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영축산▲정말 잠시 후손에게 빌렸을 뿐인데..
07:20~08:48 전날 밤늦게까지 장례식장을 지키며 술을 마셔 아침일찍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차를 몰고 속도를 내었더니 7시20분에 창원에 도착했고 윤부장님과 회장님을 차례로 픽업하여 산행들머리인 창녕의 영산 경림빌라로 갔다.영산4거리에서 KT를 좌측으로 끼고 산으로 오르면 경림빌라가 나오고 곧 달나라어린이집이 나온다.좌측엔 달나라어린이집을 끼고 산으로 오르면 보덕암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좌측 산길을 오르면 산행들머리가 된다. 09:33 송이버섯이 많이 나는 곳이라고 하더니 좋은 소나무가 많다.처음부터 매우 험한 비탈-된비알-이다. 어제 마신 술이 식도와 뱃속을 오가는 듯 한데 장딴지마저 굳어있어 무척힘들다. 09:37~55 능선에 서니 이곳이 전망대이다.발아래 영산이 보이고 저수지가 보인다.전망대를 지나 15분 오르니 신선봉이다.이곳에서 보는 전망도 좋다. 09:59 신선봉에서 보니 가야할 길이 너무 아름답다.바로 앞에 589봉이고 바로 뒤 영축산이 보이고 그 뒤로 뾰족한 병봉(고깔봉)이 보인다. 10:00 기세 좋은 병봉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는 내촌으로 이어지는데 아기가 탯줄을 달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10:11 589봉에 서니 진행방향이 아닌 마을 방향으로 또다른 산세가 뻗어있는데 꼭 처녀막 같이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듯한 모습이다.저수지 뒤로 종암산이 보인다. 10:17~49 영축산 오름길은 예상밖의 암릉길이다.영축산을 지나니 좌측 아래에 구봉사가 보인다. 10:50 뒤돌아보니 영축산 정상 바로 아래 우측으로 용머리 같은 바위가 돌출되어 있는데 화왕산을 향해 불을 뿜는 듯하다. 11:15~43 붓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병봉이 위압적이다.땀깨나 흘리며 병봉에 정상에 서니 병봉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내촌마을로 용이 꿈틀거리듯 휘어지며 이어지고 있다.이 산줄기를 따라서 내촌마을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다.뭔가 중요한 것이 있을 것 같은 강한 유혹이 마음속에 일어난다. 11:59 송이움막에 도착했다.이곳에 모두 모여 식사를 했다.보온죽통에 담아 따뜻한 국으로 식사를 한다. 오늘 종주를 위해 2리터의 물을 특별히 종주용 물통에 담아왔는데 아무래도 호기심이 일어서 식사를 마치고나면 마을로 내려가서 반풍수의 실력을 확인(?)해 보아야 겠다. 13:31 임도에서 두분은 원래계획대로 종주를 하기로 하고 나는 이곳에서 헤어져서 마을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임도에서 508봉으로 간 후 여기서 바로 마을로 내려가는 427봉으로 향한다.427봉에서 내려다 보는 내촌마을이 보기 좋다. 14:02 완전히 내촌마을로 내려와보니 폐가가 예상외로 많고 돌담으로 이루어진 집들을 보니 내가 60년대로 되돌아 온 느낌이다.그리고 눈 닿는 곳마다 무덤들이 즐비하고 말을 붙여 볼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완전히 예상 밖이다.불무도로 유명한 보정사가 뒤로 보인다.절은 절인데 법당만 세워져 있고 입구가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다. 개인 집처럼 싸립문이 나 있고 돌계단 두어 개가 놓여져 있는 사이로 훔쳐보니 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14:06 대나무 숲을 따라 들어가니 예의 무덤들이 나오고 그 뒤로 부도가 한기 보인다.폐사지로 변한 보림사에는 스님 수가 몇 백명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절터의 주춧돌은 밭 언덕에 쌓여 있는 것도 있지만 묻혀 버린 것이 더 많다고 한다. 다층석탑은 법화암으로 가고 삼층석탑은 영산초등학교 화단에서 소나무에 모습을 숨기고 세월을 버티고 서 있다. 천년 세월 보림사지를 지키고 있는 것은 이제 동쪽으로 200m지점에 있는 부도 뿐이다. 14:23 우리농촌의 현실 중 최악의 상황을 보는 듯하다.120여호, 250여명의 마을 인구중 60% 이상이 65세 이상의 이른바 노인이다. 노인 홀로 살아가는 독거노인도 적지 않다. 홀로 일하고, 홀로 밥을 먹는다. 빈집은 이가 빠진 듯 마을 도처에서 출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을에 인접한 묵언수행의 도량, 영축산 보정사 테이프 불경소리가 마을 풍경을 지배하듯 가장 활기차다.좁고 비탈진 다랭이논에 의지하는 벼농사 수입은 연간소득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低부가가치 작물인 단감과수 농사가 그나마 20% 정도 되고, 나머지는 철따라 마을 뒷산 암벽을 타고다니며 송이버섯을 따서팔아 먹고살고 있다는 구계마을.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텅빈 공판장과 유럽풍 원목별장 같은 마을회관이 오히려 애처럽게 보인다. 14:26~54 중촌(중간동네) 마을에 걸려있는 사용하지 않는 우물의 도르레가 줄을 잃고 녹슬고 있고,이렇게 즐비한 무덤도 모자라 이제 떼무덤을 조성하려는지 구계저수지 사면도 계단식으로 파헤쳐 놓았다. 그리고 곧바로 나타나는 경고문은 이곳의 현실을 대변하는 대자보로 보인다.이런 경고문을 몇개 더 보았다. 14:58 경고문이 붙어있는 건물 뒤로 돌아가니 구계리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불상과 광배가 단일석으로 조각된 이 석불좌상은 도로변 비탈에 있는 마애불로서 적조사의 유물로 추측된다.마멸이 심해 구별이 어려우나 큼직한 육체와 얼굴에 나타난 코가 특색이며, 처진 두 어깨, 좁은 무릎폭, 입체감 없는 신체 등 간략화된 특징은 지방적 양식을 띄고 있다는데 고려시대유물이라고 한다.
15:26~37 경림빌라로 돌아와서 차를 수배하고 영산읍성지에 올라 산행의 마무리지점인 동리방향을 쳐다보며 만날 장소를 통화 한 후 만년교로 가서 일행을 픽업하면서 실제적인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영축산과 그 아래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제대로 된 시각을 갖지 못한다면 돼지발의 금강석이라는 것을 느꼈다.참 좋은 곳이며 참 아까운 곳이다. ━━━━━━━━━━━━━━━━━━━━━━━━━━━━━━━━━ 바람이 흐르듯 자연과 만나는 산행 風流山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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