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삼림욕,해수욕,온천욕의 삼욕(三浴)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니 갯가에 있어도 문향으로 가득찰 수 밖에

 

- 언제 : 2014.11.2  05:20~ 21:30
- 얼마나: 2014.11.2  09:00~17:00
- 날 씨 : 흐린 후 점차 갬
- 몇 명: 45명
- 어떻게 :"고적답사회" 동행(지도:최영호 교수님)

 후포 등기산 전망대-평해향교-망양정-칼국수식당(울진읍 읍내리시장 內)-월계서원(장양수급제패지)-
    불영사-불영계곡 전망대-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남한 유일의 노천온천까지 있는 곳이 울진이다.산에서는 삼림욕,바다에서는 해수욕이 가능하고 백암온천,덕구온천이 있으니 온천욕까지 가능한 곳이 울진이다.그래서 울진은 이름 그대로 초목이 우거지고(蔚) 보배로움(珍)이 곳곳에 스며있는 땅이다.


원래 갯가는 미천한 곳이라는 인식으로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들은 바닷가 지역과는 통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다고 하는데 이곳 울진의 평해는 달랐다고 한다.비록 갯가에 위치하고 있지만 농경시대 때도 자식 중 한명은 선비로 키우고자 향교와 서원으로 보내는 인식이 강한 지역이라고 한다.

 

현재 울진은 인구 5만의 군이다.큰 부자도 없지만 큰땅은 아니지만 대부분 땅을 가지고 경작하여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는 곳이다.즉, 소작농이 거의 없는 곳이다.그래서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빈부격차가 크지 않아서 한국의 북유럽 같은 곳이다.


 

은퇴 후 살고 싶은 경치 좋은 곳으로 관동팔경 중 제1경인 망양정이 이곳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곳이다.그래서 그런지 풍요의 계절 만추지절에 다녀 온 울진 지역은 더 없이 평화롭고 풍요롭게 느껴졌다.

 

 

○후포항 등기산 신석기유적지(燈基山)

1083년 후포면 등기산 정상에 위치한 노인정 부근에서 선사시대(신석기말기)의 동침의 사람 뼈가 있는 매장시설이 발견.
간돌도끼 100여 점도 함께 발견. 당시까지 신석기시대의 매장시설로 최초에 해당.

 

 

날씨가 흐릿하고 바람도 제법 부는데 오랜만에 들런 후포항의 비릿한 갯내는
순식간에 온몸을 감싸며 꼼짝 못하게 하였다.

집어등을 가득단 어선 한척 주위로 갈매기들이 군무를 펼치고 있었다.

 

 


 

 

 

가파른 목계단을 오르며 등기산 전망대에 올라보니 사방이 확트여 눈맛이 시원하다.
다만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보는 것은 어려웠다.돌도끼가 있나 둘러보기도 했지만
이곳 울진 후포에 신석기 유적이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였다.

터진 구름사이로 빛내림이 간헐적으로 날씨가 점점 맑아짐을 예고한다.

 

 

 

 

○평해향교(平海鄕校)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위치한 고려후기 향교. 공민왕 6년(1357) 저전(楮田) 반월산(半月山) 아래에 지었다가
태종 7년(1407) 군수 김한철(金漢哲)이 송릉동(松陵洞)으로 옮겨 건축.
건물은 전학후묘형으로 명륜당 앞면에 동,서재 대신 태화루가 자리하여 대성전과 동일선상에 배치.

 

평해향교는 섬향나무가 돋보이는 평해읍사무소 우측 뒤 언덕에 있다.외삼문 뒤로 태화루가 보인다.
태화루에 올라 산세를 보니 참으로 평해읍 중에서도 명당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도착하니 날씨마저 햇살이 나고 갠다.

 

태화루 우측으로 백암산이 보인다.산세가 죽 흘러와서 평해향교 뒤로 감돌고 좌측으로 나가는데
딱 이 자리가 남향의 위치다.그래서 평해의 명당 중에 명당이 이곳이다.
태화루 아래는 조선시대 선정비 13기가 세워져 있다.지금은 강학보다는 당연히 춘추 제향의 기능만
남아있고 관리를 하시는 어르신들도 연세가 많아 앞으로 서원의 앞날이 불투명하다.

 

평해향교는 고려 공민왕 6년(1357년)에 반월산 아래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니 그 역사성으로 보아도 단연
돋보인다.반월산에서 조선 태종때는 송릉동으로 옮겼다가 광해군 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해향교는 신위봉안의 규모로 보아 중설향교라고 한다.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자사,증자,맹자를
봉안하고 종향으로 최치원,정몽주,정여창,이언적,김인후,성혼,조헌,송시열,박세채,설총,정호,안향,김굉필,
조광조,이황,이이,김장생,김집,송준길을 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처음으로 설총과 최치원,이이도 봉안되어 있음을 알고 기뻐하였다.풍류도맥에서 원효와 최치원,이이는 
꼭 거론이 되는데 원효의 아들 설총이 봉안되어 있고 풍류도맥에서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최치원,이이도
봉안되어 있음을 개인적으로 약간 놀랬다.

 

 

 

 

 

망양정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1

 

 

망양정은 말 그대로 대양(태평양)을 바라볼수 있는 정자라는 의미다.
망양해수욕장 남쪽의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 이정표 안내판을 따라 10여분 올라가야 볼 수 있다.
백두대간과 왕피천의 강과 동해 바다를 동시에 굽어 볼 수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하여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또 정철(鄭澈)은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망양정의 절경을 노래하였고,
숙종과 정조는 어제시(御製詩)를 지었으며, 정선(鄭敾)은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으로 화폭에 담는 등
많은 문인·화가들의 예술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숙종대왕은 왕답게 이렇게  적어놓았다.


아마도 옆에 장희빈이라도 같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자연을 대하는 담대함에 약간의 허풍도 그럴싸하다.

 

 

열학중중투이개       여러 골짜기 겹겹이 구불구불 이어 퍼졌고
경도거랑접천래       놀란 파도 큰 물결 하늘에 닿아있네
여장차해변성주       만약 이 바다를 술로 변하게 할 수 있다면
해단지경삼백배       어찌 한갓 삼백잔만 기울이랴

 

현판의 각자는 태송 박영교의 글씨다.

 

 

 

 

점심식사는 울진읍 읍내리시장의 "칼국수식당"에서 하였다.

이곳 주인장의 성이 "도"씨 인지라 "도씨칼국수집" 하면 바로 알수가 있다고
문화유산해설사님이 말씀하셨는데 명함을 받고 보니 성씨가 장씨다.

아마도 울진 장씨인듯하다.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칼국수 맛도 좋았지만 안주로 나온 무침회와 "울진 米소 막걸리"가 압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산 쌀 90%에 수입산 소맥 10%로 기품있는 가양주를 마실때의
느낌이었다.

 

내가 아는 어떤 막걸리는 수입산 쌀 12%남짓에 나머지는 모두 수입산 밀가루를 사용하여
텁텁한 맛을 속이려고 처음부터 탄산을 섞어 만드는데 유통기한이 15일이다.

그런데 울진 막걸리는 유통기한도 10일로 상대적으로 짧았다.
즉, 품질관리를 깐깐하게
하고 있음을 느꼈다.


일하면서 마서셔 좋고 저녁에 좋은 사람과 취하도록 마셔도 좋을 도수 7도였다.

보통 농주는 6도이고 술답게 마시려면 8도인데 딱 그 중간 7도였다.

 

월계서원에 도착하였다.
이곳엔 중요한 기록 유산 한점이 있다.


 

 

 ○장양수급제패지(張良守及第牌旨 : 국보 제181호)

울진장씨 장양수가 희종 원년(1205) 4월 동당시(東堂試 : 진사시) 병과에 급제하여 받은 홍패(紅牌)로
고려시대 최고의 현존 홍패. 황색 마지(麻紙)에 행서,초서,해서로 기록.

 

울진장씨종중(蔚珍張氏宗中)에서 소장하고 있다. 장양수는 고려 개국공신(開國功臣) 태사(太師)
장정필(張貞弼)의 5세손인 울진부원군 문성공 장말익(張末翼)의 8세손으로 봉익대부(奉翊大夫)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전리판서典理判書) 상호군(上護軍)등을 역임하였다.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에게 내린 홍패(紅牌),백패(白牌)와 같은 성격의 교지이다.
앞부분이 없어져 완전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나, 양식으로 보아 조선시대의 홍패,백패와는
서식상에서 차이가 있다. 최충헌의 이름도 나온다.

 

문화해설사가 복사본을 가져와서 구경할 수가 있었다.
이 교지는 보물이 아닌 국보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불영사(佛影寺)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하원리 천축산(天竺山)에 위치한 신라시대 사원. 진덕여왕 5년(651)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구룡사(九龍寺)라 하였다가 불귀사(佛歸寺)라 하였으며, 부처님과 같은 바위의 그림자가 못에 항상 비춰 불영사라 함.
조선후기에 조성된 불영사 대웅보전(佛影寺大雄寶殿 : 보물1201호), 불영사 영산회상도(佛影寺靈山會上圖 : 보물1272호로
석가모니가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모습을 표현), 불영사 응진전(佛影寺應眞殿 : 보물730호) 등의
국가지정문화재가 현존.

 

 

 

천축산 불영사의 글씨가 단아하면서 보기가 좋다.

 

 

 

 

 

 

일주문을 지나 강을 건너니 소라 속으로 들어가듯이 우측으로 휘어져 들어간다.
멀리 "청라봉"의 소라를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봉우리가 보인다.
청라봉(푸른 소라 봉우리)의 이름이 이해가 된다.

탯줄을 따라 들어가는 형세라 이곳은 비구니사찰이다.

 

 

 


 

 

 

강을 따라 들어가니 좌측 바위벽에 단하동천 글씨가 보인다.
단하(丹霞)는 "햇빛에 비치는 붉은빛의 운기(雲氣)"를 의미하니 
아마 이곳은 계곡에 안개가 피고 해가 뜨면서 그 안개가 붉게 변하는 상황을 일러주는 것이다.

 


 

 

 

우측에 난길로 들어가니 1기의 부도가 보인다.
"양성당선사 혜능 부도"이다.우측 비문의 글씨를 보니 전서체이다.

 

비문의 내용은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최석정 지었다고 한다.

양성당 선사 혜능의 시 한수를 살펴보니 내가 부처와 연꽃 사이에 앉은 듯 고요해진다.


 

"강론을 마치고 염불에 날이 저물면
밝은 달 솔바람 타고 사립문을 닫아 거네.
고요하게 살면서 고요하게 흥취를 자득하니
온 경내 고요하여 꿈결인 듯 아늑하네."

 

 

 

 

 

우측의 사적비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세운것인데 ,이 비문에는 혜능선사와 인현왕후의 꿈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인현왕후의 꿈 속에 혜능선사가 나타나 "3일만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겁니다."
라는 내용인데 3일 후 왕의 부름을 받아 다시 왕비의 자리로 돌아가고 이후 숙종은 왕비를 살린 보답으로
불영사를 중심으로 사방 십리 안의 토지를 시주하였다고 한다. 

불영사 경내 입구에 들어서니 나무들이 전위예술을 하는 듯 이채롭다.

 

 


 

 

불영사 대웅보전 아래에 거북이의 머리가 둘 보인다.대웅전 터가 연못자리였으므로 거북이를 두면 대웅전이
가라앉는 것을 막아준다는 설과 함께 또 다른 설이 두가지 더 있다.  

 

 


 

 

 

거북은 불의 피해를 막는 수호신이기도 하지만 도교의 영향으로보면
'동해 대오 배부 삼신산(東海 大鰲 背負 三神山)'이라 하여 동해에 살고있는 큰 자라가 삼신산을 업고 있다는
내용이 떠오른다.대체로 비보 풍수로 보는 것이 맞겠다.


 

머리는 대웅전 밖에 있는데 대웅전 안에 거북이의 몸이 천장에 조각되어 붙어 있는 부분이 재미있다.
대웅전 내의 보아지를 보면 용머리로 꾸며져 있지만 자세히 보면 삭발을 한 승려의 모습이다.

 

 

 

응진전의 건물의 품격이 남다르다.맛배지붕의 단아함에 처마의 당당함은 
얼굴도 잘생기고 몸도 좋은 톱스타를 보는 느낌이다.

 

이는 아마도 다포계 공포가 앞과 옆 모두 있어서 처마도 당당한 모습이 되었다.
조선 중기 작품으로 보물이다.다른 건물은 불타 없어져 새로 지었지만 이 건물은
화마에도 살아남았다.

 

 


 

 

 

불영사를 나와 불영계곡을 옆에 끼고 달리다 잠시 내려 불영계곡의 모습에 감탄한다.
계곡의 물과 바위와 삼림이 어우러져 보이는 저 앙상블을 어떻게 눈에 들여놓지 않겠는가? 
불영계곡 가장 자리의 도로는 우리나라 공병대가 했다고 하는데
작업 과정에서 희생된 군인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마지막으로 행곡리 처진 소나무를 감상하고 모두 월송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울울창창한 보배로운 금강송 아래서 운치를 즐긴다.

 

점점 어두워져 밤이되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북두칠성 국자로 술로 변한 동해물을 가득담아 마실수도 있겠지만
감탄사를 연발했던 울진 막걸리와 회무침 안주로 마지막 풍류를 즐긴 후 울진을 떠난다.

 

별유천지비인간의 세계가 여기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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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Posted by 세벗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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