閒有白頭[응소인간유백두] : 아마도 인간 세상에도 백발이 있다고 웃으리라.

宋子大全拾遺卷之一[송자대전습유권지일] 七言絶句[7언절구] 1901년 간행본

(필사)

우암은 병자호란(1636)의 발발로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으로 피란하였으나 화의가 성립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인질로 잡혀가자 크게 실망, 용담현령, 지평 등 일체의 관직을 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영동 황간면 월유봉 일대로 낙향하였고 그는 월유봉 아래의 냉천정사에서 10년간 후학을 양성하였습니다. 그 냉천정사는 지금은 이름이 한천정사로 바뀌었습니다. 

 

영동은 멋진 절경 속에 인간의 즐거움 중 하나인 음악과 관련된 인물이 있고 애환 중에서도 가장 큰 슬픔인 전쟁의 흔적이 있으며 그 속에 버무려진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고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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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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