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학산▲술이 동나면 어둠이나 퍼 마시세. 저 반달 잔 좀 가져오게나.


- 언제 : 2006.8.3 (목) 19:30~23:00
- 얼마나: 20:00~23:00(3시간)
- 날 씨 : 반달

- 몇명: 28명
- 어떻게 : 산과 그리움 동행

▷당리지하철역~신풍아파트~정각사~깔딱고개~승학산~헬기장~억새밭~제석골~무학사~제석길~당리지하철역(원점회귀)
- 개인산행횟수ː 2006-22[W산행기록-151 P산행기록-293
/T638]
- 테마: 근교산행,야간산행

-산높이:승학산(496.2M)
- 좋은산행 개인호감도ː★★★★



곧 입추지만 아직 땅의 기운은 말 그대로 무더위다. 무(戊)는 십간(十干)의 다섯째로 자원(字源)을 보면 무성할 무(茂)자이다.꽃도 나뭇잎도 한껏 벌어져 양(陽)운동의 끝 부분에 거의 도달한 상태이다.그래서 더위도 무르익은 상태인데 그 가마솥 더위 속을 걸었다.

반달이 높이 떠서 운치는 있어 좋았지만 밤인데도 불구하고 등으로 흐르는 땀은 어쩔 수 없었다.그래도 능선에 서면 한줌 시원한 바람이 불어 위로는 해주었고, 억새의 푸른 잎으로 쏟아지는 달빛의 반짝임은 또 다른 야간산행의 멋을 일깨워 주었다.

보통 야간산행을 다른 말로 달빛산행이라고 하는데,사실 야간산행을 한다고 하여 항상 달이 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오늘처럼 반달이라도 떠 있으면 산행길은 상당히 정감 가는 길로 바뀌게 된다.

낮에는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달리면서 기관총소리를 내는 혁명의 상황이지만, 이렇게 밤이되면 휴전의 달콤함도 있어 아마도 저 반달은 누군가 나에게 선물 한 것이 틀림없다. 반은 지상에 보여주고 반은 천상에 보이게 걸어두었다.달의 반을 내가 보고있다면 다른 반은 누가 보고 있을까? 누군가 꽃 한송이 대신 저걸 선물로 걸어둔 것 같은데 달빛은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저 반달은 하늘에 걸어둔다.


당리라는 이름에서 토속신앙을 느낀다.

19:30~20:03

"당리"라는 이름의 뒤에 붙는 리(里)를 보면 과거 행정구역의 명칭인데 이젠 동(洞)이라는 지명으로
바뀌었지만 리(里)를 버리지 않았다.그래서 당리동이 되었는데 "당"이라는 글에서 느껴지듯이
토속신앙의 흔적이 이곳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오늘 하산길에 있는 제석골이라는 골짜기에는 동제를 지내는 서낭당이 있었으며, 현재 이곳에는
제석사가 있는데 요즘도 당리동에서는 매년 3월 3일에 당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제법 가파른 도로를 따라 정각사로 오르는데 숨을 고르기 위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반달과 정각사의
불빛이 내기라도 하듯이 밝기만 하다.



숨을 헐떡이며 깔딱고개를 지나니 승학산 주능선이 나온다.

20:45

바람 한점 없지만 숲속을 걷고 억새를 가로지르니 기분은 그런대로 좋은데 숨결이 너무 거칠어졌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스템 에어콘이 천장에 6개가 달려있는 곳에서 근무를 하다,
열대야 속의 산행을 하니 내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땀이 감당하기 힘들정도다.

저기 조명등처럼 분위기를 돋구는 반달만 없었다면 입에서 욕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승학산 정상에서 바라보니 시약산의 기상관측소는 등대처럼 보인다.


21:04

더위에 지쳐 힘들게 올랐지만 정상에 서니 모든 시름이 기쁨이 된다.저기 시약산의 기상관측소는
꼭 등대처럼 아래를 비추는 듯 하고,바다와 낙동강 그리고 저 반달이 어우러진 이 고요함은 평화 그자체이다.

눈을 감고 손을 뻗어 억새를 쓰다듬으며 푹신한 육산을 거닌다.


21:19

어둠속에서도 짙푸른 억새의 싱싱함이 느껴진다.억새는 잠도 없는지 고개를 세우고 있는데
그 위로 쏟아지는 달빛이 보기에 좋다.

손을 뻗어 억새를 쓰다듬으며 달빛을 출렁거린다. 내손에 달빛 부스러기가 많이 묻혀지는 느낌이다.

억새길을 지나 초소가 있는 있는 너른 공터에서 달빛을 조명등 삼고 회비대신 가져온 생탁을 술잔을
돌려가며 마신다. 어찌 이리 시원하게 원샷이 가능한지...손을 꺽으며 몇번의 도리질을 했더니
생탁은 금방 동이 난다.

벌써 술이 동이 났다구? 입맛 다시지 말고 이젠 저 어둠이나 퍼 마시세.
누가 승학산의 학을 타고 저 술잔 같은 반달이나 가져오게나?

 

 

23:00

그래도 한잔해서 그런가? 기분은 좋다. 하산하며 반달을 쳐다보니,술 마실때 안주하고 모든 쓰레기는
다 가져왔는데 누가 먹다 남은 빵과자를 하늘에 던져버린 모양이다.

승학산에 달이 뜬다면 꼭 한번 가볼 일이다. 월출산의 달 못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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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낭만을 찾아가는 山中問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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