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어산▲이천년 전설되어 구비구비 영험과 신비로 만개한 명산이건만


- 언제 : 2006.3.4 13:20~22:00
- 얼마나: 13:20~16:40(3시간 20분).실제 산행시간 2시간
- 날 씨 : 쾌청,정상에선 제법 센 바람
- 몇명: 5명
- 어떻게 : 중학교 동기모임 참석

▷약수터~동림사~정상~영구암~은하사
- 개인산행횟수ː 2006-15 [W산행기록-144/P산행기록-286/T631]
- 테마: 근교산행,문화유산답사산행
- 산높이:신어산 634m
- 좋은산행 개인호감도ː★★★★

신령스러운 물고기라는 뜻의 신어(神魚)는 곧 가락국을 연상시킨다.구지봉은 신어산의 서쪽 끝부분에 있는데 가락국(駕洛國)의 시조 수로왕의 전설이 있다.나한을 연상시키는 우령금강의 바위와 소나무로 수려한 경관을 지닌 산으로, 가락국 초기에 세워진 고찰 은하사와 동림사, 영구암 등이 있다.


은하사와 동림사 두 절은 가락국 초기에 김수로 왕의 처남인 장유화상이 창건하였다. 은하사는 한동안 서림사로 불리워졌고 서역불교의 번성을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졌으며, 동림사는 가락국의 안전과 번영을 염원하는 뜻에서 창건되었다고 한다.현재 두 절 모두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이후 중창, 복원되었다.은하사는 묘,경화 두 화상이 중창 하였고, 동림사는 화엄선사와 월주스님이 크게 복원하였다.

기품있는 소나무 숲이 볼만한데 그래서 이곳의 절집 이름도 숲의 우측엔 동림사,서쪽엔 서림사로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데 현재 서림사는 은하사로 이름으로 제 이름을 찾았다.현재 동림사는 지장도량의 모습의 보이고 있고,은하사는 관음도량의 모습이 나타난다.

오늘 이렇게 수려한 숲과 바위,그 속에 설화가 깃든 산사를 이어가며 중학교 적 친구들과 호젓한 산행을 즐긴다.이것은 산행을 가장한 휴식의 일환이니 바삐 걸을 이유가 없다.



가야불교의 흔적을 찾아 먼저 동림사로

13:29

예상보다 빨리 집합장소인 은하사 아래 약수터에 도착하여 먼저 동림사를 찾는다.
1900년의 고찰인 동림사는 이제 갓 지어진 절집의 모습같이 깨끗하기만 하여 쉬이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일주문은 화려하게 단청이 되어있고 사천왕문 안에는 사천왕상도 없이 공사 중인 모습이고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은 최근의 깨끗한 하얀 돌로 만들어져 있어 불과 몇년전에 만들어진
산사 같은 분위기이다.

그러나 이곳이 어떤 곳인가?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 때 장유(長遊) 스님이 창건했다고
하는 고찰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나 『삼국유사』 「가락국기」 등의 내용을 그대로 따른다면
무려 2,000년 전의 일이 된다. 우리가 배운 불교 공인 시기를 훨씬 앞당겨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 판인데 학계에서는 아직도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이다.

6세기 신라에 통합되기 전까지 신어산 아래, 낙동강유역을 석권하며 빛나는 문명을 떨쳤던
금관가야에 대한 부족한 연구 때문이다.장유 화상은 신어산의 영구암과 동림사,
지리산 칠불암까지 창건주로 꼽히는 분이니 신라의 원효나 의상 스님처럼 가야 불교의
시조로 여겨지는 분이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배를 타고 김해까지 건너와 수로왕과
결혼한 허황후의 오라버니되는 이다.

이 도량에서 그는 그의 고향과 가야국을 위해 수행정진하며 수로왕의 일곱 왕자를 출가케 하여
마침내 칠불로 탄생토록 하였고 스스로도 수행정진에 전념하여 성불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이후 신라에서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승대덕과 석학들이 이 곳에서
수행정진하였을 터인데 세월의 두께가 그만 그 흔적을 가려놓고 말았다.


신의 물고기 위로 오르다.

14:39~47
준비해 온 책을 읽으며 조용한 산사에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만남의 장소인 약수터로 가서 일행들과
함께 동림사 우측 산길을 따라 지능선을 오른다.MTB자전거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산길의 흐름이 유순하다.
고도를 높여나가자 동림사와 은하사가 맞닿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높이 오를수록 바위들이 자주 보이고 우리가 지나 온 쪽을 바라보면 분성산 천문대가 보이고
그 옆은 김해시가지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그 너른 들이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데 그속을
신어산에서 오른 패러글라이딩이 휘젓고 있다.



14:50~8
오름길 좌측을 바라보니 나한 같은 바위들이 도열한 속에 영구암과 천진암이 걸려있다.능선에 오르니
길은 평지를 걷는 듯 더욱 유순해졌고, 그위로 보이는 하늘은 가을하늘이라고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15:04~15
푸른 하늘이 눈 부실 즈음 소나무군락이 나타나며 삼림욕장이 나타나고 땀이 흐르며 몸이 풀릴즈음
주 능선 바로 아래 철쭉밭이 나타난다.아직은 꽃샘추위로 꽃망울마저 감추고 있다.


정상에 서니 바람은 거세지만 양지바른쪽은 질척하게 길이 녹아있고 장척방향 응달엔 아직 잔설이
뚜렷하다.그 뒤로 금정산,장군평원,상계봉이 보인다.



나한 아래 가야불교의 영구암이 있다.

15:53~9
정상을 조금 지나 영구암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막걸리를 팔고 있어서 막걸리와 두부김치,어묵으로
한바탕 요기를 하며 즐거운 담소가 이어진다.이곳은 더욱 길이 질펀하여 흙탕물이 튈 정도다.


영구암으로 내려 올수록 멋진 바위들때문에 압도되는데 내려오는 하락경사도가 제법 가파르다.
영구암에서 보는 김해시가지 풍광이 멋지다.대웅전을 지나 탑이 있는 곳에 서니 이곳이 가장
신령스럽게 느껴진다. 우람한 나무 한쪽으로 옛 3층 석탑이 적벽돌을 탑신 삼아 섰는데 그 아래로
은하사와 동림사, 김해 시내와 낙동강이 부채꼴로 한눈에 펼쳐진다.


신어산을 멀리서 보면 그 형상이 거북의 몸체요, 영구암은 그 머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한발짝 뒤로 물러나 보니 석탑이 서있는 자리는 함부로 들어서서는 안 될 신령스러운 곳(靈地)
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법당 밑 우물 속에 신어(神魚)가 살았다는 전설 속
영구암의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벼랑길을 내려 은하사로 향한다.


가락국 전설엔 물고기와 거북이가 자주 나타난다.구지봉,구산동,거북산 등이 龜에 해당한다면
신어산,쌍어문 속에는 물고기가 신성시 된다.그래서 영구암이라는 절 이름속의 구(龜)만 보아도
여기가 가락국과 연관되어지는 암자임을 눈치채어야 한다.



신어(魚)가 살려면 은하(河)가 있어야한다.

16:36
하락의 경사가 완만해질 즈음 철 펜스가 보인다.철 펜스를 따라 둥글게 한바퀴 돌아 은하사에 오르는데
입구 돌계단이 범상치 않고 축대의 바위를 보면 국가적 사업으로 일군 사찰의 느낌이 강하다.
동림사 보다는 은하사가 좀 더 절집의 형태를 갖춘 느낌이다.명부전의 꽃창살,대웅전 앞의 고목을 감고 있는
능소화,대웅전 우측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 석탑,대웅전 뒤의 아름드리 노송과 대나무 등
2000년의 고찰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이곳 저곳을 살핀다.


현판에는 은하사(銀河寺)와 서림사(西林寺)가 함께 보이는데 본래는 신어산(神魚山)이라는
이름과 관련해 은하사라고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인조 22년(1644년)에 복원하면서
절 이름을 가까이에 있던 동림사(東林寺)와 구별해 서림사라 하고 두 사찰이 중창을 거듭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케 된다.


그 후 일제치하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다시금 잃을 뻔하였던 자취를 이 현판들을 통해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현판들 역시 부엌에 아무렇게 놓여 아궁이 속에서 한순간 사그라질 위기에 있었다고.
다시 한번 따뜻한 눈길로 현판을 바라보게 되는 까닭이다.


은하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너럭바위로 놓은 돌계단과 대웅전 앞에서 올려다보는
신어산 정상의 우뚝 솟은 바위들이다. 이 바위들은 모두가 나한상이라 여겨져 지금도 이 곳을
나한도량으로 삼아 기도하는 불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다.


단청과 벽화가 잘 남아 있다는 대웅전이 새로 보수하여 그 예스런 모습은 이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
은하사 경내에는 시대미상의 5층 석탑이 있는데 안내판이 없어 아쉬웠다.


대웅전은 정면 3문, 측면 3문의 단층 맞배지붕의 목조건물로서 다포집 양식인데 공포는 내외 모두 3출목이며
내부 천정은 격자천정이다. 외부 쇠서의 윗몸에는 연꽃을조각하였고 내외살미 로는 용두와 봉두를 새겨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대웅전치고는
비교적 소규모에 속하는 건물로 대웅전 내부의 수미단에 조각된 신어는 서역불교의 도래를
입증하는 김해지방만의 독특한 그림인데 문이 굳게 잠겨있어 들어가보질 못했다.


물고기는 물이 있어야 하니 서림사라는 이름보다는 은하사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옛친구

옛친구 대한맘은 아는이나 아올것이
범연한듯 해두 대해보면 정이깊어
할말도 없으면서두 날가는줄 몰라라.

옛친구 놓고보면 생각두 끝없어라
어린제 젊은제 어느덧에 다보내고
오늘에 그대와 나와 중년이라 하나뇨.

-이광수


세월은 오늘도 흐른다.

17:30
은하사가 있는 삼방동(三芳洞)은 김해성의 4충신중의 이대형과 그의 아들 우두, 그의 질녀인 열녀 이씨(주익창의 처),
이세사람의 출신지로 삼강의 꽃다운 인물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에 삼방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오늘 모임이 있는
놀부보삼집인 어방동은 신어산의 영구암(靈龜庵)에서 내려와 초선대까지 배를 타고 갈 때 길목에 있는 마을로 이곳은
수도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이므로 어떤 도사가 와서 물고기를 잡지 못하도록 방(榜)을 써 붙인 곳이라고
전하는 곳이다.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함을 알았을까? 오늘은 생선회 대신 돼지가 주 품목이다.

뭘 먹던 세월가면 잊혀지고 또 잊혀지고 우리도 저 전설처럼 되겠지만........그래서 오늘 억지로 중학교 적
시절을 일깨우며 중년을 벗어버리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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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낭만을 찾아가는 山中問答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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