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재약산 표충사 말사 한계암의 1평 크기 가장 작은 대웅전
밀양 재약산 표충사 산내암자 7개 중 하나인 한계암은 소박한 1칸 대웅전 법당이 있습니다.
불교예술 인간문화재인 혜각스님이 1966년 중창하여 처음보다는 뭔가 좀 더 구색을 갖춘 암자이겠지만 1평 크기의 대웅전이라면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수행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한번 가보기로 합니다.
불상은 금강산 유점사에서 모셔와 개금을 했고, 한계암으로 가는 길은 계곡을 우측에 끼고 오르게 되는데 금강산의 계곡과 비슷하다고 하여 금강동(金鋼洞)이라는 글씨도 보이니 이곳의 물소리와 중간중간 보이는 큰 바위의 기암 및 연이어지는 폭포와 산책 삼아 올라가는 아침의 싱그러운 오솔길이 더 없이 좋았습니다.
- 일시: 2024-8.24 22:15 ~8.25 11:30
- 날씨: 대체로 맑음
- 몇명: 홀로
▷ 답사일정(風輪) :144km
표충사-한계암
2024.8.25 00:30
표충사 주차장은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주차가 가능하여 야심한 시각엔 주차가 불가능하여 표충사에서 되돌아 나와 단장면 범도리의 마을 공터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생각한 것보다는 덥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2024.8.25 05:50
▷표충사
표충사에 아침 6시10분경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먼저 표충사 경내를 둘러봅니다. 어렴풋 표충사는 다녀 온 기억이 있다고 생각하여 찾아보니 2010년 5월에 표충비각이 있는 곳인 밀양 무안의 홍제사와 표충사(表忠寺) 사찰 내의 표충사(表忠祠) 사당을 중점적으로 본 기억이 났습니다.
그 이전에는 재약산 천황봉 등산을 하고 하산하면서 계곡 옆의 표충사 전각 몇개를 보고 지나쳐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는데 오늘은 아주 조용한 시각에 오롯이 집중하여 보니 완전히 처음보는 공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8월말이지만 아직은 열대야로 고생하는 더운 날이 이어지고 있어서 되도록이면 새벽에 오르고 8시반쯤 되면 야외활동을 끝내겠다는 계획으로 일찍 서둘렀습니다.덕분에 아주 싱그러운 아침을 맞았습니다.
상사화가 돌 축대 아래 옹기종기 나열되어 심어져 분홍꽃이 피었고 배롱나무는 한창을 지났지만 여전히 붉은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절집 뒤로 재약산 수미봉이 보입니다.
표충사에는 대웅전 대신 대광전이 있습니다.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광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집인데 용마루 중앙에는 특별한 장식이 있는데 대웅전과 같은 건물에 세우는 찰간대(刹竿臺)입니다.찰간대는 큰 절에 세우는 깃대로 예전에 덕이 높은 승려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한계암
계곡을 우측에 두고 온갖 기암을 보며 오르다보니 땀이 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힘든것도 잊게 되며 아침의 싱그러운 정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게 됩니다. 계곡의 거대한 바위에 '금강동(金剛洞)'이라는 글자가 흰 페인트로 적혀 있으니 여기가 금강동천이라는 의미입니다.우연히 동행하게된 산행을 오신 두분은 천황봉으로 향해가는데 한계암까지는 길이 같습니다.
표충사를 우측으로 두고 좌측의 산길로 오르면 집채만한 바위로 선 효봉선사 사리탑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고 나면 두갈래 길이 나타나는데 좌측의 금강폭포,한계암으로 방향을 잡고 오솔길로 접어들어 걸어 올라가면 됩니다.계곡에 엄청난 크기의 바위가 보이면 이곳이 한계암의 자연바위로 만들어진 일주문이라고 생각하고 지나면 바로 목계단이 나타나고 양갈래의 폭포 중 우측이 금강폭포입니다.그 위에 1평의 한계암 대웅전이 보입니다.
표충사에 보이지 않던 대웅전이 여기에 있습니다.한계암 대웅전 앞은 폭포가 있어서 저절로 물소리를 듣게 되니 관음(觀音:소리를 보다)이 저절로 됩니다.
경내로 들어 서기 전 다리 위측의 폭포는 은류폭포입니다.
파스텔톤의 하늘색 슬레이트 지붕이 보이고 경내로 들어서면 그 좁은 곳에 작은 건물이 5채나 들어있습니다.나무를 보관하는 장소와 작은 화장실,요사채로 보이는 한계암,대웅전 및 수행공간으로 보이는 건물까지 바위 아래에 있습니다.세수대야가 있어서 세수를 하고보니 한계암은 한계(寒溪),즉 "찬 계곡"이라는 의미입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의 위쪽은 은류폭포가 있고 우측 아래쪽엔 금강폭포가 협시보살처럼 있습니다.
한계암의 현판 좌측에 보이는 주련은 ‘쓸쓸한 산길(한산도·寒山道)’이라는 한산자(寒山子·당대 초엽)의 한시입니다.
杳杳寒山道, 묘묘한산도
落落冷澗濱. 낙락냉간빈
啾啾常有鳥, 추추상유조
寂寂更無人. 적적갱무인
淅淅風吹面, 석석풍취면
紛紛雪積身. 분분설적신
朝朝不見日, 조조불견일
歲歲不知春. 세세부지춘
까마득히 먼 쓸쓸한 산길,
콸콸 흐르는 차가운 산골짝 개울.
재잘재잘 언제나 새들이 머물고,
적적하게 인적이 끊긴 곳.
쏴 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펄펄 눈송이 내 몸에 쌓인다.
아침마다 해는 보이지 않고,
해마다 봄조차 알지 못한다.
.......
위는 봄과 여름을 노래한 것으로 보이고 아래는 겨울에서 봄까지 노래하여 오늘의 한계암 산책은 여름을 노래한 첫번째 절구와 맞아떨어지지만 한계암의 주련은 두번째 겨울 도입부분 부터입니다.
현판 좌측의 밀짚모자 위 朝朝不見日 歲歲不知春(조조불견일 세세부지춘)이라고 했으니 불견일(不見日), 부지춘(不知春)은 시간의 변화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니 시간의 한계를 벗어난 경지를 말하므로 이를 선문(禪門)의 용어로 보면 겁외춘(劫外春)입니다.
차가운 바람이 간간이 얼굴에 불어오는데/
분분히 흩날리는 눈이 몸을 덮는다./
아침마다 해는 뜨나 보이지 않고/
해가 바뀌어도 봄이 왔다가 갔는지도 모르겠다.'
‘한산시(寒山詩)’에 나오는 시문으로 같은 두 글자를 겹쳐 사용하여 그 뜻을 강조해 시문의 기교가 돋보이는 선시입니다.
(杳杳묘묘:멀어서 아득한 / 落落낙락 ;고요하고 쓸쓸한 / 啾啾추추:의성어, 조잘조잘/ 寂寂 적적:적적하고 고요하다 / 淅淅 석석:바람소리로 솔솔,살랑살랑 / 紛紛분분 :흩날리는 모양 /朝朝 조조 :매일 아침,아침마다 /歲歲 세세 : 연년,해마다)
1평의 대웅전안에는 금강산 유점사에서 모셔왔다는 작은 불상이 있고 협시로 지장보살과 관음보살까지 있습니다.
한계암은 원래는 비비정(飛飛亭)이라는 정자였다고 하는데 "날 비(飛)" 글자가 2개인 것은 아마도 은류폭포와 금강폭포의 물의 파편이 바람에 날려 올라가는 것을 응용한 멋진 이름으로 판단됩니다.
인간문화재인 혜각스님이 1966년 가을에 중창한 암자로 불교 예술계의 거장인 '단청에 혜각' '탱화에 석정' '선서화에 수안' 스님이 이곳에 거했는데 1964년 표충사 주지였던 석정스님은 주지직을 사임하고 둘도 없이 절친했던 혜각스님과 함께 이곳에 들어앉았는데 '정신병 환자 수용소'라는 간판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혜각,석정 두 분과 석정스님의 제자인 수안스님은 함께 6년간 묵언 수행을 했다고 하니 정신병 환자 수용소의 참된 의미가 느껴집니다.
한산자 (寒山子 ?~?)는 당대의 고승이자 시승으로 때로는 은자. 도사. 심지어는 광인으로 불리었습니다.그의 속명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몸소 농사를 짓고 공부를 했던 그는 자신을 빈자라 칭했고 또는 한산자라 했습니다.비쩍 마른 몸매에 닳아빠진 바지저고리, 찢어진 신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모자를 쓴 그는 누가 봐도 거지였습니다. 한산(寒山)은 오랜 시간 천태산(天台山) 한암(寒巖)에 머물렀고 이때 시를 지어 돌이나 나무 등에 새겨 놓았는데 600여수가 되었다고 하나 일부는 실전되고 전당시(全唐詩)에 그의 시 310여편만 전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혜각,석정스님은 한산자의 삶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한산자의 선시인 한시가 한계암에 걸린 것은 혜각과 서적스님의 성정으로 보아 이해가 됩니다.표충사의 대웅전이 여기 이곳 작은 한계암에 있는 것 같아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운으로 남습니다. 禪은 "示와 單"을 합친 글자이므로 "단순한 것을 본다"는 의미이니 이 보다 더 좋은 수행공간이 있겠습니까?
길옆 바위에 앉아서 폭포소리 들으며 한참을 대웅전 우측으로 내리는 금강폭포의 물줄기를 바라봅니다.아래의 금강소는 카메라 앵글의 한계로 담아내질 못합니다.
다시 표충사로 내려옵니다.괴목이 표충사 절집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서 있습니다.흡사 이곳부터는 조용히 하라는 듯 "쉿"하는 듯 합니다.
쉿하고 보니 상사화가 햇살에 드러나 꼭 보고 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공든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 염원들이 모여 "破邪顯正파사현정" 되는 세상이 올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재약산 (載藥山)인가 했는데 표충사 현판에는 재악산(載岳山)으로 되어 있습니다.
표충사는 원래 죽림사라는 절집이었지만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는 표충사(表忠祠) 사당이 이 절로 옮기면서 표충사(表忠寺)가 됩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내가 부처님이라고 해도 표충사보다는 한계암 대웅전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성채 같은 표충사와 정신 만큼은 찬 계곡 같은 한계암은 좋은 대비를 이루어 보여줍니다.
멀리 바깥 세상 성(城) 있는 곳 바라보면
오직 들리나니 시끄럽고 떠들썩한 소리뿐이네.
望遠城隍處
唯聞鬧喧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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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방랑의 은빛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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