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정남진)50억년이 지나면 인간의 지혜를 모아 만든 우주선,반야용선을 타고 성간(星間)이동을 할지도...

 

- 언제 : 2014.6.1  05:15~22:30
- 얼마나: 2014.6.1  06:30~17:30
- 날 씨 : 대체로 맑음
- 몇 명: 40여명
- 어떻게 :"고적답사회" 동행

부산-보림사-강성서원-(식사:정남진관광농원,불고기백반,안양주조 하늘수 막걸리)-
덕암리암각매향명-방촌유물전시관-지석묘군-방촌석장승-위성탁고가(오헌고택)-회령진성-부산

  

오랫만에 문화유산답사를 떠났다.이번엔 서울 광화문을 중심으로 정 남쪽의 정남진이 있는 장흥이다.
백제시기는 오차현(烏次縣)이 삼국통일 이후 신라 경덕왕때 오아(烏兒)로 개칭 되었다.고려시대때는 회주목으로 승격되기도 했다.부사골로 승격시킨이는 공예태후 임씨로 장흥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이후 고려 충선왕때는 다시 장흥부로 강등된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를 준비한 곳이기도 하고 가사문학의 효시자인 기봉 백광흥과 실학의 보조 존재 위백규와 관련된 곳이다.그동안 문화유산답사를 다니면서 빠져있었던 곳을 채워 넣은 느낌이다.화순,보성,강진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던 곳이다.
사흘간의 연수교육으로 체력이 많이 약해진 상황이라 이번엔 책 한권도 가져가지 않았다.다만 갈증을 풀어 줄 물 한통과 4000여곡이 들어있는 포터블 디바이스만 챙겼다.카메라도 렌즈 몇개만 챙겨 단촐하게 다녀왔다.


장흥을 답사하면서 여러곳에서 미륵과 관련된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매향이나 방촌리의 미륵석불 등...그래서 나는 초신성이 되는 태양의 운명과 지구의 유효기간을 생각했을것이다.

내쇼날 지오그래픽의 코스모스를 보며 미래에 가 있던 시선을 다시 과거로 옮겨 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반야용선은 인간의 지혜를 모아 만든 우주선이며 그 우주선을 타고 인간의 방주를 이끄는 지도자(미륵불)는 인간의 지성일지 모른다.

 

 

보림사 입구에서 예상치 못한 천도재를 보다.

 일주문 입구부터 수륙재(천도재) 준비가 한창이었다.가람의 배치로 볼때 탑과 대적광전이
예전에는 중심으로 보인다.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이 중심이라면 이 사찰은
처음엔 화엄사상이 중심이었을것이다.대적광전 속에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균형감을 볼때
지방의 호족이 만들었다고 보여진다.


이후 선찰본산으로 절집 분위기가 탈바꿈 되면서 신라 경문왕의 중앙정부로 부터 지원을 받아
석탑과 석등이 만들어 졌을것으로 보인다.통일신라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대웅전 우측의 보조선사탑비의 글씨를 보더라도 해서와 행서의 글씨체가 대단히 유려하다.
귀부와 이수등의 재질도 화강암으로 3층석탑과 비슷하여 신라 중앙정부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Ⅰ. 보림사(寶林寺):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가지산(迦智山)에 위치하는 송광사(松廣寺)의 말사로,
나말여초 선문 9산 가운데 제일 먼저 개산한 가지산문의 중심 사원. 가지산문의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860년 경에 큰 규모로 창건한 이후,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를
거치면서 20여동의 건축물이 존속하다가 한국전쟁 때 크게 소실.
중요문화재로는 보림사3층석탑 및 석등(경문왕 10년, 870년 건립 : 국보 제44호),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金彦卿이 건립 : 국보 제117호), 보림사 동․서 부도(보물 제155․156호),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 및 탑비(普照禪師彰聖塔 : 헌안왕 2년, 858년 건립 : 보물 제157․158호) 등이 현존.

 가지산 보림사의 현판 위로 보이는 다포형식의 공포를 볼때 빛깔이 짙은 것은 기존의 자재를 사용한 것이고
밝은 빛깔은 다시 만들어 끼워 놓아 조각보처럼 친근감이 든다.  

 

 

일주문 좌측의 해우소 위치가 편안하다.
숲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워낙 깊어서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보림사 안으로 들어가보니 반야용선이 보인다.
인로왕보살이 모두 용선에 태워 극락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탐진치 삼독 보따리를 등에 맨 사람이 배를 타지 못했고
죄를 진 사람 한사람은 땅바닥에 앉아 과거의 행적을 후회하는 모습이다.
아마도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은 염라대왕 앞으로 갈 것이다.

 

 

 

보조선사창성탑비

 

 

 

보조선사창성탑비 비문

 

비문의 문장은 해서와 행서로 씌여 각자가 되어 있는데 글씨체가 상당히 유려하고 기품이 있다.

 

 

 

보조선사탑

 

보조선사탑은 6.25 전쟁시기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전체적인 조형미와 기법은 상당히 정교하다.

 

 

청태전靑苔錢 

가람 한쪽에서 청태전 시범을 보이고 있다.
청태전은 떡차의 일종으로 모양이 엽전 같아서 "돈차"라고도 한다.
녹차를 떡처럼 찧어서 둥글게 만들고 중간에 구멍을 내 줄을 묶어면 흡사 엽전꾸러미처럼 보이게 된다.

그리서 청태전의 마지막 글자 전은 부침개 전煎이 아니라 돈 전錢자를 쓴다.

 

청태전은 한국의 보이차처럼 발효차이다.발효를 적게하면 하동의 잭살차처럼 황차가 되고
발효가 많이되면 홍차가 되는데 청태차를 마시는 사진을 찾아보니 홍차에 가깝다.

 

 

 

 

 

연화차

 

또 한쪽에서는 연화차가 보인다.
한잔 대접을 받으니 연꽃향과 녹차의 절묘한 궁합이 느껴진다.
펼쳐진 연꽃 아래로 녹차가 보인다.

 

 

 

 

 

수륙무차 영산대재

 

수륙재(水陸齋)의 본래 명칭은 ‘천지명양수륙무차평등대재(天地冥陽水陸無遮平等大齋)’이다.
줄여서 수륙회(水陸會), 무차대회(無遮大會)라고도 한다.여기서 무차는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온 천지와 수륙에 존재하는 모든 고혼(孤魂)의 천도를 위하여 지내는 의례로 개인 천도의 성격을
띤 영산재에 비해 공익성이 두드러지는 불교 의식이다.
차별없이 고혼을 천도하기 때문에 상당히 진일보한 사상이다.

 구산선문 보림사는 한국 선불교의 종가로써 차와 더불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도량이다.
따라서 앞으로 명상과 차를 통한 힐링의 성지로 가꾸어 가려는 노력이 보인다.
장흥군 사암연합회와 신도연합회의 주관으로 호국영령과 장흥댐 수몰및 가지산하 좌우대립 희생 일체 고혼과
동학혁명및 민주화 희생 영령, 세월호 참사 희생 영가를 천도하려고 수륙무차 영산대재를 모신다는 안내글이
보인다.


역사적으로 나라가 어려울때 사찰에서 수륙무차 영산대재를 베풀어서 안정을 이루고 민심을 수습한
경우가 많았다.

 

보림사 남.북 삼츰석탑 및 석등

국보이며 통일신라 시대 탑으로 화강암으로 된 경쾌한 구조로 특히 상륜부의 노반(露盤)·복발(覆鉢)·앙화(仰花)·보륜(寶輪)·보개(寶蓋)·보주(寶珠)의 순으로 각 부의 부재를 갖추고 있는데, 앙화석까지는 양쪽 탑이 같은 양식수법이나 보륜은 남탑에는 삼륜(三輪), 북탑에는 오륜(五輪)이 장식되어 있다. 이처럼 상륜이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퍽 드문 예로서 귀한 자료로 주목된다.

 

 

강성서원

 

Ⅱ. 강성서원(江城書院):전남 장흥군 유치면 조양리 산365-1

전남 장흥군 유치면 조양리(또는 신풍리)에 위치하는 서원으로, 남평문씨 소유의 문화재자료 제70호.
늑룡리에 있다가 장흥댐 건설로 2004년 4월 현 위치로 이전.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 및
임진왜란․정유재란 때의 의병장 풍암(楓庵) 문위세(文緯世)를 배향.
인조 때 문위세의 제향하는 월천사(月川祠)로 창건하였다가 숙종 때 확장되었다가 영조 때 문익점을
추가 배향하고 정조 때 ‘강성(江城)’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로 인하여 훼철되었다가 이후 유림들이 복원.

 

 

 

  

보림사와 강성서원 탐방을 끝내고 점심식사를 하러 간 곳은 "정남진관광농원"이었다.점심은
장흥에서 유명한 소고기로 만든 "불고기백반"이었는데 반주로 나온 장흥 안양주조의 막걸리가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참살이 하늘수"로 햇찹쌀로 빚은 듯했다.지역이 장흥인데 "안양주조"라고
되어 있어서 알아보니 예전엔 경기도 안양시에서 소주 내리는 공장이 있었던 모양이다.
막걸리병이 좀 작아 아쉬웠지만 비싼재료를 사용한 점을 감안해서 마셔야했다.

 

 

   

덕암리 암각매향명


매향은 원래 미륵불에 올리려던 향 공양이다.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뒤 56억 7천만년이 되는 때에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화림원(華林園)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고, 3회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라고 하는데,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기 이전까지는 미륵보살이라 하고
성불한 이후는 미륵불이라 한다.

최근에 나는 내쇼날지오그래픽의 "코스모스"를 본다.코스모스 11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빅 히스토리,코스모스 -불멸을 꿈꾸다-이다.여기서 불멸이란 생존의 연속을 의미한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상상하기 힘들정도로 먼 미래에 천문학적 사건들을 예측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태양의 죽음이다.약 50억년 후 우리 태양은 ,자신의 핵 연료인 수소를 소진하고 ,
적색거성으로 변하게 된다.우리의 지성을 잘 활용한다면,그렇게 먼 미래에 우리의 후손들은
이미 오래전에 이 태양계를 떠났을 것이다.

 

우리의 지성을 불교식으로 말하면 "반야"이고 그 우주선은 반야용선이지 않을까? 
상상은 자유이다.다만 50억년이라는 것과 불교의 56억7천만년의 유사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불교식으로 다시 말해 계산하면 2014년은 불기 2558년이니 56억 4442년이 남은 셈인가?

 

여하튼 태양초신성이란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초신성이라는 단어자체가 '죽기전의 항성'이라는 뜻
이다.
태양 질량의 약8배가 넘는 항성이 모든 수소와 헬륨helium을 태워버리고 죽기전에 초신성
거치게 된다.
태양이 50억년 후에 수소가 다타버리고 헬륨만이 핵융합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태양은 끝없이 부풀어오른다.이때가 적색거성이고 다음은 지구정도의 크기로 작게 수축되는데

중력이 굉장하게 된다.이때가 바로 백색왜성이다.

 

헬륨은 원소주기율표 상에서 1주기 18족에 속하는 비활성기체로 우주에서 수소 다음으로 많은 원소이다.

 

태양은 생명을 다하게 되고 그 수명에 맞추어 지구에 사는 인류도

그 이전에 다른 행성을 찾아가야

할것이다.여하튼 50억년,56억년이라는 유사성을 생각해보면

불교의 과학성(?)이 좀더 심오해진다. 

 

종교에 과학을 접목시키면 오히려 사이비가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불교는 접목할수록 맞아떨어는 경향이 강하다.
석가모니 한 사람의 지혜가 이 정도라면 어쩌면 석가모니는 "별에서 온 그대"일지도 모른다.  

Ⅲ. 덕암리 암각매향명(巖刻埋香銘):전남 장흥군 용산군 용산면 덕암리 산2

장흥군 용산면 덕암리에 위치하며, 세종 17년(1435) 건립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2호.
향나무를 묻은 시기와 장소, 관련 인물, 기원의식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원천 자료로 총6행 21자에
1435년 10월 많은 사람이 발원하여 남남동향에 (향목을) 묻어 두었는데 주도한 향도(香徒)는
홍신이다’라는 내용이 표기.
매향은 대개 최적의 장소로 민물과 갯물이 만나는 지점이며, 바위나 비석에 매향의 목적과 시기,
장소와 관련 집단을 기록(매향비 또는 매향명). 여말선초에 일반적으로 행해진 민중 불교의례로
미륵신앙과 연관되며, 매향의 기원 의식은 주도 집단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극복 의지와
불교적 내세관을 반영. 전라남도지역에는 영암 엄길리(1344년) 및 채지리(1430년),
신안 암태도(1405년), 영광 법성포(1371․1410년), 해남 마산(1406년) 등에도 현존.


 

 

 

 

 

방촌리 지석묘군과 방촌유물전시관 

Ⅴ. 장흥 방촌리 지석묘군(長興 傍村里 支石墓群):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588-1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 위치한 도지정기념물 제134호로, 청동기시대 유적.
현재까지 20만기 이상 확인되는 전라남도의 지석묘(고인돌) 가운데 장흥군에서도 210여 곳 2250여 기가 확인.
그 가운데 방촌리 지석묘가 대표적 사례로 방촌리의 내동 마을 입구 부근 ‘벅수골’이라 부르는 소나무 숲 속에
94기의 지석묘가 현존

 

 

 

 

 방촌리 석장승:진서대장군 동행한 어린이의 시각대로 진서대장군은 남성인데도 다소 온화한 모습이라면
미륵석불은 여성인데도 상당히 우락부락한 인상이다.진서대장군은 시계에 달린 나침반으로 보면 관통하는 도로를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Ⅳ.

방촌리 석장승(

傍村里石長丞):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관산읍 방촌리 572번지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 위치한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33호로 민속신앙을 알 수 있는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 : 읍성의 서쪽)과 미륵석불(彌勒石佛 : 성문 북동문의 동쪽).
원종 6년(1265) 장흥부(長興府)가 회주목(懷州牧)으로 승격되면서 목의 치소가 있던 방촌을
보강하려고 상령(觴岺)산성과 회주고성을 축성하면서 읍성 서쪽의 지세가 약하다 하여 치소를
보강(補虛鎭壓)하고 수호하기 위해 건립.
서문 밖의 진서대장군은 풍수지리적으로 보아 읍성 서쪽의 허한 곳을 진압․수호하기 위해 세웠지만
동쪽에 미륵석불을 세운 이유는 불명.

  

 

 미륵석불

 

 위성탁 고가;오헌고택 남도 대농 반가의 대표적인 사례로 연못이 대문 앞에 있는데 천원지방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집의 흐름에 맞추어 조성한 점이 자연스럽고 보기 좋다. 

 

 

 

회령진성

 

Ⅵ. 회령진성(會寧鎭城):전남 장흥군 회진면 회진면 회진리 1755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에 위치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44호. 성종 21년(1490) 4월에
쌓은 만호진성(萬戶鎭城)으로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는 수군진(水軍鎭).

 

진성을 보기는 쉽지 않다.부산에서는 부산진성과 자성대가 있지만 문화유산답사를 하면서 진성을 보기는 

어렵다.그런점에서 회령진성의 가치가 높다.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를 인수 받은 곳이라 하니 
더욱 의미가 깊은 곳이다.
 
그 유명한 장계의 내용이 떠오른다.
(尙有十二微臣不死: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고 하찮은 신하(이순신)는 죽지 않았다.

 

멀리 바다 위로 작은 섬들이 보인다.지금은 한적한 어촌의 모습이다. 

 

 

 

 

 

 

━━━━━━━━━━━━━━━━━━━━━━━━━━━━━━━━━


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