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말며 자존심에 목숨을 걸어라

-.일시 : 2010.8.18~8.19
-.얼마나:2010.8.18 09:30~2010.8.19 11:55
-.날 씨 : 맑음.운무.여전히 후덥지근
-.몇명: 홀로
-.어떻게:자가승용차 이용한 여행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의성김씨청계종택-입암,남이포-서석지-삼지리-연대암,삼지리모전석탑
-영주 무섬마을-상주 회상마을,경천대-도리사-군위 삼존석굴-경산 원효암 마애석불
-.호감도ː★★★★

 

 

경북의 브랜드 슬로건은 프라이드(Pride)이다.자부심이다.신라천년의 불교문화를 간직한 경주가 경북이고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안동이 또한 경북이다.면적은 전국토의 19.1%로 전국 최대이고 서울의 31배에 달한다.그 외에도 포항,김천,구미,영주,상주,문경,경산 등 소속된 시市만 10개이다.

 

Pride라는 슬로건은 그래서 절묘한 것이다.그래서 경북은 가도가도 볼것이 있는 곳이다.Pride가 의미하는 자랑,긍지,자존은 곳곳에 빛을 발한다.자존심이 곧 목숨이었던 학봉 김성일 집안이 떠오른다.

 

이번 여행지는 그동안 자주갔었던 경주와 안동을 뺀 지역 중에서 지나쳐버렸던 의미있는 곳을 탐방하고자 길을 나섰다.안동의 하회마을과 예천의 회룡대는 "물돌이동"으로 유명한 곳이다.이 곳 경북에는 이미 다녀왔던 이 곳 말고도 물돌이동이 있다.이번 여행의 중점 탐방은 물돌이동 스페셜 플러스인 것이다.

 

그동안 참 많이도 쏘다녔지만 아직 미답지가 많다는 것은 행복하다.내가 이렇게 역마살 아닌 역마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어릴적 유년시절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태어난 후 약골로 병치례가 잦았던 기억이 난다.어린 시절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기억이 또렷이 나는 것은 아파서 밤새도록 뭔가 정신이 아득히 아래로만 떨어지는 느낌을 가졌던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그런 나를 부모님은 추운 겨울엔 아예 집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방에서만 키웠다.그래서 마을에서 붙은 별명이 "햇논이"라고 했다.무슨 의미냐고 물어보니 원래 "햇논"은 논을 처음 시작했다 하여 붙여진 논 이름인데 내가 겨울을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어 농부들이 논을 돌볼 즈음에 내 얼굴이 비추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레 붙여진 이름이다.

 

병약했었던 나에게 마을에 있는 젖소농장에서 배달하는 우유를 장복시켰다.요즘 처럼 카톤팩에 든 우유가 아닌 그날 방금 짠 가공이 전혀 안 된 생우유였다.젖소농장집 아들은 나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몇살 차이도 나지 않는데 큰 우유통을 자전거에 실어다니며 동네를 돌며 배달을 했고,배달된 우유를 집에서 끓여가지고 나에게 먹였다.처음엔 이상한 맛으로 억지로 먹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져서 그 고소한 우유의 맛을 잊을 수 없다.어느 정도 기력이 생긴 다음엔 우유를 끊고 국민학교(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한약을 먹었다.그 당시 우유값도 비쌌고,한약값도 비쌌지만 내가 장남이므로 하나있는 아들 살리기 위해서 먹였다고 한다.

 

인간될 것 같지도 않는 약골을 그런 방법으로 북돋우어 학교를 갈 즈음엔 키도 커고 튼튼한 아이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2KM의 학교 통학 거리를 매일 걸어다니면서 점차 더 튼튼해졌다고 한다.여하튼 약골로 방안에서만 갖혀지냈던 유년시절의 한恨 때문인지 몰라도 엄마 등에 업혀서 도로를 달리는 차를 태어난 후 처음 본 나는 그 차를 타고 가자고 엄마에게 보챘다고 한다.방안에서 키워져서 언어구사능력도 늦었던 내가 고급언어(?)를 구사한 말이 "부~웅 가자"였고,차가 귀한 그 시절에 대안으로 나를 미끄럼틀에 올려서 내려보내며 차를 탄 속도감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한다.한달내내 미끄럼틀을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한 말이 "오야간다(올라간다)와 내여간다(내려간다)"고 하니 등산과 여행은 나의 원초적 본능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유년세월을 지나 벌써 40대 중반을 넘어서고 보니 이제 "성공적인 노화"를 위한 "행복의 조건"을 만들때이다.미국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에 미국 하버드대 출신 268명의 삶을 72년간 추적한 생애연구 결과가 소개된 적이 있다.그 결과에 따르면 한 사람이 행복하게 늙어가는 데 필요한 요소는 일곱가지라고 했다. 그 일곱가지는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 교육,안정적인 결혼생활, 금연, 금주, 운동, 적당한 체중이다.금주와 적당한 체중에서 미미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충분히 극복 할 수 있을 것 같다.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에 "행복해 보인다"이다.나이 보다는 젊어 보인다.세상을 가장 멋지게 사는 사람 같다는 말도 들리지만 행복해 보인다는 말이 제일 듣기 좋다.



그러고 보니 내 나름대로 행복에대한 공부를 한 것 같다.사실 행복에 대한 공부를 한 것이 아닌데 멋진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그 여파로 행복한 생활이 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우선 행복하려면 공부해야 한다.위 행복의 조건에서 교육이 나왔는데 교육,공부,독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그중에서도 "행복"에 대한 공부를 해야한다고 본다.행복에 대해서 공부한다고 행복해지겠느냐는 분이 계신데 나의 경우 공부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을때의 행복이 가장 크다.식자우환이라고 하여 무지로 인한 행복도 있다고 하지만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보지 않는다.아직 모르는 것이 많으니 거꾸로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았다는 것은 행복꺼리가 남아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좋아하는 운동을 해서 건전한 정신의 그릇을 만드시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분명히 운동을 하면 좋은데 싫어하는 운동을 억지로 한다면 또 다른 스트레스이겠지만 다행히 난 걷는 것을 좋아하니 다행이다.싫어하는 운동을 억지로 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리하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은 참 요상하다.심리는 자신이 싫어하는 행위를 할때 가장 불안정해진다.다른 사람이 보면 별것도 아닌 것을 내가 싫어하는 분야를 마지못해 하게 되면 나는 상당히 두려워 하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한번은 몇년전에 비행기를 탔는데 내 옆에 있던 지인이 나에게 담배 한보루를 주면서 세관을 통과 시켜 달라는 것이다.아마도 이분은 이런 행위를 자주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넘겼지만 이런일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그 순간부터 머리가 엄청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세관에서 질문할 것에 대한 나름의 시나리오를 구상하면서 빨리 세관을 통과하여 입국되기만을 기다렸다.

 

"정신병적인 방어기제"가 작동 하고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쉽게 머리에서 기우가 떠나지 않았다.세관을 통과하는데 1인당 필요 이상의 물건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므로 그냥 무사통과로 싱겁게 끝났지만 내가 싫어하는 부분을 한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분야의 일이므로 혹시 이일로 뭔가 잘 못되지는 않을까하는 리스크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전반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인생과 자연,그리고 예술의 범주에서 균형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를 되돌아 보는 것도 좋겠다.긍정적인 노화를 위해서 행복이라는 불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노력은 필요하다.나는 행복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면 더 나아진다고 생각한다.

 

 

서석지가 있는 영양으로 가는 길목에서 안동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새로 만들어진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 들렀다.1,000분이 넘는
독립운동가의 면면을 보면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안동은 독립운동을 "가장 먼저, 제일 많이, 가장 오래 한 곳"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찾으려면 안동으로 가서 보면 보인다.

 

바로 안 쪽,옆에 내앞마을 의성김씨 종택이 있어 같이 둘러보았다.이 종택은
16세기 말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사신으로 중국 연경(燕京: 北京의 별칭)
에 갔다가, 그곳의 상류층 주택의 설계도를 가져와서 지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을 불천위로 모시는종택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안동 문화재의 70%가 종택,고택이니 헷갈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만..

 

학봉 김성일 집안은 독립운동으로 학봉의 직계 후손에서만 무려 11명이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제자까지 합치면 60명이 넘는다니 교육이나 가풍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대문에 어려운 한자말이 보인다.治化鴻熙 濟美聯輝
어진 정치를 바라고,아름다운 덕을 쌓자는 의미 같은데 정확히 잘 모르겠다.






 

영양의 서석지로 향했다.서석지瑞石池는 말 그대로 상서로운 돌로 만든 연못이라는
의미다.한국 3대 정원(전남 부용원,담양 소쇄원과 함께)중에 하나로, 조선 광해군 5년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 정영방선생이 조성했다고 한다.

 


주일재 건물 앞의 사우단(四友壇)의 사우는 소나무,대화나무,매화나무,국화를 심었다는
의미다.선비의 지조와 연관이 높겠다.그 중에서도 연꽃이 참 아름답다.

 

"마치 물 속에서 피어났으나
물이 묻지 않는 연꽃처럼
나 또한 비록 세상에 태어났으나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느니라."



"한권으로 읽는 아함경"이라는 책에 있는 내용이다.아마도 서석지에 있는 연꽃의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참으로 나는 운도 좋다.연꽃이 핀 적기에 이 곳을 찾았으니 난간에 걸터 앉아있으니
"좋다.좋아"만 연발 한다.아무도 없지만 누군가 관리를 정성스럽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무나 깨끗하기 때문이다.

 

가는길에 남이포와 입암(立巖,선돌)
이 있다.남이포 정자 앞 백로가 선비의 지조와 오버랩된다.남이포의 남이는 남이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바로 옆의 영양읍 삼지리로 향한다.신문기사를 보니 원래 삼지리는
"사람이 거주하기 훨씬 전 삼지마을은 안동 하회마을이나 예천 회룡포 등과
같은 물돌이동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이 흘러 산은 물에 길을 터줬고, 마을에는 더 이상 물이
돌지 않았다."고 한다.현재는 원댕이못(元塘池)과 탑밑못(塔底池), 바대못(坡大池)
등 세 연못이 남아 삼지라는 이름의 근원이 되었는데 이 세 연못에도 지금 연꽃이
한창이다.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말며 자존심에 목숨 걸어라는 진언을 듣는
느낌이다.

 

세개의 연못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좀 더 위로 길을 찾는다.
삼지리 모전석탑이 있는 연대암을 찾는다.
모전석탑은 자연석을 다듬어 기단으로 이용한 점이 특이하다.
원래는 3층이라고 하는데 유실되어 지금은 2층이라고 한다.
관음전 뒤의 석굴식 기도처도 특이하다.


 

이곳에서 보면 세개의 연못(삼지) 중 두개가 보인다.
관세음보살의 손에 든 연꽃은 모두 저곳 삼지연못을 채운 모양이다.









영주 무섬마을도 물돌이동이다.무섬은 "물섬"을 의미하고 현재 수도리水島里의
원래 이름이다.이 마을엔 고택과 문화재 자료인 가옥이 즐비하다.양동마을과 하회
마을을 섞어 놓은 듯한 인상이다.청빈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겹쳐진 곳으로
양동마을과 하회마을처럼 세계문화유산에 넣어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이제 "물에 떠 있는 고요한 섬"으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하고 있지만 조형적으로나 물돌이동에 어울리는
무섬의 태극형 외나무다리처럼...









 

 

경천대관광지 전망대에 서면 상주 회상마을이 눈에 들어오고
이곳도 물돌이동임을 알수 있다.





 

늦은 시간 도리사 일주문을 지나 일박한다.가로수가 참 멋있다.
"해동최초 가람성지 태조산 도리사"글귀가 이곳을 잘 웅변해 준다.
다음날 새벽 안개 자욱한 도리사를 배회하며 관람한다.

 

도리사는 경북 구미시 해평면(海平面) 냉산(冷山:지금의 太祖山)에 있는 절로
중국에서 불도를 닦고 귀국한 고구려의 아도(阿道)가 눌지왕 때 신라에 와서
그때까지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서 포교하기를 요청하여, 처음에는 많은 미움도
샀으나 후에 소지왕의 신임을 얻어 불교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 무렵 왕궁에서
돌아오던 아도가 이 곳 산 밑에 이르자 때가 한창 겨울인데도, 산허리에
복숭아꽃 ·배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거기에 절을 짓고 도리사桃梨寺라고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아도화상의 동상이 있고, 화엄석탑의 특이한 모습이 이채롭다.해동최초의
가람성지답게 적멸보궁도 있다.







 

군위 삼존석굴은 경상북도 군위군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
(국보 제24호)보다 연대가 앞선다.이 석굴에는 700년경에 만들어진 삼존석불
이 모셔져 있는데, 본존불은 2.18m, 왼쪽 보살상은 1.8m, 오른쪽 보살상은
1.92m이다.이곳은 도리사의 아도화상이 수도전법하 던 곳이고 이후 원효가
미타삼존을 조성 봉안했다고 한다.

 

앞에는 모전석탑이 있고 비로자나불상이 따로 있다.
좀더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한밤(대율리)마을이 있고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100% 자연석으로 만든 돌담길을 눈여겨 볼만한다.





 

공교롭게도 아도화상의 흔적이 도리사와 군위 삼존석불로 이어지고,
군위 삼존석불의 원효는 경산 원효암으로 이어진다.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경산의 원효암 마애여래좌상이다.

 

원효암으로 가기도 쉽지 않은데 원효암 극락전 뒤쪽으로 200M 가면 나타난다.
감실 내에 모셔진 형태로 통일신라 말기불상이다.바위에 홈으로 보아
전각이 있던 흔적이 보인다.특히 좌대에 핀 연꽃에 연경(蓮莖)을 표현하고
있는 점은 특이한 예이다.저 연꽃은 수백년이 흘러도 한결 같이 더러움에
물들지 말라고 인간들에게 일러주고 있다.





세월이 흐른다고,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물이 묻지 않는 연꽃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자존심에 목숨을 걸려면 역시 교육이 필요하다.

 


나약한 인간이 경북에 살다가는 제 목숨대로 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자연은 물돌이동을 보여주며 태극처럼 무극처럼 살라고 하고,
연꽃을 보여주며 더러움에 물들지 말라고 두가지 지혜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것 같다.취사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연꽃처럼 살려면 자존심에 목숨을 걸고
대문에 治化라고 쓰고 어진 정치를 해야 백성들이 따른다는 것을
훈수하는 어른이 될 수 있다.경북은 그렇게 해도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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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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