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재)사진을 찍으러 갔으나 중산재와 상곡마을에서 임진왜란과 마주했다.

 

 

- 언제 : 2012.10.6(토) 05:00~09:30
- 얼마나: 2012.10.6 06:00~07:40
- 날 씨 : 흐린 후 "는비(가랑비 보다 더 가느다란 비)" 약간
- 몇 명:  2(with 마천님)
- 어떻게 : 번개출사 SUV이용 개별참여
▷중산재中山齋 입구 주차장(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산235번지)-상곡마을(
부산 기장군 일광면 용천리)
-송정 엄마손대구탕(703-8683)

 

 

 

 

안개 낀 한 장의 다락논 사진을 보고 그곳이 궁금해졌다.기장 철마에 있다면 나의 집에서 40분간 거리다.그곳에 한번 가고 싶다는 나의 의향은 결국 마천님과 함께 새벽에 중산재 주차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사진과 다른 느낌의 풍광은 다소 실망스럽게 만들었지만 한번쯤은 올 만한 여러 가지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우리는 흔히 우리 주위도 잘 알지 못한다.그도 그럴 것이 도심에서 약간만 벗어나면 산세지형은 산과 계곡으로 둘러치며 오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일출도 없고,안개도 없는 다락논 들녘은 그대로 평범한 농촌으로 보여졌지만 그곳에 갔기 떄문에 중산재와 상곡마을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plan은 다락논 사진을 찍은 것이었고 do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feedback은 예상 밖의 임진왜란과 마주하게 된 출사여행이었다.

 

 

 

 

 

 

 

우선 장소가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산235번지"를 확인하고 떠났다.네비게이션을 따라가면
인근 "곰내길"로 안내된다."산 235번지" 는 한곳을 알려주는 포스트가 아닌 면적 개념이니 굉장히 넓다.

네비게이션에 따라서 곰내길을 따라서 여기저기 장소가 달라진다.

 

우선 주례에서 출발하면 대부분 동서고가-황령터널을 지나면 경성대 방향으로 우측으로 꺽이는
도시고속도로를 만나게 된다.이후 수영과 해운대를 지나 "정관,철마"로 빠져나오면 곰내길로
안내되고 이후 곰내길에서 산235번지 인근에 다다르면 좌측엔 "심가네"라는 음식점을 찾고,
우측엔 "中山齋"(중산재)라는 돌비석 이정표를 찾아야한다.

 

해 뜨기전 어두운 상태에서는 중산재 이정석은 잘 보이지 않을 것이고 "심가네" 음식점은 좌측에 보인다.
심가네 음식점이 보이면 바로 우측으로 난 비닐하우스 옆 농로를 따라 가면 된다.

언덕이지만 언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구릉성 오름에서 좌측엔 중산재가 보이고 우측엔 주차장이 있다.

조금있으니 마천님의 차량이 올라온다.주차장에서 만나 인사하고 조금더 들어가니 어렴풋 어둠속에서
눈에 익은 풍광이 드러난다.

 

시간을 두고 날이 밝았지만 다소 실망스러운 밋밋한 모습이다.

 

농로를 따라 몇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지만 더 이상 찍을 소재가 보이지 않는다.
역시 풍경사진은 풍경에 안개나 햇살이라는 자연의 선물이 함께 주어져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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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대로 되돌아 주차장으로 나오니 이제 중산재가 보인다.


 

상석도 비석도 없지만 묘의 봉분 크기로 보나 그  앞에 가로수처럼 심어져 있는 고목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왕릉 같은 분위기의 위엄이 서린 묘가 보인다.

 

남평문씨 부사공파(南平 文氏 府事公派)의 파조(派祖)이신 문여욱(文汝郁)의
묘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호종하는데 공이 사람에게 내린 훈호
(扈聖原從功臣三等호성원종공신3등)를 보니 문여욱의 이름이 보인다.

 

중산재엔 선무원종심삼공신(宣武原從十三功臣)과 임진기의토적공신이십사인(壬辰起意討賊功臣二十四人)
의 신위를 봉안한 재실이다.


 

선무원종공신은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사람들을 선무원종공신으로 책봉하는 증서라는 의미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은 1책 100장으로 일반적인 공신녹권보다는 내용이 많아 책자의 형태다.
임진왜란 후 민심과 국정을 수습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으로 평가 할 수 있다.

이곳 중산재엔 13명의 공신의 신위가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임진년엔 먹을 것이 없어서 도적들이 생겼을 텐데 그런 도적을 토벌한 24명의 공신을 기록한 것이
임진기의토적공신이십사인이다.임진왜란때 동래출신으로 공을 세웠다는 기록이 보이고 그 후손들 중에서 
재주가 있는자를 뽑아 별전청에 집무케하여 금정산성의 방위를 위해 군사의 사기를 높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여하튼 반대편엔 홍의문(弘毅門)이 보이고 그 뒤로 정면 5칸,측면 2칸의 중산재中山齋 건물이
보인다.그 우측엔 파라볼라 안테나를 단 별채의 건물엔 사람이 사는 모습이 보인다.


 

재사 대문앞에는 남평문씨가의 후손인 용담 문용호(1873~1948)와 정부인동래정씨의 묘가 있다.

임진왜란은 1592년이었다.420년 세월이 흘렀고 올해도 임진년이다.임진왜란때는 한반도 전체를 유린하는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이 지금은 제2 임진왜란으로 독도를 침탈하고자 하는 야욕을 보인다.

 

그렇게 보면 일본의 근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그들의 DNA는 뼈속 깊이 약육강식의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이 보인다.

 

다시 돌아서 문여욱의 파조묘를 보고 있자니 상석과 비석이 없는 이유를 알겠다.
망우당 곽재우의 묘와 비슷한 내력을 짐작케 만든다.
미리 알고 갔다면 간단한 예경이라도 하고 올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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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들런 곳은 상곡마을이다.마천님이 이 오지에 부촌이 있다고 하여 잠시 들렀던 곳이다.
인생 말년에 와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였지만 집에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부산의 오지로서 행정구역은 있지만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곳이었다.

 

부산의 오지마을이라면 내덕마을과 이곳 상곡마을을 손꼽을 수 있다.

 

상곡마을은 임진왜란 때 동래성 등지에서 부상한 군사들이 이곳에 피란하여 큰 마을을 이뤘다고 전한다.
구한말에는 부산·동래 지역에 있던 천주교인들이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서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세상의 각박함을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별장같은 집들이 부촌의 모습으로 이 산골에 기거하고 있다.

원래 문명이 낯선 곳이었으나 지금은 첨단의 모습이다.


 

마을은 생길 때부터 은둔지요, 피난처였으므로 조용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다음엔 간다면 인근에 배석사와 선바위,그리고 돌매암골 거북바위도 찾아 볼 요량이다.

 

 

아침식사는 송정의 "엄마손대구탕집"으로 갔는데 예전에 한번 가본 기억이 났다.
고등어묵은지로 식사를 하였고 역시 이름난 송정의 맛집답게 아침부터 과식을 불렀다.

 

 

(P.S)
상곡마을로 안내해주시고 송정에서 맛있는 식사까지 함께한 마천님께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세벗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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