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 2006.12.17 (일) 14::00~18:00
- 얼마나:12.1714:30~16:08(1시간38분)
- 날 씨 :다소 흐림,눈발 약간
- 몇명:2명
- 어떻게 :자가용 이용
▷덕도초등학교-덕도산-차로 죽림동으로 이동-가락산-김해죽도왜성-차로 선창마을 이동
-개인산행횟수ː 2006-29[W산행기록-158 P산행기록-300/T645]
- 테마:근교산행,답사산행
-산높이:덕도산(38.3M)
- 좋은산행 개인호감도ː★★★★
오전엔 그동안 불철주야 노력한 나의 실력을 평가받는 시간이었다.오전 7시에 집을 떠나 오후 1시반 정도에 모든 과정이 마감되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2시가되었다.오후 이시간에 갈 수 있는 곳을 점찍어 둔 곳이 있었다.그동안의 피로도 풀겸 가깝지만 내가 한번도 가 보지 못한심정적으로 멀었던곳,부산에서는 가장 낮은 산이지만 낙동강 삼각주에서는 가장 높은 곳으로 드라이브 겸 산책을 떠난다.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낙동강 삼각주는 내가 5살부터 성인이 될때까지 살았던 실질적인 나의 고향이다.사실내가 자란 이곳은 행정구역이 경남 김해군으로시작되었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중학교에 들어 갈 즈음 아마도 부산시로 편입이 된 것 같다. 그래서 부산의 중심지에 위치한고등학교 시절엔 김해에서 온 촌놈 취급을 받았는데그 이유가 아마도 김해평야라는 너른들판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낙동강 델타에 있는 김해공항은 사실 행정구역 상 부산시 강서구 이지만 아직도 공항은 김해공항인 것처럼 이곳은 김해라는 가락국과 뗄레야 뗄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지역이다. 이제 세상 보는 눈과 자연을 보는 눈이 내 어릴 적 시절과는 비교도 안되게 커져버린 지금보면 정말 이곳은 자연의 백화점에 선물세트가 가득한 곳이다.무슨 말인고 하면 낙동강 삼각주 이곳은 강과 바다, 산과 들판, 그리고 섬 등 온갖 것들이 공존하는 묘한 곳으로갈대숲 위로 힘차게 비상하는 철새떼,샛강을 오가는 자그마한 배와 나루터, 가없이 펼쳐진 들판,그물 사이 한가득 펄떡이는 바닷고기들, 이 모두가공존하는 이미지들이기 때문이다.낙동강의 기나 긴 물길이 마감하며 마지막으로 그 하구에 종합선물세트로 마련해 준 자리인 것이다.
비옥한 삼각주, 그래서 이곳은 곡창지대이며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오늘 내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덕도산으로 38.3M에 불과한 동산이다.그러나 삼각주라는 너른들판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조망만큼은 어느 산에도 뒤지지 않는 곳이다.이런 낮은 산의 역사는 대단해서 신석기 시대의 즐문토기가 발견 될 정도이다. ▲덕도산 강동동 북정리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38.3m, 면적은 0.6㎢로서 삼각주 지역에서는 오직 하나뿐인 산이며 산이라기 보다 동산이라 함이 옳을 것이다. 대저동의 칠점산과 함께 낙동강 삼각주상에 있는 구릉성의 낮은 산지로 삼각주가 형성되기 전에는 바다위에 떠 있던 외딴 바윗섬. 이 산의 북쪽, 서쪽 기슭에는 신석기시대의 즐문토기가 출토되는 패총이 자리잡고 있어 덕도산 일대는 일찍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임을 잘 알 수 있다. 이곳 덕도산을 포함하여 주변의 산을 합쳐 가락 오봉산이라고 하는데 내가 오늘 다녀온 곳은 덕도산과 김해죽도왜성이 위치한 가락산이다.
▲가락 오봉산 예종실록지리지(1496년)에 <전답과 민가도 없는 무인도>로 기록돼 있는 가락동 오봉산은 옛 가락국 왕도의 비옥한 김해평야를 가로 질러온 서낙동강 중심부에 자리해 있다. 이곳 오봉산은 고작 30m 남짓 나즈막한 야산에 불과하지만 서기 47년 가락국을 건국한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이곳 산기슭 3층 바위에서 낚시를 즐겼다는 설화가 있을 정도로 주변에 펼쳐진 김해벌 금바다의 경관이 빼어났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 오봉산 주변으로는 임진왜란 이후 구한말까지 약 5백년간에 걸쳐 형성된 역사문화의 발자취와 일본인들에 의해 철저히 약탈당한 암울한 과거사가 여러곳에 묻혀 있어 '역사의 산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특히,1592년 임진왜란때 왜군들이 석축산성을 쌓고부터는 서낙동강 수로를 이용한 침략전쟁의 요새화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1646년(인조 24년)이곳에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전함과 군기를 만들던 대변청 설치로 군항으로서의 역할과 세곡을 수납하는 해창이 들어서면서 무역이 번성하였으며,1692년에는 금파대를 건립하여 민간인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농토를 개간,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크고 작은 향토사의 애환이 물씬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조선말엽에는 해창과 불암조창을 연결하는 산태방둑을 축조한 이후 이 지역 저습지 갈대밭이 농토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정미업이 번성하여 수로와 육로교통의 요지로서 김해의 관문 역할을 담당하였으나,지금은 옛 흔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이처럼 오봉산은 서낙동강 수로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때문에 군사적 기능은 물론 서낙동강 경제의 중심무대로서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산주변으로는 가락동의 중심지인 죽림마을과 호박샘이 있는 고정마을,홍수관측의 관수대가 있는 죽동마을을 비롯해 삿지리 마을이라 일컫는 봉림마을 등 가락동 전체인구 3분의 2를 차지하는 5개마을 8백여 세대가 옛 해창나루 장돌뱅이들의 질퍽한 삶과 넉넉한 인심이 발복한다는 '오봉산정기'를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있다.
인근 송산,전산,칠점산,덕도산,가락산을 합쳐 옛 가락국의 국명을 붙여 '가락오봉산'이라 불렀다"며 "대동여전도에 '죽'으로 표기되었다가 죽도,가락산이 됐다"며 옛 가락국 시절 5개 산봉우리의 빼어난 경관을가진 곳이다.
지금도 오봉산에는 왜성이 남아 있으며 죽림마을 언덕에는 김해부사 류덕옥 애민선정비와 6.25동란 때 젊음을 바친 이 고장 출신 39명의 영위가 안치돼 있는 전몰국군장병묘소와 충혼비가 건립(1993.6.25일)돼 나라에 바친 충정을 길이 보존하고 있다. |
평야지대에서 보면 분명 산의 모습이지만 산마루에올라보니 이곳도 평야와 비슷할 정도로 펑퍼짐하다.
그래도 산이라고 소나무,대나무가 즐비하고 억새의 모습도 예쁘다.
거의 공동묘지 수준이다.터널같은 대나무 숲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펼쳐지는 시원한 눈맛은,
작은 이벤트 같은 느낌이다.
터진 구름사이로 내비치는 햇볕을 받아 낙동강은 유난히 반짝거리고,소나무와 억새로
잠시 감춰주었던 조망은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며 뭔가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를 만난 느낌이다.
오늘 유난히 빛내림이 강한데 바람은 제법 쌀쌀하고 뵐 듯 말 듯,눈발도 날린다.
강한 바람과빛내림 때문에억새는 칼을 눈부시게 도리질치는검무춤을 보는 듯하다.
그 위로 김해공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는 은빛날개를 수시로 위로 향하며 오른다.
비행기를 보고 눈을 내리니 금정산이 지척이다.
정상을 밟고 다시 올랐던 길로 내려오니 김해죽도왜성이 있는 가락산이 교회첨탑 뒤로 보이고
너른반석 아래로 덕도초등학교가 놓여있다.
차를 타고 다시 다리를 건넌다.다리를 건너면낙동강을 건너게 되고
낙동강을 건너면 삼각주 델타는 아니다.
산마루에 소나무 숲사이에 당집이 있고,조금 진행하여 아래로 내리니 국군용사충혼탑이 있다.
충혼탑 너머 38명의 용사들이 잠들어있는데 미니 현충원의 모습이다.
일명 가락성 또는 죽도성이라고 한다.죽도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기 때문에 나온 이름이다.
가락산은 동서로 뻗은 독립된 야산으로 그 동쪽 끝은 낙동강 서쪽 지류 오른쪽 강변에 인접해 있어
선박을 정박시킬 수 있으며, 죽도는 김해부(金海府)의 안산(安山)이었다.서북쪽의 삼면은 논으로 둘러쌓여 있는데,
죽도왜성은 임진왜란때 왜장 니베시마가 축조한 전형적인 왜성이다.
이 성은 구포에 있는 구포왜성과 수로로 약 3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임진왜란때 왜군이
구포왜성과 죽도왜성에 주둔하면서 낙동강 하구지역을 방어하였다. 즉, 지형적으로 볼때 죽도왜성, 구포왜성,
양산왜성은 삼각형을 이루어 김해 북쪽지역에서 내려오는 병력을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어의
요충지였을 뿐 아니라, 낙동강 지류를 이용하여 배로 다른 성들과 긴밀한 연락을 도모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죽도왜성은 해발 35m 구릉지의 양쪽에 축조되었는데, 제일 높은 곳에 소위 일본성의 양식인 본환(本丸)이 있고,
그 밑으로 점차 삭평(削平)하여 이환(二丸), 삼환(三丸)으로 구축하였다.
석재는 부근에서 구하기 어려워 먼 곳에서 육로 및 바닷길을 이용하여 운반하였고,
서남북측은 수호(水濠)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좋은 곳이라 지위가 높은 분의 묘소가 있어서 소나무가 상대적으로 잘 보존 된 모양이다.
다시 시야가 트이는데 낙동강 사이로 섬같은 삼각주 모래톱이 아름답다.산같지도 않은 산을 올랐다고
뭐라 할지 모르나 분명 내눈엔 아름답고 눈부신 곳이다.
산책을 마치고 갈미조개구이로 유명한 맛집이 줄지어 서있는 명지의선창마을로간다.김과 얇게 바른
무우를 쌈으로 만들고 콩나물 줄기무침과 묵은 김치에 갈미조개와 삼겹살을샤브샤브형태로 익힌 다음,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은 나는 이곳 이외 먹어 본적이 없다.그 맛은 입안 가득 삼각주만큼이나 풍요로움을 안긴다.
"그네" 노래를 들으면나는 언제나 낙동강변 미풍에 갈대가 바람에 흔들거리는그림이 절로 그려진다.그 흔들거리는 리듬이
곧 "그네"의 멜로디에 녹아있음을 느끼는 것은 나 뿐일까?
난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공간에서 뛰어놀았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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