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2 )천혜의 자연환경에 피어나는 생사를 초월한 남원의 사랑
- 백장암,용담사지,만복사지 폐사지 답사

 

-.일시 : 2008.11.22 16:00~11.23 18:00
-.날 씨 :맑음
-.몇명: 12명
-.어떻게:자가용 이용

▷하동-야베스산장-석주관칠의사묘사적지-안한수내마을(송정)-연곡사-매천사-백장암-용담사지-만복사지
- 호감도ː★★★★★

 


남원은 기후가 온난하고 토지가 비옥할 뿐 아니라 수리시설이 잘되어 농업이 발달하였고, 천혜의 자연 환경과 문화유산으로 관광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는 도시다.

 

통일신라시대 남원은 소경이 설치될 만큼 지리적. 정치적. 군사적 위상이 높은 지역이었다. 따라서 그만큼 국가적인 정책지원과 지배계층의 관심으로 인한 경제적. 정신적 풍요로움이 발전했던 곳이다. 이러한 정신문화의 발전은 불교. 유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 문화유산을 남겨 놓았으니 유불선을 통섭하는 풍류의 관점에서 볼때도 최적지이다.

 

민족의 영산, 어머니 산인 지리산의 서북관문인 남원은 예로부터 천부지지(天府之地) 옥야백리(沃野百里)라 했다.천부지지(天府之地)란 하늘이 고을을 정해준 땅이라는 의미며, 옥야백리(玉野百里)란 비옥한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말이다.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 생리조(生利條)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땅 중 전라도 남원(南原)이 있다. 벼 한말을 심으면 가장 많이 나는 곳은 140두를 추수할 수 있다.” 고 했다.

 

그리고 문화재는 전국에서 제일 많고, 특히 효열비는 전국 두 번째로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남원을 충(忠) · 효(孝) · 열(烈) · 예(藝)의 고장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주저 없이 남원을 이렇게 얘기하는 데는 그만큼 지리적 환경과 인문적 환경이 출중하다는 얘기다.진정 하늘이 고을을 내려 그 속에서 사람이 고루 잘 살도록 정해준 땅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혜로운 산, 생산과 창조의 근본 어머니 산인 지리산은 남원 땅을 향해 완만한 구릉을 형성해 그 풍부한 물산 속에서 사람을 여유롭게 살게 하여, 생원 진사 합격자 500여명을 배출해 냈는데 이것이 남원문화의 원동력이다.

 

그토록 풍부한 문화적 토양을 간직한 지리산 자락,문화의 중심인 남원에서 폐사지를 찾아간다는 것은 어떤면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문화유람이라고 볼 수 있다.

남원 백장암

 

백장암의 주소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28번지이다.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찾아가는데
실상사 근처 엉뚱한 곳에 도착한다.그래서 주소가 아닌 "백장암"이라고 명칭검색을
하니 방향을 바꾸어
안내한다.산내중학교 근처에 도착 할 즈음 큰 바위에 얼핏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근처에 가서 살펴보니
방선대라고 음각이 되어있다.방선대(訪仙臺)는 산내면
대정삼거에 위치하며 바위에 訪仙坮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으며 아래로 작은글씨들은 알아볼 수
없다.

 

산꾼들의 전해지는 이야기에 지리산에 삼천대천세계를 심어 놓은 지리산 33대(臺)가 있다고 한다.

만복대,종석대,묘향대,무착대,향운대,문창대,영신대,향적대,문수대,옥천대,서산대,
불일대,상무주대,영랑대,소년대,
집선대,청련대,가섭대,좌고대,창불대,금강대,환희대,의론대,
지산대를 일러 지리산 24대이며 여기에
장군대,연화대,방선대,금대,제승대,관음대,제석대,
수성대,마적대를 넣으면 33대이다.

 

 

 

백장암으로 가는 길을 포장한다고 진입금지 되었지만 4륜구동 차량은 우측 비포장임도로
진입하여
사찰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백장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인 실상사(實相寺) 소속 암자이다.

 

828년(신라 흥덕왕 3) 홍척(洪陟)이 실상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세워, 실상사가 사세를 크게
떨칠 때에는
참선 도량으로 유명하였다. 1468년(조선 세조 14) 실상사가 화재로 폐허가 된
이후부터 1679년(숙종 5)
까지는 이 암자가 중심 사찰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1800년대 초에
침허가 중창하였고, 1868년(고종 5)
10월에 화재가 나자 이듬해에 운월이 본래의 절터에서
약간 위쪽으로 옮겨 중건하였다.

 

1900년(광무 4) 다시 화재가 나자 1901년에 남호(南湖)가 중건하였다.

 

텅빈 도량에 국보 제10호인 실상사백장암삼층석탑, 보물 제40호 실상사백장암석등이 있지만
워낙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석물들이라서 꽉차는 느낌이다.그 중에서 삼층석탑은 1998년
여름에 기단부에서
팔부신중 조각이 발견되어 학계의 큰 관심을 끈 바 있다.
보통 팔부신중은 서 있는 모습이지만 이곳에
표현된 것은 악귀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였다. 이러한 양식은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이며,
신라 후기의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위쪽 법당은 결제중인지 출입금지되어 있어서 들어가보지 못하고 늦가을 정취만
헤아리다
발길을 돌린다.

 

 

 

용담사지

 

다음 찾아간 곳은 용담사지이다.전북 남원시 주천면 용담리 298번지에 있다.

 

용담사지는 옛절터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깔끔한 모습이었다.새로지어진 대웅전도 보이고
용담사지가
아니라 분위기는 용담사였다.그러나 용담사지는 아직 사적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름없는 사문에 의해 관리가 되고 있다고 하여 뭔가 체계적인 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용담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백제 성왕(星王) 때 창건하였다는 설과 통일신라
말에
선각국사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전설이나 유물로 보아 신라 말에 창건한
사찰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예전에 이곳의 용담천에 이무기가 살면서 부근 사람들을 해치곤 하였는데
도선이
이곳에 절을 지어 용담사라 한 다음부터는 이무기의 행패가 없어졌다고 한다. 대웅전이
북향(北向)인
것도 절 뒤에 있는 용담천의 이무기 전설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유물로는 석불입상(보물 42), 칠층석탑(전북유형문화재 11), 석등 등이 있다. 석불입상은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해 옆면을 제외하고는 세부적인 표현은 알 수 없으나, 전체높이 6m의
거대한 몸체에 당당한
기풍을 지니고 있는 고려시대 양식의 작품이다.

석불입상 앞에는 석등과 칠층석탑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칠층석탑은 약 10m 높이의 길고
가는
형태로 고려시대의 작품이며, 석등은 팔각형 기대석 위에 팔각형의 하대석과 간석을
올린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의 고려시대 작품이다.

용담사가 위치한 지리적 조건을 보면 정상적인 절터로 보기가 어렵다.계곡의 거친 물살이
몰아치는
산자락에 절터를 다듬은 것부터 이례적인데 방향도 남원시내 방향이 아닌 북쪽산으로
막힌 용담천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토 곳곳에 비보裨補를 행했다는 도선국사의 혜안으로 이무기의 행패를 잠재운 것으로 보인다.

 

 

용담사지를 관람하고 남원시내 방향으로 나오는 길에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기상풍영(沂上諷詠) 융중산수(隆中山水)"라는 글이 힘있게 새겨져 있다.

 

이글은 “남원의 산천경개는 공자(孔子)의 제자인 증잠이 산수가 뛰어난 기수(沂水)에서
풍영(諷詠)
했다는 중국의 기수(沂水)와 같이 아름답고, 남원에 사는 사람들은 제갈공명이
산수를 즐기며 융중
(隆中)에서 때를 기다린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는 남원 사람들의 기상과 남원이 가지고 있는 환경과 역사, 문화를 한마디로 함축한 말로
문화의
발상지요 중심지라는 의미로써,진정 하늘이 고을을 내려 그 속에서 사람이 고루 잘
살도록 정해준
땅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자부심 가득한 글이다.

 

 

 

만복사지

만복사지는 전북 남원시 왕정동 537-1번지에 있다.한눈에 보아도 사찰 규모가 큰 편이다.

 


그래서 남원팔경 중에 만복귀승(萬福歸僧)이라는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만복사의 승려들이
낮에
시주걸립 나갔다가 석양이면 발(鉢)을 등에 메고 사찰로 발길을 재촉하는 모습에 연민의
정을 담아
만복귀승으로 표현한 것으로 만복사에 기거하는 승려의 수가 엄청났음을 의미한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도로변에 있는 석인상이었다.한국인의 미소라고 극찬을 받았다는
미소는
도로의 매연연기로 얼굴이 일그러졌는지 내 눈에는 화난 모습으로 보인다.1965년
발굴조사에 따르면
전신이 3.75M라고 하는데 얼굴만 내어놓고 가슴 이하는 땅에 파 묻혀 있는
생매장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무슨 인욕바라밀을 하는것 처럼 보인다.뒤로 보물 제32호인
소박하고 거대한 당간지주가 보인다.

 

 

 

중간에 보물 제31호인 석대좌가 보이는데 육각형으로 조각된 연화대이다.보통 4각형
아니면
8각형인데 6각형은 이례적인 모습이다.

 

 

보물 제30호인 5층석탑이 보이는 뒤로 보호각이 보인다.

 

 

보호각 안에는 보물 제43호인 석불입상이 있고 석불입상 뒤쪽엔 마애불 형태의 음각된
그림같은 부처님이 보인다.

 

 

남원에는 춘향이 여주인공이라면 또 다른 남주인공이 있으니 "만복사저포기"의 "양생"이 있다.
김시습金時習(1435~14793)의 한문소설`금오신화金鰲新話`에 수록된 다섯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를 들여다 보자.

만복사는 사찰 이름으로 만 가지 복을 내려준다는 뜻이 담겼고, 저포란 윷놀이에 대한 한자어다.

 

전라도 남원골 노총각 梁生(양생)이 ‘무엄’하게도 부처님과 樗蒲라는 賭博을 한 판 붙어
이김으로써
선녀처럼 아리따운 아가씨를 얻어 百年佳約(백년가약)을 맺는다는 이야기다.

생육신 가운데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설잠이라는 중이되어 만복사에 들어와서 금오신화
저술한 것으로 나온다.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로 불리워지는 금오신화는 다섯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그중 만복사저포기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양생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절간의 방을 하나 얻어 살고 있었다. 방 앞에 감나무 앞을 거닐던
외로움을 느끼다 공중에서 '너의 인연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는 얘기를 듣고 기뻐한다.

부처님 불상 앞으로 가 저포(윶놀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내기를 건다.
부처가
이기면 법연을 베풀고, 자기가 이기면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결과는 양생의 승리, 양생은 불상 뒤에 숨어 있다가 열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한다. 그 여인은 서럽게 울며, 부처께 아뢴다. 그 모습에 측은한 마음이 들은 양생은
여인이
올린 축원문을 읽어 보았다. 여인과 양생은 절간의 방에 들어가 하룻밤을 지낸 뒤,
여인의 집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 아무도 여인을 못 알아보고 양생에게는 말을 건다. 양생은
여인의 집에 있는
가구들이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아 의문이 들었지만, 여인과 여종의
친절함 때문에 그 의문을
던진 채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며칠이 지나고 여인은
'여기는 인간 세상이 아니다. 여기에서의
사흘은 인간 세상의 3년과 같다. 당신을 돌아갈 때가
됐다. 가서 나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려라.'

증거물로 은잔을 쥐어준다. 양생은 여인의 말대로 부모를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보련사로 간다.
부모는 처음엔 양생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양생과 여인이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것을
엿본
다음에야 진짜인 줄을 안다.
(물론 여인의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수저 소리와 작은 말소리로)
날이 밝기 전에 스님이 여자의 혼백을 올려보내고 나서 양생과 그 부모는 슬픔에 빠진다.
부모는 은잔을 양생에게 주고, 여인의 소유였던 땅과 여종을 줄테니 자기 딸을 잊지 말라
당부한다.



양생은 여인의 집에 찾아갔는데 그 곳은 무덤이었다. 여인의 넋이 나타나 말한다. 자기는
양생의
은덕을 입어 다른 나라의 남자로 태어나게 되었다고. 양생은 혼인도 안 하고 지리산에
약초를 캐며
살았는데, 그 이후로는 아무도 그의 소식을 모른다 한다.

 

만복사저포기의 줄거리에 대한 감상은 노총각 양생이 부처와의 저포놀이를 통해 베필을
얻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배필을 점지해 달라고 기원하고자 만복사를 찾았다가 양생의
배필이
된 여인은 왜구의 난리 통에 죽은 처녀의 환신이었다. 즉, 이 이야기는 살아 있는 양생과
죽은
하씨라는 여인이 만나 사랑을 나눈다는 명혼(冥婚)소설에 해당한다. 이렇듯 생사를
초월한 남녀의
애정 문제를 다룬 이 작품에서 죽은 여인이 전생에 이어 삼세(三世)를 통해
양생을 받들겠다고
약속한 것은 작가 김시습이 세종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끝까지
받들겠다는 의미
로도 이해할 수 있다.실제 전체 내용을 읽어보면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처럼
점점 몰입되어
가면서 명작이라는 느낌이든다.

 

 

천부지지(天府之地) 옥야백리(沃野百里)
기상풍영(沂上諷詠) 융중산수(隆中山水)

-남원의 지리적 특성과 자부심



━━━━━━━━━━━━━━━━━━━━━━━━━━━━━━━━━


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
,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