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청산은 태고의 성품이요. 맑은 물은 만년의 근원이네
임실(任實),"그리운 임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도 있고 글자 그대로 하면 "맡긴 열매"가 되는데 임실의 브랜드 심벌이 "열매의 고장"입니다.
임실은 산 좋고 물좋다는 표현이 어울리는데 고려와 조선의 건국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주산인 성수산에는 상이암이 있고,섬진강이 곡선으로 흘러 한국적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곳입니다.
이런곳이니 열매가 따 놓은 당상처럼 풍성하게 열릴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백제시대 "잉힐"에서 신라 경덕왕 16년에 임실군으로 고쳐진 이래 1200년간 그 이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임실하면 국사봉 전망대에서 바라 본 옥정호 붕어섬과 임실치즈테마파크, 그리고 김용택 섬진강 시인이 떠오릅니다만 이번에 가보지 않은 곳을 우선으로 선택하여 폐사지와 성수산 그리고 동학과 관련된 유적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임실의 인물들의 흔적까지 찾아갑니다.
- 일시: 2024-7.12 22:20 ~7.13 18:00
- 날씨: 대체로 흐리며 간간히 약간의 비
- 몇명: 홀로
▷ 답사일정(風輪) :556km
1.진구사지:전북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 187-1
2.사선대: 전북 임실군 관촌면 사선2길 68-7 / 운서정:전북 임실군 관촌면 관진로 61-20
3.천도교임실교구:전북 임실군 임실읍 봉황로 105
4.소충사: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산성로 725-23 소충사
5.상이암: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산길 658
6.박준승 선생 추모공원:전북 임실군 청웅면 옥석리 756
7.조항마을 (해월신사 동학교리 설법 장소):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옥석리 1137(1093)번지
8.광제정: 전북 임실군 세심길 76
2024-7-12
장마철이라 습도는 높지만 일기예보상 강수확률이 낮은 틈을 이용하여 길이 젖어있지는 않아서 노면 상태는 좋았습니다.
2024-7:13
지난밤 10시 20분에 출발하여 7월13일 1시쯤 지리산휴게소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했습니다.
아침 7시반쯤 기상하여 출발, 1시간을 더 달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진구사지입니다.
▷진구사지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나라에 있는 석등 가운데 두번째로 큰 석등으로 통일신라시대(8~9세기) 제작된 것입니다.규모도 규모이지만 섬세하게 제작된 디테일에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은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의 석등입니다.각황전 앞의 석등은 노반 위의 보주까지 있어서 국보인데 진구사지 석등은 보주가 없어서 보물로 지정 한 것 같습니다.그리고 각황전 앞의 석등은 여러 건물이 주변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큰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진구사지의 석등은 폐사지에 석등만 눈에 들어와서 상대적으로 더 커보였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커 보이지 않지만 우측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 집과 비교해 보세요.
통일신라시대라고는 하지만 고구려 혹은 발해의 느낌이 물씬 나서 읽어보니 진구사는 7세기경 고구려계 적멸과 의융이 창건한 사찰입니다.
아래쪽 안상(眼象), 글자 그대로 눈의 모양,또는 눈처럼 생긴 모양으로 눈의 위치는 위에 있어야 하겠지만 가장 아래쪽에 있습니다.그 위 연화하대석의 복련은 섬세하고도 조형감있는 표현력이 압권입니다.그 위 허리처럼 잘록한 위치이지만 다시 약간의 볼륨감으로 북모양으로 나온 중대석의 간주에도 연꽃잎이 보이고 연화상대석 앙련에서 다시 한번 연꽃이 위로 향한 것처럼 표현했는데 겹겹한 모습이 아주 좋습니다.
기능적으로 화사석의 화창은 아주 단순하게 직각으로 단순화하여 기능에 충실했고 직각이 주는 강인함이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압도합니다.여기서 옥개석의 귀꽃은 화려함의 정점을 찍었는데 화창으로 불이 밝혀져 삐져나오면 위로 솟구치는 형상을 더 돋보이게 할 것으로 보여집니다.보주의 노반으로 마무리되지만 그 위는 멸실되어 보이지 않아 안타깝습니다.보물 제267호인데 저에게 충격을 준 느낌은 국보입니다.
석등 우측의 건물에 모셔진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은 연하좌대를 보면 석등의 조성과 기법이 비슷하지만 석등에서 받은 충격때문인지 다소 소박해 보일 정도입니다.
석탑은 부셔져 옥개석 일부가 남아있는데 석등의 규모에 비하면 비로자나불 좌상이나 석탑도 상대적으로 작아보입니다.폐사지에서 금강석처럼 남은 몇개의 흔적이지만 이곳 석등만 보더라도 충분히 와 볼만한 공간입니다.
▷사선대(四仙臺)
사선대에는 진안군 마이산의 두 신선과 임실면 운수산의 두 신선이 어울려 노는 것을 하늘의 네 선녀가 보고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내려와 함께 놀았다는 전설이 전합니다.
사선루 누각은 2013년에 지어진 건물인데 경복궁 경회루를 축소해 만들었다고 합니다.그 우측의 까마귀가 놀던 강인 오원천(烏院川)은 섬진강의 상류에 해당됩니다.
오원천 너머로 운서정이 보이는 높다란 언덕이 바로 사선대입니다.
▷운서정(雲棲亭)
구름이 사는(雲棲) 운서정은 김양근의 아들 김승희가 부친의 덕망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3년 부터 1928년까지 6년간에 걸쳐 지은 누정으로 당시 쌀 300석이 들었다고 합니다.운서정은 솟을대문 가정문을 지나면 동재와 서재가 대칭으로 위치하고 바로 운서정이 날개 편 봉황처럼 나타납니다.
내부의 화려한 단청과 조각의 세밀함이 대단합니다.정자의 전면 현판의 좌우에는 두마리 용이 자리해 있는데 구름이 사는 곳(운서雲棲)에 용이 있고 주위 비석의 이수처럼 보이는 석물을 보면 4마리 용의 머리가 보입니다.
교룡운우(蛟龍雲雨)라고 하여 교룡이 구름과 비를 만남을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데 "영웅이나 풍운아가 기회를 얻어 대활약함을 비유한 말"이기도 합니다. 훌륭한 인물이 나기를
기원한 정자로 보입니다.
운서정은 일제강점기 우국지사들이 모여 한을 달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천도교임실교구
천도교 임실교당은 1930년에 지어졌는데 한옥으로 치면 ㄱ자형 목조건축물이지만 천도교 측면에서 보면 人자로 인내천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는데 문이 닫혀져 있어서 보질 못했습니다.이 건물은 임실지역 동학운동과 천도교 활동의 상징건물로 전북지역 초기 종교건축물은 천도교 구 임실교당이 유일합니다. 저도 문화유산답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대부분 일제강점기때 모두 피해를 입어서 터만 남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동학이 전북지방에 최초로 포교된 것은 최제우가 제자 최의중과 더불어 남원의 서공서 집에 머물며 포교를 시작한 것이 시초이고 이후 전라도 지역은 동학이 급속히 전파되었습니다.전라도 지방은 전국 조세수입의 51.7%를 부담했고 탐관오리의 수탈대상이었으니 의지 할 곳없는 농민들은 동학에 귀의 했다고 합니다.
임실지역 천도교 지도자 중 민족대표 박준승 선생은 1907년 6월 천도교 임실교구 창립교구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했으며 삼요정(三樂亭)의 삼혁당 김영원도 임실교구장을 역임했습니다. 94년된 임실교당은 현재 복원이 된 상태입니다.
▷소충사(昭忠祠)
소충사는 구한말 이석용 의병장과 휘하에서 활동했던 28의사를 기리기 위한 사당입니다.이석용 의병장은 3대독자로 태어났지만 구국을 위해 을사늑약 후 아버지에게 하직인사를 올린 후 의병을 시작합니다.제가 군대에 있던 시절에는 3대독자는 대를 이어야해서 군대도 면제되던 시절인데 이석용 의병장의 하직인사를 받은 아비의 심정은 어땠겠습니까?
개망초가 하얗게 지천으로 덮혀있는데 원래 개망초는 "왜 풀(일본 풀)"로 이름이 시작됩니다.구한말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면서 철도가 놓일때 침목에 이 풀이 들어와서 번식력이 뛰어나 철길마다 이 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망했다'에 '매우'를 뜻하는 '개'를 붙여 요즘 아이들이 자주 쓰는 말인 '개망했다'와 비슷합니다. '개망했다'와 비슷한 개망초라는 이 이름은 망초에서부터 시작됩니다.망초는 한자 뜻 그대로 망할 망(亡)에 풀 초(草)입니다. 그 위로 무궁화가 피어있어서 이곳을 찾은 저에게 그 의미가 남다르게 보입니다.
구한말 이 분들이 있어서 대한민국이 무궁화처럼 다시 살아나 유지되었습니다.이석용 의병장은 임실 태생으로 자는 경항 호는 정재로 을사조약 후 1907년 호남의병창의동맹단을 결성하고 의병장으로 추대되었으며 500여명의 의병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요즘 우크라이나를 보면 많은 국민들이 전쟁터에서 죽어서 이 즈음에서 러시아와 휴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그 당사자가 되면 모두가 죽더라도 계속 러시아와 항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러시아 본토를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달라는 젤렌스키가 이해가 되지만 3차대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미국과 유럽을 보면 한편 이해되는 측면도 있어서 역시 국제정세는 힘이 없으면 여러가지로 제약을 받게 됩니다.
28의사 기적비와 호남창의동맹단 비석이 보입니다.
▷상이암(上耳庵)
성수산은 임실의 주산으로 장수 팔공산 준령이 치달아와 우뚝 멈춘 세가닥 중 힘찬 맥을 형성하고 있는데 호남의 미목(眉目)으로 여덟 왕이 나올 길지라고 합니다.현재 2명의 창업왕이 나왔으니 앞으로 6명이 더 나오겠습니다.이곳은 구룡쟁주지지(九龍爭珠之地)라 이는 아홉마리의 용이 구슬을 물려고 다투는 형국이라고 합니다.산세가 성수산 아래로 계곡이 펼쳐지고 그 좌우로 능선과 계곡이 펼쳐지는데 계곡의 물이 모여 모이는 곳이 상이암 위치라서 이곳은 시원한 물줄기가 압권이었습니다.요즘 장마철 영향도 있지만 상당히 습합니다.
왕의 숲으로 오르는 도로는 점점 경사가 커졌고 길은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좁아졌습니다.간신히 사찰 끝까지 오르지 못하고 근처 주차가 가능한 약간의 부지에 주차하고, 좌측의 콸콸 쏟아지는 계곡의 물소리를 듣으며 우측 초록의 융단처럼 이끼가 낀 돌길을 걸어서 오릅니다.
상이암은 고려왕조와 조선왕조가 시작된 곳입니다.도선국사가 이 산을 둘러보고 천자봉조지형(天子奉朝地形)이라 탄복하고 왕건에게 17세때 백일치성을 권했는데 백일기도 끝에 계시를 받아 그 기쁨을 환희담(歡喜潭)이라고 비에 새겼다고 전합니다.
고려말 무학대사의 권유로 태조 이성계도 치성을 올린 바 삼업이 청정함을 깨닫고 삼청동(三淸洞:山淸,水淸,氣淸: 산도 맑고 물도 맑고 하늘도 맑구나의 의미)이라 글씨를 새겼습니다.또한 하늘의 천신이 내려와 손을 귀 위로(上耳) 올리며 성수만세(聖壽萬歲)라 세번 외치는 용비어천의 길몽을 얻었다고 헙니다.
억불숭유의 조선이었지만 이곳은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오히려 수호의 대상이 되어 근처 지명을 보면 성수리,사근리,상이암,불당동 등 어지간히 큰 사찰로 컸었던 것 같습니다.
상이암 암자 뒤로 청배실나무(산돌배나무와 비슷한 종)가 보이는데 수령이 600년이라고 합니다.봄에는 이화(梨花)가 광명등처럼 암지를 밝힌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말부터 수난의 시기를 맞이합니다.동학운동과 항일운동과 한국전쟁의 전화로 소실되어 규모가 암자의 수준으로 작아졌습니다. 동학농민운동때는 김개남이 100일간 머물렀다고 합니다.
워낙 습한 곳이라 절집의 당우들 모두 문을 열어두었습니다.
상이암 부도는 3기가 있고 조선중기에 조성된 것입니다.혜월당 부도는 항아리 모양의 몸체위에 8각형의 옥개석을 올리고 그 위에 보주를 올렸습니다.
칠성각 앞의 나리꽃도 사찰의 운치를 더합니다. 왕의 숲답게 편백나무가 여기저기 있어서 치유의 숲 기능도 겸합니다.
산신각에는 산신령 대신 이성계 어진이 있습니다.
좌측 들어가는 문 위에 상이암(上耳庵)이라는 작은 현판이 보이고 큰 현판은 무량수전(無量壽殿)으로 되어 있는데 성수산의 聖壽와 어울립니다.
성수산은 등고선 지형 지도를 보면, 성수산 'ㄷ'자 형태의 가운데 능선에 855m, 860m, 862m, 875m, 888m, 886m, 902m, 905m, 903m, 879m와 887m 높이의 봉우리 11개가 능선에 한 줄로 늘어서 있습니다. 그 사이 계곡으로 흘러내려 성수산은 구룡쟁주지지가 되었고 905고지 바로 옆 봉우리의 산줄기의 끝에 상이암 무량수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905고지는 장수와 경계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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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水誌(운수지, 1730년)
聖壽山在縣東三十里 (성수산재현동삼십리)
聖跡山初落也 (성적산초락야)
其形特秀最著靈異 (기형특수최저영이)
有旱祈雨必應 (유한기우필응)
성수산은 현의 동쪽 12km 위치에 있다.
성적산(장수 팔공산)의 기세가 처음 뭉친 곳이다.
그 형세가 특수하고 영험하고 기이함이 가장 드러난다.
한발이 들어 기도하면 반드시 비가 온다.
...............
기도발 좋은 곳에서 오늘도 스님이 불공을 드리고 있습니다.
▷박준승 선생 추모공원
박준승(此菴 朴準承 1866~1927)은 1866년 임실군 청웅면에서 태어났고 1890년 동학에 입교하였습니다.
1897년 동학의 접주가 되었고 1902년 3월 도집강에 임명되었습니다.1919년 3.1독립만세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으로 2년의 옥고를 치뤘습니다.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동상 아래 자암 박준승 선생의 술회라는 5언시가 보이는데 "오직唯"이라고 번역해 놓고 새긴 글자는 "생각 할 유惟"로 되어있습니다.오각으로 판단되는데 오각이 아니라면 "생각해보면 하늘의 뜻과 신령이 같을 것이다."로 번역해야 할 것입니다.
천도교회 월보 1995호에 수록된 글로 옥중에서 독좌심공(獨座心工),연성수도(煙性修道)로 득도의 경지에서 이룬 유불선 삼교의 종지가 함축된 작품입니다.
만해 한용운,자암 박준승 같은 분들은 수도승처럼 두문불출 동안거,하안거 하듯이 교도소에 수감되었을때 오히려 이와 같은 조건이 수동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이런 여건을 용맹정진의 시기로 능동적으로 맞은 것 같습니다.
述懷 술회 - 泚菴 朴準承 자암 박준승
氣和雲淡處 기운 온화하고 구름 맑은 곳
夢古園覺春 꿈은 옛 동산의 봄을 깨운다
聽邊聲聲樂 귓가 들려오는 소리마다 노래이고
春裏色色形 봄 속 형상마다 색색이다
柳綠煙銷堤 버들가지는 언덕 위 안개속에 잠겨있고
花開日遲臺 연 꽃 피는 날은 누대에 더디기만 하다
光穿反照鏡 빛은 거울에 비쳐 눈부시게 되돌아오고
月隱無量波 달은 끝없는 물결에 잠기어 있도다
空寂玄眞界 하늘은 선계처럼 고요하고 아득한데
圓充活潑機 우주의 기운은 가득 차 활발하다
難言又難狀 말로 하기 어렵고 그리기 어려우니
非金亦非玉 금빛이라할까 옥빛이라 할까
道生淸淨源 도는 청정한 곳에서 생기고
德著無爲化 덕은 무위의 조화에서 드러난다
性沈血海月 성품은 핏빛에 물들은 바다에 뜬 달이요
心藏鏡臺燭 마음은 거울에 감춰진 촛불같다
守心泰山立 마음을 지키니 태산이 우뚝섰고
正氣大洋濶 기운을 자로 세우니 대양처럼 넓더라
更定胞胎數 다시 태어나서 운수가 정해진다면
幻出新世人 바꾸어서 새 세상 사람으로 나올 것이다.
執中無過級 중도를 잡으면 과불급이 없고
修眞滿志量 참을 지키면 큰 뜻으로 가득 채워진다
更化潑神靈 다시 변하여 신령이 활발하여지면
惟神如意天 오직 하늘의 뜻과 신령이 같을 것이다.
鏡開新人面 거울을 열면 새사람 얼굴이요
春生古木花 봄이 오니 고목에 꽃이 새롭게 핀다.
......
박준승 선생은 동학의 천도교인이므로 선(仙)적인 동학의 무위이화( 無爲而化)가 글 속에 보이고 다시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성(性)에 관한 유교적 입장도 잘 보입니다.
"性沈血海月 성품은 핏빛에 물들은 바다에 뜬 달이요"에서 최시형의 호인 해월(海月)도 다르게 읽힙니다.
▷조항마을 (해월신사 동학교리 설법 장소)
조항마을 회관이 있는 곳에 주차하고 어르신에게 여쭈어보니 어눌하지만 해월의 설법장소를 잘 알려주십니다. 터만 남아있고 집의 흔적은 없습니다.안내비석을 보면 35일간 설법을 하였고 동학농민 재봉기 이후 우금치 전투 등 격전이 벌어지는 시기의 대부분을 여기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天地万物 莫非侍天主也 (천지만물 막비시천주야)
아마도 "천지만물을 아끼고 존중하라"고 하셨을겁니다.
하느님의 조화로 이룩된 모든 물건도 그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쌀 한 줌, 흙 한 줌, 돌 한 개라도 소중하게 다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조화에 합하는 태도입니다. 물건을 함부로 대하여 마구 버리고 파손하는 자가 어찌 사람인들 귀하게 여기며, 하느님을 성심껏 모시겠습니까?
동덕 여러분, 우리의 주위에는 우리를 원수처럼 미워하는 무리가 가득하고, 우리 역시 전례 없는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들을 미워하지 말고, 저들의 물건을 박대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하늘을 모신 사람이요, 그들의 물건도 하느님의 조화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고 어여삐 여겨 그들의 마음속에 가리워진 하느님을 키우도록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선사께서 깨달으신 천도의 진리랍니다. 우리가 그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켜 꾸준히 하느님을 모시면 언젠가는 반드시 오만 년의 후천개벽이 올 것입니다.
▷광제정
광제정은 매당(梅堂) 양돈이 지은 누정으로 양돈은 1477년 진사를 뽑는 시험에 합격했지만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남원부 아산방 봉현에 은거하였고,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당시 유림의 사표가 되었는데 그가 죽자 아계사를 지어 제사를 지내고 그를 추모했다고 합니다.
광제정 중간에 온돌방이 하나있는 구조인데 현판의 광제는 광풍제월에서 따 온 말입니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는 글귀는 『송서(宋書)』 주돈이전편(周敦頤傳扁)의 “정견이 일컫기를 그의 인품이 심히 고명하여 마음결이 시원하고 깨끗함이 마치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과 같도다[庭堅稱 其人品甚高 胸懷灑落 如光風霽月]”라는 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광제정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니 하서 김인후(金麟厚)의 시판이 보입니다.
梅堂偶世想餘音(매당우세상여음)
亭在山高與水深(정재산고여수심)
雨歇芳林淸潤色(우훨방림청윤색)
烟消靜夜見明心(연소정야견명심)
양돈이 친구 시절 글 읽던 일 생각하며
산 높고 물 깊은 곳에 정자를 지었네
비 갠 뒤 아름다운 숲은 맑은 빛을 머금고
안개 걷힌 고요한 밤은 밝은 마음 보인다.
광제정 뒤 바위군이 있는데 글씨들이 보입니다.
복호암(伏虎巖)이라는 아주 유려하고 멋진 초서글씨가 보입니다. 퇴어 김진상(1684~1755)이 1745년 영조21년인 62세때 쓴 글씨입니다. "伏虎"는 "엎드려 앉은 범"을 의미하니 아마도 복호는 매당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한편으로는 산세가 끝이 나면서 범이 엎드려 물에 코를 댄 형상의 위치이기도 합니다.
매당의 후손인 동몽교관 취계 양집하의 오언절구 한시도 보입니다.
靑山太古性(청산태고성)
白水萬年源(백수만년원)
天地一芧屋(천지일모옥)
洗心溪上村(세심계상촌)
醉溪 楊楫河 題
청산은 태고의 성품이요
맑은 물은 만년의 근원이네
천지는 하나의 초가집이요
세심계가의 마을이라
취계 양집하 제
세심마을 옆을 흐르는 하천변에 광제정이 있고 광제정 뒤로 바위군이 있는데 여기에 글들이 각서되어 있습니다.
제가 사는 부산의 유장한 낙동강에 비하면 전북 섬진강은 아기자기한 맛이 더 나고, 바위가 많은 금정산에 비하면 성수산은 산이 높아서 더 많은 물을 품고 있었습니다. 왕관의 무게를 견딜수 있는 그릇이라면 성수산 상이암에서 백일치성을 드려보시기 바랍니다.아직 6명의 왕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재가 아닌데 함부로 구하면 오히려 화를 당할 겁니다.왕이 될 목적이 아닌 다른 기도라면 결과로서 여기가 임실(任實)이니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기도 후 노력만 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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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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